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내 최대 계파로 꼽히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지난 4월 28일 서울 중구 금융노조 회의실에서 지부대표자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photo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노총 내 최대 계파로 꼽히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지난 4월 28일 서울 중구 금융노조 회의실에서 지부대표자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photo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노총 내 최대 계파로 꼽히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이 산하 지부장들과 집행부 간의 불협화음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금융노조 산하 한 지부에서 벌어진 사건을 둘러싸고 현 위원장 반대파들이 지난해 12월 취임한 위원장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흔들고 있는 것이다. 금융노조는 한국노총 내에서 최대 계파이자 조합원들 사이에 ‘엘리트 조직’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곳이다. 2000년 이후 배출된 7명의 한국노총위원장 중 3명이 금융노조위원장 출신이었다. 이 중 이용득 위원장은 20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비례대표 의원을 지냈고, 김동만 위원장은 현재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이다. 이 정도만 보더라도 금융노조위원장직이 노동계 및 정치권 내에서 갖는 위상이 작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금융노조 내에서는 위원장 교체를 ‘정권교체’라고 부를 정도다. 한국노총은 최근 더불어민주당과의 정책연대를 강화하며 보폭을 더욱 넓히고 있다.

한국기업데이터의 강경 투쟁이 발단

금융노조를 내분에 빠지게 만든 사건의 발단은 금융노조 산하 지부 중 한 곳인 한국기업데이터 내에서 일어난 일 때문이다. 한국기업데이터 노조는 올해 1월 신임 위원장 취임 후 사측과 첨예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노조위원장 우모씨는 취임하자마자 사측과 대표이사의 ‘채용비리, 비자금 조성, 해외출장비 유용’ 의혹을 제기했다. 이런 의혹들은 사내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일으켜 해고당한 직원 A씨가 금융감독원과 감사원 등에 보복성 투서를 보내 이미 금감원 조사까지 받고 무혐의로 종결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우모 위원장은 이 직원이 주장했던 의혹들을 사실상 그대로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A씨는 우 위원장과 해고 전까지 회사 내에서 가깝게 지냈으며 같은 대학 동문이라고 알려졌다. 이런 와중에 지난 6월 한국기업데이터 대전지사장 B씨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이를 두고 노조는 “회사의 보복성 인사가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앞선 금감원 조사 과정에서 B씨가 사측에 유리한 진술을 하지 않아 연고가 없는 대전으로 발령을 냈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노총 금융노조위원장 명의의 성명서가 발표됐다. 지난 7월 3일 발표된 금융노조 성명서에는 “모든 시작은 채용비리”라면서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자 “송병선 대표의 경영 전횡에서 촉발된 사람사냥이었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이 성명서에는 “지난해 금융감독원은 특별감사를 벌여 채용비리 정황을 확인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면서 “비리가 의심된 입사자는 송 대표 지인의 자녀였고, 고인(B씨)이 부서장으로 있던 부서에 채용됐다. 이 과정에서 고인은 지인들에게 ‘내가 뽑고 싶지 않은 사람을 내가 방어해야 한다’는 취지로 괴로움을 토로했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그러나 한국기업데이터 측은 대표의 지인 자녀를 채용한 적이 없고, 검찰에서 수사 관련 통보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한국기업데이터 사측과 노조위원장의 갈등이 봉합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한국기업데이터 사측과 노조위원장의 갈등이 봉합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금융노조위원장이 격한 반응 보인 이유

성명서가 공식 발표되기 전 금융노조 박홍배 위원장은 주변 간부들에게 “성명서 내용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금융노조가 명예훼손 등 법적 책임을 그대로 안아야 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말을 전하며 성명서 발표에 신중을 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성명서는 그대로 발표됐다. 성명서가 사실과 다른 무리한 주장이라고 판단한 한국기업데이터는 금융노조 측에 “해당 성명서가 어떤 경위에서 어떤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밝혀달라”고 요청하면서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는 등 적절한 조치가 없을 경우 조합 및 관련자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사측이 회사 내 노조가 아닌 상급 노조 측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매우 드문 일이 벌어진 것이다.

금융노조 명의의 당시 성명서는 내부에서도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금융노조 내부에 이번과 같은 일이 벌어진 전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통상 지부 내에서 벌어진 노사 갈등은 지부장(노조위원장)이 자체 노조원들과 최대한 해결하도록 노력하고, 금융노조위원장은 ‘중재자’의 역할을 맡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기업데이터 사건의 경우 ‘지부장이 걸핏하면 금융노조위원장의 이름을 내건다’는 비판이 내부에서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우모 위원장은 지난 7월 23일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금융노조는 지부와 한몸이기 때문에 누가 어떻게 작성했는지는 중요치 않다”면서 “발표됐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다만 박 위원장이 성명서 발표에 신중을 기하라고 했다는 상황에 대해 우모 위원장은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한국기업데이터 우모 노조위원장이 박홍배 금융노조위원장의 명의를 ‘상의 없이’ 가져다 쓰려고 한 사례는 또 있었다. 우모 위원장은 전임 한국기업데이터 노조위원장이었던 윤모씨와 갈등을 빚고 있는데, 윤모씨에 대한 고발장을 박홍배 위원장 명의로 작성한 것이다. 주간조선이 입수한 이 고발장에는 “피고발인(윤모 전 노조위원장)은 임기 종료 이후 조합비 사용내역에 대한 회계장부와 사측과 합의한 합의서 일체를 인계하지 않고 퇴임 시 무단반출함” “피고발인은 과거 위원장으로서 수많은 노동법 강행 규정을 위반하여 조합의 자주성을 훼손”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고발장은 박홍배 위원장 명의로 되어 있지만 작성은 우모 위원장이 했으며, 박 위원장은 이런 고발장이 작성됐다는 사실조차 당시에는 알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추후에야 이 고발장의 작성 사실을 안 박 위원장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우모 위원장은 “고발은 지부위원장(본인) 명의로 접수됐다”며 “(박홍배 위원장 명의로) 고발장을 작성했다면 접수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금융노조가 우모 위원장에 대한 징계 등의 처분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노조라는 단체의 성격상 ‘연대’를 중요시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지부 회원(한국기업데이터 노조원)들이 선출한 대표를 금융노조가 자체적으로 징계를 내리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함께 ‘그래도 우리 사람이니 품고 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박홍배 제26대 금융노조위원장은 지난해 12월 63%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photo 연합
박홍배 제26대 금융노조위원장은 지난해 12월 63%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photo 연합

집행부와 지부장들 간의 계파 갈등

또 집행부와 지부장들 간의 ‘계파 갈등’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현재 위원장에 동조해온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의 의견 차이가 이 일을 둘러싸고 갈등으로 촉발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현 박홍배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선거에서 당선됐을 당시 금융노조 내부에는 일종의 ‘정권교체’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동안 줄곧 위원장직을 맡아왔던 계파에 속해 있지 않은 인물이 당선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금융노조 내부에서는 박홍배 위원장이 ‘중소형 지부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배경에서 150여명의 노조원을 가진 한국기업데이터의 ‘투쟁’에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반면 박홍배 위원장과 뜻을 함께하는 이들은 “반대편에 선 이들이 한국기업데이터지부 문제를 이용해 위원장을 흔들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현 금융노조 집행부와 다른 지부장들 역시 우모 위원장의 행태에 내심 우려를 갖고 있으면서도, 사건이 계파 갈등의 모양새로 흘러가자 선뜻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노조의 한 관계자는 “우모 위원장이 벌이고 있는 투쟁의 문제점은 출구전략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인식은 없고 ‘사장이 죽일 놈이니 금융노조도 나서달라’밖에 없다. 사실관계부터 제대로 확인된 것인지 우려스러운 주장을 금융노조 명의로 내세우면 결국 조직 전체에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한국기업데이터 노조로 인해 금융노조가 골머리를 앓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기업데이터 노조는 지난해 일어난 사내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노조위원장이 자신과 친하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비호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로 인해 우모 노조위원장에 대한 금융노조 자체 조사까지 벌였지만 실제 징계를 내리지는 않았다. 다만 지난 5월 28일 한국노총 금융노조 36개 지부 대표자회의에서 우모 위원장에 대한 조사 내용을 대의원들에게 10분간 낭독하는 것으로 갈음했다고 한다. 여기서 금융노조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징계를 유보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자회의에 앞서 우모 위원장은 본인의 징계 안건에 대해 해명하는 자료를 금융노조 측에 제출했다. 이 소명서에서 우모 위원장은 ‘내가 성폭력 가해자를 두둔했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는 취지의 주장을 편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노조위원장에게 보낸 서한

이 문제를 둘러싸고는 송병선 한국기업데이터 대표이사까지 나서 박홍배 위원장에게 자신과 회사의 입장을 설명하는 서한을 작성해 보내는 일도 벌어졌다. 회사의 대표가 노조위원장과의 갈등과 관련해 산별 노조위원장에게 직접 소명하는 사례 역시 거의 없었다. 한국기업데이터는 사실상 정부가 임면권을 쥐고 있어 공기업 성격이 강한 조직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회사의 대표이사가 국내 최대 산별 노조위원장에게 일종의 아쉬움을 토로한 것이다. 주간조선이 입수한 이 서한에는 ‘직장 내 성범죄 발생과 가해자 징계해고’ ‘가해자의 보복성 투서의 요지와 사실관계에 대하여’ ‘신임 노조위원장의 불투명한 언행과 피해자 보호의 어려움’ ‘피해자 보호를 위한 회사의 노력에 대한 귀 조합(한국노총 금융노조)의 협조 요청’ 등의 항목이 쓰여 있다. 여기서 송 대표는 “A를 비호하는 듯한 우모 위원장의 행동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 위원장 등 6대 노조 핵심 간부들은 해고에 직면한 가해자를 보호하지 않음으로써 조합원 권익보호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전 노조위원장 탄핵안을 발의하기까지 했다”고 했다. 여기서 A씨는 앞서 언급된 사내 성폭력 사건을 일으킨 직원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박홍배 금융노조위원장은 난처한 기색을 표하고 있다. 자칫 ‘위원장이 지부장 편에 서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노조 관계자는“이런 문제에 발이 묶여 정작 당장 해야할 일을 못해 아쉽다”고 했다.

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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