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누군가의 하관(下顴)을 본 지 오래됐다. 마스크를 쓴 우리는 그간 안녕했을까. 밖에서 심호흡 한번 하기 힘든 팬데믹의 1년을 보낸 우리는 정말 괜찮았을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한국인의 얼굴을 마스크 뒤에 감추게 했다. 마스크가 없으면 문 밖으로 나갈 수 없었고 우리는 필터를 입에 채워야 했다. 2020년은 마스크를 쓴 인간들만이 거리를 활보한 원년이다. ‘호모 마스쿠스(Homo Maskus)’가 탄생한 해다. 이건 모두 코로나19라는 기이한 공포 탓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를 선포했던 호모 사피엔스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처참히 무너졌다. 감염자의 비말이라는 감염 경로 탓에 사람들은 마스크를 써 얼굴을 가리기로 했다. 거리의 수많은 호모 마스쿠스는 얼굴의 절반을 잃었다. 그 덕에 가끔 지인을 못 알아보는 일은 이제 애교다. 표정이라는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잃었고, 타인과의 소통은 이전만큼 완벽하지 못하다. 클라우스 크리스티안 카본 독일 밤베르크대학 교수는 “마스크는 감정 표현과 관련된 얼굴 영역의 60~70%를 가린다. 코로나19 때문에 우리는 비언어적 의사 소통에 중요한 영역을 덮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의 지적대로라면 기뻐하는 것도, 슬퍼하는 것도 마스크를 덧씌우면 건조해진다. 소통에 어려움을 덜 겪는 건 오랜 시간 봐온 익숙함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글로벌을 무대로 했다면 호모 마스쿠스는 지역을 무대로 삼는다.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의 저자인 데이비드 콰먼은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바이러스가 만들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인류의 생물 다양성 파괴”라고 봤다. 파괴의 수단은 전 지구적 네트워크다. 이곳저곳을 넘나드는 글로벌 메커니즘은 지구 단위 성장을 가져왔지만 자연은 지구 단위의 피해를 입었다. 어쨌든 이 때문에 생겨난 바이러스라면 역습에 성공했다. 지금의 호모 마스쿠스는 꼼짝없이 지역에 묶였다. 자본과 물자는 대륙을 넘나들지만 오직 사람만은 제자리에 멈췄다. 이제는 해외 어딘가를 가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커졌고, 그래서 사람들은 국가 단위 내에서 고립되는 걸 택했다. 국가 사이에 사람이 이동하는 건 한때는 한 국가를 위태롭게 만드는 행위로 간주됐을 정도다.

마스크 둘러싼 동질적·이질적 집단

처음부터 사람들이 코로나19를 막으려고 마스크를 덥석 집어들진 않았다. 올해 1~2월만 해도 세계보건기구(WHO)의 가이드라인은 이랬다.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 쓰지 말라.” 당장 의료진 마스크 수급이 중요하니 일반인은 안 써도 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로 다른 정보들이 돌며 혼란이 생겼다. 마스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 안 써도 괜찮다고 하는 전문가들이 혼재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1월 말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대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의 말은 마치 음모론처럼 들릴지 모른다. “일상 환경에서 환자가 어디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는 게 이런 질환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에 관해선 이견이 많다.”

이렇게 혼돈이 생겼을 때 호모 마스쿠스가 되려는 집단과 이를 거부한 집단은 반목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혼란에 빠졌던 미국이 그랬다. 2020년 7월 갤럽은 ‘인구 통계에 의해 크게 달라지는 미국인들의 마스크 사용’이라는 조사를 공개했다. 이때는 코로나19가 미국에서 급증했을 때라 주정부가 마스크 착용을 애원했다. 갤럽의 결과는 이랬다. “교육이나 연령, 가구소득 등으로 분류했을 때 대부분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었는데 공화당 지지자들이다.”

미국인들은 마스크를 액막이 대신 정치적 수사로 받아들였다. 정치경제학자인 오스틴 라이트 교수를 중심으로 한 시카고대 해리스 공공정책대학원 연구팀은 지난 8월 발표한 논문에서 마스크와 투표 행위가 연관될 거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들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카운티들의 표심을 주민들의 마스크 사용 빈도와 비교했다. 결론은 이랬다. “마스크 사용과 가장 유의한 건 주민들의 대선 투표 행태였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사람이 많은 카운티일수록 마스크 사용률이 떨어졌다.

시카고대 결과와 궤를 같이하는 또 다른 연구가 있다. 사회심리학을 연구하는 매튜 파치아니 박사와 매튜 브레시어즈 사우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개인 네트워크와 정치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면서 개인의 네트워크가 정치적 동질성이 강할수록 정치적 신념이 더 강해진다는 결과를 얻었다. 자신의 가치를 일관성 있게 유지할 수 있는 정보만을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강해서다. 이 연구팀은 이렇게 강해진 신념이 사회적 규범으로 공고해지면서 마스크 착용을 막게 된다는 걸 발견했다.

이처럼 미국을 포함한 서구 선진국들이 마스크로 반목을 거듭할 때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마스크를 손에 쥐고 얼굴에 썼다. 정파적인 데다 보수와 진보가 매번 맞부딪쳐 의견이 양분되며 타협이 잘 이뤄지지 않기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유독 마스크를 착용하는 문제만큼은 동질성을 띤다. 마스크에 대한 사회적 친숙함을 우린 갖고 있다는 게 서구와 달랐다.

“면역은 우리가 공유하는 공간”

2000년대 들어 사회문제가 된 미세먼지 탓에 사람들은 보건용 마스크를 일상적인 문화로 받아들였다. 아픈 사람이 찾는 물건이 아니라 예방 차원에서 썼다. 2015년 유행했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는 감염병이 만든 ‘마스크 사회’의 예행연습이었다. 메르스 발생 2주간에 마스크 판매량이 30배나 폭증했고 메르스 테마주는 주식시장에서 널뛰기를 했다. 마스크 구매력을 놓고 빈부격차의 양상까지 나타났는데, 성능이 좋은 마스크일수록 온·오프라인에서 족족 매진되며 품귀현상을 빚었다. 코로나19 사회와 닮았다. 서양에서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게 부정적인 의미였지만 우리는 익숙한 일이 됐다. 그 익숙함이 무르익은 때 코로나19가 덮쳤다. 마스크의 일상적 사용은 규모의 경제를 가능하게 했고 국내 마스크 생산이 하루 800만장에 달했던 건 덤이다.

처음의 혼돈과 달리 마스크는 코로나19를 막는 데 저비용 고효율의 역할을 해냈다. 한국이 서구를 향해 방역 우월감을 가질 무렵 그쪽에서는 마스크 쓴 우리를 분석하고 있었다. 유럽이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던 3월 말, 독일 매체 RND는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의 국민들이 마스크를 잘 착용하는 걸 “개인이 집단의 필요에 종속돼 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전근대적인 문화를 지적하는 보도는 비단 이 언론만의 분석이 아니었다. 근거 없이 이뤄진 인상평에 가까웠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리서치는 ‘주간 리포트’라는 코너를 통해 마스크를 주제로 한 여론조사를 연속적으로 해왔다. 11월 4주 차에 이뤄진 21차 인식조사를 보자. 주요 다중이용시설에서 우리의 마스크 착용 행태는 이랬다. 카페와 식당, 업무공간에서 마스크를 착용했다는 응답(항상 착용+착용한 편)은 8월 넷째 주 이후 80%를 꾸준히 넘었다. 카페(93%)와 식당(91%)은 90%가 넘었고 업무공간에서도 89%가 마스크를 착용했다. 오로지 술집만 68%가 착용했다고 답했다. 술집을 제외하면 마스크 벗은 모습을 쉽게 보기 힘들어진 게 조사에서 드러난다.

왜 우리가 실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지 묻는 질문은 전근대성 여부를 따지는 서구의 물음에 해답을 줄 수 있다. 가장 많이 응답한 선택지는 ‘내가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다. 76%를 기록했는데 전혀 집단적이지 않은 대답이다. 이와 비등한 응답률을 보인 두 개의 대답이 있다. ‘나로 인해 가족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73%)와 ‘나로 인해 친구, 동료, 주변 이웃이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73%)다. ‘국내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55%)나 ‘방역지침을 준수하기 위해서’(50%)라는 이유가 좀 더 집단의 필요라는 성격에 가까운 답변이다. 응답률을 비교하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이 조사에서 알 수 있는 건 이렇다. 호모 마스쿠스들은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감염될까 걱정한다. 그리고 정부의 지침 등 집단의 요구는 나와 내 주변의 안녕보다 후순위다.

다른 재난과 감염병은 다르다. 보통 재난이 벌어지면 모두 힘을 합쳐 이겨내려고 하지만 감염병은 모두를 떨어뜨린다. 서로 멀리하게 만들고 고립시킨다. 나를 제외한 주변인들은 모두 잠재적 전파자이고 감염자로 여겨야 재난을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타자와의 연대가 필요한 역설적인 상황이 생긴다. 내 주변이 위험해지는 건 곧 나의 위기다. 다른 사람들의 안전이 곧 나의 안전이다. 저널리스트 율라 비스는 저서 ‘면역에 관하여’에서 “면역은 우리가 공유하는 공간”이라고 정의했는데 이걸 가능하게 하는 건 마스크다. 앞선 설문 조사는 우리네 호모 마스쿠스가 타인이 감염되는 순간 나 역시 안전할 수 없다는, ‘팬데믹의 연대’를 증명하는 집단이란 점을 보여준다.

호모 마스쿠스의 방해자들

길고 긴 환란의 터널에서 빛이 보이기 시작한 건 백신이 등장해서다. 다국적 제약사 화이자가 만든 코로나19 백신이 지난 12월 8일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접종을 시작했다. 모더나가 만든 백신도 화이자를 뒤따르면서 각국 정부는 백신 사용을 서둘러 승인하려고 준비 중이다. 한국 정부도 백신 제조사들과 협상을 하며 전염병의 고리를 끊으려 하고 있다. WHO에 따르면 현재 200개가 넘는 백신 후보가 전 세계에서 연구 중이다. 이 중 3상에 진입한 것은 10여개로 다양한 제약사에서 백신을 잇따라 내놓게 된다. 백신은 우리의 마스크를 벗게 해 줄 게임체인저다. 하지만 과학계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벗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백신 접종과 별개로 마스크와 결별하는 것은 좀 더 먼 미래의 일이라고 본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의 효과는 놀랍다. 화이자는 4만3000명을 대상으로 한 3상 시험에서 95%의 코로나19 예방효과를 보였다고 밝혔고 이를 검증받았다. 모더나 역시 94.1%라는 비슷한 수치를 기록했다. 두 회사 모두 신기술인 mRNA(메신저 RNA) 방식을 백신에 적용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표면을 둘러싼 스파이크 단백질 정보를 가진 유전자를 몸 안에 투여해 항체를 만들어낸다. 뉴욕타임스는 “백신의 효과가 놀랍다”고 환영하면서도 “이 백신이 코로나19의 확산을 잡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고 보도했다.

마스크를 벗지 말라는 건 우리의 안전이 주변에 달려 있어서다. 불행하게도 우리 곁에는 무증상 감염자가 존재한다. 그들은 발열도 없고 기침도 하지 않지만 바이러스를 품고 있다. 건강한 사람이 백신을 접종했을 때의 효과는 증명됐지만 무증상 감염자를 백신이 막아줄 순 없다. 우리가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보건당국이 파악한 무증상자 비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 12월 10일 이상원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역학조사분석단장은 정례브리핑에서 “무증상 감염이 확진자 중 40% 정도까지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무증상자가 내뿜는 바이러스 양이 결코 적지 않다는 연구도 있다. 지난 9월 22일 영국 흉부학회 저널 ‘서랙스(Thorax)’에서 공개한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김성한 교수팀의 연구는 무증상자의 바이러스 수치가 증상자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걸 보여줬다. 연구 대상자가 주로 20~30대로 구성됐다는 한계를 고려해도 무증상자에 대한 경계를 높일 만한 데이터다.

백신 시대에도 “마스크 벗지 말라”

일부 백신은 무증상자의 전파 능력을 억제할 수 있다고 한다. 모더나 백신은 일부 무증상 감염을 막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의학전문지 ‘랜싯’에 따르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도 무증상 감염 차단 효과가 일부 확인됐다. 1차 접종 때 절반을 접종하고 2차 때 1명분을 접종한 경우 무증상자의 감염력을 58.9% 떨어뜨렸다. 긍정적인 효과가 일부라는 건 지금의 백신만으로는 무증상 감염자를 100% 차단하는 게 어렵다는 얘기와 같다. 그래서 백신 시대에도 마스크를 벗어선 안 된다는 경고가 나오는 건 불행이다. 백신을 맞더라도 여전히 따져봐야 할 게 많이 남았다. 바이러스가 온전히 사라질 수 있는 건지, 몸속에 만들어진 항체가 얼마나 유지되는지, 재감염 위험은 없는지 등.

백신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미국 보건 전문가들의 경고는 이랬다. “백신 접종자가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을 확률은 높지만 전염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봐야 한다.”(프랜시스 콜린스 미국 국립보건원 원장) “예방에는 효과적이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는 것을 백신이 막는지에 관해서는 제약사들이 들여다보지 않았다.”(리애나 웬 조지워싱턴대 밀컨공중보건대학원 방문교수) 이들의 지적 뒤에는 같은 권고가 뒤따른다. “마스크를 벗지 말라.” 오늘도 호모 마스쿠스들은 마스크를 벗지 못한 채 호모 사피엔스로 되돌아가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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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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