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4일 전북 익산시 육군부사관학교에서 임관식이 열린 가운데 신임 하사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photo 뉴시스
2017년 2월 24일 전북 익산시 육군부사관학교에서 임관식이 열린 가운데 신임 하사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photo 뉴시스

공무원인데도 45세가 되면 쫓겨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헌신짝처럼 버려진다. 생명을 담보로 한 그들의 숭고한 희생도 연령과 TO라는 이름 앞에서는 무력하다. 정부가 그렇게도 외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 역시 이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대부분의 직업군인들이 겪는 얘기다. 군인들이 비정규직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정부는 이들의 삶과 처우에는 관심조차 없다.

날이 갈수록 확장되는 노동법의 보호도 군인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다.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에 앞서 국가공무원법, 그에 더 앞서 군인사법이 그들에게 적용된다. 그야말로 합법적인 노동법의 사각지대다.

선거철만 되면 모병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자발적 입대로 인한 동기부여, 지휘통솔 용이, 숙련병 확보 용이, 병력 수 중심에서 전력의 질 중심으로의 이동 등 이유도 다양하게 제시된다. 실제 여당 측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지난해 11월 보고서를 통해 단계적 모병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런데 진정으로 모병제를 바란다면 이미 기존에 ‘자발적’으로 입대한 ‘직업군인’인 장교와 부사관의 처우개선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도 무심한지 되묻고 싶다. ‘직업장교, 부사관’에 대한 처우도 좋지 못한데, 누가 ‘직업병사’로서 총을 들고 나라를 지키려 할 것인가? 결국 20대 표를 얻기 위해 모병제 이야기만 되풀이할 뿐, 실질적인 군인의 처우개선, 이를 통한 국방력 강화는 안중에도 없다.

현행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의 정년은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60세로 정해진다.(제74조) 공무원만 되면 철밥통이라는 이야기도 바로 이 규정 때문이다.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60세까지는 근무할 수 있다.

사실 급수에 관계없이 정년이 60세가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08년까지는 5급 이상은 60세, 6급 이하는 57세로 불평등하게 정년이 규정되어 있었다. 그러다 2008년 6월 법이 개정되어 2009년 1월 1일부터는 급수와 관계없이 국가공무원의 정년이 60세로 단일화되었다. 이는 헌법상 평등권을 보장하면서 고령화시대를 대비하고 공공인력의 효율적 관리를 도모하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어 정년이 더 길어지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교육공무원법상 교육공무원의 경우 정년은 62세(학교 교사), 65세(대학교수)로 정해져 있다.

한편 현행 고령자고용법상 일반 사기업에서의 근로자 정년도 마찬가지로 60세로 정해져 있다. 2013년 법이 개정되기 이전까지는, 기업에서 근로자 정년을 몇 세로 정할지 여부는 자율에 맡겨져 있었다. 그러다 2013년 5월 22일 근로능력이 있는 근로자의 일할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차원에서 법 개정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일반 사기업에서의 근로자 정년도 60세로 정해졌다.

법 개정으로 인해 설사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미만으로 정하더라도 관련 법령상 정년이 60세로 간주된다. 상시 300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 공공기관, 지방공단은 2016년 1월 1일부터, 상시 근로자 300명 미만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2017년 1월 1일부터 위 규정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군인에게는 위와 같은 60세 정년이 너무 먼 이야기다. 군인에 대하여는 군인사법이 우선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60세 정년? 직업군인에겐 어림도 없다

군인사법 제8조에는 군인의 연령정년을 계급별로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원수: 종신, 대장: 63세, 중장: 61세, 소장: 59세, 준장: 58세, 대령: 56세, 중령: 53세, 소령: 45세, 대위·중위·소위: 43세, 준위: 55세, 원사: 55세, 상사: 53세, 중사: 45세, 하사: 40세’.

군인사법상 만 60세까지 근무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중장(61세)과 대장(63세) 그리고 원수밖에 없다. 원수 계급은 법상으로만 존재할 뿐 아직 아무도 이 계급으로 진급한 사람이 없다. 한편 현재 대한민국 국군에 대장(소위 4스타)은 7명, 중장(소위 3스타)은 약 35명 정도에 불과하다. 결국 18만명에 달하는 직업군인 중 만 60세까지 근무할 수 있는 사람은 약 40명 정도밖에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의 대다수가 20~40대에 퇴직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장교의 경우 사관학교 출신이 아닌 이상 대부분 대위 또는 소령에서 군생활을 마감한다. 육군을 기준으로 2014년 중령 진급률은 19.9%에 불과했다. 2017년 기준으로 보더라도 중령 진급률은 육사 출신은 60%에 달했지만, 학군 출신 13.1%, 학사 출신 9.7%, 3사 출신 7.6%에 불과했다. 어렵게 소령으로 진급한다고 하더라도 만 45세까지만 근무할 수 있을 뿐이고, 더 어렵게 중령까지 진급한다고 하더라도 만 53세까지만 근무할 수 있다. 대령, 장군이 되는 것은 극소수의 군인만 가능한 일이다.

장기복무만 하면 상사까지는 진급한다는 부사관(하사·중사·상사·원사)의 경우 사정이 조금 더 낫다지만, 장기복무에 탈락하는 인원들까지 고려하면 과연 낫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 있다. 장기복무가 되지 않으면 20대 중·후반의 나이에 군을 떠나야 하는데, 장기복무율은 평균 30%를 밑돌고 있다. 직업군인을 꿈꿨던 청춘 대부분이 짧게는 4년, 길게는 7~8년 정도만 공무원 생활을 체험하고 사회에 던져진다. 장기복무가 되어 상사까지 진급한다고 하더라도 연령정년은 53세에 불과하며, 원사나 준위까지 진급한다고 하더라도 55세까지만 근무할 수 있다.

결국 직업군인의 길을 택한 장교의 경우 대부분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만, 부사관의 경우 대부분은 20대 중·후반까지만 근무가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장기복무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50대 초·중반까지만 근무할 수 있다.

위와 같은 군인사법상의 연령정년 규정은 1993년 12월 31일 한 차례 변경된 이래로 지금까지 어떤 변화도 없다. 피라미드형 구조, 젊은 군대의 유지 필요성 등을 감안하더라도, 현행 제도처럼 직업군인의 길을 택한 대부분의 젊은 청춘에게 비정규직을 강요하는 구조가 과연 타당한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 근로자 보호를 그렇게 외치면서도 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노동을 제공하는 분들의 노고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모병제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기존에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몸을 바치는 직업군인(장교·부사관)들의 처우개선부터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재욱 변호사ㆍ법무법인 주원 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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