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2일 아동 성폭행 혐의로 징역 12년을 복역한 후 출소한 조두순. ⓒphoto 뉴시스
지난 12월 12일 아동 성폭행 혐의로 징역 12년을 복역한 후 출소한 조두순. ⓒphoto 뉴시스

한국이 아동 성범죄자에 대해 관대한 나라라는 사실은 더 이상 오명이 아니다.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의 현실이라는 것은 조두순 사건으로 이제 국민 모두가 실감하고 있다. 아동에 대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불과 몇 년 만에 풀려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모두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국민적 분노 때문인지, 아니면 이 사건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 싶어서인지 분간하기 어렵지만 수많은 사람, 특히 유튜버들이 조두순 집 앞에 몰려가고 있다. 하지만 형벌불소급의 원칙, 일사부재리의 원칙이라는 법의 대원칙 앞에서는 이들의 ‘농성’도 무력하다. 사적으로 조두순에게 해를 가하려고 한다면, 법의 철퇴가 되돌아올 뿐이다. 인근 주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단해야 하겠지만, 어린 아동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흉악범이 버젓이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술에 취해도 심신미약 인정

조두순에 대해 징역 12년이라는 일반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검사가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적용하지 아니하고 일반 형법을 적용했다는 문제, 당시 대법원 양형기준에서 해당 범죄에 대해 징역 11년까지만 선고하도록 권고하고 있었다는 문제 등이 있지만 그 중심에는 ‘심신미약’이 있다.

심신미약은 말 그대로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를 의미한다. 정신분열증과 같은 정신질환으로 인하여 행위통제능력이 저하된 경우,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경우, 알코올중독인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심신미약은 형 감경 사유가 된다.

문제는 술에 취한 것도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법원은 평소의 주량을 훨씬 초과하여 만취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 심신미약을 인정한다. 범죄자가 술에 취하여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취감경이라 하기도 하는데, 이로 인해 술에 취해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멀쩡한 상태에서 살인을 저지른 사람에 비해 경하게 처벌된다.

물론 우리 형법은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 미약을 야기한 자에 대해서는 형을 감경하지 않도록 정하고 있다.(형법 제10조 제3항) 고의나 과실로 스스로를 심신미약, 심신상실 상태에 빠지게 한 후 그러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온전한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람을 죽일 용기를 얻기 위해 술을 마신 경우, 별 생각 없이 음주를 하고 운전을 한 경우에는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하더라도 형이 감경되지 않는다.

과거에는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형을 반드시 감경해야 했다. 형법 제10조 제2항에서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고 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두순의 경우에도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심신미약이 인정되어 감형되었다. 조두순에게 적용된 형법 조항은 제297조(강간), 제301조(강간 등 상해, 치상)인데 제301조 위반, 즉 강간상해의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문자 그대로 조두순에 대해 무기징역도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조두순의 경우 심신미약이 인정되어 형이 감형되었고, 그 결과 징역 12년형이 선고되었다. 무기징역형을 감형할 때에는 형법 제55조에 따라 7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로 감형해야 한다. 조두순 재판이 이루어질 당시 형법은 유기징역의 상한을 15년으로 정하고 있었는데(형법 제42조), 결과적으로 심신미약이 인정되는 이상 조두순에게 선고될 수 있는 징역형은 7~15년 정도에 불과했다. 물론 가중 사유(누범 등)가 있다면 당시 법령상으로도 25년까지 가중이 가능했지만, 이는 법령상 가중 사유가 분명히 있을 때만 가능하다.

조두순법은 조두순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조두순 재판이 이루어질 당시 대법원에서 마련한 양형기준에서는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강간상해에 대하여 기본적으로는 6~9년을, 가중할 때에는 7~11년을 선고하도록 하고 있었다. 양형기준이라 함은 법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형량 차이가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범죄 유형별로 지켜야 할 형량 범위를 대법원이 정해둔 것을 말한다. 양형기준은 말 그대로 기준이므로 원칙적으로 구속력은 없으나, 법관이 양형기준을 이탈하는 경우 판결문에 양형 이유를 기재해야 하므로, 합리적 사유 없이 양형기준을 위반할 수는 없다.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 대법원 양형기준상의 내용 등을 종합하여 법원은 조두순에게 징역 12년형을 선고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 양형기준에 크게 어긋나는 판결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꽤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일각에서는 법원이 양형기준에 최대한 맞추기 위해 심신미약을 쉽게 인정하여 감형한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조두순의 심신미약이 왜 인정되었는지에 대한 재판부의 명쾌한 설명과 이유 설시(說示)가 부족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조두순 사건 이후, 음주를 이유로 감형을 하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터져 나왔다. 이에 2010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될 때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강간, 강제추행 등 성폭력범죄를 범한 자에 대해서는 형을 감경하는 ‘형법’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할 수 있도록 하는 법규정”이 신설되었다. 법관의 재량에 따라 적어도 성범죄에 대해서는 음주, 약물로 인한 심신미약 감형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게 변경된 것이다. 이를 ‘조두순법’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규정은 형벌불소급의 원칙에 따라 조두순에게 막상 적용될 수는 없었다.

2018년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을 계기로 심신미약 감경에 대한 국민적 비판 여론이 다시 한번 거세게 일었고, 실제 일부 범죄자들은 심신미약을 감형의 수단으로 악용하려 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에 국회에서는 형법 개정 논의가 이루어졌고, 심신미약자에 대한 필요적 감경 규정을 임의적 감경 규정으로 개정하였다. 조두순 사건 때에는 심신미약이라면 반드시 감형을 해야 했지만, 이제는 심신미약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감형을 할지 말지는 법관의 재량에 맡기게 되었다.(성범죄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심신미약이기는 했나?

조두순 사건 당시 여러 규정이나 해석상의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과연 조두순에게 쉽게 심신미약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너무 쉽게 조두순이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단정한 것은 아닐까? 술기운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주장에 대해 검사가 제대로 항변조차 하지 않았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구체적인 법 집행에 있어 매우 아쉬운 일이 발생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술에 취했다고 심신미약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재판부에서도 조두순이 사건 당시 실제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였는지 제대로 살펴보았어야 했다. 죗값을 제대로 받지 않은, 엄정하지 못한 법 집행으로 인한 부담은 온전히 국민과 인근 주민들이 짊어지고 있다.

정재욱 변호사ㆍ법무법인 주원 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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