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지어다, 파에아키아의 명장, 고관들이여. / 이 손님은 동에서인지 서에서인지 몰라도 / 표류 끝에 이곳에 당도하였소이다. / 이분이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으니, / 과거 여느 때처럼 신속히 도움을 주도록 합시다. / 자, 성스러운 바다에 가장 적합한 흑선(黑船)을 띠우고 / 우리 땅에서 가장 우수하다 알려진 청년 / 쉰하고 두 명을 골라봅시다.”

전설적인 고대 그리스 시인 호머의 서사시 ‘오디세이’의 한 구절이다. 무대는 기원전 12세기 지중해. 그리스 이타카 출신의 명장 오디세이가 트로이 전쟁에 참여했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폭풍을 만나 배가 부서진다. 파도에 떠밀려 도착한 곳은 파에아키아라는 항구 도시국가의 해안이었다. 그곳의 왕 알시노우스가 오디세우스를 도와주자고 신하들에게 말하는 대목이다.

‘나우시카’라는 미모의 공주로 더 유명한 파에아키아는 여기서 해양국가의 이상적 전형으로 묘사된다. 바다로 이어지는 강 양쪽에 늘어선 포구들, 거기에 정박한 튼튼한 배들, 바다 위에서는 견줄 자가 없을 정도로 날렵하고 힘이 세며, 활과 창의 명인인데다가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도 잘하는 사나이들, 그리고 항해자들을 환대하는 푸근한 인심….

페니키아 연맹국 카르타고가 건설되는 모습을 담은 19세기 영국 화가 터너의 그림. 출처: 퍼블릭 도메인
페니키아 연맹국 카르타고가 건설되는 모습을 담은 19세기 영국 화가 터너의 그림. 출처: 퍼블릭 도메인

이런 파에아키아의 모습은 당시 지중해 해안지역에 많이 발달했던 해양소국의 존재 양상을 보여준다. 지중해 가장 동쪽 끝인 레바논 해안의 페니키아 연맹국들도 이와 대동소이했을 것이다. 기후변화 온난기, 기온이 상승하는 가운데 이곳에서는 티레, 시돈 등 새로운 중심지가 생겨나고 있었다. 해양국가로서 급성장하는 이 도시의 사람들 역시 파에아키아 못지 않게 외부 사람들에게 호의적이었을 것이다. 바닷길 교역에 꼭 필요한 파트너를 확보해두자는 전략이다.

그보다 1000년 이상 후인 기원전 1세기에 다시 온난기가 찾아와, 지구 곳곳에서 해양족들이 기회를 맞는 세상이 됐다. 이 기회에 눈에 띄게 일어선 것이 로마여서, 이 온난기를 ‘로마기후최적’이라고 부른다. 동시대에 가야도 급속 성장했다. 가야사가 아직 충분히 햇빛을 보지 못해서 그렇지, 다 밝혀진다면 세계사적으로도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사례가 될 만큼 드라마틱한 스케일로 말이다.

가야도 페니키아처럼 전형적인 해양국가였으니까 사는 모습이 서로 비슷한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전반적인 삶의 여건을 볼 때 크게 다른 점도 몇 가지 있다.

페니키아와 가야 시대의 기후변화 비교. 제공:이진아
페니키아와 가야 시대의 기후변화 비교. 제공:이진아

우선 해양국가로서 발전해나가는 데 꼭 필요한 조건인 지구온난화라는 측면에 있어서 가야는 애초부터 페니키아보다는 제한적인 상황이었다. 이 시리즈에서 여러 번 나왔지만, 인류의 해상 활동은 온난기에 활발해진다. 해수면이 급속 상승하여 하안과 해안에 수몰지역이 늘어나면서, 일종의 환경난민이 대규모로 발생하게 된다. 이들이 온난기에 크게 자란 나무로 배를 만들어, 수심이 깊어지고 유속이 빨라진 물길을 이용, 육지에서 농사짓기보다는 물길을 이용해서 교역하거나 정복하며 살아가는 전략을 택하게 되기 때문이다.

페니키아가 번영했던 기원전 6000년에서부터 기원전 1000년까지 약 5000년 동안은, 중간에 짧은 저온기가 있긴 했어도 대체로 평균기온이 높은 편이었다. 작은 도시국가 서너 곳을 인류사에 남을 대해양제국으로 키워주었던 광활하고 울창한 레바논 삼나무 숲은 이렇게 온난기가 오래 계속되는 기후조건에서 성숙해갔다. 이에 비해 가야가 융성했던 로마기후최적 온난기는 길어야 600년 정도였다.

두 번째로, 페니키아의 교역 기반은 가공할 필요도 없이 자연에서 주어지는 단순한 목재였다. 이렇게 고부가가치 자원이 자연에서 그대로 제공되는 혜택을 누리는 지역의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환대를 받게 된다. 가야의 주 교역품이었던 철은 달랐다. 만드는 데 훨씬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들어가는 원료 대비 최종 가치 산출이 상대적으로 적었으며, 목재 소진 속도, 즉 환경파괴 속도도 훨씬 빨랐다. 가야는 계속 경제를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라도 쫓기듯 절박하게 새로운 땅을 찾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외부 지역 사람들로 봐서는 자기 사회에서 노동력과 목재를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소진할 침입자가 크게 반갑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세 번째로, 가야는 출발부터 심각한 지구자기장 불안정으로 온 세상이 좌충우돌하는 조건 속에서 시작했다. 사람들이 대체로 서로 경계하고 경쟁하는 분위기였을 테고, 그만큼 해양국가로서 꼭 필요한 파트너 도시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또 일본이야 제철 자체를 가야에게서 배웠을지 몰라도, 중국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자신들 고유의 제철업 패턴이 자리잡고 있었다. 가야가 자기 땅을 파고드는 것을 반길 이유가 전혀 없다.

이런 상태에서 한반도에서든 중국 대륙에서든, 남의 땅 인근에서 자신의 영토를 확보하려면 방법이 한 가지 밖에 없다. 육지의 대규모 세력과는 고립되어 물길을 이용해서 살아가는 집단을 타깃으로 삼아 그들과 파트너 관계를 맺든지 아니면 식민지로 만드는 것이다. 뒤로 병풍처럼 산이 둘러쳐져 있고, 앞으로는 그 산이 형성해준 평야가 큰 강이나 바다로 이어지는 지형에 자리잡은 집단들이 그 대상이 된다. 그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 자신들 역시 육지 세력으로부터 별로 영향을 받지 않고, 물길을 따라 파트너 집단을 만들면서 살아간다.

사실 해안 지역에는 이런 집단이 크고 작은 규모로 은근히 많다. 가야도 그랬다.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이 만들어준 경계로 육지 쪽에서의 진입을 통제하기 쉽고, 낙동강을 따라 바다로 수월하게 이어진다. 그런 가야와 긴밀한 관계에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지역을 확인하기란 비교적 쉽다. 화천이 출토된 곳을 살피면 된다. 한반도 남동 해안에서는 전기 가야연맹 지역이며, 서쪽으로 가면서 해남과 광주가 있다.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군곡리와 광주광역시 인근 지형. 지도 출처: 위키피디아 CC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군곡리와 광주광역시 인근 지형. 지도 출처: 위키피디아 CC

해남에서 화천이 출토된 곳은 송지면 군곡리다. 육지로 연결되는 동북쪽은 두륜산계 산지로 막혀 있고, 앞바다는 좋은 만을 형성하고 있다. 지금은 일제강점기의 간척사업으로 모습이 달라져 있지만, 과거 해수면이 높은 온난기에는 독립적인 항구로서 아주 좋은 조건이었을 테다. 실제로 이 지역 노인 중에는 군곡리 앞바다가 예전에는 큰 항구여서 먼 곳에서 큰 배들이 많이 와서 정박했다고 전해지는 옛이야기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서해안을 따라 좀 더 북부로 올라가면 영산강 유역의 광주가 있다. 단일지역으로서는 화천이 가장 많이 출토된 곳이다. 백두대간에서 벋어 나온 호남정맥 주산인 광주 북쪽 내장산에서 동쪽 무등산까지 연결되는 산지가 육지 쪽 자연경계를 만들고, 여기서 흘러나오는 영산강이 기름진 평야를 이루면서 바다로 연결시켜주는 지형, 고대 기후변화 온난기에 독립적인 대규모 해양국가의 터전이 되기에 충분하다.

화천이 출토되진 않았지만, 중국 대륙 양쯔강 중류의 우한도 전형적으로 이런 해양국가의 거점이 되기 알맞은 특성을 갖고 있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이진아 환경생명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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