ⓒ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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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3일 서울시 서초구청장실에서 만난 조은희 구청장은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자살에 대해 “남의 생명 못지않게 나의 생명도 중요한데 너무나 안타깝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서울시 25개 구청장 가운데 유일한 미래통합당 출신 여성 구청장이다. 강남구까지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한 2018년 지방선거에서 통합당 후보로 살아남았다. 조 구청장은 “박 시장 빈소가 마련된 첫날 조문했다”며 “저와 6년 동안의 인연을 생각해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 문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박 시장 성추행과 관련한 진상규명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언론에서 내년 4월 치러지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통합당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7월 14일 관훈토론회에서 “서울시장 후보군은 비교적 참신하고, 새로운 미래에 대한 믿음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언급하면서부터다. 그는 서울시장 출마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서울시를 발판으로 대권 꿈을 꾸지 않는 엄마 시장이 필요하다”는 말로 속내를 드러냈다.

지난 1년간 업무에 집중하겠다며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던 조 구청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주변에 우군은 없지만 외로워도 슬퍼도 안 우는 캔디처럼 달려왔다”면서 그간의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시장직을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서울시 맡아야”

- 조직의 장이 여성이면 어떤 장점이 있나. “그런 식으로 가르고 싶지 않다. 일하는 스타일이 중요하다. 지금은 ‘엄마 행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오히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역대 서울시장은 대권주자였다. 서울시장이 대권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면 안 된다.”

- 그 폐해는 무엇인가. “(서울시에 집중하지 않고) 외부에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이제 서울시장이 세세한 것을 살펴주고 집안을 챙기는 데 집중해야 한다. 다른 욕심 없이 서울시가 국제 경쟁력을 갖추는 데에만 집중해야 한다.”

- 차기 서울시장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나. “서울은 인구가 1000만이고, 예산이 2020년 기준 40조원이다. 이렇듯 책임이 막중한 자리다. 야망이 나쁘지는 않지만 서울시를 발판으로 대권을 꿈꾸는 것은 좋지 않다. 서울시민의 행복과 도시 브랜드를 높이는 것에만 주력해야 한다. 이제는 진짜 엄마 시장이 필요하다. 정파에 치우치지 않고, 시장직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사실 선거를 해보면 낙선자와 당선자는 표 차이가 크지 않다. 당선자는 나를 지지하지 않는 나머지 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내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서울시장이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해 임기를 채우지 않고 대선에 출마하면 어떻게 될까. “서울시가 만신창이가 된다. 국민들의 저항을 받을 것이다. 제대로 된 지도자라면 하고 싶은 것을 넘어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 주인공이 국민이어야 지지를 얻을 수 있다.”

- 서울시장 후보가 특정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러닝메이트 형식으로 함께 뛰면 어떨까. “부적절하고, (후보 중심의) 자기중심적 사고다. 여의도식으로 정치 공학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 여권 서울시장 후보로 추미애 법무장관이 부상 중인데, 조 구청장이 시장 선거에 나서면 이길 수 있나. “공교롭게도 성추문으로 낙마한 지자체장이 많다 보니 여성 후보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지금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내 출마 여부는) 당이 결정할 문제다.”

조 구청장은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정무부시장을 지냈다. 2009년 그가 주도한 여성행복프로젝트로 서울시는 유엔 공공행정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오세훈 전 시장의 ‘디자인 서울’이 저평가되었다고 보나. “행정이라는 것은 연속성이 중요하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주민들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 박원순 시장은 오 시장 때 추진한 세빛둥둥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PP)를 만들고도 오랜 기간 문을 열지 않았다. 결국 문 열 것을 이런저런 이유를 찾고 핑계를 댔다. 오 시장의 경우 도시의 품격을 높이는 디자인 서울을 추진해 성과를 냈다. 물론 박 시장이 했던 것 중에 좋은 것도 많다.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 심야 올빼미 버스 등은 서초구에 적극 도입했다.”

- 왜 지자체장과 관련한 성추문이 계속 터질까. “여성들이 겪는 고통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성희롱에 대한 이해가 없다. 지자체 단체장은 당선되고 나면 너무 외롭다. 이를 주민들과 소통하며 극복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다. 반드시 박 시장 죽음과 관련한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나도 진실이 궁금하다. 이와 관련한 목소리도 계속 낼 것이다. 피해자가 ‘나도 살아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는데, 그 고통이 크게 공감이 되었다.”

- 성인지감수성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나. “우리 사회 전반에 내려오는 무의식적 성차별이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다 만원이 되면 누군가 내려야 하는데, 보통 여성 공무원이 내린다. 그래서 한번은 내가 ‘왜 젠틀맨은 가만히 있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무의식중에 (여성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있다.”

- 제도적 대책은 없을까. “서울시의 경우 젠더특보까지 있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차라리 투명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성 관련 비위를 감시하기 위해) 외부기관에 위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정부기관이 그런 역할을 맡으면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으니 아예 독립적인 곳에서 하면 좋겠다.”

“강남 재건축·재개발 수익 절반 강북에 사용해야”

- 왜 자꾸 집값이 오른다고 보나. “서울시 집값이 오르는 것은 서울시 부동산 정책의 실패 때문이다. 서울시가 주범이다. 공급을 줄이고 막아놓았다. 재건축, 재개발이 막혀 있다. 뉴타운 출구 전략이라며 뉴타운을 해제해줘서 결국 서울의 새 아파트 공급량이 줄었다.”

- 공공임대주택은 늘리지 않았나. “청년들을 ‘청년 임대 인생’으로 만들었다. 청년들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려면 내 집을 갖게 해줘야 한다. 역세권에 청년 주택을 짓는다고 하면 용적률을 2배 올려주고 건축비의 80%를 저렴하게 대출해준다. 더블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임대주택이 된다. 8년 후에 이를 분양하는데, 당연히 분양가는 오른다. 그 이익은 주택의 지주가 가져간다. 차라리 처음부터 청년들에게 장기 모기지 형식으로 집 살 돈을 빌려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청년들이 임대 인생이 아닌, 집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 강남권 구청장으로서 ‘똘똘한 한 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강남은 교육과 교통이 편해서 수요가 많다. 하지만 강북도 강남 못지않게 역사도시로서 매력적인 곳이다. 수요가 많은 강남 지역을 개발할 수 있게 해주고 개발이익을 강북의 교육이나 교통 개선에 투자한다면 서울을 균형 있게 발전시킬 수 있다. 강남은 강남답게 강북은 강북답게 매력적인 곳으로 만드는 것이 서울의 균형 발전이다.”

- 주택공급을 늘리는 방법이 있나. “재건축, 재개발을 늘리고 혁신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서초구를 예로 들면, 경부고속도로 한남IC에서 양재IC 약 6.5㎞ 구간을 지하화하는 방법이 있다. 약 41만3223㎡(12만5000평)에 이르는 개발 가용지 가운데 일부 공간에 약 5000가구(20평 기준)의 주택 공급이 가능하다.”

- 경부고속도로를 지하화하면 강남만 이익이 되지 않을까. “개발 이익의 반을 강북 개발에 사용하면 된다. 비슷한 논리로 강남 재개발, 재건축도 막고 있는데 그러지 말고 과감하게 개발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고 그 수익으로 서울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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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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