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유치원 3법’ 국회 본회의 통과 후 기뻐하는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오른쪽 세 번째)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 두 번째). ⓒphoto 뉴시스
지난 1월 ‘유치원 3법’ 국회 본회의 통과 후 기뻐하는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오른쪽 세 번째)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 두 번째).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30일 자로 마감된 2021학년도 유치원 원생 모집에서 국공립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대거 미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국공립과 사립을 막론하고 전국 모든 유치원은 유치원 원생 모집시스템인 ‘처음학교로’를 통해 지난 11월 한 달간 우선모집과 일반모집 순으로 내년도 원생을 모집했다. 교육부 유아교육정책과 측은 “올해 처음학교로 유치원 참여율은 100%”라고 했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관할 유치원 중 세종특별자치시와 대전광역시의 국공립 유치원은 모집인원과 함께 접수인원을 공개했는데, 국공립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대거 모집인원에 미달한 것이다.

서울을 비롯 나머지 15개 시도 유치원은 모집인원만 공개하고 접수인원은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으나, 세종·대전과 유사하거나 더 열악한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세종이나 대전의 경우 유치원 학령아동을 자녀로 둔 젊은 부부들이 비교적 많다고 알려져 있다.

교육부는 2018년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소위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로 촉발된 사립 유치원 휴폐원이 현실화하자, 국공립 유치원 학급 신증설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오는 2021년까지 국공립 유치원 이용률을 4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이를 위해 국공립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학급 신증설이 이뤄졌는데, 정작 교육현장에서는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외면받고 있는 것이다.

반면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등지에서는 정부 교육비 지원 없이 한 달 학비만 100만원을 훌쩍 넘는 ‘영유아 영어학원(속칭 영어유치원)’ 등이 입학설명회조차 예약하기 힘들 정도로 선호하는 현상도 여전하다. 국민의힘 정경희 의원실에 따르면, 2016년 428곳에 달하던 소위 ‘영유’는 지난 7월 기준 653곳까지 늘었고, 월평균 학비는 97만2000원에 달했다.

‘영유’에 비하면 학비가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의 외면 현상은 분명 이례적이다. 게다가 올해 나온 결과는 지난 1월 교육부가 “유치원 공공성 강화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자평한 소위 ‘유치원 3법’ 국회 통과 후 받은 첫 성적표라서 더욱 뼈아프다. 이에 국공립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의 단순 신증설이 아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교육부 있는 세종시에서도 외면

국공립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외면 현상이 교육부가 있고 공무원 자녀들이 대부분인 세종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세종시 관내 유치원은 대부분이 국공립 단설 혹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인데, 이 중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유독 모집인원 미달이 두드러졌다. 세종시 관내 18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가운데, 모집인원을 모두 채운 곳은 금남초와 조치원 대동초 병설유치원 2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16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모두 모집인원을 밑돌았다. 심지어 세종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가운데 3곳은 접수인원이 ‘0명’에 그쳤다. 접수인원 1명으로 가까스로 꼴찌를 면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도 2곳이나 됐다.

세종시와 사실상 단일생활권인 대전 역시 국공립에 한해 모집인원과 접수인원을 공개했는데, 대전의 원도심 격인 중구, 동구를 비롯해 대덕구의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간신히 정원을 채운 단 한 곳(중구 버드내초 병설)을 제외하고 모두 접수인원이 모집인원에 미달했다. 그나마 정부대전청사가 있는 서구와 유성구 일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들만 어느 정도 선방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접수인원을 공개한 세종과 대전의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것으로 보인다. 다른 지자체 소속 유치원의 경우, 접수인원이 공개되면 주변의 인기 유치원이나 ‘영유’ ‘놀이학교’ 등과 비교해 명성에 흠이 날 것을 우려해서 접수인원 공개 자체를 꺼린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유치원의 경우, 접수인원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도 이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국공립에 한해 접수인원을 공개했던 인천광역시조차 올해는 사립은 물론 국공립 유치원도 접수인원을 공개하지 않았다. 학령인구가 희박한 도서지역을 거느린 인천시의 경우, 지난해 국공립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서 대거 미달 사태가 벌어졌다. 인천시교육청 유아교육팀의 한 관계자는 “유치원 간의 학부모 선호도, 경쟁 조장 때문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며 “올해는 일반모집의 중복선발 제한 때문에 유치원 간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이라 교사 사기 등을 고려해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품아’ 병설유치원은 선방

그나마 한 가지 희망 섞인 점은 국공립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외면 현상에도 불구하고 소위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병설유치원은 선방했다는 사실이다. 대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서구(48만명)의 경우, 관내 23곳의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중 모집인원을 초과한 7곳 모두가 아파트를 끼고 있는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었다. 대전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유성구(35만명) 역시 마찬가지로, 관내 31곳의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가운데 모집정원을 충족한 12곳 중 9곳이 아파트를 끼고 있었다.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매년 11월이면 되풀이되는 유치원 입학 전쟁을 해소할 거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꼽혀왔다. 2018년 유치원 휴폐업 사태 후 강화된 각종 규제와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으로 사립 유치원 신증설이 사실상 막힌 상황에서 손쉽게 학급을 늘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별도의 유치원 부지와 건물 마련 없이도 학생수가 줄어든 초등학교 건물의 남아도는 교실을 유치원으로 곧장 전용할 수 있다. 넓은 학교운동장을 이용할 수 있고, 원생들이 향후 초등학교 진학 시 적응이 빠르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국공립 특유의 관료적 분위기, 사립 유치원에 비해 짧은 교육시간과 긴 방학, 통학버스 미운행 등은 부모들의 외면을 받는 주된 원인으로 지적된다. 이런 문제가 누차 지적되면서 통학버스를 운행하는 곳이 많이 늘기는 했지만, 오래된 인식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수교육 대상자나 법정 저소득층, 탈북자 자녀 등을 우선모집하는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자신의 자녀를 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 일부 학부모들의 심리가 여전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교육부 유아교육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작년에 제도개선을 하면서 각 시도로 하여금 유치원 경쟁률을 발표할 수 있을지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고, 시스템상으로는 경쟁률을 집계할 수 있도록 구현해 둔 상태”라며 “다만 시도별로 유치원 간 서열화, 줄세우기 부담이 있어서 지난해와 비슷하게 발표를 안 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동훈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