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가덕도 외양포의 일본군 포진지.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부산 가덕도 외양포의 일본군 포진지.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여당이 가덕도신공항에 속도를 내면서, 가덕도에 산재한 일제의 한반도 침략 증거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가덕도신공항은 당초 산지절개 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덕도 동쪽에 인공섬을 조성해 추진하려다가 막대한 매립비용 문제로 인해 가덕도 최고봉인 연대봉(해발 459m)과 국수봉(해발 264m) 사이 계곡을 따라 비스듬한 동서 방향 활주로를 조성하기로 큰 틀이 정해진 상태다. 부산시에 따르면, 해상매립용 토사 확보와 활주로와 유도로, 주기장 등 에어사이드 조성을 위해 가덕도 남단의 국수봉은 대부분 절개하는 것으로 계획돼 있다.

하지만 가덕도 국수봉 일대에는 일제가 1904년 러일전쟁 때 조성해 1945년 8월 15일 패망 직전까지 사용한 포진지와 탄약고, 참호, 막사, 태평양전쟁 때 해안 은폐를 위해 조성한 인공동굴 등 한반도 침략 증거들이 산재해 있어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덕도신공항 조성을 위해 국수봉을 헐게 되면 일제의 한반도 침략 야욕을 증명해주는 이 유적들은 고스란히 헐려 가덕도 앞바다에 ‘수장’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역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때 격전지로 관동군(關東軍)사령부가 있었던 중국 다롄(大連), 뤼순(旅順) 등지의 일제 침략 유적들이 고스란히 보존돼 관광지는 물론 살아 있는 역사 교육 현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과도 대비된다. “위안부와 강제징용 사태 때 죽창가와 반일(反日)을 부르짖던 여당이 되레 일제 침략 증거를 은폐하는 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러일전쟁 때 침략 유적 외양포항

당장 가덕도신공항 건설에 따른 일제 침략 증거 훼손이 염려되는 곳은 가덕도 국수봉 자락의 외양포(外洋浦)에 있는 일본군 포진지 유적이다. 가덕도는 남해안 일대에 수시로 출몰한 왜구로부터 한반도 최남단을 지키는 군사적 요충지로, 고려 말 가덕도 최고봉인 연대봉(煙臺峰)에는 왜구의 침입을 알리는 봉수대(烽燧臺)가 설치됐었다. 대마도에서 출몰하는 왜선을 보고 1보를 날리던 곳이다. 조선 때 삼포왜란과 사량진왜변 이후에는 가덕도 천성항 일대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천성진성(天城鎭城)이 구축됐고, 구(舊)한말 실권자였던 흥선대원군은 가덕도에 척화비(斥和碑)를 세우기도 했다.

반대로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할 당시 가장 먼저 노린 곳 역시 가덕도다. 구한말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지은 러일전쟁 때 일본 연합함대를 이끈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 제독이 낙점한 진해해군기지를 지키는 전초기지로 삼은 곳도 가덕도다. 일제는 진해해군기지와 일본과 러시아의 조계(租界)가 있던 마산포(현 창원시 마산합포구)로 가는 길목인 가덕도 외양포에 중포병대대를 배치해 그 길목을 지키게 했다.

지난 11월 23일 찾아간 가덕도 국수봉 아래 외양포에는 당시 흔적을 보여주는 일본군 포진지가 고스란히 보존돼 있었다. 포진지는 가덕도와 거제도 사이로 난 좁다란 해상수로인 가덕수도(水道)를 바라보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러일전쟁 때 가덕도 앞 대한해협을 통과해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모항인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해 가는 발트함대를 노리던 대구경포들이 설치돼 있었음 직한 포대들이 거대한 흔적을 보이고 있었다. 포대 아래로 보이는 가덕수도에는 국내 최대 항구인 가덕도 북단 부산신항으로 오가는 대형 컨테이너선이 수시로 통과하고 있었다.

대구경포대 주위로는 포탄을 저장하는 탄약고와 병사들이 몸을 숨길 수 있는 은폐용 참호 등이 있었다. 당시 병사들이 사용했다는 화장실까지 아직 고스란히 보존돼 있었다. 포진지 입구에는 일제강점기 때인 1936년에 세워졌다는 비석이 있는데, ‘사령부 발상지지(司令部發祥之地)’라고 적혀 있다. 과거 한국 해군의 작전사령부가 있었고, 지금도 해군사관학교를 비롯 잠수함사령부와 군수사령부, 교육사령부 등이 있는 진해해군기지의 발상지가 가덕도였음을 나타내는 표석이다.

포진지가 있는 외양포 마을 안에는 당시 중포병대대 사령관이 머물렀다는 사령부와 하사관 막사가 각각 식당과 민가로 사용되고 있었다. 마을 위로 난 국수봉에도 해안포대의 포사격을 지휘하는 관측소와 화약고, 포대의 배후를 방어하는 산악보루 등이 곳곳에 들어서 있었다. 국수봉을 비롯한 외양포 마을 자체가 과거 일제의 한반도 침략 야욕을 생생하게 증언해 주는 살아있는 박물관인 셈이다. 외양포는 주말이면 가덕도를 찾는 낚시꾼과 관광객들이 반드시 찾는 관광지이기도 한데, 관광객을 겨냥한 공영주차장과 화장실까지 조성돼 있었다.

가덕도 외양포 포진지의 은폐용 참호.
가덕도 외양포 포진지의 은폐용 참호.

새바지항은 태평양전쟁 침략 유적지

국수봉 서쪽 자락의 외양포에 러일전쟁 때 일본군 포진지가 있다면, 국수봉 동북쪽 자락 아래 새바지항 일대에는 태평양전쟁 때 유적이 있었다. 새바지항은 연대봉과 국수봉 사이의 계곡에 있는 어항으로, 새바지는 동쪽에서 불어오는 ‘새파람(샛바람)’을 맞는 곳에 있는 항구라는 뜻이다. 남해안의 여느 어촌 풍광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새바지항 방파제 쪽에는 태평양전쟁의 흔적인 인공동굴이 조성돼 있었다. 삽과 곡괭이로 암벽을 파고들어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길이 50m 남짓의 비좁고 어두컴컴한 동굴을 통과하자, 새하얀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는 몽돌해안이 펼쳐졌다.

새바지항 인공동굴 앞에 붙여둔 설명에 따르면, 인공동굴은 태평양전쟁 말기 최후 결전을 준비하던 일본군이 미군의 한반도 상륙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인공동굴 안에는 병력은 물론 무기 등을 숨겨둘 수 있는 저장공간과 총을 쏠 수 있는 총안도 보였다. 가덕도에는 이런 식으로 조성된 인공동굴이 이곳뿐만이 아니라고 한다.

주민들의 설명에 따르면, 대항동 앞 천성항 동쪽 해안절벽에도 10여곳의 인공동굴이 있고, 외양포 마을을 둘러싼 산 정상(국수봉)과 중턱에도 여러 개의 인공동굴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새바지항의 인공동굴을 통과하자 건너편 해안절벽에 또 다른 동굴이 시커먼 입구를 벌리고 있었다. 반면 가덕도 일대의 인공동굴들은 ‘국가등록문화재’(제313호)로 지정돼 있는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의 송악산 해안 일제 동굴진지와 달리 가덕도신공항을 추진해온 부산시의 방치 탓인지 제대로 된 문화재 대접은 못 받고 있었다.

가덕도의 잘록한 허리 부분에 비스듬히 치우친 동서 방향 활주로를 조성하면 새바지항 일대는 활주로 등 공항부지로 조성될 수밖에 없다. 인공동굴 위로는 국수봉 정상이 보였는데, 신공항 활주로와 유도로, 주기장 조성을 위해 국수봉을 헐어 해안매립용 토사로 바다에 쏟아부을 경우, 일제 침략 유적인 인공동굴 역시 사라지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콘크리트를 쏟아부어 활주로로 바꿔버리기에는 너무나 독특하고 아까운 비경(祕境)이었다.

가덕도 새바지항의 인공동굴.
가덕도 새바지항의 인공동굴.

ADPi, 가덕도 문화유산 점수 0등급

이 같은 사정을 감안해 2016년 영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 연구를 수행한 세계 3대 공항설계 전문가그룹인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도 “가덕 입지에서 매립은 현재의 연안 경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며 야산 절개와 절취는 지역의 지형을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또한 ADPi는 최종 후보지 3곳 중 하나였던 가덕도의 문화유산 평가 부문에서 5등급 가운데 최하위인 ‘0등급’을 부여했다. 등급이 낮을수록 공항 건설에 걸림돌이 되는 민감한 문화유산이 많다는 뜻인데, 그만큼 가덕도에는 공항 건설로 밀어 버리기에는 아까운 문화재가 많다는 뜻이다.

당시 ADPi는 사전타당성 검토 연구 보고서에 “입지나 그 부근에 10개 이상의 민감한 유적이 있으므로 가덕 입지에는 5등급 중 0등급이 주어진다”고 기록했다. 반면 당시 평가에서 경쟁했던 김해공항 확장의 경우 2.5등급, 밀양 하남평야의 경우 3.75등급을 받았다.<28쪽 평가표 참조>

만약 ADPi의 2016년 결론에 따라 영남권 신공항이 김해공항 확장으로 계속 추진되면, 가덕도에 산재한 일제의 한반도 침략 증거는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다. ADPi가 낙점한 김해공항은 낙동강 본류와 서낙동강 사이의 삼각주(델타)에 위치해 있다. 이에 활주로를 새로 내더라도 별다른 고정장애물(산지) 제거가 필요하지 않다고 ADPi는 당시 결론 내렸다.

하지만 김해신공항 문제의 총리실 이관을 추진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을 비롯해 민주당 소속 부울경 지자체장들과 부산 지역 정치권, 지역 언론에서 가덕도신공항으로 방향을 틀기 위해 “김해신공항도 산지절개가 필요하다”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이제는 ADPi가 제시한 원안대로 간다고 해도 일부 산지절개가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2002년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 보잉767기의 김해 돗대산(해발 381m) 추락사고 이후 공항 주변 산이라면 자다가도 경기를 일으키는 지역민들의 염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이 중 김해신공항 확장안을 총리실로 이관해 검증할 것을 추진한 측이 문제 삼은 산은 김해공항 새 활주로 예정부지와 일직선상에 위치한 ‘오봉산, 임호산, 경운산’ 등이다. 오봉산은 부산 강서구에 있는 해발 47m의 산이고, 임호산과 경운산은 경남 김해시에 있는 각각 해발 179m, 377m의 산이다.

당초 ADPi는 이들 산이 항공기 이착륙에 큰 지장이 되지 않아 제거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지난 11월 17일 “김해신공항의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힌 총리실 검증위 역시 “군(軍)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경운산 남4(지점)는 장애물 회피표면(OCS)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재확인한 상태다. 경운산은 문제로 제기한 세 개의 산 가운데 가장 높은 산이다.

하지만 김해공항 새 활주로의 북쪽 끝단에 걸리는 서낙동강 맞은편의 오봉산은 공항부지 조성 등을 위해서라도 일부 절개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부산 지역 언론에서도 2017년 “김해공항 새 활주로에 가장 가까운 오봉산을 제거해 새 활주로의 연약지반 다짐용 토사로 공급하는 것에 대하여 부산시, 국토교통부와 합의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당시 보도에 국토부는 “부산시와 합의 및 어떠한 결정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명자료를 내고 반박했지만, 가덕도를 포함한 부산 강서구 일대가 연약지반인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실제로 부산 강서구 일대 도로 곳곳에는 ‘연약지반 구간’을 알리는 표지판이 곳곳에 서 있다. 가까운 곳에서 토사를 조달하면 운반비 등이 적게 드는 것은 자명하다.

부산 강서구 오봉산 죽도왜성.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부산 강서구 오봉산 죽도왜성.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임진왜란 때 왜군이 축조한 죽도왜성

사실 오봉산은 산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해발 47m의 언덕으로, 네이버 지도상에서 ‘오봉산’이란 이름으로 검색조차 되지 않는 곳이다. 야트막한 언덕에 불과한 탓에 현지에서도 ‘오봉산’ ‘가락산’ 등의 이름으로 중구난방 불리고 있다. 하지만 밀어내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오봉산의 가장 큰 걸림돌은 언덕 중턱에 임진왜란 때 왜군이 축조한 ‘죽도왜성(竹島倭城)’이란 일본의 한반도 침략 유적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죽도왜성은 부산시 지정기념물(제47호)이라서 쉽사리 밀어 버릴 수도 없어 보였다.

지난 11월 23일, 대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헤치고 한달음에 해발 47m 오봉산 정상에 올라가 보니 임진왜란 때 왜군이 쌓아 올렸다는 거석(巨石)들이 성벽을 이루고 있었다. 과거 왜성의 본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는 문수암이라는 암자와 묘지들이 어지럽게 들어서 원형이 크게 훼손된 상태였다. 성곽 위에 올라가 보니 서낙동강과 김해평야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부산시 지정기념물로 지정된 덕분에 ‘1593년(선조 26년) 임진왜란 때 왜장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 부자(父子)가 서낙동강 주변의 수로 확보와 조선군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쌓은 왜성’이란 설명판도 붙어 있었다.

나베시마 나오시게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 2군 사령관이었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휘하의 장수였다. 함경도까지 진격해 조선 왕 선조의 아들인 임해군과 순화군을 생포하고, 울산성전투 때 조·명(朝明)연합군을 격퇴하는 등 맹위를 떨친 왜장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설명판에는 ‘돌은 부근에서 구할 수 없어 원거리에서 해로를 이용하여 운반하였던 것 같다. 지금은 길이 약 100m 정도의 성벽만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쌓은 일본식 성(城)의 연구에 좋은 자료’라는 설명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제는 김해신공항이 됐든 가덕도신공항이 됐든 공항 조성에 따른 일본의 한반도 침략 증거 훼손은 불가피하게 됐다. 2016년 ADPi의 원안대로 조속한 결론을 냈더라면 모두 살릴 수 있는 역사 유적들이었다.

ADPi는 김해공항의 기존 활주로를 기준으로 ‘V 자’ 형태의 신활주로를 낼 경우, 항공 안전에 방해가 되는 유의미한 고정장애물이 없어 산지를 절개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이에 ADPi 측이 김해공항 확장의 고정장애물 제거비용으로 추산한 금액은 ‘0’원이다. 반면 ADPi 측이 가덕도의 고정장애물(산지) 제거비용으로 추산한 금액은 활주로 1본의 경우 6340억원, 활주로 2본의 경우 1조2200억원에 달한다. 그 비용은 국민 세금으로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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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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