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한 대표 지상무기인 K-2 흑표전차. 세계 정상급 전차로 꼽힌다. ⓒphoto 뉴시스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한 대표 지상무기인 K-2 흑표전차. 세계 정상급 전차로 꼽힌다. ⓒphoto 뉴시스

“보안사항이기 때문에 카메라 앞에서 자유롭게 말할 수는 없지만, 거의 세계 최고 수준 탄두 중량을 갖춘 탄도미사일을 성공한 것에 대해 축하 말씀을 드립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23일 국산 무기 개발의 총본산인 ADD(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해 이처럼 밝힌 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 문 대통령의 ADD 방문은 8월 6일 창설 50주년을 앞두고 이뤄진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소총 한 자루 제대로 만들지 못하던 시절에 창설되어 이제는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충분한 사거리와 세계 최대 수준의 탄두 중량을 갖춘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언급한 미사일이 ‘괴물 벙커버스터’로 알려진 국산 신형 탄도미사일 ‘현무-4’인 것으로 보고 있다. ‘현무-4’는 최대 사거리 800㎞일 경우 탄두 중량이 2t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거리를 300~500㎞로 줄일 경우 탄두 중량이 4~5t 이상으로 늘어나 지하 깊숙이 있는 이른바 ‘김정은 벙커’도 파괴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러·중 등 강대국은 물론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도 탄두 중량은 500㎏~1t 수준이어서 4~5t 이상 수준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이다.

2t 이상의 탄두를 달 경우 머리가 너무 무거운 ‘가분수 미사일’이 돼 안정적으로 비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확도도 그만큼 떨어진다. 하지만 현무-4는 4~5t 이상의 탄두에 정확도도 비교적 높은 것으로 알려져 무기 상식을 깨는 ‘괴물 미사일’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ADD는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현무-4 개발에 사실상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무-4는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지하 100m 이하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정은 벙커 등 북한 주요 지하 전략 목표물들을 파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문 대통령은 이날 미국이 기술 이전을 해주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던 KF-X(한국형 전투기) AESA(다기능위상배열) 레이더의 국산화 성공도 함께 축하했다. 문 대통령은 “(KF-X AESA 레이더 개발 성공) 덕분에 우리 차세대 한국형 전투기 사업도 보다 탄력을 받게 됐다”며 “그런 성과에 대해서 정말 감사를 드리고 또 축하를 드리고 싶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ADD 방문과 격려는 군 안팎에서 다소 뜻밖으로 받아들여졌다. ADD가 최근 일부 전직 연구원들의 군사기밀 대량유출 사건으로 방사청 감사를 받고 사법기관의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ADD는 당초 대규모 50주년 기념행사와 국제 세미나 등 대대적인 행사를 추진하다가 기밀 유출 사건이 불거진 뒤 대부분의 행사를 취소했다. 수십억원의 행사 예산 대부분도 코로나19 사태 예산 등으로 전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은 “ADD는 최근 사건으로 분위기가 크게 침체돼 있었지만 문 대통령의 방문으로 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올라갔다”고 전했다.

ADD가 지난 50년간 개발한 국산 무기는 355종에 달한다. ADD 창설과 국산 무기 개발은 1960년대 말 북한의 잇단 고강도 도발과 주한미군 철수로 자주국방 노선을 걷게 된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ADD 창설 불과 1년여 뒤인 1971년 11월 박정희 대통령은 ADD에 긴급 병기 개발을 지시했다. “소총, 박격포, 탄약을 4개월 내에 국산화하라”는 내용이었다. 암호명 ‘번개사업’. 당시 국내엔 금속, 기계, 전기, 전자 등 무기 생산의 기초가 되는 산업 기반과 기술 축적이 전무한 때여서 박 대통령의 이 지시는 날벼락이었다. 그래도 최고 권력자의 엄명인지라 개발팀은 그해 크리스마스는 물론 이듬해 설날 연휴까지 반납한 채 연구실 불을 밝혔다. 연구원들은 미군 소총과 박격포를 분해·조립해 보고 서울 청계천을 드나들며 밤낮으로 개발에 매달린 끝에 1972년 4월 기본화기 사격시험에 성공했다. 사업 명칭대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은 격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23일 창설 50주년을 맞은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23일 창설 50주년을 맞은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국방과학기술 수준 세계 9위

ADD는 1970년대 소총 등 기본병기 국산화를 시작으로, 1980년대 선진국 무기 개량 개발, 1990년대 고도정밀무기 독자 개발, 2000년대 세계적 수준의 첨단무기 독자 개발의 길을 걸어왔다. 이제는 사거리 800㎞ 탄도미사일(현무-2C)과 사거리 1000㎞ 순항미사일(현무-3), 초음속 훈련기 T-50, 기동헬기 수리온, 대함·대공·대잠·대전차 미사일, 세계 정상급 전차(K-2)와 자주포(K-9), 3000t급 잠수함, 한국형 구축함 등 대부분의 육·해·공군 무기를 우리 손으로 만들고 있다. T-50 훈련기, K-9 자주포, 잠수함 등 일부 국산 무기들은 세계 각국에 수출되고 있다.

ADD는 50년간 투자액(41.2조원) 대비 10배 이상인 442조7000억원에 이르는 경제 효과를 창출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를 분야별로 나눠 보면 전력증대 면에서 66.9조원, 예산절감 효과 면에서 362.5조원, 기술파급 효과 면에서 2.8조원, 사회적 연구개발 비용절감 효과 면에서 10.5조원 등이다. 국방연구개발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2019년 기준으로 국방연구개발비 규모는 세계 5위, 국방과학기술 수준은 세계 9위로 평가되고 있다. 국방비 대비 국방연구개발비 비중은 7.2%로 미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 3위다. 영국, 러시아, 이스라엘, 일본, 중국보다도 높다. 그동안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에 큰 획을 그은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것도 ADD의 자랑이다. IT강국의 기초를 닦은 오명 전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을 비롯 서정욱 전 과기부 장관, 고 이만영 전 한양대 부총장, 고 한필순 전 원자력연구원장, 홍재학 전 항공우주연구원장, 미사일 전문가인 이경서·정규수 박사 등이 모두 ADD 출신이다.

전문가들은 창설 50년을 맞은 ADD가 발전하기 위해선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우선 국내 민간 방위산업도 발전한 만큼 ADD가 모든 무기를 개발하던 때에서 벗어나 방산업체와 적절한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ADD는 앞으로 북한은 물론 주변 강국의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고성능 탄도·순항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 광자·양자 무기, 레이저, 레일건 등 이른바 전략 비닉(비밀)무기와 미래 첨단무기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ADD에서 25~30년 이상 연구개발에 종사한 연구원들은 국가적 자산인 만큼 정년(62세) 이후 재취업을 방산비리로만 볼 게 아니라 국가자원(인재) 활용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최근 기밀 유출 사건과 관련해선 연구원들의 보안의식 강화와 보안 시스템 대폭 보강 필요성도 제기된다. 한 전문가는 “북한 김정은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되는 백두산 엔진 개발에 성공한 과학자를 업어주기까지 했다”며 “우리도 ‘현무-4’를 비롯한 전략무기 개발자 등은 일종의 국가 전략자산으로 간주해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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