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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624호] 20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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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민중신학자 김진호가 본 ‘전광훈 팬덤’ 현상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가 이끈 지난 8·15 광화문 집회는 코로나19 재확산의 진원지라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교인들 중 일부는 코로나19 감염 증상을 보였지만, 거리로 나와 전광훈 목사에 열광했다. 전 목사는 코로나19 확산 우려에도 정부를 향한 비판 발언으로 교인들을 지속해서 결집시켰다. 시민사회 안팎에선 이를 두고 사랑제일교회의 이단성에 주목하지만,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장의 분석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그는 교인들의 종교적·사회적 결핍, 이를 끌어안은 전광훈 목사의 왜곡된 위상 등이 사랑제일교회 사태를 초래했다고 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저서 ‘교회와 권력’ ‘대형교회와 웰빙보수주의’ ‘시민 K, 교회를 나가다’ 등을 집필하며 한국 사회와 개신교의 관계를 연구해온 국내에 몇 안 되는 민중신학자다. 그는 이번 사안을 두고 “사랑제일교회가 개신교 발전사에 어떻게 등장했는지에 대한 배경을 알아야 한다. 사태의 책임은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31일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그는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개신교의 양극화 현상과 ‘전광훈 목사의 힘’ 등에 대해 언급했다.
   
   
   ‘목사 팬덤형’에서 ‘교회 소비자형’으로 변화
   
   김 위원장이 몸담고 있는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는 1991년부터 한국 개신교의 역사와 변동을 연구해왔던 곳이다. 그는 여기서 전광훈 목사와 사랑제일교회의 부상을 오랜 기간 주시해왔다. 이들의 활동은 1990년대 중반 국내 개신교가 큰 변곡을 겪으며 나타난 일종의 병리 현상이라는 것이 김 위원장의 설명이다.
   
   “한국 개신교 발전은 사회 변화와 맞물려 이뤄졌다. 1990년대 초 한국 사회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선진국 대열 진입 등이 거론될 정도로 낙관론이 지배했다. 이때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대형교회가 들어섰고 예배당은 선망의 공간이 됐다. 새 신도들의 유입도 상당했다. 상당수는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온 이농민들이었는데, 교회 목사는 신앙에 무지했던 이들 앞에서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과 설교로 신도들을 끌어당겼다. 이때 신도들의 신앙 활동은 ‘목사에 대한 팬덤’을 보이며 이뤄졌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사회 전체는 성장을 멈췄고 개신교의 발전은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교인들은 더 늘지 않았고 교회는 부정적인 공간으로 비치기까지 했다. 이때 물적, 인적 자원이 풍부했던 강남권에선 새로운 형태의 교회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교회의 낡은 이미지를 탈피하고 다른 곳에 있는 교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나의 문화로 만드는 시도가 나타난 거다. 교회는 예배당 외에도 각종 쉼터와 여가시설을 구축하며 하나의 멀티플렉스를 꾀했다. 경배와 찬양은 잘 준비된 하나의 공연으로 변화해갔다.”
   
   중상위층의 교인들은 자신의 기호에 맞는 교회들로 옮겼고 그 형태는 과거 ‘목사에 대한 팬덤형’에서 일종의 ‘교회 소비자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때 강남권 외 지역의 중소형교회들은 이런 대형교회의 행태를 답습하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기존 이농민 등 중하위 계층 교인들로부터 반감을 샀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사실 중하위 계층의 교인들이 교회에서 얻고자 했던 건 영원한 구원과 건강, 미래에 대한 확신 등이었다. 하지만 대형교회와 중소형교회가 추구하기 시작한 신앙 활동은 풍족한 문화와 소비 윤리에 맞춰졌다. 기존 교인들은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자원이 풍족하지 못했던 중소형교회는 이를 제대로 모방하지도 못한 채 본모습만 잃었다”고 지적했다.
   
   
   교인들의 결핍 공략한 광장의 극우 담론
   
   이 틈을 파고든 것이 이만희 목사가 이끄는 신천지와 전광훈 목사의 사랑제일교회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들은 기존 교회에서 얻을 수 없던 신앙적 만족감을 대신 전했다고 한다. “쉽게 말해 이만희 목사는 칭찬과 위로의 전략으로 이들의 결핍을 메웠다. 대형교회에선 잘 언급하지 않는 키워드와 담론을 형성해 교인들이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을 만들었다. 반면 전광훈 목사는 1990년대 후반 사람들이 교회와 사회를 향해 품은 불만을 극우주의 형태로 분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정치적 열광주의를 이끌어낸 거다.”
   
   실제 전광훈 목사는 1998년에 건립한 기도원인 청교도영성훈련원에서도 유사한 담론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당시 대형교회를 모방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중소형교회 목사들로부터도 상당한 지지를 얻었다고 한다.
   
   “당시 집권한 DJ 정권에 반공주의를 씌워 모든 책임을 돌리자 목사들이 열광했다. 세미나 한 회 참석자만 2000여명에 달했다. 전 목사는 이를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운동에 활용했다. 당시 개신교 상부에서 이명박의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자는 내용의 ‘성시화 운동’이 일었다면, 아래에선 전 목사를 주축으로 한 바닥에서의 지원이 있었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 형성에도 그는 상당한 힘을 썼다.”
   
   하지만 당시 전 목사는 기대와 달리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무명이었거니와 개신교 내에서도 별다른 기반이 없는 전형적인 ‘아웃사이더’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가 속했던 교단에서조차도 주요 역할을 맡은 경험이 없었다. 여기엔 그의 학사학위가 교육부가 인준한 정식 학위가 아닌 교단에서 자체 발급한 학사라는 점 등 엘리트 목사로 평가될 수 없는 요인들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전광훈 목사의 활동은 개신교 밖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전 목사가 창당에 관여한 기독교 정당만 5개에 이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김 위원장은 전 목사의 인정 욕구, 감투 욕구도 상당 부분 작용했을 것이라 분석했다. “박근혜 게이트가 터지면서 기존에 광화문 집회에 참여했던 목사들은 소속 교회의 시선을 의식해 조금씩 자취를 감췄다. 전 목사는 광장에서 이들의 공백을 채웠고 그에 대한 지지는 사랑제일교회를 넘어 여타 교회로까지 퍼져나갔다.”
   
   
   정치사회적 순교론, 코로나19 취약 요인으로
   
   결국 전광훈 목사의 사랑제일교회는 기존 교회가 감싸지 못한 중하위 계층의 교인들을 끌어안으며 성장했고, 그의 선교 활동은 교회 안보다 거리에서 힘을 발휘했다. 김 위원장은 이 요소들이 의도치 않게도 지금에 이르러 코로나19 확산의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말한다.
   
   “코로나19 감염은 전 세계적으로 의료체계에서 소외된 취약계층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개신교 발전사를 비춰봤을 때 전 목사를 따랐던 계층이 바로 그 계층이었다. 현재 대형교회 신도들 중엔 확진자가 거의 없다. 더군다나 전 목사가 교인들을 포용하기 위해 펼친 극우주의 담론은 과학, 국가 담론을 강하게 거부하며 정부는 믿어선 안 될 조직이라 역설한다. 공권력이 행하는 방역이 거짓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전광훈 목사가 평소 거론하던 순교론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순교란 죽을 각오를 하고 특정 신념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데 순교의 대상을 정치, 사회적인 것으로 뒀을 때 순교자는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 외의 것들은 경시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거다. 이번 사태 발생을 부추긴 또 다른 요인이다.”
   
   김 위원장은 개신교의 본래 역할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사랑제일교회는 한국 개신교가 양극화 현상을 겪으며 생겨난 일종의 부산물이다. 대형교회를 주축으로 신앙 활동을 문화화하고 그럴듯한 담론을 꾀하던 과정에서, 위로받지 못한 신도들이 비이성적인 담론에 빠져 세를 이룬 조직이다. 사회는 교회의 이 같은 발전 양상을 인지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재확산은 이에 따른 숱한 부작용 중 하나다. 개신교가 말하는 본래 의미의 ‘구원’에 대해 다시 되돌아보고 사회는 이를 짚을 줄 아는 감수성을 키워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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