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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640호] 2021.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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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인류사]‘제철왕국’ 금관가야가 규슈로 진출한 까닭은

이진아  환경생명저술가  2021-01-05 오전 10:42:03

▲ 스페인 갈리시아 자치구 소재, 복원된 초기 철기사회 제철작업장 숙소. 고대 사회의 제철 작업장은 이처럼 삼림이 무성한 언덕, 철을 배로 운반하기 좋은 강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크레이티브 커먼즈
서기 200년대에 접어들면서, 전기 가야연맹 종주국인 가락국(금관가야)은 지금까지 다니던 중국 양쯔강 유역과의 관계를 접고 대신 일본으로 활발하게 진출하기 시작한다. 260년 세월 공들였을 땅을 떠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은 분명 쉬운 방향 전환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이 그 변화의 동력이었을까?
   
   답부터 말하자면, 그 동력은 비즈니스 제국 가야의 대표 상품인 철제 무기와 농기구 등의 원료인 철을 생산할 수 있는 기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강한 동기였다.
   
   이 시리즈에서는 가야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누가 봐도 가야의 대표 속성이 분명한 ‘철 생산’ 사회의 특성을 먼저 알아보았다. 요컨대 고대사회의 제철 작업이 어마어마한 양의 목재와 고된 노동을 감내할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에 부수되는 삼림파괴와 환경오염도 엄청난 수준이어서, 요즘 개념으로 말하면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은 경제활동이었다.
   
   이런 제철 작업의 특성 때문에 고대에 철기문명을 주도했던 인간 집단은 언제 어디서나 한결 같은 패턴으로 흥망성쇠의 궤적을 거쳤다. 시작은 온난기를 어느 정도 거치면서 삼림이 충분히 형성되어 있던 곳에서 발흥했다. 철은 고대 사회에서 가장 수요가 큰 고부가가치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조건이 맞는 곳에서 일어난 제철 사회는 눈부신 고속성장을 했다.
   
   
▲ 고대의 제철 작업은 삼림파괴, 대기오염, 제철 공정에서 나오는 슬래그(철광석과 연료의 혼합 찌꺼기)에 의한 토양과 하천 오염 등 심각한 자원고갈 및 환경오염 문제를 유발하는 지속불가능한 산업이었다. 제철작업은 접근 가능한 인근 산지가 완전히 헐벗을 때까지 계속됐다. 노르웨이 만화가 인칼릴(Inkalill)의 2015년 작.

   성장의 속도는 나무가 자라는 속도를 훨씬 앞지른다. 계속 철을 생산하기 위해 점점 더 깊고 높은 산지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한랭기에 접어들어 나무의 성장 속도가 떨어지면, 이용할 수 있는 곳의 나무는 급격히 귀해지고 제철 자체가 어려워진다.
   
   생존경쟁이 치열했던 고대사회, 환경이 변해서 철 생산 위주의 경제 활동이 어려워졌다 해서 그것이 주는 큰 권력을 포기하려는 집단은 없었다. 더 이상 철 생산이 불가능해진 지경에 이르면, 아직도 삼림이 건재하는 다른 지역에 눈독을 들였다. 새로운 지역에의 진출은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제철 노하우를 앞세워 평화적으로 진입하든지 아니면 철기 무기를 앞세워서 무력으로 정복하든지.
   
   
▲ (왼쪽) 유럽 고대 제철 사회 확산 시기의 기후변화, (오른쪽)유럽 고대 제철 사회의 확산 시기 및 경로. 노란 선은 가장 먼저 시작된 미케네/그리스인에 의한 확산, 분홍색 선은 페니키아인에 의한 해로 이용 확산, 푸른 원으로 둘러쳐진 부분은 켈트 족에 의한 육로 이용 확산 경로를 보여준다. 원본 지도 출처: 독일 크리스티안-알브레히트 대학교 물질과학연구소. 재구성: 이진아

   위 지도는 기원전 1300년에 유럽에 도입된 제철문화가 기원전 500년까지 유럽 전역으로 정착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기원전 1300년에서 기원전 800년까지 1차 확산이 있었고, 거기서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기원전 500년까지 2차 확산이 있었다. 한랭한 기후가 계속되는 가운데 잠깐의 온난기에 멈추었다가 다시 기후가 한랭해지면서 확산이 계속되는 양상이다. 중앙아시아 쪽에서 오면 유럽 대륙의 한계선이 되는 대서양 해안선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하지만 이런 집념으로도 한랭기가 계속되면 버티기 어렵다. 삼림 황폐에 따라 철과 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수로가 막히면서 교역의 길도 옥죄어지면 점점 더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넓고 비옥한 농토를 가진 육지형 국가에 복속되면서, 좀 더 복합적이고 풍부한 문명을 이루는 토대가 된다.
   
   당대에는 동아시아 제철 선진국이었던 가락국 역시 정확히 같은 궤도를 밟았다.
   
   아래 왼쪽 그래프는 기원전 2000년에서 서기 2000년까지의 지구 평균기온 변화 그래프이며, 이 중 사각형으로 표시된 시기, 즉 기원 원년부터 서기 650년 무렵까지의 동아시아 평균기온 변화 그래프가 오른쪽에 표시되어 있다. 기원 원년 직전에 대단히 기온이 높은 시기가 있었고, 그 다음 한동안 전반적으로 기온이 낮아졌다가, 서기 550년무렵부터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왼쪽)기원전 2000년에서 서기 20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 변화 그래프, (오른쪽)기원 원년부터 서기 650년까지 동아시아 평균기온 변화 그래프. 가락국이 우한에서 철수한 서기 200년부터 전기 가야연맹 와해를 거쳐 가야가 멸망, 신라에 복속되기까지 약 360년 간은 대체로 기온이 낮은 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본 그래프 출처: Yang Liu & Jingyun Zheng, 중국과학원 대기물리학연구소. 재구성: 이진아

   이제 이 그래프를 가야의 역사와 대조해보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늠해보자.
   
   로마 기후 최적 온난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부여에서 내려온 제철 집단이 낙동강 하구 지역을 기반으로 소국들을 건국했다. 가락국(금관가야)을 비롯한 전기 가야연맹 원년 멤버들이다. 가락국은 김해의 삼림 인접지대에서 제철을 시작, 오래 전부터 형성된 한반도 남해안-서해안-중국 교역로를 통해 철기를 판매했다.
   
   애당초 김해 배후지에서 채산성이 맞는 삼림은 가야의 야망으로 봐서는 턱없이 부족했을 테다. 터도 넓은 편이 아니고 급경사 산지였기 때문이다. 쓸만한 목재를 다 소진하자 가락국은 이전부터 교역 관계를 맺어왔던 중국 우한 일대로 진출했을 것이다. 그 시기가 기원전 57년보다 약간 먼저였다는 것은 이 시리즈에서 박창범 교수의 고대 천문관측 지도 컴퓨터 분석 및 관련 자료를 통해 확인했다.
   
   하지만 거의 그 시점부터 기후는 서서히 한랭기에 접어들기 시작한다. 가야의 제철기지는 우한 일대 중에서도 산림에 인접해 있어 전통적으로 제철 및 제동(製銅)이 활발했던 현재의 황시 시 인근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광활한 산지로 이어지는 곳이지만 그렇더라도 너무 경사가 급하거나 원주민의 반발이 심하거나 등등 여러 요인이 있어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은 한정되어 있다. 빠른 속도로 나무가 잘려나가면 회복이 어려워서 결국 쓸만한 삼림이 거의 남지않아 제철 작업이 어렵게 된다.
   
   그와 함께 중국 내부의 정세 변화가 있어서 새로운 강자 집단이 이 지역을 노린다면, 가락국으로 봐서는 손을 털고 나오는 게 최선의 전략이었을 테다. 그렇다고 해서 제철을 포기할 순 없다. 지척에 있으나 순항의 항로 확보가 어려워서 그리 왕래가 잦지 않았던 지역, 일본의 규슈로 진출하려는 시도를 본격적으로 하게 된다. 서기 200년을 전후한 때의 일이다. 한랭기로 접어든 시점이지만, 기후가 더 따뜻하고 그때까지 본격적인 제철작업이 없었던 일본 규슈의 산지에는 그 시점에 충분한 삼림이 남아 있었다.
   
   이 움직임을 일으키는 환경변화와 그에 맞물린 경제활동 양상 변화에 대한 사항은 역사서에 명료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역사기록자들의 의식 속에는 대부분, 그런 변화에서 파생된 정치적 변동과 그에 의해 형성된 이데올로기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까. 기록되어 있는 것은 주로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논리들이다. 적(敵) 집단, 혹은 악(惡)한 행동을 명시하고, 대중들에게서 그 적/악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 일으키며, 자기가 속한 집단의 주요 리더들은 이에 맞서 싸우는 숭고한 사람들로 그린다.
   
   가락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서도 얼마 전부터 밝혀지기 시작한 일본 정사 기록 중에 꽤 소상히 나와 있다. (현대 일본에서 자국의 고대사가 오랫동안 연구 금단 영역이어서 1990년대 와서야 밝혀지기 시작한 내용들이다.) 모두 누가 어디를 점령하고, 언제 누가 어디로 사신을 보내고 하는 정치적인 사건 얘기들뿐이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방대한 데이터가 축적되어, 그걸 바탕으로 과거의 역사를 재해석할 수 있는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그 모든 게 먹고 살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것을. 그 노력의 와중에 대립하기도 하고, 실리를 따져 연대하기도 하며, 거기 따른 정서적인 변화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것을. 그래서 싸우고 편들고 나누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인간드라마가 펼쳐진다는 사실을.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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