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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628호] 20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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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문재인표 ‘가야공정’ 시험대에… 터널이냐 가야史냐

▲ 경남 창원시 진해구 제2안민터널(가칭) 접속도로 공사현장에서 발견된 국내 최대 가야 고분군. 접속도로는 사진에 보이는 본 도로 아래를 통과해 고분군을 지나 터널과 이어질 예정이다. photo 이동훈
문재인표 ‘가야공정’이 최대 시험대에 올랐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제2안민터널(가칭) 접속도로(IC) 공사현장에서 삼국시대 때인 4~5세기경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곽묘(덧널무덤) 748기를 비롯해 석곽묘(돌널무덤), 석실묘 등 총 881기의 대규모 유구(遺構)가 발견되면서다. 여기서 쏟아져 나온 각종 형태의 토기와 철제칼, 갑옷, 장신구 등 유물만 무려 4000점이 넘는다. 터널 접속도로 공사현장에서 방대한 유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관련 공사는 올스톱된 상태다.
   
   국토교통부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의 의뢰로 매장문화재 발굴을 진행 중인 경남 창원의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은 지난 9월 중간보고서를 내고 “삼국시대 목곽묘는 748기로서, 최종 검출 예상 수량은 900~1000기로 예상된다”며 “국내 최대의 삼국시대 고분군으로 진해 지역의 당시 사회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라고 평가했다. 또 “현재까지의 발굴조사 성과로 보아 대규모 고분군 밀집지역으로 중심구역에 대한 보존방안을 검토하여 추진하기 바란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공사 중 나온 국내 최대 가야 고분군
   
   4000점이 넘는 막대한 유물이 쏟아져 나온 도로공사 현장은 부산에서 창원으로 이어지는 국도 2호선 대체 우회도로 신설 공사현장이다. 이 중 창원시 진해구와 성산구를 연결하는 제2안민터널은 국도 2호선 대체 우회도로 공사와 연계해, 국내 최대 수출입 항만인 부산신항 및 녹산국가산업단지와 창원국가산업단지를 최단거리로 연결하는 도로다. 하지만 터널 관통 공사가 끝나고, 본 도로에서 터널로 이어지는 접속도로(IC)만 놓으면 되는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걸림돌을 만난 셈이다.
   
   유물들이 출토된 위치나 제작 시기, 형태 등을 감안하면 4000여점의 유물 대부분은 가야 유물일 가능성이 크다. 공사현장이 있는 진해는 전기 가야연맹의 맹주였던 금관가야가 있었던 경남 김해, 아라가야가 있었던 함안, 소가야가 있었던 고성 등과 가깝다. 국도 2호선 대체 우회도로가 시작되는 진해구 용원동 앞바다에는 인도 아유타국(阿踰陀國) 공주로 김수로왕에게 시집와 김해 허씨의 시조모가 되는 허황옥(許黃玉)이 상륙한 망산도(望山島)와, 타고 온 배가 뒤집혀 바위로 변했다는 유주암(維舟巖) 등이 있다.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 매장문화재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도 출토 유물 대부분은 가야 유물이라는 입장이다.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의 발굴책임자는 “유물의 특징뿐 아니라 시기로 봐도 당시는 신라가 해당 지역을 점령하기 전이라 대부분 가야 유물”이라고 단언했다. 신라가 전기 가야연맹의 맹주였던 금관가야(경남 김해)와 후기 가야연맹의 맹주였던 대가야(경북 고령)를 차례로 복속시킨 것은 각각 532년과 562년으로 6세기에 해당한다. 4~5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대규모 유적의 주인은 가야라는 결론이다.
   
   
▲ 제2안민터널(가칭) 접속도로 공사현장에서 출토된 가야 유물들. photo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경남에 불어닥친 가야사 광풍
   
   일제가 한반도 지배의 역사적 근거가 되는 ‘임나(任那)일본부’와의 연관 고리를 찾기 위해 근대 고고학 방법으로 가야사 연구에 착수한 이래 가야사 연구 성과는 그다지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 가야 유물들을 모아 개관한 국립김해박물관은 신라 유물이 집대성된 국립경주박물관이나, 백제 유물이 모여 있는 국립공주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 등에 비해 유물 수준 등이 빈약한 것이 현실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일찌감치 등재된 신라나 백제 유적과 달리 가야 유적은 이제 겨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착수한 상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땅속에서 튀어나온 4000여점의 가야 유물은 집권 초 ‘가야사 복원’을 공언한 문재인 정부로서는 가뭄의 단비가 아닐 수 없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 청와대 수석 보좌관회의에서 “약간 뜬금없는 얘기일 수도 있는데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국정과제에 ‘가야사’ 연구와 복원도 넣어달라”고 당부한 직후 가야의 주 세력권인 경남 일대에서는 한동안 거센 ‘가야사’ 광풍(狂風)이 불어닥쳤다. 김해(금관가야)를 비롯 함안(아라가야), 고성(소가야), 창녕(비화가야) 등 지자체에서는 너도나도 ‘가야사 복원’을 외쳤다. 여기에는 경북 고령(대가야)과 성주(성산가야), 상주(고령가야)를 비롯해 심지어 전남과 전북 지역의 일부 지자체까지 가세했다.
   
   가야의 개국 시조인 김수로왕을 뿌리로 하는 김해 김씨 안경공파(派)에 속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문중 소속인 김종필 전 총리가 1998년 DJP연합으로 집권하며 김해를 중심으로 가야사 성역화에 착수한 이래, 또다시 불어닥친 가야사 복원 열기였다.
   
   김해 출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도 김해를 중심으로 비슷한 가야사 열풍이 분 적이 있었다. 실제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옛 가야 왕도인 김해에는 ‘가야사 복원’을 명분으로 ‘예산 폭탄’이 쏟아졌다. 일본의 동양사학자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구한말인 1907년 최초 발견한 김해 회현리패총은 봉황동 유적으로 확대 지정됐고, 정체불명의 복원 가옥과 동상, 테마공원 등이 줄줄이 들어섰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가야사 복원’은 비슷한 흐름을 밟고 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의 ‘가야사 복원’ 당부 직후, 가야사 복원은 2017년 8월 발표한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도 ‘지역과 일상에서 문화를 누리는 생활문화 시대(문체부)’ 항목 아래 ‘가야 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 등의 항목으로 슬그머니 끼여들었다. 지난 5월에는 김해갑을 지역구로 하는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3선)이 대표발의한 소위 ‘가야사 특별법’인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여권의 잠룡(潛龍) 중 하나인 김경수 경남지사 역시 문 대통령의 ‘가야사’ 언급 이후 줄곧 가야사 복원을 화두로 내세웠다. 김해 김씨 삼현파(派)인 김경수 경남지사는 소가야가 있었던 경남 고성 출신으로, 금관가야가 있었던 김해에서 국회의원을 지내고 경남지사에 당선됐다. 김경수 지사는 지난해 10월, 김수로왕과 허황후를 위한 정기 제사인 ‘추향대제’ 때 초헌관으로 참석해 “신라와 백제 역사 복원에 예산이 얼마 들었는지 아느냐”며 “백제 역사 복원에만 무려 2조원이 들어갔다”고 ‘가야사 예산 폭탄’을 예고하기도 했다.
   
   
▲ 굴착공사가 이미 완료된 제2안민터널(가칭). photo 이동훈

   쏟아져 나온 유물에 당황한 지자체들
   
   하지만 4000점이 넘는 가야 유물 출토에 들뜬 학계나 정치권과 달리 현지에서는 당황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터널 공사가 진행 중인 창원시 진해구에서는 부산신항과 녹산국가산단으로 향하는 대형 컨테이너트럭들이 시내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국도 2호선을 지나면서 발생하는 소음피해와 도로훼손 등으로 인한 민원이 상당했다. 베드타운인 진해와 창원국가산단을 연결하는 기존 안민터널도 출퇴근 시간 정체가 심했다. 국도 2호선 대체 우회도로와 제2안민터널은 이 같은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거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꼽혔는데, 가야 유물 출토라는 날벼락이 떨어진 셈이다.
   
   실제 추석을 앞두고 지난 9월 30일 찾아간 제2안민터널 공사현장에는 두 개의 터널만 시커먼 입구를 벌리고 있었다. 공사현장에서 돌아가는 중장비나 작업하는 인부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본 도로에서 터널을 연결하는 접속도로가 놓일 산비탈에는 문화재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경계선이 쳐져 있었다. 펜스 안쪽에는 흰색 페인트로 경계를 표시한 구덩이만 줄잡아 수백 군데가 보였다. 본 도로 건너편에도 혹시 있을지 모르는 추가 유물의 유실을 막기 위해 거적을 덮어놓은 곳이 수십 군데 목격됐다.
   
   현재 터널 공사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우선적으로 발굴을 진행하고 있는 곳은 1, 2지구에 그치고 있다. 전체 조사대상 면적(3만1370㎡)의 절반이 조금 넘는 1만9327㎡에 그친다. 향후 패총(조개무지) 및 생활유적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4, 5지구를 추가로 발굴할 경우 얼마나 더 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올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실제 2014년에는 터널 접속도로와 이어지는 본 도로 조성공사 현장에서도 4세기경의 가옥 형태를 완벽히 담고 있는 가형토기(家形土器)를 비롯 상당량의 유물이 출토돼 문화재청이 보도자료를 배포한 적도 있었다.
   
   
   현 설계대로라면 유적 훼손 불가피
   
   자연히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역점 사업이 된 가야사 복원이 최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계획대로 터널공사를 강행하자니 관련 유물만 4000여점이 쏟아져 나온 국내 최대 가야 고분군의 훼손이 불가피하고, 그대로 보존하자니 줄잡아 7000억원 넘게 들인 본 도로(귀곡~녹산)와 약 1600억원이 들어간 터널을 제대로 활용조차 못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제2안민터널로 이어질 접속도로 역시 이미 일부 구간을 시공해둔 상태이고 터널 입구가 산비탈에 위치해 있어 접속도로 설계 변경 역시 여의치 않은 상황으로 보였다. 터널로 이어지는 접속도로는 인근 초등학교의 민원으로 이미 한 차례 설계가 변경돼 본선 아래를 통과하는 이중꽈배기 형태의 복잡한 형태로 이어져 있다.
   
   공사 발주처인 국토교통부 부산지방국토관리청에 확인한 결과, 터널 접속도로는 본선 교각 아래를 통과해 산중턱에 있는 터널로 이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위한 일부 구간의 성토도 불가피한데, 고가램프로 연결되는 것에 비해 지표면과 그 아래 지장물의 훼손이 불가피한 최악의 상황이다.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의 한 관계자는 “관련 공정률이 50%가 넘어서 더 이상 설계 변경은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문 대통령의 언급 이후부터 ‘가야사 복원’을 경쟁적으로 외쳐온 경남도나 창원시도 난처한 입장이다. 교통난 해소나 컨테이너 물동량 등을 감안해 기존 계획대로 공사를 강행하는 것이 옳지만, ‘가야사 복원’이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정면으로 반하는 일이 될 수도 있어서다. 김해 허씨인 민주당 소속 허성무 창원시장은 지난 8월 공사현장을 찾아 터널 개통 시점을 당초 예정된 2023년 3월에서 2021년 12월까지 당겨줄 것을 재차 주문하기도 했다. 제2안민터널 조기개통은 허성무 창원시장의 대표 공약이기도 하다.
   
   하지만 해당 지역의 매장문화재 발굴조사가 오는 2022년 4월까지 예정된 터라, 제2안민터널의 2021년 조기개통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 분위기다. 이제 터널을 택할지, 가야사를 택할지는 지역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한 지역민은 “다시 파묻어 버리면 안 되냐”고 반문했다.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의 관계자는 “4000여점의 유물은 현지에 마련된 임시보관 수장고와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의 수장고에 분산 보관하고 있다”며 “해당 유물은 국가에 귀속되고 추후 처리방침은 국가에서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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