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UN 북한인권특별보고관. 통일부는 지난 7월 30일 킨타나 보고관이 북한인권단체에 대한 통일부 측 설명을 들은 후 “잘 이해하게 됐다”면서 사의를 표명했다고 발표했지만, 다음날 킨타나 보고관은 “(한국) 단체들이 위협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며 통일부 발표를 뒤집다시피 했다. ⓒphoto 뉴시스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UN 북한인권특별보고관. 통일부는 지난 7월 30일 킨타나 보고관이 북한인권단체에 대한 통일부 측 설명을 들은 후 “잘 이해하게 됐다”면서 사의를 표명했다고 발표했지만, 다음날 킨타나 보고관은 “(한국) 단체들이 위협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며 통일부 발표를 뒤집다시피 했다. ⓒphoto 뉴시스

대기업의 홍보담당 신입사원들이나 대학의 신문방송학 전공 학생들을 상대로 인용문 쓰기를 강의한 적이 있다. 내 수강생들은 치열한 경쟁을 통과한 똑똑한 젊은이지만 쌍따옴표 표현에 다소 서툴렀다.

가령, “그들은 공기업에 누구를 앉히네, 마네 하죠. 이건 적폐 아닙니까?”라는 A씨의 코멘트를 인용문으로 써보라고 했다. 그러자 대개 이렇게 썼다.

‘A씨는 “그들은 공기업 인사에 관여한다. 이것은 적폐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쓴 인용문은 말한 취지엔 어느 정도 부합했지만, 톤(tone)이 세졌다. 구어체를 문어체로 전환해 압축하면서 ‘인사’ ‘관여’라는 A씨가 언급하지 않은 단어까지 쌍따옴표 속에 집어넣었다.

놀랍게도, 이런 인용문 오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네덜란드의 한 언론학자는 시위대와 경찰을 취재한 기자들이 기사를 어떻게 쓰는지 조사했다. 상당수 기자는 시위 참가자 개개인의 코멘트를 변형하고 뭉뚱그려 인용했다.

요즘 우리나라에선 바르게 인용해도 “쌍따옴표 저널리즘”이라고 비난받는다. 그러나 어쨌든 ‘사람의 말을 인용할 땐 그의 말을 정확하게 쌍따옴표 속에 담아준다’라는 기본이 지켜지는 데서 사회적 신뢰와 소통이 시작된다.

인용 오류의 두 범주

나는 인용 오류를 두 범주로 구분한다. 첫 번째 오류는 신입사원·대학생의 사례처럼 부주의한 습관에 의한 인용 실수다. 표현을 다소 과장·변형할 뿐 “청계산”이라고 말하면 “청계산”이라고 써준다. 디노테이션(denotation·핵심적 의미)은 그대로 전하면서 코노테이션(connotation·함축적 문맥상 의미)을 손상하는 것이다.

두 번째 오류는 의도적 인용 변조다. “청계산”이라고 말하면 “관악산”이라고 쓰는 셈이다. 디노테이션과 코노테이션을 모두 바꿔버린다. 당연히 이러한 인용문 변조는 훨씬 좋지 않다. 학문을, 언론을, 나아가 알 권리(정보의 공유)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조금 늦게 알 권리’와 ‘알 권리’가 다르듯, ‘잘못 알 권리’도 ‘알 권리’가 아니다.

통일부는 대북 전단을 보낸 북한인권단체의 설립허가를 취소하고 사무검사에 착수했다. 유엔은 “모든 조치를 중단하라”라고 요구했다. 지난 7월 30일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화상 협의를 한 뒤 통일부는 보도자료를 냈다. 이에 따르면, 킨타나 보고관은 통일부 측 설명을 들은 뒤 “잘 이해하게 됐다”라면서 사의를 표명했다고 한다. 이어 “한국 정부가 탈북민 단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통일부의 이런 설명만 보면 한국 정부의 조치에 유엔도 공감한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킨타나는 하루 만에 통일부의 설명을 뒤집다시피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한국) 단체들이 위협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 “관련 우려를 다루는 의미 있는 대화를 하기 전까지 모든 조치를 중단하라는 것이 나의 권고”라고 각을 세웠다.

통일부 보도자료의 “잘 이해하게 됐다”라는 표현과 관련해선 “(통일부와의 화상 협의가) 관련 조치들의 법적 근거와 전반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라면서도 “시각이 면담 전과 바뀌지 않았다”라고 했다.

킨타나가 하루 만에 뒤집은 통일부의 설명

킨타나와 통일부의 협의는 2시간가량 진행됐다고 한다. 킨타나는 많은 말을 했을 것이다. 이 중엔 북한인권단체 설립허가 취소 조치에 비판적인 말도 있었는지 모른다. 통일부가 킨타나의 발언 중 유리한 부분만 인용하고 불리한 부분을 제외해 유엔이 정부 조치에 동의한 것 같은 효과를 주려 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 표현의 자유 제한은 국민 모두의 기본권 향유에 영향을 주는 중대 사안이다. 이런 일에 정부가 국제기구의 발언 핵심 의미와 맥락을 의도적으로 변조했다고 믿고 싶지 않다.

‘정부가 대북 문제와 관련해 국제기구와 우방국 정부의 코멘트를 구미에 맞게 인용해 국민에게 알린다’라는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특사는 “(북한과 대화를 위해선) 북한이 핵미사일 중지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라는 렉스 틸러슨 당시 미국 국무장관의 발언을 언론에 전했다. 다음 날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언론에 나와 국무장관이 그런 발언을 했다는 점을 부인했다. 대북 대화 조건이 핵미사일 실험 중단이 아닌 핵 폐기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2017년 4월 미국 국무부와 의회의 인사들을 만난 뒤 북핵 문제를 대화로 해결하기로 했다는 식으로 미국 측 발언을 언론에 소개했다. 미국이 군사 옵션을 포기한 것으로 읽히는 이 인용문도 즉각 미국 국무부 대변인에 의해 부정됐다.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화통화를 하면,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대북 대화·포용 기조에 공감했다’라는 취지로 통화내용을 브리핑한다. 그러나 백악관의 설명엔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그렇게 말했다는 내용이 없다. 이런 일이 반복돼왔다.

2019년 5월 문재인-트럼프 통화와 관련해 청와대는 “양 정상은 북한 식량 실태 보고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였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시의적절하며 긍정적인 조치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이를 지지하였다”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백악관의 보도자료엔 트럼프의 이 발언 내용이 없었다. 대신 “두 정상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 비핵화 달성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라는 상반된 논조의 내용이 올라와 있었다.

2018년 1월 정상 간 통화 후 청와대는 “미국은 100%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한다”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코멘트를 소개했다. 반면 백악관 자료는 “양 정상은 북한에 대한 최대한도의 압박을 지속해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데에 동의했다”라고 했다. “최대한도의 압박” 표현은 청와대 발표엔 없었다.

두 정상 간 대화가 이렇게 두 가지 버전으로 공개되는 것에 대해 미국은 미국의 입장을 정해 발표하고 우리는 우리의 입장에서 내는 것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한다. 청와대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최근 정치권에선 다른 차원의 인용 문제가 집단으로 나오고 있다.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을 한다, 언론이 그 발언을 인용한다, 언론의 잘못된 인용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발언의 책임에서 벗어난다’라는 패턴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청와대 발표에만 나오는 트럼프 발언

이해찬 대표의 “서울은 천박한 도시”, 황운하 의원의 “악마의 편집”, 소병훈 의원의 “주택시장을 교란하는 투기꾼들을 형사범으로 처벌해야”, 진성준 의원의 “부동산 가격 안 떨어져” 발언이 이에 해당한다. 이 발언들이 논란이 되자 해당 정치인들 측은 “앞뒤 문맥을 생략한 채 특정 발언만 문제 삼아” “악의적 보도” “발언을 왜곡해 보도” 등으로 책임을 언론에 돌렸다.

나의 판단으로, 상당수 언론은 대체로 이 발언들을 말한 그대로 비교적 정확히 인용한 것 같다. 또 앞뒤 맥락과 상황도 어느 정도 중립적으로 설명해준 것으로 보인다. “발언 전후의 지엽적 내용까지 전체 문장을 모두 보도했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언론 보도에 관한 대법원 판례나 상식에 별로 부합하지 않는다.

이런 ‘설화 & 언론 탓 시리즈’를 보면서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9월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의 모습이 역설적으로 떠오른다. 이공계 출신인 그는 “지구 나이가 6000년”이라는 자신의 과거 발언을 부인하지 않았고 왜곡 보도 탓도 하지 않았다. 신앙적으로 그렇게 믿는다고 담담히 말하고 낙마했다. 이러한 모습이 지금에 와선 오히려 용기 있는 태도로 느껴지기도 한다.

코멘트는 흥미로운 속성을 갖는다. 누군가의 발언이 입 밖으로 나와 공기의 울림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귀로 전달되는 순간 그 발언은 발언자와 청취자 모두의 것이 된다는 점이다. 이때 발언은 발언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립된 객체’이자 ‘사건’이자 ‘공공재’가 된다. 한동훈 검사장과 이동재 전 기자의 총선 전 유시민 관련 사적 대화 발언이 이제 그 두 사람의 소유가 아니라 이미 공공재가 되어버린 사례에서 잘 확인된다.

특히 정치인과 같은 중요한 인물의 발언은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소리의 다발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의 행위로 여겨지며, 그래서 발화행위(speech act)로 명명되기도 한다. 언론이 이러한 정치인의 문제성 코멘트를 정확하게 인용한 것을 두고 해당 발언 당사자가 ‘허위 인용’ ‘왜곡’ ‘가짜뉴스’라고 공표해 여론을 바꾸려 한다면, 이것은 또 다른 의미의 의도적 인용 변조가 될 수 있다.

공격받는 정부 발표 숫자의 신뢰성

인용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숫자다. 둘은 정보의 가장 객관적인 형태를 띠고 있고, 정보는 민주주의의 화폐다. 모두가 받아들일 만한 진실한 정보가 전제로 주어질 때만 비로소 알 권리의 구현과 민주적 토론과 공동체의 발전이 가능하다. 공론장에 판단의 근거가 되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소수의 사람이 자신의 이익이나 이념에 불리하다고 인용과 숫자를 ‘조정’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이런 점에서 국토부 측이 최근 3년 서울 전체 집값이 11%대 상승했다고 발표한 것도 우리를 근심스럽게 한다. 경실련 같은 진보적 시민단체와 보수성향 야당 모두에 의해 이 숫자의 사실성이 공격받고 있다. “서울 시내에서 11%만 상승한 집을 거의 찾을 수 없다” “국토부 통계의 근거인 한국감정원 자료도 그 이상을 가리킨다”라는 반론이 언젠가 이 숫자를 압도하면, 정부에 대한 신뢰가 추락할지 모른다.

학계에서 ‘문헌에 적힌 코멘트를 왜곡해 인용하거나 숫자를 변조한 연구물’은 아예 논의대상에서 제외된다. 권력자가 ‘현상을 만들고 싶다’라는 유혹에 못 이겨 사실에 습관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한다면, 이것은 끔찍한 일이다. 들키면 망신을 당하고 권력을 내놔야 할지 모른다. 들키지 않으면 부드럽게 민주주의는 질식하고 공동체는 쇠락한다. 남미와 동유럽 여러 나라의 지도자는 자국에 대한 외국의 비판적 코멘트와 악화하는 지표를 숨기기 급급했고 그 여파로 나라의 제도와 경제는 급격히 후퇴했다.

정치권과 행정부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세속적 유불리나 이념적 믿음에서 독립해 보수적인 태도로 엄격하게 인용과 숫자를 다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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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 국민대 교양대학 부교수·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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