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에서 보이스피싱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photo 연합
서울 영등포구에서 보이스피싱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photo 연합

최근 서울 영등포구에서 보이스피싱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사채업자를 사칭해 피해자 가족과 흡사한 목소리를 들려주며 협박하는 것이 주된 수법이다. 피해 규모는 건당 적게는 500만원, 많게는 1억여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경찰과 피해자들 진술을 종합하면, 지난 11월 3일에만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신고된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가 5건 이상이다. 이날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한 A씨의 경우 오후 2시 45분쯤 집으로 걸려온 전화가 화근이 됐다. A씨는 여느 때처럼 남편과 아이들을 출근시키고 집안을 정리하던 중이었는데, 낯선 남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이 남자는 대뜸 A씨 딸의 이름을 거론하며 다음과 같이 물었다. “○○네 집 맞죠?”

남자는 A씨에게 “당신의 딸이 친구의 사채 보증을 섰는데 그 친구가 도망을 가서 딸이 돈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고 “갚지 못하면 딸의 장기를 팔아 7000만원을 가져오는 수밖에 없다”라고 협박했다. 남자는 딸의 이름은 물론 딸의 친구 이름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A씨가 ‘정말 문제가 생겼구나’라고 체감한 건 남자 목소리 뒤로 딸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였다고 한다. A씨는 “딸과 똑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딸이 나에게 ‘살려달라’라고 애원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남자는 A씨에게 집 전화는 끊지 말고 그대로 통화 중으로 둔 채 핸드폰으로 자신과 통화할 것을 요구했다. 핸드폰으로 다시 전화를 걸어온 남자는 ‘당장 인출 할 수 있는 돈을 챙겨 서울 영등포 △△빌라 앞으로 올 것’을 요구했다. A씨는 “500만원을 가져다주겠다”고 답한 뒤 곧바로 집을 나섰다.

이때부터 남자는 A씨가 직면하는 모든 상황을 핸드폰 통화로 관리·통제했다고 한다. 은행에 들어갈 땐 ‘울지 말고 웃어라’, 서울 영등포로 이동할 땐 ‘택시기사 귀에 직접 폰을 대라’라고 지시했다. A씨는 “기사에겐 친절한 목소리로 나를 ‘이모님’이라 칭했다. 그러곤 도착해야 할 주소를 직접 말하며 ‘안전히 데려다주세요’라고 일러줬다”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남자는 A씨에게 이동하는 내내 전화를 끊지 말 것을 요구했다. 가족이나 주변 지인과의 연락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A씨는 남자가 지시한 장소에 오후 4시쯤 도착했고 이들 일당을 현장에서 만난 건 이로부터 두 시간이 흐른 뒤였다. 당시 이들은 “퇴근 시간이라 차가 막힌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라며 만남을 늦췄다. 오후 6시 30분쯤 20대로 보이는 남성 한 명이 돈을 가져갔는데, 그 남성은 A씨에게 “말을 너무 잘 들어서 복 받으실 거다. 갈 때 차비하라”며 A씨가 넘긴 500만원에서 5만원을 꺼내 건넸다고 한다. 핸드폰 전화는 그제 서야 끊을 수 있었다. A씨는 곧바로 연락 온 가족들을 통해 자신의 딸한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보이스피싱이었다.

A씨는 이날 영등포에서 유사 수법으로 보이스피싱을 당한 다섯 번째 피해자였다. A씨가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건넨 금액은 500만원에 불과했지만 일부 피해자는 수억원의 금액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이 당한 범죄는 ‘신종 보이스피싱’이었다. 사채 보증 시나리오에 실제 가족의 목소리를 구해 활용하는 점 등은 여타 보이스피싱 범죄와는 다른 수법이었다. 보이스피싱 일당이 현장에 늦게 나타난 건 ‘현금 운반책’을 구하는 데 애를 먹었기 때문이라는 게 경찰 측 분석이다.

A씨의 일가족은 “하루에만 5건이 신고될 정도로 범죄가 심각한데 경찰에선 어떤 발표도 하지 않는다”라며 “추가 피해를 막으려면 이들 수법을 알려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측은 “서로 다른 조직이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자세한 건 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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