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0일 촬영한 전쟁기념관 뮤지엄 웨딩홀 입구. ⓒphoto 조시온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7월 30일 촬영한 전쟁기념관 뮤지엄 웨딩홀 입구. ⓒphoto 조시온 영상미디어 기자

9년간 총 8억5000여만원의 금액을 횡령·유용한 전쟁기념관 웨딩홀 전 직원 사건과 관련해 전쟁기념사업회가 관리 책임이 있는 간부들에게 ‘솜방망이’ 징계를 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휘하 직원이 1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10억원 가까운 큰 금액을 횡령했는데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간부들에 대한 징계치고는 지나치게 가볍다는 지적이다. 전쟁기념사업회는 국방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문재인 정부 안보실 1차장을 맡았던 청와대에서 이상철 장군이 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 7월 27일 미래통합당 강대식 의원(국방위)실에 따르면, 전쟁기념관 뮤지엄웨딩홀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지난해 11월 초 전쟁기념사업회의 임모 사업부장이 처음 발견했다. 직원 고모씨가 전쟁기념관 웨딩홀 서무·경리를 맡아왔는데, 그가 일부 고객을 상대로 다른 할인율을 제시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웨딩홀 사업은 전쟁기념사업회 사업부가 담당한다.

임 부장은 고씨가 보관한 계약서 원본과 영수증 증빙 금액을 조사했는데 숫자가 맞지 않았다. 횡령이 의심되자 임 부장은 조사위원회를 꾸려 해당 사안을 조사했다. 그 결과 2010년 12월 9일부터 2019년 11월 9일까지 총 560건, 금액으로는 8억5060만원 상당의 금액을 횡령·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30대인 고씨는 징계위 조사에서 횡령한 금액을 대부분 “유흥비로 탕진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전쟁기념사업회가 용산경찰서에 제출한 고소장에 따르면 고씨는 다양한 방법으로 장기간 횡령을 지속해왔다. 예식과 피로연의 경우 행사가 끝나면 최종 회계처리를 할 때 증빙서류인 계약서 사본의 금액을 위조해 결재를 받은 뒤 실제로 받은 금액과의 차이만큼을 챙겼다.

일반 연회의 경우 행사를 열고 난 뒤 마치 행사를 하지 않은 것처럼 계약서와 계산서 등의 서류를 인멸하고 수납금을 전부 챙겼다. 카드와 현금을 중복결제할 경우 예식비에서 카드 분을 예식비 선결제 처리한 뒤에 연회 카드금액 분만큼 현금으로 대체해 편취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방식은 웨딩홀에 별다른 전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고 직원이 전부 수기(手記)로 기록해 가능했다고 한다.

범행은 해를 거듭할수록 대담해졌다. 고씨는 범행 초기인 2014년에는 예식 2370만원, 연회 4411만원으로 총 6781만원 상당의 금액을 횡령했다. 하지만 이듬해에는 예식 9346만원, 연회 7418만원 등 총 1억1764만원으로 횡령금액이 두 배 이상 높아졌고, 2018년에는 한 해에만 총 1억4000만원 가까운 금액을 횡령했다. 지난해 역시 11월까지 1억원 가까이를 횡령했다.

감봉 없이 견책 2명, 경고 1명 처분

전쟁기념사업회는 지난해 12월 26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사건 관련자들의 징계를 의결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5일 고씨는 파면됐고, 전쟁기념사업회는 고씨를 업무상 공금횡령죄로 용산경찰서에 고소했다.

이 사안의 감시·감독·관리 책임이 있는 사람은 이모 임원실 특별보좌관(2급), 임모 사업부장(3급), 이모 사업부 직영/위탁사업관리 팀장(5급) 등이다. 각각 견책, 견책, 경고 처분을 받았다. 정모 현 사업회 사무총장이 당시 인사위 위원장을 맡았다.

이 중 이번 사안을 공론화한 강대식 의원실에서는 고씨에 대한 감시·감독·관리 책임이 있는 관리자들 중 주된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당시 사업단장이었던 이모 특별보좌관을 지목한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26일 전쟁기념사업회 내에서 열린 ‘인사위원회 징계의결서’에는 위 3인이 징계 혐의자로 올랐다. 이 특보는 고씨가 본격적으로 횡령하기 시작한 2013년 7월부터 2015년 11월 30일까지 2년5개월 동안 사업단 단장을 맡았었다. 이 특보가 사업단장을 맡던 2년5개월 동안 횡령한 금액이 약 2억5000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 특보에 대해서는 견책 처분에 그쳤다. 이 특보는 감봉3개월 1표, 감봉1개월 4표, 견책 3표를 받아 감봉1개월의 징계 판정이 나왔지만 표창 감경을 받아 최종으로 견책 징계를 받았다.

이 특보는 “1차 책임은 사업부서에 있는 게 맞지만 회계부서, 일상감사, 사업부에 대한 외부 감사에서도 비위를 확인하지 못할 정도로 피고소인의 횡령 수법이 지능적이었다”고 징계위에 설명했다. 외부 감사 역시 잡아내지 못한 만큼 범죄가 지능적이었기 때문에 정상 참작을 해달라는 설명이다. 징계위는 “결재서류의 조작 등 지능적이고 적극적인 기망행위를 동반한 횡령이 관리자의 상당한 주의로도 인지하기 쉽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상 참작을 했다”고 했다.

횡령을 적발한 임 부장은 감봉3개월 1표, 감봉1개월 2표, 견책 5표를 받아 견책 판정이 나왔고 그대로 견책 징계를 받았다. 중간관리자인 사업부 팀장은 경고 징계를 받았다. 공무원(군무원)에 대한 징계의 종류는 파면, 해임, 정직1~3개월, 감봉1~3개월, 견책, 경고로 나뉜다. 이들은 모두 가장 낮은 수준의 징계만 받은 것이다.

앞서 국방부와 감사원 역시 고씨의 횡령이 지속되던 9년간 사업회를 상대로 8차례나 감사를 진행했지만 횡령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 특보 외에도 나머지 감독 의무가 있는 관리자 5명이 그간 재직했는데, 사업회 측은 이들에 대해서는 “이미 퇴직한 상태라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9년에 달하는 장기간 동안 약 8억5000만원에 달하는 직원의 횡령 사건이 발생했지만 관리 책임이 있는 책임자들은 견책 2명, 경고 1명의 낮은 징계 수준의 처벌에 그친 것이다. 사건을 조사해 공표한 강대식 의원실 관계자는 “횡령 금액이 이렇게 큰데도 견책, 감봉 수준의 처벌에 그친 것은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지적했다.

“변제 이뤄지면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 것”

용산경찰서는 지난 3월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서울서부지검에 송치했다. 서울서부지검은 이 사건을 현재 형사조정위원회에 회부했는데, 이는 사업회와 고씨 간 합의가 이뤄지면 기소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사업회는 현재 고씨에게 횡령금액을 변제할 계획을 제시하라고 요구한 상황이다. 강대식 의원실 관계자는 “합의가 이뤄지면 장기간 큰 금액을 횡령했는데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 것”이라며 “대형 횡령 범죄가 발생했는데 사건을 단순히 덮으려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사업회 측은 “현재는 웨딩홀에 전산시스템을 완비해 재발 방지 노력을 했다”는 입장이다.

전쟁기념관 웨딩홀은 군 관계자의 복리후생을 위한 목적으로 운영된다. 2006년부터 전쟁기념사업회가 직접 운영·관리를 맡고 있다. 사업회는 웨딩홀 등 수익사업에 대한 국고보조금으로 연평균 100억원 이상을 지원받는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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