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일 개천절, 차벽으로 에워싸인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3일 개천절, 차벽으로 에워싸인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 ⓒphoto 뉴시스

오는 11월 서울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를 앞두고 졸속 추진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9월 28일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에 착수하겠다고 밝히고, 사업자 입찰에 들어간 상태다. 현재 광화문광장 서측의 편도 6차선 도로를 광장으로 편입하고, 광장 동측의 도로만을 남기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따라 현행 왕복 12차선의 도로는 왕복 7차선(주행차로 기준)으로 절반가량 줄어들 예정이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에 따라 공사기간 중 발생할 교통체증도 문제지만, 대한민국의 국가 상징거리를 선출직도 아닌 ‘시장 권한대행’이 마음대로 바꿔도 되냐는 근본적인 물음도 제기된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는 지난 7월 9일 여비서 성(性)추행 의혹으로 자살한 박원순 전 시장이 구상한 아이디어다. 하지만 광화문광장 옆 정부서울청사 진출입 등의 문제를 우려한 김부겸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의 반발로 추진되지 못했다. 아이디어를 낸 박원순 전 시장마저 유고(有故) 상태인 지금, 시장 권한대행인 서정협 행정1부시장 체제에서 공사를 강행하는 것이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를 발표한 지난 9월 28일은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이 수술을 이유로 병가(病暇)를 낸 까닭에 ‘권한대행 직무대리’인 김학진 행정2부시장 명의로 계획이 발표됐었다. 김학진 행정2부시장은 “지난해 9월 이후부터 전방위로 소통하며 시민과 지역주민의 바람을 담은 광장의 밑그림을 완성했다”며 “변화되는 광화문광장은 서울시가 차량 중심에서 사람 중심, 빌딩 숲에서 도심 숲으로, 자연과 공존하며 재난에 대비할 수 있는 생명력을 갖춘 생태문명도시로 본격 전환하는 사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서울 정도(定都) 600년을 맞이한 1994년, 광화문광장 조성 아이디어가 처음 나온 이후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과도 같은 광화문광장을 바꾸는 계획이 시장도 아닌 ‘시장 권한대행 직대(행정2부시장)’ 명의로 발표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란 지적이 나온다.

시장 권한대행 직무대리가 발표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불과 6개월 앞두고,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에 착수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세종로의 비밀’이란 책을 쓴 유길상 전 서울시 기술심사담당관에 따르면, 서울 정도 600주년 사업을 추진했던 이원종 전 시장 때 첫 제기된 광화문광장 조성 아이디어는 이듬해인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후 첫 민선 서울시장으로 선출된 조순 전 시장에 의해 곧장 거부된 전례도 있었다.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과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조순 전 시장은 광화문광장 조성을 불요불급한 탁상행정으로 취급, “서울시 공직자 여러분, 정말 서울시민을 사랑한다면 이래선 안 됩니다. 이런 짓은 하지 마십시오”라며 단호하게 거부했다고 한다.

이명박 전 시장 당시 광화문광장 조성을 추진했을 때는, 당시 노무현 정부 문화관광부 등에서 반발하고, 이순신 장군 동상 이전과 29주(株)의 은행나무 이식에 대해 약 90% 가까운 시민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재차 유보된 바 있다. 결국 광화문광장은 오세훈 전 시장 때인 2009년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지금과 같은 세종대로 한가운데 중앙광장 형태의 모습으로 조성됐다. 광장 가운데 세종대왕상 앞에는 오세훈 전 시장이 남긴 바닥현판이 남아 있다.

한데 조성된 지 불과 10년 남짓 지나고, 선출직 시장의 유고로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불과 6개월 앞에 다가온 시점에서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에 다시 손을 대려고 나선 것이다. 시장 권한대행 체제에서 조성된 새 광화문광장이 내년 4월 새로 선출될 신임 서울시장의 시정 철학과 맞지 않을 경우 광화문광장은 또다시 뜯어고쳐져야 할 운명이다.

이에 시장 권한대행 체제에서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하는 데 다른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 10월 3일 개천절과 10월 9일 한글날,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광화문광장 이용을 경찰력으로 원천봉쇄한 바 있는데 “반(反)정부시위 봉쇄용 공사 강행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에 따른 공사는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계속될 예정인데, 이 기간 동안 자유로운 광화문광장 이용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라는 본 공사를 앞두고,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서울역에 이르는 세종대로 남쪽 구간(옛 태평로)은 이미 지난 7월 31일부터 차도 폭 줄이기에 들어간 상태다.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서울시청을 지나 서울역에 이르는 옛 태평로 구간의 차도를 축소해 보도로 만드는 공사다. 이로 인해 평소에도 교통량이 많은 이 도로는 곳곳에 공사용 바리케이드가 줄줄이 들어서면서 막대한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있다. 국가 상징거리인 세종대로 차도폭 줄이기 공사 역시 서정협 시장 권한대행 체제 아래서 단행되는 공사다.

서울시가 발표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상상도. ⓒphoto 서울시
서울시가 발표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상상도. ⓒphoto 서울시

본말 전도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국가 상징거리가 시장 권한대행에 의해 ‘조변석개(朝變夕改)’ 식으로 변하는 것도 문제지만,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의 본말(本末)이 전도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의 본래 목적은 일제가 광화문 앞을 동서로 지나는 사직로와 율곡로를 놓으면서 헐어버린 광화문 앞 월대(月臺)와 해태를 원래 위치로 복원하는 데 있다. 옛 월대 자리는 광화문과 광화문광장 사이의 도로 바닥에 붉은색 페인트로 표시돼 있다.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해 설치된 해태는 광화문 양옆의 엉뚱한 지점에 놓여 있다.

월대와 해태가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광화문과 광화문광장을 분리하는 사직로와 율곡로의 구조 변경이 필수다. 하지만 사직로와 율곡로는 서울 도심을 동서로 잇는 핵심 간선도로로, 도로 아래 지하로 지하철 3호선까지 지나고 있어 구조변경이 쉽지 않다. 월대를 우회해 사직로와 율곡로를 곡선형태로 연결하는 것 역시 광화문 양옆에 있는 정부서울청사(서측)와 과거 의정부와 경기도청이 있었던 광화문 시민열린마당(동측) 때문에 여의치가 않다. 현재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는 유적 발굴공사가 한창이다.

이에 사직로와 율곡로의 구조변경은 정부서울청사와 광화문 시민열린마당 남쪽에 현재 지하차도로 연결돼 있는 사직로8길을 통해 연결하거나, 사직로와 율곡로를 곡선형태로 전면 지하화하는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에 박원순 전 시장 생전인 2017년, 각계 전문가 33인으로 결성된 ‘광화문포럼’에서는 사직로와 율곡로를 곡선형태로 지하화하고, 세종대로 상부를 전면 보도화하는 것이 최종 의견으로 제시된 바 있다. 당시 광화문포럼에는 서정협 행정1부시장과 김학진 행정2부시장도 각각 서울시 시민소통기획관과 도시계획국장 자격으로 참가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발표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계획에 따르면, 가장 핵심인 월대와 해태의 제자리 복원을 위한 사직로와 율곡로 처리 문제는 정부서울청사를 관리하는 행정안전부 등의 반대를 감안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문제의 본질은 또다시 건드리지 못하고, 단순히 차도를 줄이고 보도를 늘리는 식의 ‘땜질 처방’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순신과 세종대왕 동상 주변부화

서울시가 발표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안은, 광화문에 비견될 만큼 중요한 상징인 이순신 장군 동상을 왜소하게 만드는 문제도 있다. 광화문광장의 중심 건물은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인 것 같지만, 정작 광화문은 광화문광장의 정중앙이 아닌 약간 비스듬한 형태로 향하고 있다. 광화문광장 북단 역시 광화문을 향해 비스듬히 꺾여 있는 형태다.

광장이 들어선 옛 세종로(현 세종대로)의 전신인 육조거리는 넘실대는 불길과 같은 형상의 관악산에서 오는 화기를 막고자 조선 초 조성 당시부터 약간 꺾어진 형태로 광화문과 연결됐다. 이에 일제 때는 조선총독부 신축과 함께 광화문을 헐고, 북악산 아래 조선총독 관저(현 청와대)에서 조선총독부, 경성부청(현 서울시청), 남산의 조선신궁(현 안중근광장)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일직선의 축(軸)을 만들었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 때인 1968년 세종로(현 세종대로)의 폭을 지금의 100m 크기로 확대하면서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도로 축을 바로잡는 대신, 세종로 입구에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우는 나름 실용적인 방법을 택했다.

이순신 동상을 제작한 고(故) 김세중 작가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일제 때 변형된 조선왕조의 도로 중심축을 복원하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지만, 그 대신 세종로 사거리에 일본이 가장 무서워할 인물의 동상을 세우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100m로 확장된 세종로에 맞춰 이순신 동상은 10.5m 높이의 좌대 위에 올려졌고, 동상 자체의 크기도 기존 계획보다 훨씬 커졌다.

이로 인해 이순신 동상은 광화문보다도 더 유명한 광화문광장의 중심이 됐다. 이명박 전 시장 때 광화문광장 조성 구상이 나왔을 때도, 이순신 동상 이전 얘기가 나왔으나 시민 90% 가까이 반대하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오세훈 전 시장 때 광화문광장을 조성하면서 이순신 동상을 필두로 해전에 나선 전함 모양의 중앙광장 형태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울시 구상대로 이순신 동상을 기준으로 각각 편도 6차선씩 일방통행이 이뤄지는 현행 도로체계가 이순신 동상 동측의 왕복 7차선 형태로 바뀌면, 광화문광장의 중심인 이순신 동상이 순식간에 길 옆으로 밀려나 왜소해지는 꼴이 된다. 광장의 한쪽만을 이용한 도로 통행방법은 2017년 광화문광장 개선의 방향과 원칙을 정하기 위한 ‘광화문포럼’ 결과보고서에서도 문제로 지적된 바 있다. 당시 보고서는 광장 동측 도로 통행을 전제로 한 ‘기존안 검토 2’에서 “광장 편측 배치 시 광장의 축선 확보 및 접근 문제는 해소되지만, 광장의 중심성이 깨진다”고 지적한 바 있다.

광화문광장의 초기 설계 형태가 근본부터 무너지는 셈이다. 이순신 동상 북쪽에 서 있는 세종대왕 동상 역시 광장의 중앙이 아닌 한쪽으로 밀려나기는 매한가지다. 광화문광장 조성 당시 오세훈 전 시장을 설득해 세종대로 중앙광장 형태의 배치에 결정적 역할을 한 유길상 전 서울시 기술심사담당관은 “관을 떠난 지 오래됐다”며 “관에서 하는 일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광화문 앞의 옛 월대터(붉은색 부분)와 엉뚱한 위치에 놓인 해태(사진 양옆). ⓒphoto 이동훈
광화문 앞의 옛 월대터(붉은색 부분)와 엉뚱한 위치에 놓인 해태(사진 양옆). ⓒphoto 이동훈

공원화 방안도 광장 조성 목적과 배치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를 하면서 광장에 꽃과 나무를 심어서 공원화를 추진하는 것도 당초 광화문광장의 조성 목적과 큰 차이가 난다. 오세훈 전 시장 때인 2009년 광화문광장을 조성할 때 기존 세종로 한가운데 심어져 있던 수령만 50~100년에 달하는 은행나무 29그루를 뽑아낸 것은, 일제가 도쿄도(都)의 도목(都木)인 은행나무를 서울 한가운데 식목했다는 사실과 중앙분리대 형태로 심어진 은행나무가 광화문 조망을 가린다는 이유에서였다.

과거 세종로 한가운데 있던 은행나무는 당초 일제가 태평통(옛 태평로)을 새로 내면서 태평통을 기준으로 광화문통(옛 세종로)의 너비를 맞추기 위해 도로 서편에 치우쳐 심었던 것이다. 조성 초기 세종로는 은행나무를 기준으로 동쪽 34m와 서쪽 19m로 비대칭적인 형태로 나뉘어 광복 직후까지 이어졌다. 현재 광장 확장이 추진되는 서쪽 구간에는 노면전차가 다녔다. 박정희 정부 때 1, 2차에 걸쳐 세종로의 폭을 100m로 확장하면서 도로 한쪽에 있던 은행나무는 도로 한가운데로 옮겨졌다.

하지만 도로 한가운데 심어진 은행나무는 광화문의 정면 조망을 가리고 대규모 국가행사 때 걸림돌이 되는 문제가 있었다. 그런 까닭에 은행나무들을 뽑아낸 것인데,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를 하면서 광장 곳곳에 재차 나무를 식목하면 당초 은행나무를 제거했던 의도와 배치되는 결과가 된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를 하면서 왕복 12차선의 세종대로 현행 차선을 절반 가까운 왕복 7차선으로 줄인 후에도 ‘세종대로’라는 현재 도로명을 그대로 쓸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세종대로’라는 이름은 광화문광장 조성 직후인 2010년, 세종로 사거리에서 숭례문(남대문)에 이르는 옛 태평로를 기존 세종로와 통합해 개명한 이름이다. 현행 도로명 주소체계는 폭이 40m가 넘거나 왕복 8차선 이상의 도로에만 ‘대로(大路)’라는 이름을 부여할 수 있다.

현재 세종대로는 이 조건에 충분히 부합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왕복 7차선 도로로 바뀌면, 현행 도로명 주소체계에 따라 ‘대로’라는 이름을 떼어내야 할 판이다. 이 경우 또 한 번 도로명 변경에 따른 혼란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과거 태평로를 폐지하고 세종로와 합쳐 세종대로라는 신설 도로명을 제정할 때도 상당한 혼란이 있었다.

서울시가 발표한 광화문광장 상상도에 따르면, 광화문광장 동측 편도 5~6차선 도로를 왕복 7~9차선 도로로 바꾸는 과정에서 광화문광장 남측에 가건물 형태로 들어선 세월호 추모공간인 소위 ‘기억 및 안전 전시공간’ 역시 철거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를 세월호 유족 측에서 쉽사리 받아줄지도 의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시 관계자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의 최대 난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 광화문광장사업반의 한 관계자는 “세월호 추모공간 이전은 서울시 총무과가 세월호 유족들과 협의 중에 있다”고 했다.

광화문광장 vs 천안문광장

천안문광장 1959년 이후 구조 변경 없어

중국 베이징 천안문광장
중국 베이징 천안문광장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인 승효상씨(전 국가건축정책위원장)가 선호한 것으로 알려진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안(案)은 광장의 기존 형태를 유지하면서 광장 양옆 1~2개 차선을 광장에 추가 편입해 광장 면적을 늘리고 접근성을 개선하는 것만 못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 방안대로라면, 정부서울청사 및 세종문화회관과 이어지는 광장 서측의 접근성은 대폭 개선되지만, 주한 미국대사관 및 교보빌딩과 이어지는 광장 동측의 접근성은 편도 차로가 왕복으로 바뀌고 1~2차로가 늘면서 오히려 떨어지기 때문이다.

도로 가운데 중앙광장 형태의 광화문광장은 ‘세계 최대 중앙분리대’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하지만, 사실 세계 최대 중앙분리대는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天安門)광장이다. 베이징 황성(皇城)의 정문인 천안문을 정점으로 남북으로 늘어선 천안문광장은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정점으로 남북으로 이어진 광화문광장과 구조가 판박이다. 천안문광장 역시 사실 동서남북 도로로 에워싸여 있고, 천안문광장의 동서 역시 각각 편도 6차선 도로로 단절돼 있다. 광장 접근은 광화문광장이 천안문광장에 비해 훨씬 수월한 편이다.

하지만 위안스카이(袁世凱)의 북양(北洋)정부 때인 1914년 옛 전각들을 헐어내고 최초 조성한 천안문광장은 1959년 중국 건국 10주년을 맞아 마오쩌둥(毛澤東)의 지시로 광장 가운데 있던 중화문(中華門)을 철거하고,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 앞 ‘붉은광장’의 6배 규모로 확장된 이래 단 한 번도 구조가 바뀐 적이 없다. 1976년 마오쩌둥의 사후 마오의 시신이 안치된 기념관이 천안문광장 한가운데 옛 중화문 자리에 들어섰으나, 광장의 형태는 바뀌지 않았다. 중화문을 비롯한 옛 문루를 복원하려는 시도도 없었다. 2009년 광장 조성 11년 만에 성형수술에 나선 광화문광장과 큰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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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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