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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628호] 20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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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 “DJ도 인정한 北 인권 조사 문 정권이 중단”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9월 8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만난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은 “김대중 정부도 우리를 최대한 존중하고 협력해줬는데, 문재인 정부는 그러한 철학과 정책 마인드가 부족하다”고 한탄한다. 그가 이렇게 현 정부에 쓴소리를 하는 이유는 21년 동안 진행된 하나원(탈북자 정착 지원 기관) 북한 인권 실태조사를 통일부가 올해부터 일방적으로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평생 북한 인권 피해 조사에 몰두해온 윤 소장은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원 조사 재개가 유일하다”며 “혹시라도 이것이 정쟁의 소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 소장이 북한 인권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하나원에 출입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다.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사자를 만나 시간을 따라 올라가면서 시시비비를 가리면 된다. 정부가 오랜 기간 윤 소장이 운영하는 민간단체에 북한 인권 실태조사를 맡긴 것은, 그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정부가 직접 하기는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윤 소장의 설명을 들으니 그간의 복잡한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 문재인 정부가 북한 눈치를 보기 때문에 북한 인권 조사를 막는다고 보나. “문재인 정부의 북한 눈치 보기와 통일부의 부처 이기주의가 작용했다. 통일부는 조사와 기록을 독점하고 싶은 것이다. 정부의 인권에 대한 인식과 철학 부재도 문제다. 인권과 평화는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같이 가는 것이다. 현 정부는 북한 인권에 대해서 인권 때문에 평화가 방해를 받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
   
   - ‘하나원’은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인 1999년 출범했다. 당초 하나원을 만든 이유는. “탈북민 관리 업무는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를 거쳐서 1993~1997년까지 보건복지부에서 담당했다. 탈북민의 대부분이 군인이다 보니 국가유공자로 높은 대우를 받았다. 그러다 보건복지부로 넘어가 기초생계수급자로 낮은 수준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불만이 쌓여 시위까지 벌어졌고 1997년 관련 법률이 개정되어 통일부로 업무가 이관되었다. 통일부가 탈북민 업무를 맡으면서 하나원을 준비하게 되었다.”
   
   - 하나원 출범 후에 인권 조사를 시작한 이유가 뭔가. “하나원 초기에 공식적으로 인권 실태조사를 실시한 것은 아니었다. 민간에서 자원봉사, 연구조사 활동에 참여한 연구진들이 일부 인권 조사를 하는 수준이었다. 김대중 정부 차원의 허락이나 승낙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나원 담당자들이 개별 연구자의 연구활동에 협조해주는 수준이었고 통일부 본부 차원에서 이를 인지하거나 허락해주는 단계는 아니었다.”
   
   - ‘햇빛정책’을 밀고 나가던 김대중 정부가 인권 조사를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았나. “당시 남북 정상회담이 논의되고, 2002년 실제 정상회담이 열렸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북한이 부담스러워하는 인권 조사를 직접 수행하거나 논의하는 것은 어려웠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는 인권 그 자체에 대해서는 높은 수준의 인식을 하고 있었다. 민간의 활동을 통제하거나 억압하는 느낌은 없었다. 통일부에 북한인권환경팀(1999년 5월)이 최초로 신설되어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다루지 않던 북한 인권 업무를 명확히 하기도 했다. 또 ‘북한 인권백서’ 발간을 돕고 북한 인권 민간단체 역시 지원했다. 이는 매우 큰 변화였고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
   
   - 김대중 정부 당시 북한 인권 조사를 막으려는 시도가 아예 없었나. “김대중 정부 말기에 통일부 실무자들은 서독의 잘츠기터 문서기록보존소(동독의 인권침해를 기록하고 자료를 보관해둔 서독 법무부 소속 기관)를 벤치마킹하여 비슷한 기관을 운영할 필요성을 느꼈다. 실제 설립도 검토했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남북관계를 고려해 부정적인 분위기였다. 정부 실무자들은 정부 차원에서 설립하기 힘들다면 민간이 설립, 운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북한인권정보센터 설립을 준비해 2003년 설립했다. 통일부 관계자들이 하나원 인권 조사를 비공식적, 비공개로 협조한 것은 이러한 이유다.”
   
   - 김대중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북한 인권을 바라보는 차이점이 뭐라고 보나. “김대중 정부는 민간단체와 시민사회의 역할을 최대한 존중하고 협력하고자 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그런 철학과 정책적 마인드가 매우 부족하다.”
   
   - 센터 설립이 노무현 정권 출범 시점과 비슷한데 노무현 정부의 입장도 김대중 정부와 같았나. “노무현 정부에서도 김대중 정부의 기조와 협력은 유지되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북한 인권 개선이 필요하고, 조사기록의 축적도 필요하다고 보았다. 장기적으로 계속되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다만 국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추진하여 남북관계의 걸림돌이 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 노무현 정부 때 달라진 것은 없었나. “공식적으로 북한 인권 실태조사를 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밝힐 수는 없었고, 그렇게 하지도 않았지만 하나원에서 비공식적인 조사 협조는 유지되었다. 다만 하나원 인권 실태조사가 공식적인 계약이나 위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통일부 관계자들이 북한인권정보센터의 조사활동에 협조를 해주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계약 문건 등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또 하나원의 협조를 바탕으로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원장 등이 새로 부임하여 인권 조사가 공식적인 계약 없이 내부 협조로 실시되는 것에 비판적인 경우 잠시 조사가 중단된 적도 있었다. 그런 경우 담당자가 교체된 이후 조사를 재개할 수밖에 없었다.”
   
   - 북한이 노무현 정부 당시 인권 문제에 특히 예민하게 반응했는데, 당시 정부가 매년 발간하는 ‘북한 인권백서’의 내용을 조정하라는 압박은 없었나. “통일연구원 백서는 1994년부터, 정보센터 백서는 2007년부터 발간하고 있다. 정보센터 백서 발간에 대해서는 현 정부 이전까지는 정부가 압박한 적은 없었다.”
   
   - 이명박 정부의 경우는 이전 정부와 달랐나. “국제사회 및 민간과 협력해 북한 인권을 개선시키겠다는 것이 정부의 공통된 입장이었다. 이명박 정부도 큰 차이는 없지만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처음으로 참여했고, 이후 지속적으로 공동제안국과 찬성 투표를 했다는 것이 그 전과의 차이다. 민간단체에 대한 지원은 노무현 정부와 큰 차이를 느끼지는 않았고 좀 더 부드러워진 정도였다.”
   
   윤 소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 북한 인권실태조사가 “공식사업으로 승격되어 과거와 달리 공개적·공식적 방법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 정보센터의 하나원 조사도 공식 위탁계약으로 처음으로 실시되었고 북한인권법 제정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고 한다. “과거 비공식·비공개적으로 진행되던 것이 정권교체 이후 정부가 실태조사를 중요하게 인식하면서 통일연구원, 국가인권위원회, 법무부 등에서도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고 조사를 하고 싶어 했다. 선호가 높은 영역으로 갑자기 바뀌면서 다소 경쟁적 관계도 형성되기 시작했다. 다만 그 결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은 역대 어느 정권도 하지 않았다.”
   
   - 이명박 정부가 북한 인권을 대북 협상의 지렛대로 이용했다고 생각하나. “그런 기억은 없다. 인권 실태조사를 각 정부기관과 연구기관이 자신들의 업무영역 확대 또는 기관조직 확대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정도일 뿐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조사 방식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높았던 적은 없었다.”
   
   -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 박근혜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차이점은 무엇이었나. “‘통일 대박’이라는 구호가 나오면서 전반적으로 북한 인권, 탈북민 단체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높아졌지만 실태조사 관련해서는 차이가 없었다. 이명박 정부 초기와 같이 통일부, 법무부, 국가인권위, 통일연구원 등이 각각 실태조사와 기록보존 업무를 서로 차지하려고 각축을 벌이는 현상이 발생했는데, 진정으로 인권 개선을 위한 합리적 접근이라기보다는 부처의 조직 확대, 부처 이익 우선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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