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조종사 노동조합이 지난 9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스타항공 노동자 고용유지 촉구를 위한 조종사 노동조합 합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대한민국 조종사 노동조합이 지난 9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스타항공 노동자 고용유지 촉구를 위한 조종사 노동조합 합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모르는 것이 약이다’는 말은 법 앞에서는 무력하다. 법을 잘 몰랐다는 것은 유의미한 항변이 되지 못한다. 잘 몰랐다면 그만큼 대가를 치르게 된다. 우리의 생활은 수많은 법률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이를 모두 알기도, 이해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먹고사는 문제, 내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철저히 찾아보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모른다면 찾아보고, 필요하다면 관련 전문가에게 문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냥 어렴풋이 대충 알고 있는 상태에서 혼자서 끙끙대다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임금체불 합의서 제출이다.

대한민국에서 임금체불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6년부터 체불임금이라고 신고된 금액은 이미 1조원을 훌쩍 넘었다. 신고되지 못한 건까지 합친다면 정말 ‘임금체불 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심각하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체불 규모가 더 커질 것이라는 우울한 소식도 들린다.

임금체불, 합의서를 내면 면책

임금체불이 발생하면 통상 노동청에 진정이나 고소를 하게 된다. 노동청 조사가 이루어져 임금체불 사실이 확인되는 경우, 사용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형사처벌을 받는다. 형사처벌을 면하기 위해서는 근로자로부터 합의서, 처벌불원서를 받아 수사기관,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근로기준법 등에서는 임금체불의 범죄에 대해서 피해자(근로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근로기준법 제109조 제2항 등), 근로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면, 사용자는 원칙적으로 처벌받지 않는다. 수사 단계에서 합의서가 제출되면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처분이 이루어지고, 1심 단계에서 합의서가 제출되면 ‘공소기각판결’이 이루어진다. 공소(기소)가 없었던 것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무죄나 다름없고, 사용자가 이로 인하여 불이익을 받는 것은 없다. 단, 1심 판결 선고 이후에 합의서가 제출되는 경우에는 형사처벌 자체는 이루어지고 양형에만 반영된다.

사용자, 근로자가 원만히 합의하여 체불임금을 완납한 이후에 합의서가 제출되는 경우라면 특별한 문제가 없다. 사용자, 근로자 상호 만족을 얻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합의금, 체불임금을 지급받기 전에 합의서를 제출한 경우에 발생한다. 고민 고민하다 회사 대표, 임원의 간청에 못 이겨 6개월 내 또는 1년 내에 체불임금을 완납받기로 하고 합의서를 써준 경우가 대표적이다. ‘체불임금을 그때까지 안 주면 다시 고소하면 되겠지’ ‘다시 진정을 하면 되겠지’라는 단순한 생각 때문에 이렇게 처리하게 된다.

그러나 한 번 고소를 취소하면 다시 같은 사유로 고소를 할 수 없고, 한 번 처벌불원서를 제출하면 이를 번복할 수 없다. 우리 형사소송법 제232조 제2항은 ‘고소를 취소한 자는 다시 고소하지 못한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고, 제3항에서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죄를 논할 수 없는 사건에 있어서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표시의 철회에 관하여도 전 2항의 규정을 준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바로 위 규정으로 인하여 고소 취하, 합의서 제출 이후 다시 형사고소, 노동청 진정을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각하’ 또는 ‘내사종결’로 처리된다.

그 결과 합의금을 떼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합의서를 받기 전까지는 근로자 비위를 맞춰가며 합의를 유도하지만, 막상 합의서를 받고 나면 태도가 돌변하여 합의금을 지불하지 않는 것이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물론 민사소송으로 합의금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민사소송으로 합의금을 받을 수 있지 않나”라는 이야기는 민사소송에 소요되는 시간, 비용,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공허한 외침으로 남는다. 애초부터 이러한 번거로움으로 인해 임금체불에 대해 민사소송으로 접근하지 않고 노동청 진정, 형사고소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이기 때문이다.

조건부 처벌불원, 면책이 되지 않을 수 있어

반대로 사용자 입장에서도 유의할 부분이 있다. 만약 합의서상 문구가 ‘사용자가 임금을 지급하면,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한다’와 같이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조건부로 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면 이를 제출해봐야 형사면책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처벌불원’의 의사표시를 확정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법원도 이와 같은 ‘조건부 처벌불원 의사표시’는 그 조건의 성취 여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게 되므로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가 명백하고 믿을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간주한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16. 10. 18. 선고 2016고단2201 판결) 문구 하나의 차이로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면죄부가 되기도 하고, 제출해봐야 의미 없는 종잇조각이 될 수도 있다.

합의서 제출 시기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 형사소송법상 임금체불 합의서, 처벌불원서는 1심 판결 선고 전까지 제출되어야 사용자가 형사처벌을 피할 수 있다.(형사소송법 제232조) 1심 판결 선고 이후인 항소심 등에서 합의서를 제출하더라도 양형에만 영향을 줄 뿐 처벌 자체를 면할 수는 없다.

따라서 사용자 입장에서는 임금체불로 인하여 형사고소, 노동청 진정 등이 이루어졌다면, 신속하게 체불임금을 변제하고 근로자와 합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어도 1심 판결 선고 전까지는 합의서, 처벌불원서를 받아 제출해야 한다.

반대로 근로자 입장에서도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사용자와 합의를 할 필요가 있다. 1심 판결 선고 전까지가 아무래도 협상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 1심 판결 선고가 난 이후라면 사용자 입장에서는 어차피 형사처벌을 받을 것이므로 합의가 의미 없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실제 이러한 태도를 보인다면 합의가 결렬될 수 있으므로 임금체불을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인 민사소송(3년), 체당금(2년) 기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해진다.

정재욱 변호사·법무법인 주원 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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