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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618호] 20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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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인류사]목재의 권력 소국 비블로스가 이집트를 우습게 여긴 이유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중국 삼국시대의 세 영웅 중 하나인 오나라 군주 손권은 한반도 소재 국가인 요동과 고구려에게, 상당히 몸을 낮추며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고자 했었다. 왜 중원의 대국인 오나라가 그들의 입장에서는 변방에 지나지 않았을 요동·고구려에 그렇게 대했을까? 왜 이 두 나라보다 거리상 훨씬 가까운 가야엔 접근하지 않았을까?
   
   지난 회는 이 두 질문으로 마무리됐다. 그 중 첫 번째 질문부터 답을 찾아보자.
   
   손권의 한반도 관련 행보에 대해 읽으면서 한 가지 연상되는 문서가 있다. 기원전 11세기 무렵 이집트 문서인 ‘웨나문 보고서(The Report of Wenamun)’다. 종이의 원조 격인 파피루스에 기록된 문건으로, 현재까지 발굴된 문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다. 발굴된 보고서의 일부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 파피루스에 쓰인 ‘웨나문 보고서’의 일부(왼쪽)와 카르나크 신전에 그려진 태양신 아문의 배.

   웨나문은 카르나크 신전의 사제 중 한 사람이다. 대사제의 명을 받들어 태양신 아문의 배를 수리할 목재를 구하기 위해 페니키아 본토 도시국가인 비블로스(Byblos)로 간다(기원전 1090년 무렵, 이집트 신왕조가 기울어 제3중간기로 들어가면서 고대 이집트 왕조의 영화가 다해가던 시기의 일이다). 예전부터 해오던 연례행사로, 한 두 세대 이전이라면 아주 간단한 일이었을 터. 하지만 고대 이집트 제국 말기의 여행자 웨나문에겐 굉장히 힘들고 긴, 무엇보다 마음의 상처가 계속되는 여정이었다. 이집트 국세가 기울어지면서 주변 지역 사람들의 대접이 예전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웨나문은 중간에 묵었던 항구에서 목재 값으로 가져간 황금을 해적에게 도난 당한다. 간신히 목적지 비블로스에 도착해서 그곳 영주에서 사정을 설명하고 일단 목재를 주면 곧 사람을 보내서 대금을 지불하겠다고 말하지만 거절 당한다. 할 수 없이 웨나문 자신이 그곳에 볼모로 머물면서 이집트에 사람을 보내 돈을 가져오도록 한다.
   
   대제국 이집트 최고 신전의 사제인 웨나문이 예전 같지 않은 대우에 맘고생을 하는 가운데 전해지는 텍스트는 끝난다.
   
   위 글에서 주인공은 누구일까? 관행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는 당연히 웨나문 이다. 하지만 환경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주인공은 ‘목재’다. 목재가 아니었다면 이 보고서 자체가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 이집트와 비블로스, 두 나라의 실질적 국격을 결정지었던 것 역시 질 좋은 목재의 보유 여부였다.
   
   사실 목재는 인류 역사를 통해 가장 중요한 자원인 동시에 사회 변화의 주요 원동력이었다. 건축과 난방을 위한 수요는 기본이고, 청동기 및 철기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생존을 위한 농기구와 무기를 만드는 금속을 제련하는데 엄청난 양의 목재가 들어갔다.
   
   목재의 소비 패턴과 그것을 둘러싼 인간관계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난 이래, 평균기온이 높은 온난기와 낮은 한랭기가 대략 몇 백 년을 주기로 반복했다. 온난기엔 삼림이 무성해지면서 강의 수량이 많아지고 수심이 깊어진다. 바닷물의 온도가 올라 전체적으로 부피가 팽창하면서 해수면이 높아지고, 그 결과 해안지대에 수몰 지역이 많이 생긴다.
   
   
▲ 지난 1만여년 간의 기후변화 그래프. 원본 출처: 크리스티안-디트리히 쇠네비이제 요한볼프강폰괴테대학 교수(1999)

   주로 저지대 수몰지역이나 그 경계에 살던 사람들 사이에 배를 타고 생활하는 패턴이 발달한다. 이 상태가 더 진전되면 강가나 바닷가 포구에 베이스캠프를 두고 바다로 나가 원거리 교역을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 판이 커지면 이들을 “뜯어먹고 사는” 해적들이 생긴다. 해적들로부터 자신의 사람들을 보호하는, 지금의 해군이나 해경과 비슷한 전투 집단도 생기게 된다.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들에게서 해상 전투력이 발달한다. 이제 국가 간 전투도 종종 바다 위에서 이뤄지는데, 이때 제일 결정적인 것은 배의 크기와 강도다. 해전은 배를 서로 세게 부딪치면서 시작한다. 때문에 약한 나무로 만들었거나, 긴 목재가 없어 작은 목재를 이어 만든 배는 쉽게 부숴진다. 따라서 바닷길을 이용한 경제활동이 주력이 된 국가에 있어 곧고 길고 단단한 목재의 유무가 국력을 좌우하다시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의 욕심을 채워줄 정도로 나무가 꾸준히 조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크고 튼튼한 배를 만들 정도의 나무가 자라려면 몇 백 년이 걸린다. 기후가 한랭한 시기에는 나무가 귀해져서 이를 구하느라 혈안이 되고, 온난한 시기에는 목재 수요가 커지고 다양해지기 때문에 목재 확보를 위한 경쟁이 벌어진다.
   
   그렇다면 나무가 심하게 부족한 상황이 됐을 때, 해상활동을 주력으로 해왔던 인간집단은 어떤 행동을 할까? 나무와 인간 역사의 관계를 통찰력 있게 파헤친 환경사가 존 펄린(John Perlin)의 표현을 빌자면,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나무를 구하려 하고, 이를 위해 자원을 있는 대로 다 동원한다.” 질 좋은 목재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쪽에서는 갑자기 콧대가 높아진다. 목재 판매를 통해 떼돈을 벌거나, 이전 시절의 강자를 누르고 새로운 강자로 군림하게 된다.
   
   우리는 웨나문 보고서를 통해, 조그만 도시국가에 지나지 않는 비블로스가 이집트라는 거대 제국을 우습게 여기던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시엔 지구가 온난기에 접어들며 기온이 급상승했던 때였다. 지중해 국가들 사이에서 목재 수요가 급증했는데, 최고의 목재 공급처는 비블로스를 비롯한 레바논 해안 도시국가 서너 군데였다. 배후지인 거대한 레바논 산맥에서, 솔로몬 왕궁을 지은 것으로 유명한 질 좋은 삼나무가 대량 공급됐기 때문이다.
   
   
▲ 웨나문이 거쳐갔던 노정(왼쪽)과 레바논 삼나무 숲의 현재 모습. photo 픽사베이

   반면 고대 이집트는 비옥하고 광활한 나일강 중하류 평야에 자리잡고 있다. 인간의 거주지론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지만 문제는 산지로 접근이 힘들다는 점이었다. 이집트 동쪽 고지대의 나무는 긴 역사를 거치면서 진작에 사라졌다. 남쪽 에티오피아 고원으로 가는 관문인 하르툼을 점령했던 신왕국시대엔 고원의 삼림에서 질 좋은 목재를 조달하며 다시 국세가 일었다. 웨나문 시대엔 하르툼을 다시 누비아(지금의 수단)에게 뺏기며 목재를 구하는 게 아주 힘들어졌다. 이집트 최고위 계급이라 할 수 있는 카르나크 신전의 사제 웨나문이 직접 황금덩어리를 챙겨 비블로스까지 장기 출장을 가게 된 배경이다.
   
   어쩌면 손권도 비슷한 처지가 아니었을까? <삼국지>의 행간을 읽으면, 손권이 고구려에 보낸 배는 고구려 사람들로선 예측을 벗어난 작은 배였던 것 같다.
   
   이해하기 어려운 손권의 외교 행태가 요동과 고구려의 목재를 겨냥해서 나온 거였다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그 외에도 더 있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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