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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1호] 202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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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인류사]규슈의 가락인 석상은 왜 얼굴이 사라졌을까

이진아  환경생명저술가  2021-01-12 오전 9:04:20

▲ 홋카이도 나카돈베츠 종유동 입구 모습 출처: Wikimedia Commons
갑자기 길이 끊어지며 웬 종유동굴 하나가 검은 입을 떡 벌린 모습으로 버티고 있었다… 겁도 없이 손전등 하나에 의지하여 컴컴한 어둠을 헤치고 동굴 속으로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것 같은 쭈뼛함이 들어 전방을 자세히 살펴보니… 저건 분명 사람의 형상이 아닌가. 가까이 다가서자 인물상은 두 손을 모은 단정한 자세로 뜻하지 않은 외부인을 묵묵히 맞고 있었다.
   
   … 놀라운 사실은, 종유동과 돌기둥은 석회석인데 비해 인물상은 화강암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그 모습은… 그리스 석고상과 비교해도 좋을 만큼 기법이 정교했다. 머리에 쓴 관은 오갈 데 없는 고깔모자, 변관(弁冠)이었고, 두 손은 각각 좁은 옷소매 속에 깍지를 낀 듯 모으고 있었다. 이제까지 보아온 일본의 인물상과는 전혀 달랐다. 희한한 것은 이뿐이 아니었다. 우물처럼 움푹 파인 뒷벽에는 붉게 녹슨 쇠똬리가 신주단지처럼 안치되어 있었다.
   
   … 강렬한 호기심이 일었다. 대체 이들이 산중 이곳에 놓여진 곡절은 무엇인가… 혹시 그 옛날 비미호 여왕이 누렸던 철기 문명의 내력을 암시하는 증거물일까.
   
   
▲ 야쯔시로 시(市)의 위치. 인구 약 13만의 소도시로, 높고 광활한 구마모토 산지와 깊숙이 들어온 만(灣) 사이에 형성된 평야 지대가 중심이다. 고대 제철 기지로서 최적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왼쪽 지도 원본 출처: d-maps.com, 가운데 및 오른쪽 지도 원본 출처: Wikimedia Commons, 재구성: 이진아

   포운 이종기 선생의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의 한 대목이다. 1975년 일본 규슈 구마모토 현 야쯔시로 시를 탐사하는 여정의 일부다. 그는 그때까지 전래동화 소재거리 정도로 간주되어 왔던 ‘삼국유사’의 상징적 사실성에 주목한 최초의 현대 지식인이다. 그는 삼국유사야말로 오랜 세월 축소‧왜곡되어 온 한반도의 역사를 되살리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삼국유사에 나온 지명과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임을 확인하기 위한 외로운, 그러나 열정에 찬 탐사를 26년 동안 이어갔다.
   
   이종기 선생은 특히 ‘가락국기’를 중시하여, 수로왕의 왕후가 ‘아유타야국’에서 왔다는 기록이 사실일 것으로 보았다. 해외여행이 거의 불가능했던 1970년대 초, 인도 펜클럽(PEN Club)의 초청으로 뭄바이에 가서 현지 역사학자들과 인도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교류에 대해 교감하는 세미나를 갖는다. 이어 갠지즈 강가의 고대 도시 아요디아까지 가서 수로왕릉에 있는 것과 비슷한 ‘쌍어문”을 최초로 확인하기도 했다.
   
   
▲ (왼쪽) 뭄바이에서 가야-아요디아 교류에 관한 강연을 하는 포운 이종기 선생. (가운데) 수로왕릉 벽화의 일부인 쌍어문. 출처: 김해시 공식 블로그, (오른쪽) 인도 아요디아 시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쌍어문. 출처: theurgetowander.com

   또한 수로왕후의 뱃길이 일본에까지 이어졌으리라는 추정에서 출발,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말까지 야쯔시로 시 일대를 발로 뛰며 가야의 흔적을 찾았다. 그 결과 일본 최초의 고대국가인 야마이 국의 건국자이며 일본의 개국시조로 숭상되는 ‘히미코(卑彌呼)’ 여왕은 가야에서 건너간 수로왕의 공주라고 확신하게 됐다.
   
   위에서 묘사한 장면은 그가 야쯔시로 시내 북쪽을 탐사하러 가다가 우연히 ‘궁(宮)’자가 들어간 ‘미야바라(宮原)’이라는 도로표지판에 꽂혀, 운명처럼 주어지는 실마리를 더듬어 가다가 발견한 고대 제철 작업장의 흔적 이야기다. 책에 묘사된 것을 따라 구글맵을 찾아보면, 그의 탐사로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우연히 마주친 신사(‘가와하라 다이진구(河原大神宮)’인 것으로 확인된다)에서 만난 노파가 신상(神像)이 있다고 한 동굴을 찾아, 신사 바로 뒤에서 시작되는 울창한 숲으로 들어간다. 책에 나온 대로 능선을 따라 오른쪽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가면, 그가 하마터면 추락할 뻔했던 강가 절벽으로 이어진다. 위에 인용한 대목은 그 절벽 앞에서 발견한 석회암 동굴 안에서의 장면이다. 동굴 안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보자.
   
   
▲ 야쯔시로 시 소재 가와하라 다이진구 신사 및 가야의 제철 작업장으로 추정되는 동굴의 위치. 왼쪽 지도 원본: d-maps.com, 가운데 지도 및 오른쪽 사진 원본: google map, 재구성: 이진아

   우선 한밤중에 동굴을 찾아온 그를 맞이한 석상. 석회암 동굴 안에 있는 화강암 석상이란 누군가가 멀리 떨어진 외지에서 운반해온 것임을 말해준다. 일본에선 화강암이 흔하지 않다. 현재 도쿄 시내 중심가의 관청 거리인 카스미가세키의 건물들은 화강암으로 외벽이 싸여 있지만, 그 화강암 판석은 한국으로부터 수입한 것이다. 화강암은 한반도에서 제일 흔한 돌이기 때문이다.
   
   양 손을 모아 좁은 옷소매에 넣은 단정한 모습. 당시 일본에 살고 있었던 사람의 복식에 대해서는 중국 진수의 ‘삼국지’에 기록되어 있다. 바느질을 거의 하지 않고 양쪽 옆구리가 트여 있었다고 하니 인도나 동남아시아의 전통 복장과 비슷했을 것이다. 반면 이 석상의 복식은 좁은 옷소매에 잘 여며져 있다. 북방문화의 영향이 분명하다.
   
   ‘변관’, 즉 고깔모자는 가야의 옛 명칭, 변한의 아이콘이라 할 만하다. 변한의 ‘변’자 자체가 ‘고깔모자’를 뜻하는 글자다. 진수의 삼국지에는 변한 사람들은 머리 위가 납작하고 관리들은 고깔모자를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좁은 옷소매와 고깔모자만으로도, 그 석상은 가야에서 온, 아마도 지위가 높은 인물을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포운 선생은 수로왕의 왕자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석상 뒤쪽으로 둥글고 깊게 파인 부분이 있어, 거기에 붉게 녹슨 쇠뭉치가 또아리처럼 말아져 있었다고 했다. 가야인에 분명한 이 석상이 ‘철’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말해주는 결정적인 증거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볼 수 없다. 동굴을 발견한 첫 탐사 후 4년이 지나 그가 다시 찾아갔을 때는 쇠뭉치는 사라지고 없었다고 한다.
   
   바뀐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석상도, 특히 제일 정교한 부분이었던 얼굴이 상당히 훼손되었다고 한다. (바뀌기 전후 사진으로 봐서는, 얼굴 부분에 시멘트를 덧칠한 것처럼 보인다. 마치 누군가가 동굴 안에서 자신들이 벌이는 일을 보지 못하게 석상에 복면을 씌우기나 한 것처럼.)
   
   인적이 드문 산 한 가운데 동굴 속, 1500년 이상 원래 모습을 보전하고 있었던 석상이다. 4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왜 그렇게 모습이 바뀌었을까?
   
   
▲ (사진 1-1) 포운 선생이 1975년 탐사 때 찍은 야쯔시로 시 동굴 안 석상 사진. 흑백사진을 다시 흑백 인쇄하고 그것을 스캔한 것이라 화질이 좋지 않지만, 얼굴의 입체감 등으로 보아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출처: 이종기, 가락국탐사(1977) (사진 1-2) 앞과 동일한 석상 사진으로, 4년 뒤인 1979년 탐사 때 찍은 것. 출처: 이종기,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2006) (사진 2) 경남 하동 칠불사 소재 석상. 출처: 이종기, 駕洛国の栄光(가락국의 영광)(1995) (사진 3). 일본 규슈 후쿠오카 현 야메시 소재 고분에서 발견된 고대 일본의 무사 석상. 출처: 퍼블릭 도메인 *가락국의 인물상인 1과 2는 인물 표현 방식이 유사하지만, 일본의 고대 인물상인 3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리즈에서는 이전 글까지 여러 회에 걸쳐 가락국-중국 넥서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거기 대해서는 박창범 교수의 컴퓨터 지도가 내놓은 화두 외에는 자료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에서는 그 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다양한 간접적인 자료와 그들을 하나로 엮는 논리를 되도록 치밀하게 동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락국-일본 관계에 대해서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많은 선학 및 동학들 덕분이다. 대신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스토리 중심으로 풀어갈까 한다. 그렇게 하는 데 있어서 포운 선생의 규슈 옛 가야 활동 현장 좌충우돌 탐사기인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만큼 좋은 발판은 없는 것 같다. 구마모토 야쯔시로 일대에서 출발, 일본 열도에 막강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야의 흔적을 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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