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에 글을 쓰고 있는 유민호 퍼시픽21 소장이 ‘코로나19 투병기’를 보내왔다. 유 소장은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는 터키에서 지난 10월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던 사실을 뒤늦게 알리면서 “혼자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운 경험이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해서 투병기를 보내게 됐다”고 했다. 무증상으로 시작해 양성 판정 13일째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인 그의 체험기를 싣는다.<편집자주>
 ⓒphoto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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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투병기, 전염병 극복기, 바이러스 체험기….’

어느 것 하나 정확하지 않다. 병과 싸우긴 했지만 장기간 이어진 끔찍한 상황이 아니란 점에서 투병기란 말은 너무 무겁다. 당장은 극복했지만 몇 달 뒤 다시 감염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극복기라 부르기도 힘들다. 경험은 했지만 백인백색 전부 다르고 공통분모도 딱히 없어 체험기라 표현하기도 뭣하다. 지난 10월 중순 거짓말처럼 밀어닥친, 필자의 코로나19 감염을 뒤늦게 고백하려니 좀 난감하다. 굳이 표현한다면 지금까지 터키에서 이어지고 있는 ‘팬데믹 망명기’ 버전2 정도라고나 할까?

필자는 지난 10월 14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코로나19에 걸린 사실을 확인한 곳은 터키 이스파르타(isparta). 터키 동부 아나톨리아 내륙에 자리 잡은, 로마제국 때부터 장미향수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이탈리아로 가기 위해 코로나19 음성 판정 증명서를 떼러 갔다가 거짓말처럼 양성 판정을 받았다.

터키에 간 것은 지난 2월 말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일본 도쿄에 불어닥치는 순간, 로마를 거쳐 미국의 집으로 돌아가려다 도중에 내린 곳이 터키다. 이탈리아도 이미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상황에서 터키에 잠시 피해 있으려다가 그대로 발이 묶여버렸다. 3월 들어서면서 터키에서 오고 가는 국제선도 전면중단돼 버렸다. 지난 여름부터 부분적으로 개통됐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터키에 머물던 중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호텔 방에서 10일간 격리생활

필자가 머물던 호텔 관계자가 양성임을 알려왔을 때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영어가 서툰 호텔 직원이었다. 호텔 매니저가 만나고 싶다는 말을 전해 1시간 뒤 로비로 내려갔다. 그러자 필자 눈앞에 호텔로 급속 배달된 코로나19 판정서가 펼쳐졌다. 종이에 ‘포지티브(Positive)’란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결코’ 믿을 수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터키인과의 접촉이 없었다. 말도 안 통하는 현지인과 얘기를 나눌 만한 필연적인 상황도 전무했다. 평소 취미인 고대 유적지나 역사 무대를 찾는 것이 터키에서의 일상이었다. 이탈리아, 그리스, 프랑스와 달리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곳이 터키의 고대 유적지다. 유일하게 마주치는 것은 방목 중인 소, 양, 염소와 목동뿐이다. 음식도 가능하면 직접 만들어 먹었고, 자동차도 장기 렌털했기 때문에 사람과 얼굴을 맞댈 이유가 별로 없었다. 물론 마스크 착용은 기본이다.

터키의 코로나19 검진소는 휑한 벌판에 의자 하나 두고 검사를 실시하는 원시적인 시설이다. 오진했거나 다른 사람으로 오인했을 것이라 믿고 호텔 매니저에게 재검진을 요청했다. 그러나 허락되지 않았다. 이미 확진된 이상 곧바로 격리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고맙게도 호텔과 병원 어디를 격리장소로 원하는지 물어왔다. 물론 호텔이다. 병원에 가면 일단 언어 문제도 있고, 음식 문제와 더불어 다른 환자와의 접촉도 필연적이다. 터키는 대제국을 경험한 나라다. 식민지를 겪어본 적이 없는, 통치하고 통합하는 데 익숙한 나라다. 필자의 개인적 판단이지만, 터키만큼 사회적 차별이 없는 곳도 드물다. 종교적 이유로 터키를 내려다보는 듯한 서부 유럽의 편견에서 벗어난다면, 이슬람의 관용과 평등 그리고 자유가 무엇인지 피부로 느낄 법한 나라다. ‘손님은 하늘이 보낸 선물’이란 것이 오스만제국 이래 터키인의 평균 정서다. 호텔 매니저는 필자를 위한 격리용 방 하나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호텔 측은 필자의 방이 있던 6층의 다른 방 20개를 전부 비웠다.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10월 14일부터 얼떨결에 호텔방에서의 새로운 ‘팬데믹 망명’이 시작됐다.

이스탄불에서 한 여성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다. 터키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코로나19 추적 앱을 운영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스탄불에서 한 여성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다. 터키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코로나19 추적 앱을 운영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탈리아행을 위한 음성 증명서가 화근

격리기간은 10일이었다. 14일간 하는 나라도 있지만 터키와 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10일로 규정하고 있다. 음식, 휴지, 타월 등의 필수품은 전화를 하면 방문 앞에 두고 갔다. 터키의 보건소에서 약 하나를 보내왔다. 내용을 보니 영양제다. 보건소 관계자와의 대화를 통해 필자가 무증상 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열이나 기침이 전혀 없다. 격리 첫날 체온은 36.5도였다. 호텔 방에 머무는 동안 수시로 4·7·8호흡을 했다. 4초 정도 코로 숨을 들이마쉰 뒤, 7초 정도 중단했다가, 8초 동안 내쉬는 호흡법이다. 산소도 공급하지만, 폐의 탄력성을 길러주는 호흡법이라고 한다. 평소 수영장과 헬스클럽에서 몸을 단련했지만 방 안에 있는 동안은 체조를 하면서 몸을 풀었다. 순식간에 격리생활 10일이 후다닥 지나갔다. ‘진짜’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평소의 몸 상태 그대로여서 양성 판정이 엉터리란 생각만 들었다.

더불어 전염된 장소를 추정해 봤지만 어디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몇 날 며칠 1분1초를 되돌리며 곰곰이 되새긴 결과, 어렴풋이 답이 나왔다. 음성 판정 증명서를 받기 위해 돌아다녔던 병원 어디선가 걸린 것 같다. 검진소가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문의하며 무려 3일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전염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 추적 앱 운영하는 터키

격리 10일이 지난 뒤 이스파르타의 호텔을 떠나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별 탈 없이 10일이 지났다고 하지만 양성이란 낙인이 있는 한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기 어렵다. 호텔 종업원들이 필자를 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코로나19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함께 나누려는 사람들의 선의조차 빼앗아갔다. 부담을 주지 않고, 필자 역시 자유롭게 지내자는 생각에서 북쪽의 고도(古都) 아피온(Afyon)으로 옮겼다. 몸 관리를 할 수 있는 자연온천이 있는 호텔로 정했다. 터키는 코로나19 추적 앱을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은 무조건 등록해야 한다. 인터넷으로 추적이 가능하고, 호텔이나 공공교통을 이용할 경우 추적 앱의 고유번호를 알려줘야만 한다. 필자는 격리기간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이유로 이미 건강 상태가 정상으로 분류돼 있었다.

몸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아피온의 호텔로 옮긴 지 3일 뒤, 즉 양성 판정 후 13일째부터였다. 가까운 고대 유적지에서 돌아온 직후인 오후 6시부터 한기가 느껴졌다. 가벼운 어깨 근육통도 시작됐다. 뜨거운 물을 마시면서 몸도 데웠지만, 점점 추위가 뼛속으로 파고드는 듯했다. 감기 때 느끼는 한기와는 전혀 달랐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체온은 36.5도 그대로다. 기침도 없고 그냥 한기와 어깨 근육통만 느껴지는 상태다. 자기합리화는 위기에 처했을 때 나타나는 인간 본능 중 하나다. ‘10일 격리기간 동안 아무런 문제도 없었는데, 13일이나 지난 지금은 아니겠지?’란 생각이 들었다. 근거도 없고 모호하지만, 괜찮을 것이란 확신을 스스로에게 주입했다. 한기와 근육통 속에서 어렵게 잠을 청했다.

혈중 산소포화도 측정 기기인 옥시미터. 아래는 지난 10월 14일 필자가 받아든 코로나19 양성 통지서.
혈중 산소포화도 측정 기기인 옥시미터. 아래는 지난 10월 14일 필자가 받아든 코로나19 양성 통지서.

13일째 몸을 공격해온 바이러스

눈을 뜬 것은 새벽 2시쯤이었다. 숨쉬기가 힘들어지면서 깬 것이다. 폐 속이 꽉 막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숨을 크게 쉴 수도 없는, 100m를 달린 뒤에나 나타날 거친 호흡이 계속됐다. 숨쉬기가 힘들어지면서 난생처음 죽음이 어떤 형상인지 피부로 느껴졌다. 전부 무너지거나 한꺼번에 불타는 식이 아니라 작은 연결고리가 어긋나면서 바람이 빠져나가는 풍선처럼 방향도 없이 이리저리 헤매다가 벽에 부딪치는 듯한 느낌이다. 뇌·심장·신장·근육을 비롯한 신체 전부가 튼튼한데도 숨쉬기 하나가 어려워 질식 사망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황당한 것은 이 모든 상황이 갑자기 한순간에 몰려왔다는 점이다. 낮에는 약간의 한기만 들었지만 밤이 되면서 한순간 몸 전체가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폐 속이 꽉 막히는 괴로움

이 글을 쓰면서 강조하고 싶지만, 필자는 ‘결코’ 의학에 밝은 사람이 아니다. 40대 이후 가능하면 약을 멀리하면서 자연치유를 중시해 왔다. 그러나 코로나19의 경우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 암, 당뇨, 혈압 같은 것은 자연치료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바이러스는 전혀 다른 상대라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혼자 여행하는 동안 일어날지 모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일찍부터’ 준비를 해왔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3개의 비상 준비물이다. 첫째 스테로이드제다. 스테로이드제는 병에 대한 몸의 전투 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갑옷이나 특수무기 같은 존재다. 모두 알고 있듯이 코로나19는 이렇다 할 약이 아직 없다. 그러나 스테로이드제를 통해 몸의 전투 능력을 향상시키면서 싸울 수는 있다. 인터넷을 뒤지고, 세계보건기구(WHO)가 공표한 의학 지식을 나름대로 수집한 결과 스테로이드제인 덱사메타손(Dexamethasone)이 코로나19에 나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염증억제작용이 있는 합성 부신피질호르몬제로, 아주 강력한 스테로이드제다. 기본적으로 다른 치료법으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때는 사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비상약이다.

트럼프의 치료제 덱사메타손 구입

덱사메타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에 걸렸을 때도 치료에 쓴 약이다. 트럼프가 양성 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 10월 3일이다. 이후 10월 5일 퇴원했다. 필자가 양성 판정을 받기 10일 전이지만, 미국 최고 의료진이 행한 트럼프 처방을 자세히 살펴봤다. 미국은 모든 것을 개방하는 민주주의 국가다. 제대로 된 상식적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미국 대통령에게 무슨 약을 처방했는지 알고 싶어 할 것이다. 비타민과 영양제, 에볼라출혈열에 사용한 항바이러스제 렘데시비르(Remdesivir)와 스테로이드제 덱사메타손이 트럼프를 위한 핵심 처방이란 것을 알게 됐다. 필자가 양성 판정을 받은 바로 다음 날인 10월 15일, WHO(세계보건기구)는 덱사메타손이 코로나19에 듣는 유일한 약이라고 발표했다. 트럼프가 자랑했던 렘데시비르는 바이러스 억제와 무관하다는 것이 당시 WHO의 발표다.

트럼프 처방 결과를 알아낸 뒤 곧바로 터키 현지 약국을 찾아갔다. 무슬림 권역의 나라들이 다 비슷하지만, 터키는 특별한 약만 제외하고 환자 각자가 알아서 구입해 복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나쁘게 말하면 의사의 영역을 넘어선 무모한 처방이 우려되지만, 좋게 얘기하면 의사에게 손길을 뻗치는 제약업계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관행이다. 고맙게도 터키에서는 덱사메타손을 마음대로 구입할 수 있었다. 필자가 양성 판정을 받기 정확히 1주일 전, 6㎎짜리 2통을 구입했다.

코로나19 증상 완화를 위해 2주간 복용한 덱사메타손.
코로나19 증상 완화를 위해 2주간 복용한 덱사메타손.

사이토카인 폭풍을 막을 아스피린

두 번째로 준비한 것은 아스피린이다. 이미 곳곳에서 증명되고 있지만, 아스피린이 코로나19 환자들의 혈액응고를 막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규모 임상시험을 통한 결과이다. 한 알에 100원 정도 하는 진통제 아스피린이 의외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코로나19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에 있다. 외부에서 침투한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한 인체 내 면역체계의 과도한 반응이다. 정상세포까지 공격하면서 펼쳐지는 대규모 염증 반응이 코로나19의 치명타이다. 사이토카인 폭풍을 통해 면역계가 과도하게 활성화하는 경향이 있고, 혈액응고 작용을 담당하는 혈소판 또한 과활성화할 수 있다. 혈액응고는 산소공급 차단을 의미한다. 멀쩡하다가도 사이토카인 폭풍으로 혈액응고가 일어나면서 심장이 멎을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코로나19에 걸려 숨진 김기덕 감독이 그 같은 경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스피린은 혈액응고의 원인이 되는 혈소판 과활성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복용해야만 하는 것이 아스피린이다.

셋째는 ‘옥시미터(Oximeter)’란 전자기기다. 적외선 파장을 이용해 혈중 산소포화도(Blood Oxygen Saturation)를 측정하는 기기로, 폐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 보통 수치가 95~99로 나타날 경우 정상이며 그 이하는 비정상이다. 94 이하는 산소를 온몸에 뿌리는 폐의 기능이 급강하했다는 의미다. 대략 온라인에서 50달러 미만의 가격에 구할 수 있는 간단한 기기로, 필자도 이를 활용해 자주 폐의 상태를 측정해왔다.

폐 속의 산소포화도 검사해보니

양성 판정 13일째의 심야로 돌아가 보자. 가파른 호흡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옥시미터로 산소포화도를 측정했다. 중국산이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수차례 측정한 결과 대략 93 정도란 것을 알게 됐다. 일단 비정상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산소포화도가 90 이하로 내려가면 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꿈속의 얘기 같지만, 불과 하룻밤 만에 폐 전체에 바이러스가 밀려든 셈이다. 추측건대 무려 13일이나 몸속에서 싸우다가 마침내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폐를 무대로 한 전쟁이 시작됐다고 여겨졌다.

코로나19의 특징이라는 후각 상실 여부도 확인해봤다. 평소 갖고 다니던 10여종류의 향수 냄새를 전부 맡아봤다. 무슨 향인지는 알겠지만, 후각의 민감도가 ‘확실히’ 떨어졌다는 것을 감지했다. 누가 봐도 인정할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증상이다. 필자에게는 유일한 처방만 남았다. 가능하면 복용을 피해야만 한다는 덱사메타손이다. 병원에 가고, 처방을 받고 할 틈이 없다. 이미 소셜미디어를 통해 의사 친구와 상의해 어느 정도 양을 복용할지는 파악해뒀다.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루 6㎎ 복용이 기준이다.

코로나19 증상이 심해져 2차 격리에 들어갔던 아피온의 바리다호텔.
코로나19 증상이 심해져 2차 격리에 들어갔던 아피온의 바리다호텔.

덱사메타손 2주간 복용

물과 함께 꿀꺽 삼켰다. 필자는 지금까지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한 적이 없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이 최우선이었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무모하게, 그것도 의사 허락 없이 멋대로 독한 약을 복용했다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코로나19라는 비상 상황이다. 앞서 강조했듯이 코로나19는 특효약이 없다. ‘카더라’ 식의 중구난방 뉴스도 넘친다. 당장 상황이 벌어졌는데 답을 구하러 멀리 갈 수가 없다. 간다고 해도 엄청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집에서 멀리 떨어진 타국에 혼자 남겨진 상황이다.

코로나19에 관련한 비극이자 희극이지만, 바이러스를 의학이나 생명이 아닌 정치 논리로 풀어가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 가령 문재인 정권이 자랑하는 K방역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다. 한국에서 코로나19 검사를 자발적으로 받으려면 전에는 10만원이 넘는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취업에 음성 증명서가 필요한 경우처럼 불가피하지 않다면 주변의 시선을 감수하면서 자진 검사에 나설 사람이 얼마나 됐을까. 그러니 정부는 자기 입맛에 맞게, 검사 대상자를 자의적으로 선정할 위험이 상존한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살인자’라 부른 집단을 파고들면 감염자가 넘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똑같은 시위 집단도 조사를 안 하면 감염자가 안 나온다.

트럼프의 말이지만 “미국은 검사자가 많기 때문에 코로나19 환자가 많다”라는 얘기가 있다. 별로 틀린 말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 검사가 무료다. 몇 번을 가도 무조건 공짜다. 저소득층은 가족 단위로 공짜 검사를 받는 경우가 많다. 걸릴 경우 오바마케어에 의해 자동으로 무료 입원이 보장된다. 이 글을 쓰는 12월 15일, 한국에서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718명, 누계 환자는 4만3484명에 달한다. 한국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대만을 보자. 불과 3명 신규에 누계 환자 736명에 불과하다. 인구비율로 볼 때 한국은 대만의 2배 정도다. 지난 10개월간의 대만 누계 환자 숫자와, 자화자찬 K방역국의 단 하루 신규 환자 숫자가 비슷하다. 대만에는 정부가 총출동된 T방역이란 이벤트나 자화자찬도 없다.

눈가의 타는 듯한 통증과 설사

밤새 고통에 시달린 다음 날, 병원으로 갈지 여부를 고민했다. 일단 법적으로는 정상인이지만 실제는 감염자다. 호텔 매니저와 전화로 상의를 했다. 가능하면 호텔에서 격리생활을 하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놀랍게도 호텔 내에는 이미 필자와 비슷한 상황의 터키인이 두 명 더 있었다. 매니저의 도움으로 따로 떨어진 방에서 다시 격리생활에 들어갔다. 방을 배정받은 즉시 호텔 직원에게 ‘특별한’ 부탁 하나를 했다. “생명체를 하나 넣어달라”고 했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격리된 방에 있는 동안 함께할 생명체다. 100달러를 주면서 시장에 가서 눈에 띄는 대로 알아서 사갖고 와달라고 전화로 부탁했다. 2시간 뒤 호텔 직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문 앞에 갖다놨다는 것이다. 문을 열자 작은 어항과 금붕어 두 마리가 보였다. 남은 돈 95달러도 함께 문 앞에 놓여 있었다. 가슴속으로 뜨거운 감정이 밀려왔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길 경우 금붕어 두 마리가 지상에서의 마지막 친구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바이러스의 폐 공격은 양성 판정 14일째인 밤에도 이어졌다. 덱사메타손 덕분인지 첫날 고통에 비해 약한 공격이었다. 한기도 덜해졌지만 반대로 눈 주변이 타들어가면서 불이 나는 느낌이 들었다. 잇몸이 시리면서 음식을 씹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다. 약한 곳을 공략하기 위해 바이러스가 온몸을 돌아다니는 듯했다.

15일째부터는 설사가 시작됐다. 잘못 먹은 것도 없는데 복통이 시작되면서 거의 탈진 상태가 됐다. 약하지만 두통도 시작됐다. 목소리도 노인처럼 쉰 소리로 변해갔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덱사메타손을 먹으면 대략 1시간 이내에 상태가 급속히 호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 운동선수들이 스테로이드제에 빠지는지 이해가 됐다. 눈 주변 통증, 복통과 두통도 가라앉았다. 16일째부터는 근육통도 완전히 사라졌다. 17일째부터는 비정상적인 증상이 전부 사라졌다. 스테로이드제를 빨리 끊고 싶었다. 그러나 의사 친구의 자문에 따라 2주간은 계속 복용하기로 했다. 양성 판정 이후 27일째 되던 날이 덱사메타손 마지막 복용일이었다. 스테로이드제의 후유증으로 얼굴이 검어졌다. 간에 부담을 주면서 생기는 부작용이다. 걱정을 했지만 양성 판정 후 35일째로 접어들던 때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코로나19 감염이란 청천벽력을 체험한 지 세 달째로 접어들었다. 가벼운 감기 걸리듯 스쳐지나갔다고 볼 수도 있지만 후유증은 남아 있다. 먼저 불면이다. 필자는 인생 전체를 통틀어 불면에 시달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양성 판정 후에는 자다가 거의 1시간마다 깬다. 총수면시간도 종전의 7~8시간에서 5~6시간으로 줄어들었다. 낮잠으로 보충하려 해도 누우면 잠이 안 온다. 항상 피곤한 상태에서 하루를 보내는 느낌이다. 왼쪽 폐의 고통도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아직 X선 촬영은 안 해봤지만 뭔가 큰 피해를 입은 것이 분명하다. 종전에 비해 폐 기능이 떨어진 듯하다.

2차 격리에 들어가면서 호텔 종업원에게 부탁해 구입한 금붕어 어항. 무슨 일이 생길 경우 금붕어 두 마리가 지상에서의 마지막 친구가 될 것이라는 심정이었다.
2차 격리에 들어가면서 호텔 종업원에게 부탁해 구입한 금붕어 어항. 무슨 일이 생길 경우 금붕어 두 마리가 지상에서의 마지막 친구가 될 것이라는 심정이었다.

코로나19가 남긴 후유증

코로나19 감염 사실은 가족은 물론 모두에게 비밀로 했다. 주변에 걱정을 끼치고 싶지도 않았고 혼자서 견뎌낼 수 있고 견뎌내야만 한다고 믿었다. 예외적으로 한국의 친구 몇 명에게 전하자 반응이 두 가지로 나뉘었다. “내 주변에서 처음 만난 감염자.” “항체가 생겼겠네.” 그러나 12월 들어 한국 내 감염자가 급증하면서 ‘처음 만난 감염자’란 얘기는 쑥 들어갔다. 거꾸로 필자가 코로나19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감염자 폭증과 함께 코로나19의 위력을 절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크게 두 가지를 전하고 싶다. ‘코로나19에 절대 안 걸린다’는 생각보다 걸렸을 경우에 대비하라는 것이 총론으로서의 첫 번째 조언이다. 보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국에서도 의료시스템 붕괴 우려가 나온다. 병상이나 음압기 여부만이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의 지속적인 투입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의료인 역시 바이러스에 노출돼 있고 육체적·정신적으로도 이미 탈진 상태다. 그러나 환자는 하루가 다르게 폭증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만약 감염될 경우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병원행에 앞서 집에서 대기하는 것이 전부일까? 너무 늦다. 필자의 경우지만 불과 하루 만에 바이러스가 폐로 밀려온다. 걸릴 경우 어떻게 행동할지 예비훈련을 미리 시행하는 것이 좋다.

두 번째 조언은 미리 스스로 준비하라는 것이다. 구체적인 치료약과 의료기기, 심지어 격리시설도 각자가 알아서 준비하는 것이 좋다. 격리시설은 감염자가 아닌, 비감염 가족을 위한 장기간 거주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골 집이나 여관, 호텔 같은 곳이다. 정부의 도움을 믿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정부가 내 목숨까지 돌봐줄 것이란 환상은 일찍부터 깨는 것이 좋다. 백신에 기대를 거는 사람도 많을 듯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에서 제대로 된 백신 접종이 내년을 넘겨 2022년에나 가능할지 모른다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코로나19는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식 사고방식의 정반대편에 도사리고 있는 존재다. 장기전이 필요하고 장기전이 당연하다. 아무도 원치 않지만 반드시 거쳐야만 할 시간이다. 2021년은 바이러스 감염을 염두에 둔, 각자도생의 해로 기록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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