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농동 자취방에서 비대면 수업을 듣고 있는 부산 출신 서울 S대 3학년 김모(여·22) 씨. ⓒphoto 박현준 제공
서울 전농동 자취방에서 비대면 수업을 듣고 있는 부산 출신 서울 S대 3학년 김모(여·22) 씨. ⓒphoto 박현준 제공

서울 시내 S대 국제관계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여·22) 씨는 2학기 수업을 위해 고향인 부산에서 올라와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원룸에서 자취한다. 그러나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은 별로 없다. 김 씨는 오전 9시쯤 일어나 시리얼과 요거트로 끼니를 때우고 세면을 한 뒤 10시부터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Zoom)’으로 전공수업을 듣는다.

오후 12~1시쯤 수업이 끝나면 배달 앱을 이용해 점심을 시킨다. 식사 후 2시부터 다른 강의를 수강한다. 비대면 수업엔 과제가 많아 수업 후엔 PC로 과제를 해야 한다.

오후 9시쯤 조별 과제를 같이 하는 조원들을 만난다. 물론 ‘줌’에서다. 한 시간쯤 모여서 과제 작업을 한 뒤에 화면상에서 손을 흔드는 장면을 서로 보면서 헤어진다.

김 씨는 2학기에 대면 수업으로 전환할 가능성에 대비해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그러나 9월 초 개강한 후 50일 넘게 비대면 수업들만 이어지고 있다.

김 씨는 “‘이렇게 자취방 안에서 온라인으로만 수업을 계속 듣는 것이라면 굳이 서울에 올라올 필요가 없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이어 “부산의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지내면서 비대면 수업을 듣는 게 훨씬 편하고 좋다”고 했다. “자취 비용도 많이 드는데다 수십 일째 좁은 곳에 혼자 있으니 힘이 든다”라는 것이다.

김 씨는 지방 출신 대학생들이 비슷한 고충을 토로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지방러’는 대학생들 가운데서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그룹으로 꼽히고 있다.

이들은 요즘 학교 인근 등에 자취하면서 수업을 듣는다. 이들에 따르면, 서울 시내 주요 대학들은 비대면 수업을 하다가 언제든 대면 수업으로 전환할 수도 있는 것처럼 모호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대학 측이 “2학기 전체를 비대면으로 하겠다”라고 미리 결정하면 지방 출신 학생들은 훨씬 편하고 이익이다. 굳이 서울에 올 필요 없이 고향 본가에서 온라인강의를 들으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확진자가 이어지는 코로나19 추이를 보면 2학기 전체를 비대면으로 결정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결정을 하는 대학은 거의 없다. 몇몇 학생들에 따르면, “대학 본부의 처지에선 2학기 전체 비대면을 미리 선언하면 등록금 반환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우려해 그렇게 안 한다”라는 이야기도 들린다고 한다.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자취생들 반응. ⓒphoto 박현준 제공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자취생들 반응. ⓒphoto 박현준 제공

서울 K대 경영학과 4학년 이모(25) 씨는 “올해 들어 실제론 비대면 수업만 하면서 대면 수업 여지를 남겨두는 어정쩡한 상태가 계속 이어져 힘들다. 상당수 지방 출신 학생들은 서울에 와서 학교 강의실 근처에도 못 간다. 종일 자취방에서만 지낸다”라고 말했다. 월세에 생활비 같은 자취 비용도 큰 부담이라고 한다. 이 씨는 “지방러는 ‘답답함, 외로움, 경제적 부담’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라고 했다.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코로나19 사태를 견디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대학생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커뮤니티 사이트인 ‘에브리타임’에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지방 출신 자취생들의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부산 출신인 서울 S대 국제관계학과 3학년 손모(24) 씨는 “비싼 돈(월세) 꼬박꼬박 내어 가면서 언제 나올지 모를 대면 수업 공지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했다. 경남 진주에서 온 서울 M대 디지털미디어학과 3학년 최모(24) 씨는 “전기와 강의실 같은 학교 시설 일체를 이용하지 않음에도 온전한 학비를 내며 듣고 있다”라고 했다.

기약 없는 대면 수업을 기다리다 지친 몇몇 지방 출신 대학생들은 다시 짐을 싸 고향 집으로 내려갈 작정도 한다. 그러나 중간시험은 이들의 발목을 잡는다. 수업은 비대면이지만 부정행위 방지와 변별력 강화를 위해 일부 수업들은 대면으로 중간시험을 보게 한다. 중간시험 일정도 늘어졌다. 한두 개 시험 때문에 방을 빼기도 어렵게 됐다.

서울 S대 2학년에 재학 중인 자취생 정모(22) 씨는 “학교가 지방 출신 학생들의 처지를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수강생들을 일시에 강의실에 모아 놓고 시험을 치게 하는 게 가장 공정하다. 그렇게 못할 바엔 비대면 오픈북 시험이 감염위험도 줄이고 이해도도 깊이 있게 측정할 수 있어 가장 낫다. 어설픈 대면 시험에 반대한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엔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 온 대학생 중 상당수는 비싼 학비-월세-생활비 일부를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충당했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에다 ‘코로나 불황’이 겹치면서 서울 시내에서 대학생들을 위한 아르바이트 자리가 급감했다. 이 때문에 지방 출신 학생들도 경제적으로 힘들고, 이들의 부모들도 허리가 휜다.

제주에서 온 서울 M대 중어중문학과 3학년 박모(여·22) 씨는 “부담되는 자취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서울에 한 블록 건너 하나꼴로 커피전문점이 있지만, 요즘엔 커피전문점 일자리도 정말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3월부터 아르바이트 구직난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카페, 예식장, 영화관 아르바이트 자리를 두루 알아봤으나 얻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일자리가 많이 줄었다. 반면 지원자는 넘쳐난다. 경쟁률이 훨씬 높아졌다.”

서울 성북구 안암동 대학가 원룸촌. ⓒphoto 박현준 제공
서울 성북구 안암동 대학가 원룸촌. ⓒphoto 박현준 제공

대학생 세입자는 일반적으로 1년 계약으로 보증금과 월세를 주고 자취방을 얻는다. 계약 기간이 남은 상태에서 방을 빼려고 하면 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는 문제가 좀 복잡해진다. 이 때문에 일부 지방 출신 학생들은 학기 중 전면 비대면으로 전환되어도 고향으로 내려가기 어렵다. 셰어하우스에서 거주 중인 서울 M대 행정학과 2학년 이모(여·21) 씨는 “보증금 문제 때문에 중간에 방을 빼는 일도 난감하다”라고 말했다.

지방 출신 서울 유학생들에게 나쁜 시나리오는 ‘내년에도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되는 상황’이다. 그러면 지금처럼 대학들은 대면 수업을 할 듯 말 듯 하면서 실제로는 비대면 수업만 할 것이다. 유학생들은 ‘값비싼 자취방 대학 생활’을 또 해야 할지 모른다. 이들은 내년에 또 하라면 못할 것 같다고 고개를 흔든다.

M대 자취생 이 씨는 “내년에도 코로나19가 이어지면 본가에 내려가 수업을 들을 계획이 있다. 비대면 수업을 위해 학교 앞에서 거주해야 할 이유도 없고 그만큼의 이점도 없다”라고 했다.

1학기가 개강한 3월부터 2학기가 상당히 지난 10월 현재까지 수개월을 좁은 자취방 안에서만 주로 지낸 지방 출신 대학생 중 상당수는 이제 우울증을 느끼고 있다. 정규직 취업난이 극심한 데다 월세와 생활비를 충당할 아르바이트 자리까지 막히면서 이들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S대 자취생 정 씨는 “너무 답답하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주간조선 대학생 기사 공모' 기사입니다.

박현준 고려대학교 미디어대학원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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