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4월 1일 청와대에서 시민사회단체 간담회 중 김호철 전 민변 회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문 대통령 역시 1980~1990년대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민변 부산지부 대표로 활동한 바 있다. ⓒphoto 연합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4월 1일 청와대에서 시민사회단체 간담회 중 김호철 전 민변 회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문 대통령 역시 1980~1990년대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민변 부산지부 대표로 활동한 바 있다. ⓒphoto 연합

“내가 로스쿨에 다닐 때만 해도 민변은 ‘유명하지만 마이너한 곳’처럼 느껴졌다. 민변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학생도 별로 없었고, 주로 학부생 때부터 총학생회장을 하는 등 사회활동 참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민변은 법조계에서 완전한 ‘메이저’가 됐다.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민변 출신을 만나면 겉으로 티를 내지 않으면서도 가까워지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알아두면 좋을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변시 1기 출신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가 최근 막강해진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위상을 두고 한 말이다. 이 변호사의 말처럼 민변의 위상은 문재인 정권 아래서 더 높아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재명 경기도지사,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 주요 여권 정치인 상당수가 민변 출신이기 때문이다. 현직 법관 중 김선수 대법관과 이석태 헌법재판관은 민변 회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여기에 ‘민변 공수처’라고 불리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출범이 다가오면서 민변의 세는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1988년 51명의 변호사들이 모여 시작한 단체가 이제는 법조계의 ‘최고 스펙’이 된 셈이다.

민변은 현재 회원수 약 1200명을 보유하고 있다. 등록된 전체 변호사가 2만5000명이 넘는 것을 감안하면 5% 남짓한 인원이지만 어느 법조 단체보다 활발한 활동과 결속력을 보이고 있다. 2013년 출범한 보수성향 변호사 단체 ‘한변(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 회원수가 300여명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규모와 역사 면에서 압도적이다. 지난 2018년 5월 민변 출범 30주년 기념식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축사를 보내기도 했다.

인권변호사 1세대로 불리는 이병린 변호사, 한승헌 전 감사원장, 조준희 전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 등이 1970년대 유신정권의 시국사건 변론을 맡으며 활동했던 것이 민변의 출발점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980년대 조영래, 박원순 등 인권변호사들이 모여 ‘정의실현법조인회(정법회)’를 결성해 명맥을 이었다.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 1988년에는 젊은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청년변호사회(청변)’가 결성됐는데, 같은 해 정법회와 청변이 통합하기로 결정하면서 출범한 단체가 지금의 민변이다.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민변은 변호사 자격증이 있으면 집행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정회원’ 자격으로 가입할 수 있다. 변호사라면 가입이 사실상 자유로운 셈이다. 회비는 변호사 등록 5년 차까지는 매달 5만원, 6년 차 이상은 매달 10만원을 납부해야 한다. 서류상 등록된 민변 회원수는 1200여명이지만 이 중 실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변호사는 100명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 상당수 변호사는 생업 때문에 민변 활동에 동참하지 못하면서도 ‘후원’ 목적으로 회원 자격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 변호사 자격이 없어도 법학 교수 또는 사법연수생이나 법학전문대학원 재학생은 ‘특별회원’ 자격으로 가입이 가능하다.

민변은 회원들의 회비 수입으로만 운영되는데, 한 해 약 10억원이 들어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8월 민변은 사무실 이전을 위해 20억원이 넘는 ‘특별회비’ 명목의 돈을 걷어 서울 교대역 인근 58억원 상당의 건물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민변은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꽤 오래된 건물 한 층을 빌려 사무실로 쓰고 있는데, 이 건물 임차료로만 매달 1억원이 드는 것이 부담스러워 직접 건물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조계에서는 현 정권에서 민변 출신이 우대받는 덕에 민변의 특별회비 모금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민변에 가입한 변호사들은 이후 활동을 원하는 위원회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 민변에는 집행위원회 산하에 노동위원회, 여성인권위원회, 통일위원회, 과거사청산위원회 등 15개의 상설위원회가 있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 대응TF, 일본군 위안부 문제 대응TF 등 5개의 별도 TF팀을 운영하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인천지부, 부산지부 등 총 8개 지부를 두고 있다. 문 대통령은 1991년 부산·경남 지역 민변 대표를 맡은 바 있다.

민변의 가장 큰 힘은 끈끈한 인맥에서 나온다. 20년 경력의 한 변호사는“과거 민변 소속 변호사들은 국가보안법 사범 등 시국 사건의 변호를 맡으며 자기 인생을 걸고 군사정권과 맞섰다. 변호사로 돈과 명예를 누릴 수 있었지만 이를 포기하고 민주주의와 정의를 좇는다는 신념이 강했기에 서로 똘똘 뭉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동지 의식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에 어떤 법조 단체보다 끈끈한 것”이라고 전했다. 로스쿨 출신 한 변호사는 “젊은 변호사들의 경우 박원순 전 서울시장, 고영구 전 국정원장 등이 활동했던 과거 군사정권 시절과 양상은 다소 다르지만, 주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정권에 반감을 가졌던 이들이 민변에 많이 가입했다”면서 “특히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인해 사회참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변호사들이 많다”고 했다.

민변의 인맥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은 단연 정치권이다. 더불어민주당 전해철·박범계·김남국·김용민·진선미·이재정,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을 비롯해 21대 국회에만 11명의 민변 출신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정부 주요 부처 중 민변 출신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곳은 법무부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법무부는 ‘탈검찰화’를 강조했는데, 이를 위한 조치로 법무부 주요 직책을 외부 인사가 맡을 수 있는 ‘개방형’으로 전환했다. 이 중 민변 출신으로는 최근 윤석열 징계위에 참석했던 이용구 법무부 차관을 비롯해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등이 있다. 판사 출신인 이용구 법무부 차관은 LKB 파트너스에서 대표변호사로 재직하다 2017년 8월 개방형으로 전환된 법무부 법무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차관은 공수처 출범준비팀장을 맡았으며 차관 임명 전까지는 공수처장 후보로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다.

이석태 헌법재판관이 지난 7월 10일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재판관은 박 전 시장과 같은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이다. ⓒphoto 뉴시스
이석태 헌법재판관이 지난 7월 10일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재판관은 박 전 시장과 같은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이다. ⓒphoto 뉴시스

“586 민변만 중용될 뿐”

법무부 산하 각종 개혁기구도 민변 출신 인사들이 장악했다. 2017년 말 발족한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위원장인 김갑배 변호사를 비롯해 이용구 당시 법무부 법무실장, 김용민 변호사(현 민주당 의원) 등 위원 9명 중 6명이 민변 출신으로 채워졌다. 대검찰청 내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장인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은 민변 회장 출신이며, 법무부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인 김진 변호사와 김남준 변호사, 차정인 부산대 로스쿨 교수도 민변 소속이다. 법무부 징계위원장 직무대리를 맡아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정직 2개월 처분을 내린 정한중 한국외국어대 로스쿨 교수 역시 민변 출신이다. 청와대에서는 이광철 민정비서관을 비롯해 법제처장을 지낸 김외숙 청와대 인사수석이 민변 출신이다.

민변 일각에서는 최근 주목받는 ‘민변 파워’가 과장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권 핵심과 가까운 극히 일부만이 현 정부에서 요직을 맡았을 뿐, 대다수 젊은 변호사들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라는 것이다. 2년 전 민변에서 탈퇴했다는 30대 변호사는 “젊은 변호사들이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열정을 갖고 가입하지만, 회비 내기도 빠듯한 변호사 생활을 겪으며 금방 탈퇴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민변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젊은 변호사들은 배고픈 생활을 견뎌낼 만큼 신념이 아주 강하거나, 민변 활동을 디딤돌 삼아 정계에 진출하려는 계획을 가진 이들이 많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민변에 가입하면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는 것은 맞는다. 하지만 막연하게 생각하던 사회적 활동과 변호사라는 자격을 달고 참여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라면서 “민변 소속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자기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현장에서 만나는 변호사들은 민변 소속이라는 것을 먼저 밝히기를 꺼리기도 한다. 상대에게 정치적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 민변 출신으로 요직에서 주목받는 변호사들은 대부분 586세대로 젊은 변호사들과는 거리감이 있는 인사들”이라면서 “정권이 바뀌면 민변 소속이라는 게 전혀 도움될 게 없는데 마치 ‘떡고물’ 때문에 젊은 변호사들이 활동한다고 보는 것은 맞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민변, 공수처까지 장악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변 출신 인사들이 정부 요직과 각종 위원회에 포진하는 경향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초로 다가온 공수처의 출범이 민변의 세를 더욱더 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수처법 개정안이 통과함에 따라 정부 여당은 올 연말 안에 공수처장 청문회를 진행하고 내년 초 공수처를 공식 출범할 계획이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에서는 공수처장 추천위의 의결 정족수를 기존 ‘7명 중 6명’에서 ‘5분의 3’(5명)으로 완화했다. 추천위원 7명 중 야당 추천위원 2명이 반대해도 여당 추천위원 5명이 공수처장 추천을 밀어붙일 수 있는 구조가 된 것이다. 초대 공수처장 후보로는 판사 출신 김진욱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과 전현정 변호사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이 공수처 개정안으로 인해 민변 출신 변호사가 공수처 곳곳에 자리 잡을 수 있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존 공수처 검사는 변호사 자격 10년 이상에, 관련 수사 업무 경력 5년 이상이 필요했다. 하지만 개정안은 변호사 자격을 7년 이상으로 낮추고 수사 경력 요건은 아예 삭제했다. 수사 경력이 없는 변호사 출신도 공수처 검사가 되어 판검사를 비롯해 대통령, 장관 등 고위공직자를 수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공수처 검사는 인사위원회를 통해 임명되지만, 이 과정에서도 여당의 입김이 절대적이다. 인사위원회는 공수처장과 차장, 처장이 위촉한 위원 1명과 여당 추천 2명, 야당 추천 2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된다. 이 7명 중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되므로 야당 추천 인사위원 2명의 동의와 무관하게 임명될 수 있다. 민변 출신 등 여당 입맛에 맞는 인사들이 공수처를 장악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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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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