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31일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수도권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조치’가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경기 용인시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에서 2학기 개강을 앞두고 비대면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2020년 8월 31일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수도권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조치’가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경기 용인시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에서 2학기 개강을 앞두고 비대면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캠퍼스는 화사하고 역동적이어야 했다. 그런데 지난 한 해처럼 스산하고 텅 빈 적은 없었다. 바이러스로 봉쇄된 캠퍼스와 강의실에는 있어야 할 학생들이 없었다. 김진혁(23)씨도 학교를 안 간다. 팬데믹이 오기 전, 수업이 있는 날이면 인천 부평에서 서울 신촌까지 통학했다. 지하철과 버스를 바꿔 타면 1시간30분가량 걸렸다. 오전 9시 수업이 있을 때면 6시30분에 일어나 7시에는 집에서 출발했다. 그래야 안전하게 강의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학교에 안 가게 되자 거리 위에 뿌렸던 많은 시간을 저축할 수 있게 됐다.

김씨의 학교는 2020년 1학기 강의를 비대면 수업으로 대체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멈추지 않자 2학기에도 비대면 수업을 유지하기로 했다. 2020년 1학기의 대세는 비대면 수업이었다. 4년제 대학의 85%가 비대면 수업을 선택했다. 2학기에도 이 흐름은 멈추지 않았다. 교육부가 지난 9월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탓에 일반 강의는 물론 실기·실습 수업을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대학교가 전국 332개(4년제 198개·전문대 134개) 중 196개에 달했다.

강의실 고수론자라면 비대면 수업이 싫을 수 있다. 김씨도 처음에는 그랬다. 학비가 3분의 1 수준인 사이버대학과 뭐가 다른가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보다 괜찮다고 느낀다. 삶의 질이 좋아졌다고 느끼면서부터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피곤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집에 오면 그냥 자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운동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거리에서 뿌리는 시간의 낭비도 없앴다. 비대면 수업도 적응만 하면 편하다. 필기를 따로 안 해도 되고 필요하면 다시 영상을 찾아보면 되는 건 큰 장점이다.”

교구와 강의실 몰아낸 바이러스

사회 각 진영에서는 ‘팬데믹 이후 뉴노멀’이 화두다. 파괴적인 변화 속에 대학도 고민에 빠졌다. 비대면 수업이라는 방법론이 숙제가 됐다. 과거 학생들이 기다리는 강의실에 ‘드르륵~’ 앞문을 열고 들어가던 교수는 이제 온라인에 실시간 강의실을 열고 학생들이 들어오길 기다린다. 눈앞에 얼굴 대신 작은 섬네일을 보며 제자들의 착석을 확인한다. 학생들의 등 뒤 배경을 보면 대부분 집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칠판도, 분필도 없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위협한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자기 자리를 지켰던 교구와 강의실을 몰아낸 건 다름 아닌 바이러스였다.

대면 강의에 익숙해진 몸이 비대면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학생과 교수, 모두 새로운 교육방식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지만 좀 더 애를 먹은 건 교수들이었다. 얼굴을 맞대지 않은 상태로 어떻게 효율적인 강의를 할 건지 고민하기 이전에 당장 수업을 온라인에 맞는 형태로 바꾸는 게 급했다. 한국대학교수협의회에 따르면 213개 일반대학의 2019년 온라인 강의 비중은 평균 0.92%에 불과했다. 운영해 본 교수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벼락치기 하듯 교수가 혼자 장비를 구입해 찍고 편집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고충이 컸던 일부 노(老)교수들은 영상을 포기하고 음성 파일로 수업을 하는 일도 있었다.

온라인 강의는 오프라인 강의와 달리 흔적을 남긴다. 자신의 수업 내용과 수업 질이 두고두고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은 교수들의 새 고민거리였다. 수업 중에 한 발언이 박제가 될 수도 있다. 홍종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BK교수는 1학기와 2학기에 각각 두 개의 강의를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강의를 미리 촬영한 녹화본을 활용했는데 준비 시간만 놓고 보면 대면 강의보다 더 많이 걸렸다. 자신의 행동이나 말 하나하나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던 것도 한몫했다. 홍 교수는 “보통 강의를 하면서 양념처럼 언급할 수 있는 뒷이야기 같은 것들은 피해야 했다. 바른말 고운 말만 써야 했고 풍자를 하는 것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양념을 치지 못해 수업이 풍성하지 못했던 것도, 오프라인에서는 바로 파악 가능한 학생들의 피드백을 알기 어려웠던 점도 아쉬웠다.

미네르바 스쿨의 모든 강의는 ‘액티브 러닝 포럼(Active Learning Forum)’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비대면으로 이뤄진다. ⓒphoto 유튜브
미네르바 스쿨의 모든 강의는 ‘액티브 러닝 포럼(Active Learning Forum)’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비대면으로 이뤄진다. ⓒphoto 유튜브

대학 수업료는 ‘최악의 소비’?

2020년의 대학은 이런 고난의 과정을 거쳤다. 대신 강의실을 벗어나도 학습하거나 가르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대면만 고집하던 관성이 깨졌고 비대면 강의의 가능성을 알게 됐다. 강의실이 아니더라도 줌(Zoom)이나 구글 미츠(Google meets), 웹엑스(Webex) 같은 화상회의 플랫폼을 활용한 교육의 원년이라 부를 만했다. 다만 온라인으로 갑자기 전환한 탓에 강의의 질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교육부에서 조사한 ‘2020년도 1학기 원격교육 경험 및 인식조사 설문’을 보면 비대면 수업을 긍정적이라고 답한 학생은 21.2%에 불과했다. 두 배가 넘는 48.1%가 미흡했다고 봤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르치는 쪽, 받아들이는 쪽 모두 익숙해졌고 긍정과 부정의 간극이 해소된 학교도 있다. 1학기를 마친 광운대는 온라인 강의 만족도 조사를 했는데 긍정적인 응답 비율이 81%에 달했다. 광운대 관계자는 “우리 학교의 경우 1학기가 끝나고 10여개의 교과목을 작년 점수와 비교했는데 강의 평가 점수가 작년보다 높아서 모두 놀랐다. 두 과목만 작년 점수보다 떨어졌더라. 대면이냐 비대면이냐보다 더 중요한 건 얼마나 플랫폼에 맞춰 열심히 준비했나 여부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난생처음 비대면 학기를 보낸 학생들은 의문을 가질 법하다. 배움은 꼭 대학 강의실을 통해야만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으로 최근 주목받는 곳이 ‘미네르바 스쿨’이다. 미네르바 스쿨은 ‘반드시 강의실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한국에는 ‘아이비리그 대학보다 들어가기 힘든 곳’으로 소개된 학교다. 벤처사업가인 벤 넬슨이 제안해 2014년 첫 입학생을 받았는데 최근 학기에는 160여명이 뽑혔고 합격률은 1.5%에 불과했다. 배출된 첫 졸업생들은 구글이나 트위터 등 실리콘밸리 기업들, 국제기구 등 다양한 곳에서 입사 제의를 받았다.

미네르바 스쿨의 모든 강의는 ‘액티브 러닝 포럼(Active Learning Forum)’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비대면으로 이뤄진다. 이곳은 물리적인 강의실이 없다. 교수들도 세계 각지에서 비대면으로 학생들을 만난다. 수업은 최소 2명~최대 16명까지 참여하는데 포럼 프로그램이 수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알고리즘을 통해 수업을 제대로 듣고 있는지, 진도에 뒤처지는지, 참여도가 높은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 퀴즈로 시작하고 퀴즈로 끝나며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공유 리포트를 쓰게 하는 등 학생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끌어내는 것도 프로그램이 가진 기능 중 하나다.

미네르바 스쿨을 우리 대학들과 비교하는 건 잔인할 수 있다. ‘액티브 러닝 포럼’은 지식재산권을 관리하는 법인이 따로 있을 정도의 ‘물건’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전부가 아니다. 비대면 수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시간을 많이 들였다. 벤 넬슨은 포브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1시간30분짜리 강의용 수업 계획을 작성하는 데 100시간을 썼다”고 말했다.

‘내가 받는 대학 교육이 갖는 가치는 얼마일까?’ 학생들이 갖게 된 두 번째 의문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공대에 재학 중인 박승규(22)씨가 받아든 2020년 1학기와 2학기, 두 장의 등록금 고지서에 찍힌 금액을 합하면 약 930만원에 달한다. 박씨는 이 고지서를 ‘최악의 소비’라고 불렀다. “두 학기 모두 비대면 수업이었고 학교 자체를 가지 않았다. 도서관도 안 갔고 수업용 부자재도 내 돈 주고 샀다. 그런데 수업료는 똑같이 지불했다. 천재지변 같은 상황에서 학교가 노력했다곤 하는데 뭘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기당한 기분이다.”

이건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0년 온라인 수업을 진행했던 영국의 대학들도 같은 요구에 시달렸다. 학생들은 영국 의회에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는 청원을 올렸는데 13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높은 등록금으로 악명 높은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50곳이 넘는 대학에서 학부생들이 등록금 일부를 돌려 달라며 소송을 걸었다. 소송 대상에는 컬럼비아대·코넬대 등 명문대들이 상당수 포함됐다. 우리나라도 등록금을 문제 삼고 있다. 비대면 강의, 그것도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은 수업에 수백만원에 달하는 한 학기 등록금을 내야 하는지 묻고 있다. 전국 30여개 대학 총학생회로 구성된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는 이미 교육부를 상대로 등록금 반환 소송에 나서기도 했다.

2020년 6월 15일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소속 대학생들이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대학교 등록금 반환을 위한 교육부-국회 대학생 릴레이 행진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신현종 조선일보 기자
2020년 6월 15일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소속 대학생들이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대학교 등록금 반환을 위한 교육부-국회 대학생 릴레이 행진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신현종 조선일보 기자

비대면 수업이 부른 지방대의 위기

대학을 향한 의심은 공평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재정이 취약하거나 규모가 작은 대학들에 가혹하다. 학령인구 급감과 수도권 대학 선호 현상이 맞물리며 지방대가 생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는 건 새삼스럽지 않다. 그런데 비대면 수업이라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더해졌다. 한 온라인 강의 솔루션 업체 대표는 “비대면 수업 시스템은 설치와 유지에 비용이 많이 드는 사업이다. 상반기에 서울 사립대 중 한 곳이 비대면 수업 때문에 학습관리시스템(LMS)을 구축하고 콘텐츠 제작 장비를 들이는 데 10억원 넘게 썼다”고 말했다. 뉴노멀을 좇으려면 비싼 값을 치러야 했다. 재정이 열악한 일부 지방대 입장에서는 난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낳을 악순환이다. 인프라의 차이는 비대면 수업의 차이를 낳는다. 그리고 이건 학생들에게 하나의 잣대가 됐다. 교육평가기관인 유웨이가 2020년 7월 23~26일 자사 입시 포털사이트인 유웨이닷컴 회원을 대상으로 반수 의향을 묻는 조사를 했다. 결과를 보면 2020년 신입생 중 46.5%가 “반수를 할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반수에 영향을 미친 원인을 물었더니 ‘입시 결과에 대한 아쉬움’(36.6%)이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그런데 이와 비등하게 등장한 게 ‘코로나19 비대면 수업으로 재학 중인 학교에 소속감이 저하돼서’(34.3%)였다. 충남권 한 사립대 입학처장은 지금의 상황을 꽤나 답답해했다. “우리는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대면 수업으로 빠르게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온라인 강의의 질을 높이는 게 쉽지 않다. 비대면 때문에 선후배나 동기 사이에 유대감이 없는 것도 큰 문제다. 자퇴 등을 생각하는 학생이 많아져 학사 관리가 어려워질 것 같다.”

자퇴와 같은 이탈은 중도 탈락률에 영향을 준다. 이 지표는 예비 입학생들이 살펴볼 만한 데이터다. 학생들이 둥지를 떠났다는 건 학교 여건이 좋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중도 탈락의 대부분은 미등록이나 미복학, 자퇴다. 모두 자발적으로 떠났다는 걸 뜻하는데 대부분 대입 재수험으로 이어진다.

교육부는 2021년 실시되는 대학 기본역량 진단에서 재학생 충원율을 강화하기로 했다. 3년 전 2018년 진단에서 충원율은 총점에서 13.3%를 차지했다. 그런데 2021년 진단에서는 20%로 비중이 확대된다. 중도 탈락자가 많다는 건 재학생 충원율이 낮아진다는 걸 뜻한다. 정부의 재정 지원 한 푼이 아쉬운 대학 입장에서는 비극이다. 코로나19 탓에 비대면 수업이 이루어졌고 소속감이 떨어진 학생들이 중도 이탈했다. 이 때문에 재학생 충원율이 떨어져 정부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정원이 감소한 대학이 나온다면 코로나19의 나비효과 탓이다. 바이러스가 대학의 흥망을 좌우하는 키를 쥐었다.

대학의 라이벌 된 무크(MOOC)

슬프게도 대학의 생사가 위협받고 대학의 본질이 의심받는 건 세계적인 흐름이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 미국 다빈치연구소장은 “10년 뒤에는 대학 절반이 사라질 것이다. 반면 교육 기업은 최대 인터넷 기업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등장하고 비대면 전환이 주류가 될수록 대학 밖에서는 배움을 찾는 수요가 급증했다. 스포트라이트는 세계 최대 무크(MOOC·온라인 대중강좌)인 ‘코세라(Coursera)’가 받았다.

코세라를 이용하면 서울에 있는 집에서 앤드루 응 스탠퍼드대 교수의 ‘AI 머신러닝’ 강의를 들을 수 있다. 구글에서 만든 자격증 프로그램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제공하는 현대 예술에 관한 강의도 학습할 수 있다. 이곳에는 190개 이상의 대학과 기업이 마련한 4000개 이상의 강의가 유·무료로 준비돼 있다. 2020년 9월 23일 코세라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3월 이후 코세라 신규 가입자는 2100만명 이상이 늘었고 수강 신청 건수도 5000만건 이상 증가했다. 강의실과 교수님으로 상징되던 대학이 정말 강한 라이벌을 만났다.

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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