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삼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위원장이 지난 6월 29일 서울 강서구 이스타항공 본사에서 열린 노사협의회에 참석하기 전 사측의 체불임금 등 현안에 대한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박이삼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위원장이 지난 6월 29일 서울 강서구 이스타항공 본사에서 열린 노사협의회에 참석하기 전 사측의 체불임금 등 현안에 대한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피고인에 대한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

수억원의 임금을 체불한 사건에서 선고유예를 받아냈다. 사건을 담당한 변호인으로서는 성공적인 결과다. 피해 근로자 전원에 대한 체불임금을 완납한 점, 1명을 제외한 나머지 근로자 모두로부터 처벌불원서를 받아 법원에 제출한 점이 십분 고려되었다. 체불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사업주가 사재를 털어 자금을 마련했다는 점, 회사 자산 매각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 시장 구조의 변화로 기업의 경영사정이 매우 어려웠다는 점, 전과가 전혀 없다는 점도 참작이 되었다. ‘선고유예’는 형의 선고 그 자체를 유예한다는 점에서, 형은 선고하되 형의 집행만 유예하는 ‘집행유예’와는 큰 차이가 있다. 실제 선고유예를 받은 날로부터 2년을 경과하면 면소가 된 것으로 간주되는데, 유죄판결을 받지 않았던 것과 같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선고유예는 법원에서 선고하는 형벌 중에서 가장 가벼운 처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사안을 잘 모르는 제3자가 얼핏 보기에는 임금체불에 대한 형사처벌이 날로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선고유예’라니 시대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체불사업주라 하면 악덕 사장, 악덕 기업주를 떠올리기 쉽기 때문이다. 임금을 체불하는 대부분의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물적·심적으로 많은 피해를 야기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임금이 체불되면 근로자의 생활 안정에 매우 심대한 타격을 주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체불한 사업주는 잘못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자금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는 사업주에게는 징역형의 강력한 처벌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특히 끝까지 체불임금을 완납하지 않는 사업주에 대하여는 더 이상 집행유예나 벌금형의 면죄부가 주어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부득이 임금을 체불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부도 등의 경영위기에 몰린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경우까지 강력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업 불황, 임금체불 면책 가능?

물론 단순히 기업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사업주가 임금체불에 대한 면책을 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 법원도 기업이 불황이라는 사유만으로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한 임금이나 퇴직금을 체불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아무리 빚 독촉에 시달린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사실 법상으로도 최종 3개월분의 임금, 최종 3년간의 퇴직금은 그 어떤 채권보다 우선하여 변제되어야 한다.(근로기준법 제38조,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12조) 질권 또는 저당권에 의해서 담보된 채권은 물론 조세나 공과금보다도 우선한다. 따라서 다른 돈을 갚는다고 임금을 체불했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면책의 사유가 되기 어렵다.

다만 기업이 매우 어려운 위기에 처해 있었고 모든 성의와 노력을 다했어도 임금이나 퇴직금의 체불이나 미불을 방지할 수 없었다면 그러한 경우까지 사업주를 처벌해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 법원도 사업주가 회사 정상화를 위한 여러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발행 어음 부도 처리를 막을 수 없었던 사건, 회생절차에 있었던 사건 등에서 사업주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대법원 2009도 4067 판결, 대법원 2014도12753 판결) 결국 부도, 폐업, 회생, 파산 정도의 위기가 있다면 무죄를 받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부도를 피하기 위해 임금을 체불하고 다른 채무부터 갚았는데, 결국 부도가 되지 않은 경우라면 면책을 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부도를 피하기 위해 임금을 체불하고 형사처벌을 받을 것인가, 부도를 맞고 임금을 체불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기로에 놓일 수 있다. 이 정도 상황에 놓여 있는 사업주를 쉽게 비난하기는 어렵다. 물론 이러한 사정을 근로자에게 잘 설명하고 기일 연장 합의를 이끌어내면 좋겠지만, 법률전문가가 아닌 이상 이를 놓치는 경우도 많고, 급박한 상황에서 이러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수 있다. 회사가 실제로 망할 정도(부도, 회생, 파산, 폐업 등)가 되지 않는 이상 면책, 무죄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업주 입장에서는 임금, 퇴직금을 항상 최우선으로 생각하여 지급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담당한 사건도 실제 이 정도에는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무죄가 아닌 선고유예 판결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날로 강화되는 처벌에 유의해야

임금이나 퇴직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는 경우 근로기준법,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물론 특별한 사정이 있어 근로자와 지급기일 연장 합의를 했다면 처벌받지 않는다. 과거에는 체불임금의 액수가 크지 않을 경우 통상 약식으로 체불임금액의 20~30% 수준의 벌금이 부과되었다. 정식 형사재판까지 진행되었다고 하더라도 집행유예로 종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체불임금이 수억원 이상으로 크다고 하더라도 피해 근로자에게 뒤늦게라도 이를 모두 지급했다면 실형까지는 잘 나오지 않고 벌금이나 집행유예로 종결되었다. 다만 최근에는 점차 임금체불에 대한 형사처벌이 강화되고 있다. 실제 2016년 7월 1일부터 강화된 근로기준법위반범죄 양형기준이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다. 이에 의하면 기본적으로 체불임금 액수가 5000만원 미만일 경우에는 징역 4~8월이, 5000만원 이상 1억원 미만일 경우에는 징역 6월~1년이, 1억원 이상일 경우에는 징역 8월~1년6월의 처벌이 가해진다. 실제 임금체불을 이유로 법정에서 구속되고, 실형을 받는 사례가 상당수 발생하고 있다.

합의서를 제출한다면?

하지만 위와 같은 규정에도 불구하고 임금체불 사건의 절반 이상이 사법처리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2019년의 경우 고용노동부에 신고된 임금체불 건수는 22만7739건이었는데, 이 중 15만798건이 지도해결로 종결되었으며, 7만1820건만이 사법처리로 이어졌다.

그 이유는 근로자(피해자)가 사업주(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면, 처벌을 할 수 없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피해자가 처벌불원서를 제출할 경우 원칙적으로 사업주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합의서, 처벌불원서, 탄원서 등 그 명칭은 중요하지 않다. 해당 서면에 근로자가 사업주의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하게 기재되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단순히 체불임금을 다 지급받았다. 여기에 이의가 없다’ 정도만 기재할 경우에는 사건이 종결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처벌불원서를 근로자가 제출했다면, 해당 사건이 수사단계에 있었다면 불기소 처분이, 1심이 진행 중이었다면 공소기각 판결이 이루어진다. 즉 유무죄 판단 자체를 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한다는 의미다. 단 1심 판결 선고 이후에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면 공소를 기각하지는 않고 양형에만 반영하게 된다. 즉 처벌을 피할 수는 없고 형량만 낮아진다는 의미다. 따라서 합의서를 제출하려고 한다면 1심 판결 선고 이전에 제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반대로 근로자 입장에서는 한번 처벌불원서를 낸다면 이를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체불임금을 확실히 지급받거나 지급 보장을 받고 처벌불원서 내지 합의서를 써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재욱 변호사ㆍ법무법인 주원 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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