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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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을 지닌 법률 전문직인 변호사는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법률사무의 처리는 물론 기본적 인권의 옹호, 사회정의의 실현에 이르기까지 법조인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은 매우 크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 특히 젊고 열정을 가진 청년변호사는 법조의 미래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요성에 비해 그동안 청년변호사를 대표할 수 있을 만한 단체는 없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한국사내변호사회가 이미 오래전에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청년변호사회는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다.

법조계의 해묵은 관례인 출신, 기수 등에 의해 사분오열돼 있던 변호사 업계에 요즘에는 사법시험과 법학전문대학원 사이의 갈등, 지역과 학벌에 따른 갈등이 더해졌다. 그럼에도 청년변호사들을 대변할 수 있는 마땅한 조직이 없어 기껏해야 기존 변호사협회 내의 소조직 정도로 활동하면서 간신히 목소리를 내는 형편이었다.

이런 한계에 부딪히던 젊은 변호사들이 모여 지난 10월 22일 ‘한국청년변호사협회’를 설립했다. 그동안 각종 변호사 단체가 많이 생겨났지만 청년변호사들이 위주가 된 단체가 생긴 것은 처음이다. 한국청년변호사협회 창립을 주도한 인물은 법무법인 주원의 정재욱(34) 변호사이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와 법무법인 세종에서 일했던 그는 최근까지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도 지냈다. 하지만 청년변호사들의 목소리를 대표하면서 기성 변호사 단체를 대변할 수 없다는 생각에 최근 대한변협 대변인 사임서를 제출했다. 지난 11월 19일 한국청년변호사협회 초대 대표를 맡은 정재욱 변호사를 만나 협회의 설립 이유와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 기존 변호사 단체도 많은데 왜 청년변호사들이 따로 단체를 만들었나. “몇몇의 청년변호사가 국회, 법무부, 대한변협 등에 진출하는 것만으로는 법조 개혁의 새바람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다. 의견을 나눌 공간, 이를 전달할 수 있는 단체가 없다면 어떤 유능한 변호사가 정부나 국회 등 주요 요직에 진출한다고 하더라도 그 외침은 혼자만의 외침, 공허한 외침으로 남을 수 있다. 이러한 생각에서 단순히 일회성으로 법무부, 국회, 대한변협 등에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련 문제를 제기할 조직이 필요해졌다. 변협, 서울변호사회 등 기성 변호사 단체가 미진한 점이 있다면 이를 올바르게 지적하고 개선을 도모하기 위해 뜻과 열정을 지닌 젊은 변호사들이 모인 것이다.”

- 청년변호사들의 환경이 알려진 것만큼 좋지 않은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원화된 실무수습 제도로 1년 차 청년변호사들은 노동착취 구조 속에 고통받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을 합격한 변호사는 의무적으로 6개월간 법률사무종사기관(로펌 등)에서 수습을 해야 한다. 수습을 마치기 전까지는 단독·공동으로 수임할 수도 없고, 법정에 나가거나 형사 입회에 참여할 수도 없다. 수습처를 구하지 못한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진행하는 연수를 받아야 하는데, 문제는 자기부담금이 있다는 것이다. 수습기간 동안 로펌 등에서 박한 처우를 받더라도 그게 싫으면 되레 돈을 내고 연수를 받아야 하니 노동착취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실제 변협 취업게시판에 올라온 실무수습 변호사들에 대한 처우는 최저임금 수준에 가깝다.”

- 기성 변호사 단체를 통해 이런 문제들을 풀 수 없나. “변협 등 변호사들을 대변하는 기성 단체들이 법학전문대학원 제도 개편, 오탈자 문제, 6개월 실무수습 문제, 변호사 광고규제 개선 등 필요한 법조 규제 개혁보다는 정치적 이슈에 함몰되어 왔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 앞으로 젊은 변호사들이 법학전문대학원 출신들로만 채워질 텐데 기성 변호사들에 비해 불이익이 있나. “현행법상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자는 5년 내 5회만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만약 다섯 번 떨어지면 변호사가 될 자격을 원천적으로 박탈당한다. 단 한 가지의 예외가 존재하는데,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기간(군대를 다녀오는 기간)은 5년에서 제외된다. 즉 군복무 기간만큼 변호사시험 응시를 미룰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군복무 이외에 그 어떠한 예외도 인정되지 않는다. 임신, 출산, 육아는 물론 암, 뇌출혈 등 중증 질환이 발생하거나, 교통사고 등 큰 사고를 당하여 장기간 입원해야 하는 경우에도 5년은 연장되거나 유예되지 않는다. 임신, 출산을 앞두고 있다면 당분간 법조인이 될 꿈은 접어두는 것이 좋다는 의미다. 제도 도입 당시 이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행정편의주의에 따라 ‘적어도 임신, 출산의 경우 기간 유예를 해야 한다는 의견’은 묵살되었다.”

- 결국 청년변호사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또 하나의 이익집단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돈을 벌기 위한 활동이 아닌 만큼 쓸모없거나 하찮은 일이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하찮은 일이라도 의미를 부여하며 묵묵히 힘쓰는 이들이 있어 빛나는 이들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보잘것없지만 묵묵히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의 희생으로 세상은 점차 발전해왔다. 지금 당장은 저나 저와 뜻을 함께하는 청년변호사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이러한 활동이 동료나 후배는 물론 사회와 국민에게 큰 보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대표를 맡으면 개인적으로는 여러 불이익이 있을 것 같다. 대한변협 대변인직도 내려놓은 것으로 아는데.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청년변호사들의 목소리를 온전히 전달하고, 때로는 강력한 비판을, 때로는 전폭적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기존에 맡고 있던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직도 내려놓았다. 아울러 청년변호사의 경우 성별, 기수, 연령 등이 다양한데, 여러 청년변호사의 목소리를 온전히 반영하기 위해 1인 단독 회장 체제가 아니라 3인의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하게 되었고, 실제 저 외에 조인선 변호사(사시 50회), 홍성훈 변호사(변시 2회)도 대표로 참여하게 되었다.”

- 협회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 생각인가. “자리를 차지하거나 장악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치적인 행동 이전에 생존과 미래를 위한 활동과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정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변화의 바람이 법조계에 불고 있다. 수백 명의 청년변호사가 뜻을 함께하고 있다. 향후에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과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장벽을 허물고 배움과 지혜를 나누면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보다 장기적인 과제가 있다면. “유전무죄, 무전유죄 문제를 심각하게 야기하는 전관예우의 문제 또한 풀어가야 할 큰 숙제다. 전관예우는 예전에 관직에 있던 자에 대하여 예의를 지켜 정중하게 대우한다는 의미다. 어떻게 법조비리, 변호사법 위반행위가 예의를 지키는 것이 되나. 용어에서부터 우리 법조계의 잘못된 관행, 그에 대한 인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법조 개혁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과 지혜로 무장한 변호인이지, 수억원을 요구하는 불법 로비스트가 아니다. 사례 수집에서부터 제도 개선에 이르기까지 앞장서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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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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