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역에서 포티케어 서비스를 제공 중인 매니저들. 포티케어 매니저의 70% 이상이 만 60세 이상의 시니어 근로자다. ⓒphoto 함께일하는재단
김포공항역에서 포티케어 서비스를 제공 중인 매니저들. 포티케어 매니저의 70% 이상이 만 60세 이상의 시니어 근로자다. ⓒphoto 함께일하는재단

#2017년 대형 호텔체인의 주방장으로 은퇴한 A씨. 평생을 주방장 외길만 걸었던 그는 은퇴 후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 2018년 시니어 인재채용 매칭 회사를 통해 간편식(도시락)을 생산하는 중견기업에 채용됐다. 올해 61세인 그는 현재 이 회사의 메뉴 개발 담당자다.

#국내 굴지의 기업에서 은퇴한 B씨는 ‘긱워커(gig worker)’다. 대기업 재직 시절 베트남 지사장을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베트남에 물품을 수출하는 충청북도 소재 기업들에 기획 아이디어 및 영업 전략 등을 제공한다. 오랜 시간 ‘월급쟁이’로 일해온 B씨는 은퇴 후 다시 얻은 일자리에서 파트타임 방식의 근무를 택했다. 그는 2개 기업에서 1주일에 각각 2~3일 정도씩 돌아가며 업무를 본다. “일하는 데 있어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건강이 따라주고 성실하기만 하다면 누구든 일할 수 있다”는 게 B씨의 지론이다.

점점 더 많은 근로자가 과거보다 더 이른 나이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있다. 은퇴 나이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지만 기대수명은 더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퇴 후 쉬면서 여생을 보내는 과거와 달리 요즘엔 은퇴 후에도 일거리를 찾아 경제활동을 하는 시니어가 늘고 있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노인’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나이는 아직 50~60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노인’이란 단어로 이들을 가둬두기엔 지나치게(?) 정정한 세대다. 일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거나 일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액티브 시니어’다.

액티브 시니어는 은퇴했지만 자신이 평생 종사해온 업무에 대한 전문성을 확실히 갖추고 있다. 숙련된 업무능력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은퇴와 함께 이들의 직무능력마저 부정돼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의사, 변호사처럼 전문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은퇴 후 노인일자리를 찾아나선 이들 앞에 놓인 선택지는 매우 제한적이다. 과거 직무와 전혀 상관없는 직종으로의 창업은 말할 것도 없다.

“평생 일하다 보니 노는 것도 힘들다”며 퇴직 후 일자리를 찾아나선 액티브 시니어들을 위해 정부와 공공기관 등에선 노인일자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61만개의 노인일자리가 정부 주도로 발생했다. 일자리 유형도 다양하다. 시니어인턴십, 시장형사업단, 고령자친화기업 등 시장형 일자리뿐만 아니라 공익활동, 재능나눔활동 등 사회공헌형 일자리들도 제공된다. 올해부턴 ‘퇴직 고급 기술인력 중소기업 활용지원 사업’도 등장했다. 서울시처럼 50플러스센터를 운영하며 시니어들의 재교육과 취업 및 창업을 돕는 지자체도 있다.

문제는 공공영역에서 제공하는 시니어 일자리의 경우 단기직 채용이 많다는 점이다. 일부 중소기업에서 정부 주도의 시니어 단기 일자리 사업을 값싼 노동력 제공 정도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시니어들을 비영속적으로 이용하고 마는 등 지속적인 시니어 고용 생태계를 조성하기엔 아직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부분의 사업이 만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점도 제도적 한계로 지적된다. 일자리 시장에 점점 더 많이 나오는 50대 초중반의 은퇴 인구를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공일자리 영역의 사각지대

공공 영역이 미처 커버하지 못한 시니어 시장의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액티브 시니어 취업 알선과 창업 지원 등을 돕는 민간기관과 기업들도 등장했다. 이들 기업은 전문적인 역량을 갖춘 인력을 중소기업이나 필요한 영역에 연결해주는 매칭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회적 기업 시니어앤파트너즈가 IBK중소기업은행과 협력해 2016년부터 1년간 3회 진행했던 ‘IBK 스카우트사업’이 대표적 사례다. 은행의 고객기업인 중소기업, 스타트업 등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인력을 시니어앤파트너즈가 보유한 시니어 퇴직인력 풀을 이용해 추천하는 사업이었다. 숙련된 인력이 필요한 기업의 니즈와 퇴직 전 직장만큼은 아니더라도 일정한 보수와 일자리가 필요한 액티브 시니어의 니즈가 맞아들어갔다. 이은정 시니어앤파트너즈 대표는 “어떤 직무에서 전문가로 은퇴한 분들은 미리 은퇴 준비를 하지 않은 이상 완전히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며 “이들에겐 기존에 본인이 갖고 있는 직무 전문성을 발휘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보다 일찍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일본이나, 퇴직자들의 사회활동이 활발한 미국의 경우 액티브 시니어를 수용하기 위한 일자리들이 비교적 활성화돼 있으며, 이들을 일자리에 성공적으로 매칭하기 위한 시니어 헤드헌팅 사업도 발달해 있다. 미국의 ‘앙코르서비스’나 ‘GLG’엔 광대한 시니어 인력 풀이 조성돼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 시장은 여전히 미개척 분야다. 우리 사회의 액티브 시니어층은 점점 두꺼워지는데, 시니어를 고용하는 데 대한 기업들의 인식은 제자리걸음이다. 일하고자 하는 사람은 있으나 일자리가 없는 셈이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해도, 시니어 인력이 장기적으로 안착하는 경우는 아직 드물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회사의 경영진과 갈등을 일으키거나, 청년기업가들이 주도하는 빠른 업무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려움도 있다. 시니어의 취업 및 창업 활동을 지원하는 ‘함께일하는재단’의 김유동 일자리지원팀 팀장은 “특히 일손이 필요한 청년 창업 기업의 의뢰가 늘고 있는데, 고용인과 시니어 피고용인 사이에 갈등 상황이 왕왕 발생한다”며 “고용인과 피고용인 양쪽 모두 사전교육 등을 통해 시니어 채용의 특수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하철 5호선, 9호선, 공항철도가 만나는 김포공항역. 파란색 조끼를 입은 반백 머리의 남성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고령자, 장애인, 임산부, 유아동반 승객을 위한 교통약자 이동서비스 ‘포티케어’를 제공하는 이종갑(66) 매니저다. 포티케어는 김포공항을 이용하는 교통약자의 이동을 돕는 동시에 시니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서비스다. 이씨는 함께일하는재단이 한국공항공사, 리베라빗과 손잡고 2018년부터 시작한 이 서비스에 지원하면서 일을 다시 시작했다.

일하고 싶은 시니어라면 이씨처럼 가장 먼저 관련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찾아봐야 한다. 보건복지부나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쉽게 관련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스스로 정보를 확인하고 이력서 제출 등을 하는 과정이 번거롭거나 어렵다면, 취업을 돕는 기관 및 기업을 찾아 상담을 진행하면 된다. 참여자로 선발된 후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 새 직장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의 역량을 개발하는 것이다. 처음엔 단기 계약으로 시작한다 하더라도 스스로 전문성을 쌓고 해당 기관과 관계를 이어나가는 게 가장 바람직한 모델이다. 실제로 해당 일자리 사업이 끝난 후에도 계속 활동을 이어가는 경우도 많다.

액티브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한 일자리 영역은 점차 발전하며 진화하고 있다. 20~30대를 주축으로 만들어진 스타트업에 전문경영인 출신의 시니어가 멘토링하거나, 앞선 사례의 포티케어처럼 필요하지만 자원이 부족했던 사회서비스 분야에 대한 지원에 나서기도 한다. 액티브 시니어들의 활동은 단순한 일자리 창출을 넘어 사회적 그물망 속에서 사람들과 연대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시니어 일자리 사업은 종종 부정적 여론과 맞닥뜨린다. 청년들이 가야 할 자리를 노인들이 차지한다거나 필요 없는 일자리를 굳이 만들어 예산을 낭비한다는 등의 오해를 사기도 한다. 시니어 일자리 관련 기사에 부정적 댓글이 많이 달리기도 한다. 김유동 팀장은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청년들이 쉽게 나서지 않는 분야를 시니어들이 채워준다는 개념이 정확하다”며 “일하는 중장년층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장은 “시니어들의 일자리 창출 문제는 결국 미래 세대의 안정적 고용 문제와 직결된다”며 “앞으로 계속 등장할 시니어 세대를 위해 건강한 일자리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니어앤파트너즈 이은정 대표

“세분화·전문화로 현실적 프로그램 설계해야”

시니어 전문인재 채용회사 시니어앤파트너즈의 이은정 대표.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시니어 전문인재 채용회사 시니어앤파트너즈의 이은정 대표.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기본적으로 헤드헌팅이 그렇지만, 시니어 일자리 매칭의 경우 중간에서 일자리와 인력을 연결해주는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기업 니즈와 구직자가 원하는 연봉 수준이 다르다거나, 기업문화와 미세한 업무능력 조정 등 조율해야 할 부분이 많다. 시니어 일자리 사업이 오롯이 대규모 정부 사업만으로 이뤄지기 어려운 이유다.”

헤드헌팅업체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은 이은정 시니어앤파트너즈 대표는 지난해부터 시니어 일자리 매칭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공공 영역의 시니어 일자리 사업이 보편적인 시니어들을 타깃으로 한다면, 2012년 출범한 사회적 기업 시니어앤파트너즈는 전문인력에 초점을 맞췄다. 오랫동안 특정 직무를 수행해온 퇴직자 풀을 구성해, 이들의 직무가 필요한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에 매칭해준다. 이 대표는 “직무역량을 갖춘 시니어를 위한 일자리의 세분화·전문화가 필요하다”며 “앞으로의 시니어 일자리 프로그램은 계층별로 현실적인 일자리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니어들의 일자리를 주선하다 보면 스스로 주눅 들어 있는 시니어 고객들을 만날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미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해 경제에 기여했다. 은퇴 후 자신의 자리가 없어지면서 심한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노인일자리’라는 말이 주는 인상에서 스스로 당당하지 못한 경우도 봤다. 액티브 시니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시니어 일자리 관련 사이트

한국노인인력개발원 www.kordi.or.kr

노인일자리 포털 www.seniorro.or.kr

시니어앤파트너즈 www.seniornpartners.com

서울시 50플러스센터 50plus.or.kr

임팩트피플스 impactpeoples.co.kr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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