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30일 서울 강북경찰서 강력팀장이 중국 거점 보이스피싱 3개 조직 총책 등 46명 검거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5월 30일 서울 강북경찰서 강력팀장이 중국 거점 보이스피싱 3개 조직 총책 등 46명 검거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좀 꺼림했지만 이게 사기인지는 몰랐어요” “그냥 합법적인 채권 추심업무라 생각했는데…”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업무라 생각했어요” “저는 아르바이트를 했을 뿐인데”….

코로나19로 인해 불황이 계속됨에 따라 이를 이용하는 보이스피싱 범죄가 성행하고 있다. 검찰 사칭, 채권 추심, 대출, 가상화폐 환전 등 그 수단과 방법도 날이 갈수록 복잡하고 교묘해지고 있다. 적게는 수백만원에서부터 많게는 수억원에 이르기까지 한 개인이 짊어지는 피해는 막대하다. 이런 범죄는 자연스럽게 가정파괴, 사회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신고를 하거나 고소를 하더라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주범들은 통상 중국 등 해외에 사무소를 차려 놓고 활동하기 때문에, 검경이 대규모로 기획수사를 하지 않는 이상 주범들을 잡기는 쉽지 않다.

아르바이트생에서 현금인출책으로

현실적으로 보이스피싱으로 검거되는 범인들의 대다수는 단순 현금인출책이다. 현금인출책이 무엇인가. 큰 범죄조직의 행동대원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단순 아르바이트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터넷 아르바이트 사이트, 전단지 등을 통해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용돈을 좀 벌어보고자, 또는 단기간에 그래도 손쉽게 돈을 벌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걸려들게 된다. 채권 추심, 채권 회수, 가상화폐 환전 등으로 위장한 단기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유수의 아르바이트 중개 사이트 등에 올라오고 있다. 심지어 수출입 업체라면서 대금 정산 업무를 해줄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사례도 있다.

업무는 비교적 간단한데 회사가 지정하는 A라는 사람으로부터 현금을 받아 무통장입금으로 B에게 보내라는 식이다. A라는 사람으로부터 아르바이트생 본인 계좌로 돈을 받고, 이것을 현금으로 인출하여 회사에서 지정하는 B에게 보내라는 형태로 진행되기도 한다. 송금액의 1~2% 내외, 또는 건당 15만~30만원 정도의 수수료가 수고비로 지급된다. 방학 중에 학비를 벌어보고자 하는 대학생, 당장 생활비가 급한 사람, 잠시 실직 상태인 자,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달콤한 유혹이 된다. 하루에 1~2건만 하더라도 30만~50만원은 벌 수 있고, 별다른 전문적 지식이나 자격이 요구되지 않으니 진입장벽, 문턱도 매우 낮기 때문이다. 돈만 제대로 셀 수 있고, 은행 송금만 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돈을 버는 기쁨도 잠시, 이런 행위를 한두 번 하다 보면 어느새 그 아르바이트생은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의 현금인출책이 되어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계좌는 보이스피싱 집단의 대포통장으로, 자신은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방조범이 되어 수사기관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다음에야 비로소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보이스피싱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거짓말을 함으로써 그들로부터 금품을 편취하려는 전화금융사기를 말한다. 예컨대 금융기관 종사자도 아니고 대출을 받게 해줄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속여 마치 자신이 금융기관의 종사자인 것처럼 행세하며 돈을 편취하는 경우 범죄가 성립한다. 신용이 낮아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피해자들에게 특판 대출, 저금리 신용대출을 해줄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대출 심사를 통과하려면 우선 기존의 채무를 일부 상환해야 한다는 거짓말로 돈을 받아내는 수법이 대표적이다. 수금 업무는 아르바이트 사이트 등을 통해 모집한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맡기는데, 아르바이트생들에게는 합법적인 채권 추심, 채권 회수라며 안심시킨다. 이로 인해 현금인출책이 되어 있는 아르바이트생 입장에서는 자신이 보이스피싱에 가담하고 있다고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다소 꺼림칙해서 불법이 아니냐고 종종 묻기도 하지만, 보이스피싱 주범들이 합법이라고 안심시키면 더 이상의 의심은 접고 그냥 현금인출 행위를 하게 된다.

아르바이트생도 사기방조로 징역 실형 가능

재수 없게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되더라도 단순 벌금형이 나올 뿐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경우 다수의 피해자에게 심각한 손해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주범의 검거가 용이하지 않아 피해회복도 쉽지 않다. 즉 사회적·경제적 폐해가 심각한데, 이러한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하여 계좌 제공·인출·전달 등의 방법으로 가담하는 행위는 범죄의 완성에 빼놓을 수 없는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는 것인 만큼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다. 실제 보이스피싱에 단순 가담한 현금인출책에 대하여도 징역형 이상의 실형이 선고되고 있다. 지난 8월 피해자 3명으로부터 총 4982만원을 건네받아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전달하고 수고비 명목으로 48만원을 챙긴 현금인출책에 대해 징역 2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얼마 전에는 정보지 아르바이트 광고로 알게 된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시키는 대로 피해자를 만나 대출금을 현금으로 수금해 총 7000여만원을 송금해주고 376만원 상당의 대가를 받은 사람의 경우 징역 1년6월이 확정되기도 했다.

사기방조 혐의로 수사가 이루어지면, 나는 잘 몰랐다고 항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잘 모를 수는 있다. 그런데 우리 대법원은 방조범의 경우, 정범(소위 말하는 주범들)에 의하여 실현되는 범죄의 구체적 내용을 인식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미필적 인식 또는 예견이 있었다면 처벌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2012. 6. 28. 선고 2012도2628 판결) 쉽게 말하면 “나는 정말 이것이 합법이라 생각했고, 불법이 될 줄은 전혀 생각도 못 했고, 불법으로 의심할 만한 정황도 없었다”면 처벌을 면할 수 있겠지만, “무엇인가 꺼림칙하고 범죄 관련성도 있어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이게 채권 추심 등을 빙자한 보이스피싱 범죄의 일환인지는 몰랐다”고 한다면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몰랐다고 진술을 하더라도, 여러 간접적인 사실과 정황 증거들을 바탕으로 보았을 때 적어도 미필적으로 범죄의 일환인 것을 인식했다고 여겨진다면 처벌을 받는다. 따라서 실제 처벌에 있어서는 아르바이트를 한 경위가 무엇인지, 어떠한 경로로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게 되었는지, 공고 내용은 무엇인지, 주범들에게 안내받은 내용이 무엇인지 등이 매우 중요해진다. 예컨대 아르바이트 공고, 안내 등을 통해 편법, 불법 대출을 넘어 전화금융사기 범행에 관여될 수 있다고 의심하기는 어려웠다면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외에 아르바이트생 본인의 주거래 계좌, 급여 계좌를 사용했는지, 신원을 숨기려고 했는지, 가명을 사용했는지, 조작된 대출 관련 서류 등을 교부했는지, 수수료나 수고비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 신고를 했는지 등도 중요하다. 어떻게 변론을 하느냐에 따라 양형은 물론 유무죄가 달라질 수도 있다. 또한 많은 경우에 단순 현금인출책이라 하더라도 구속 수사가 이루어지는데, 주범이 아닌 단순 현금인출책에 대한 과도한 구속은 문제가 있다. 전문적인 법리 검토, 사실관계 해석을 바탕으로 범죄혐의사실에 대한 적절한 반박, 도주가 없다는 점 등을 잘 소명하면 구속을 면할 수도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를 엄단하고 있는 현 검찰과 법원의 태도를 고려하면 단순 현금인출책이라 하여 손을 놓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적절한 변호인의 조력을 받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정재욱 변호사ㆍ법무법인 주원 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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