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8일 오후 CJ대한통운 소속 택배기사 유희상(가명)씨가 서울 은평구 응암동 일대에서 택배를 운반카트에 실어 배송하고 있다. 그는 이날 총 313개의 택배를 배송했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0월 28일 오후 CJ대한통운 소속 택배기사 유희상(가명)씨가 서울 은평구 응암동 일대에서 택배를 운반카트에 실어 배송하고 있다. 그는 이날 총 313개의 택배를 배송했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CJ대한통운 소속 택배기사 유희상(가명·28)씨의 꿈은 피자집을 차리는 것이다. 올해 여름, 또래에 비해 일찍 결혼한 그는 1년째 택배기사로 일하고 있다. 삼성전자 AS센터, 배달 대행 등의 일을 거쳤던 그는 1년 전 친구의 소개로 택배기사 일을 시작했다. 멋 부리는 걸 좋아하고 ‘폼’을 중요하게 여기던 그에게 조끼 입고 1톤 탑차를 모는 ‘택배기사’란 썩 내키지 않는 직업이었다. 하지만 월소득이 300만원 이상 보장되고, ‘생각보다 할 만하다’는 주변의 권유에 일을 시작했다.

유씨의 하루는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CJ대한통운 물류센터에서 물건 ‘까대기’를 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까대기란 배송 전 물류를 물류센터에서 세부구역별, 택배기사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말하는 은어다. 물류센터에서 까대기된 택배가 택배기사의 차에 실려야 배송이 시작되는 것이다. 잘 알려진 ‘택배 상하차’는 택배사의 권역별 허브터미널에서 각 지역 물류센터로 물건을 나르는 11톤 트럭에 물건을 옮기는 과정을 말한다. 이 물류센터는 서울 은평구로 배송되는 CJ대한통운의 모든 택배 물류가 모이는 곳으로, 하루에만 2만~3만개의 물류가 오간다.

택배가 자기 키보다 높게 쌓인 운반카트를 ‘운전’하는 것도 택배기사의 중요 능력이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6층 이상 빌라를 갈 때는 층별 동선을 고려해 물건을 쌓아야 한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택배가 자기 키보다 높게 쌓인 운반카트를 ‘운전’하는 것도 택배기사의 중요 능력이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6층 이상 빌라를 갈 때는 층별 동선을 고려해 물건을 쌓아야 한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까대기’ 전담인력이 비현실적인 이유

지난 10월 28일 오전 9시30분, 유씨는 다른 날보다 2시간30분 늦게 출근했다. ‘까대기’ 당번이 아닌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 물류센터의 택배기사들은 ‘조’를 짜 돌아가면서 일부 인원이 7시에 출근해 까대기를 해놓는다. 당번을 맡지 않아 9시30분에 출근한다고 해서 까대기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덜 할 뿐이다.

“그 시간에 잠을 더 자죠.”

유씨에게 ‘아침 먹었냐’고 물어보니 커피가 1L 담긴 텀블러를 들어 보인다. 그의 차에는 레쓰비, 빽다방, 맘모스커피 등 커피잔들과 마일드세븐, 말보로 레드 같은 담뱃갑들이 마구 흩어져 있었다.

유씨 역시 여느 택배기사들처럼 대부분 아침, 점심을 거른다. “밥 먹을 시간이 10분도 없냐, 그건 아니에요. 근데 그 시간에 조금 더 움직여서 빨리 일 끝내고 퇴근하는 게 나은 거죠. 그리고 배부르면 졸리고 몸이 무거워져서 일이 안 돼요.”

최근 택배기사들의 잇따른 과로사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까대기다. 분류작업에 너무 많은 시간과 체력을 소모한다는 것이다. 택배업계 1위, 점유율 약 50%에 달하는 CJ대한통운은 잇따른 택배기사 사망과 관련해 지난 10월 22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날 CJ대한통운 박근희 대표는 택배기사 보호대책으로 3000명의 분류지원인력을 추가로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일하고 있는 1000여명을 포함해 모두 4000명이 분류작업을 담당해 택배기사의 업무를 덜어준다는 것이다. 또 전문기관에 의뢰해 하루 배송 적정량을 산출하고 이 양을 초과하면 다른 택배기사 3~4명이 팀을 이뤄 분담해 배송하는 ‘초과물량 공유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롯데택배 역시 1000명의 분류 전담 인력을 보충하겠다고 했다. 택배기사들의 처우 개선을 강조하는 쪽에서는 ‘분류 따로, 배송 따로’ 방식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류를 담당하는 별도의 인력이 물량을 각 택배기사별로 모아놓으면, 택배기사는 실어서 배송만 하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CJ대한통운이 분류지원인력 3000명을 추가로 투입하면 택배기사들의 과로는 해결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기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분류지원인력을 3000명 더 투입한다고요? 지금 알바 몇 명 구하기도 힘든데 3000명은 어디서 뽑죠? 3000명 못 뽑으면, CJ 정직원들한테 택배 분류 시킬 건가요?”

택배기사들이 ‘까대기’ 전담 인력의 대대적 확충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밖에서 보면 우리가 이 물건들을 탑차에 그냥 싣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택배기사들의 ‘짬’은 자기 동선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짜느냐에서 나오거든요. 그래야 시간도 절약되고 기름값도 아끼니까. 안에 물건을 실을 때도 마찬가지로 동선대로 넣는 거예요. 제일 나중에 가는 곳부터 안쪽에, 가장 먼저 가는 곳은 바깥쪽에. 그런데 ‘분류 인력’이라는 사람들이 와서 택배기사의 동선을 일일이 맞춰서 할 수 있을까요? 결국 저희가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해요. 그래서 큰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유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옆에 있던 다른 택배기사가 말을 거들었다.

“주5일제만 해줬으면 좋겠어요.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라고, 자영업자가 ‘나인투식스’ 하는 게 어딨냐고 하는데, 좋다 이거예요. 근데 자영업자들은 아프거나 일이 생기면 하루이틀 가게 문 닫을 수 있잖아요. 택배기사들은 사실상 그게 아예 안 돼요. 휴가도 1년에 3일 남짓 갈까 말까 하죠.”

이 택배기사의 말을 웃으며 듣던 유씨가 반박했다.

“현실적으로 주5일제도 어려워요. 택배 배송 전체를 하루 쉬면 모를까. 배송은 월화수목금토 ‘주6일제’인데, 택배기사들만 어떻게 주5일제를 해요. 내 구역 물량을 그때그때 쉴 때마다 다른 택배기사한테 넘겨서? 힘들죠. 그리고 택배기사들 중에는 쉬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만큼 돈을 더 벌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아요. 조금 고되더라도 최대한 일해서 돈 벌겠다는. 그런 사람들은 어떡하죠? 개인사업자인데.”

유씨는 이날 점심을 탑차 안에서 컵라면으로 해결했다. 모처럼 점심을 챙겨 먹는 것이었다. ⓒphoto 곽승한 기자
유씨는 이날 점심을 탑차 안에서 컵라면으로 해결했다. 모처럼 점심을 챙겨 먹는 것이었다. ⓒphoto 곽승한 기자

사비로 ‘까대기’ 알바까지 고용

일부 택배기사들은 사비를 들여 까대기 작업 알바를 직접 고용하기도 한다. 또는 택배기사들끼리 돈을 모아 알바를 쓰거나, 센터가 택배기사들에게 일부 돈을 걷어 고용하기도 한다. 이는 택배기사와 소장(물류센터장)이 협의해서 결정하는 문제인데, 이 과정에 소장의 힘이 가장 크다. 일부 소장들은 택배기사들에게 따로 돈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알바를 고용해 까대기 작업의 수고를 덜게 한다. 하지만 ‘야박한’ 소장을 만나면 모든 까대기 작업을 택배기사들이 직접 일일이 하거나 자기 돈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지난 10월 8일 배송 중 숨진 CJ대한통운 소속 택배기사 고 김원종씨의 동료 택배기사들은 직접 매달 40만원을 내고 분류 알바를 따로 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이 비용을 지불하기 부담스러워 매일 직접 분류 작업을 하다 피로가 누적돼 과로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씨 역시 까대기라고 불리는 ‘분류 작업’이 가장 고되고 지친다고 했다. 이날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줄줄이 나오는 물건의 송장을 보면서 택배기사들이 자신의 왼쪽, 오른쪽의 동료에게 담당 구역과 배달 주소지에 맞게 분류, 전달하는 일은 12시30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자리에 서서 물건을 왼쪽, 오른쪽으로 보내주기만 하면 되는 작업이지만, 3시간 내내 서 있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체력 소모가 큰 일이었다.

유씨의 이날 점심은 컵라면. 기자가 옆에서 일을 거들자 ‘간만에 점심 먹는다’며 탑차 운전석 뒤편에서 컵라면을 꺼내왔다. 택배기사들이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물류센터 내에 마련되어 있지만, 유씨는 거기까지 왔다 갔다 하지 말고 그냥 여기서 먹자며 탑차 뒤에 앉았다. 컵라면에 물을 부은 채로 송장을 정리하고 있는 유씨에게 최근 택배기사들이 잇따라 숨지고 있는데, 정말 죽을 만큼 힘든지 물었다.

“솔직히 죽을 만큼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근데 이 일은 쉬지를 못하니까. 밥도 제때 못 먹고, 충분히 쉬지 못하고, 그러면 몸이 금방 상하고 무리가 오겠죠. 밖에서는 택배기사들을 엄청 ‘불쌍한 사람들’처럼 보던데,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이 안에도 격차가 있어요. 진짜 잘 버는 형들은 월 700만~800만원 벌어요. 가끔 밖에서 회식할 때 보면 그랜저 타고 지방시 입고 와요. 물론 소수지만, 그 형들은 업체 쪽으로 영업을 잘해서 집화 물량을 많이 받아오는 거예요. 그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배송하지 않아도, 정해진 곳에 가서 한 번에 많이 받아오면 되는 거죠. 기사한테 건당 떨어지는 수수료도 집화가 더 높아요.”

12시53분, 5분 만에 컵라면을 흡입한 후 유씨는 탑차 안 택배를 마지막으로 정리해 차곡차곡 쌓은 후 배송을 나가기 시작했다. 서울 은평구 응암3동 충암고등학교와 대림시장 인근이 유씨의 ‘구역’이다. 대부분 엘리베이터가 없는 저층 다세대 빌라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유씨는 보통 하루 300~400개의 물량을 배송하는데, 주로 화요일에 물량이 가장 많다고 한다. 월요일에 집화되는 택배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주말 직후인 월요일이 한가하다고 했다.

유씨는 택배상자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힌 주소를 보고 어느 집인지 한눈에 파악해 동선별로 물건을 정리한다. 운반카트에 실어갈 것, 손으로 들고 뛸 것들을 따로 분류한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유씨는 택배상자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힌 주소를 보고 어느 집인지 한눈에 파악해 동선별로 물건을 정리한다. 운반카트에 실어갈 것, 손으로 들고 뛸 것들을 따로 분류한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아파트라고 편한 것만은 아냐”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법한 골목 사이로 유씨는 1톤 탑차를 능수능란하게 다뤘다. 차를 세우고, 뒷문을 열어 운반카트를 내린 뒤 물건을 싣고 뛰어다니며 배송한다. 다시 차를 이동해 세우고 운반카트를 내리고 물건을 내리고…. 유씨는 이날 24번 정차해 한 번에 10개 안팎의 물건을 싣고 날랐다. 그중에는 2L 생수병 6개 묶음, 20㎏ 쌀 5포대도 있었다.

유씨의 배송 구역에 아파트는 딱 한 번 있었다. 3동짜리 크지 않은 아파트 단지였다. 흔히 큰 아파트 단지를 맡는 것이 택배기사들에게는 편하고 쉽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인식도 현실과는 차이가 있었다.

“엘리베이터 타고 다니면 몸은 편할 수 있는데, 시간이 오히려 더 오래 걸려요.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 그리고 주민이랑 같이 타면 내가 배송하는 모든 층마다 세울 수 없잖아요. 그럼 중간에 다시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 저희한테는 시간 절약이 최우선인데, 아파트가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어렵기도 해요.”

기자는 유씨의 하루 일과를 옆에서 함께하며 일부 택배를 직접 배송해 봤다. 택배 받을 때 느끼던 기쁨을 누군가에게 준다는 설렘은 잠시,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연립빌라에 두유 3박스를 나를 땐 욕지거리가 입에서 맴돌았다. 크고 작은, 가볍고 무거운 박스 5~6개를 한 번에 들고 좁고 가파른 계단을 뛰어다니니 금방 다리가 후들거렸다. 점점 다리가 풀려가는 모습을 보며 유씨가 웃었다. “저는 매일 해요.”

이날 유씨가 배송을 마친 시간은 오후 5시30분. 평소보다 1시간 일찍 끝난 것이라고 했다. 이날 그가 배송을 맡은 택배 수량은 총 313개. 택배 일을 처음으로 시작한 날, 유씨는 새벽 4시에 퇴근했다고 한다. 동선을 어떻게 짜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기 때문이다.

“매일 박스 수백 개를 싣고 나르고 하다 보면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빨리 돈 모아서 내 가게를 차리겠다는 목표로 버티고 있어요. 내가 땀 흘려서 정직하게 돈 버는 거니까 부끄러운 것도 없고요.”

택배산업의 ‘치킨게임’

19년 새 택배 물량 13배, 배송 단가는 9% 낮아져

택배산업은 그동안 급성장 추세였다. 2000년 전 국민 기준 택배 이용횟수는 2.4회에서 2019년 53.8회, 15세 이상 국민 기준 1인당 연간 5회에서 99.3회로 급증했다. 택배 물량과 그에 따른 매출액 역시 2000년 약 2억개·6466억원에서 2019년 25억4000만개, 6조3303억원으로 늘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쇼핑 이용 등이 늘면서 택배 물류량이 예년보다 3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택배산업은 지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반면, 업체 간 과당경쟁으로 인해 택배업체들은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택배업체들은 다른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택배 운송단가를 깎고, 결국 이는 이익률 저하와 택배기사의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진다. 택배기사들이 기존 소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거보다 더 많은 물량을 배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택배 평균 배송단가 추이는 2000년 3500원에서 거의 매해 꾸준히 낮아져 2019년 2269원으로 떨어졌다. 2012년부터 2019년까지 7년 사이의 평균 단가만 보더라도 약 9.5% 하락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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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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