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받아 숨진 것으로 알려진 정인이 양부모에 대한 첫 재판이 열린 지난 1월 13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앞에서 양모 장씨가 탄 것으로 추정되는 호송차량을 향해 시민들이 항의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학대받아 숨진 것으로 알려진 정인이 양부모에 대한 첫 재판이 열린 지난 1월 13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앞에서 양모 장씨가 탄 것으로 추정되는 호송차량을 향해 시민들이 항의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논란 끝에 검찰은 정인이 양모에 대해 살인죄를 적용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아동학대치사죄로만 기소했는데, 담당 검사는 지난 1월 13일 정인이 양모에 대한 첫 공판에서 살인죄를 추가했다. 1차적으로는 살인죄가, 2차적으로는 아동학대치사죄가 적용되도록 법원에 공소장 변경신청을 했다.

검사는 가해자인 장모씨가 지속적인 폭행으로 인해 몸이 약해진 피해아동에게 또다시 폭행을 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밥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격분하여 복부를 발로 밟아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고 주장했다. 가해자 장모씨에게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장모씨의 변호인은 아동학대와 방임, 유기 등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발로 밟은 점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이에 따라 살인의 고의도 있을 수 없었다고 맞서고 있다.

살인죄·아동학대치사죄의 형량 차이

살인죄는 고의범인 반면, 아동학대치사죄는 과실범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형량도 큰 차이가 있다. 아동학대치사죄의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반면, 살인죄의 경우 사형도 가능하다. 실제 양형기준을 들여다보면 차이는 더 커진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의하면 아동학대치사의 경우 기본적으로 4~7년 정도의 징역이 선고되는 반면, 살인의 경우 기본적으로 10~16년 정도의 징역이 선고된다. 개별 사건의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형량은 다를 수 있겠지만, 통상적으로 보면 위와 같이 매우 큰 차이가 있다.

그럼 살인죄냐, 아동학대치사죄냐를 가르는 기준은 뭘까. 그 갈림길은 살인의 고의 인정 여부에 있다. 장모씨가 처음부터 정인이를 살해할 목적으로 때린 것인지, 처음부터 죽일 생각은 아니었지만, 때리다 보니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그럼에도 계속 때렸는지, 아니면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조차 못한 것인지에 따라 적용 법조가 달라진다. 살해의 계획이 있었다거나, 칼이나 총기 등과 같은 흉기를 사용하지 않은 이상 처음부터 살해할 의도,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장모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나?’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법원은 ‘미필적 고의’가 있는 경우에도 살인죄를 인정하고 있다.

즉 대법원에서는 ‘미필적 고의라 함은 결과의 발생이 불확실한 경우, 즉 행위자에 있어서 그 결과발생에 대한 확실한 예견은 없으나 그 가능성은 인정하는 것으로, 이러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하려면 결과발생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있음은 물론 나아가 결과발생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음을 요한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1987. 2. 10. 선고 86도2338 판결)

다소 어렵게 설명되어 있지만, 사례로 살펴보면 이해하기 쉽다. 차량 접촉사고로 시비가 붙어 손바닥으로 한 대 때렸는데 피해자가 뇌출혈로 사망했다고 생각해 보자. 손바닥으로 한 대 때린다고 죽을 수 있다는 점을 예견하기도 어렵고, 한 대 때릴 때 ‘네가 죽어도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을 하기는 어렵다. 이 경우에는 고의로 사람을 죽인 것이라 보기 어려워 살인죄가 아닌 폭행치사죄가 성립한다. 반면 조직폭력배 사이에 패싸움이 붙었는데, 가해자가 피해자를 주먹으로 수십 차례 때렸고, 그 자리에서 피해자가 과다출혈로 사망했다고 생각해 보자. ‘이렇게 때리다 보면 죽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지, 어쩔 수 없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처음부터 사람을 죽이려고 때린 것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어 폭행치사죄가 아니라 살인죄가 성립한다.

미필적 고의 인정된 사례는?

미성년자의 손발을 노끈으로 묶고 얼굴에 모포를 씌워 감금한 사건에서, 법원은 가해자가 피해아동이 탈진한 것을 확인하여 그대로 두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피해아동을 병원에 옮기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 점을 근거로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한 바 있다. 이외에 피해자의 하반신을 불구로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피해자의 허벅지, 종아리 등을 20회가량 칼로 찔러 피해자가 과다출혈로 사망한 사건, 시비가 붙어 홧김에 길가에 나와 있던 다른 차량 운전자에게 차로 돌진하여 사망하게 한 사건에서도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여 살인죄를 적용한 사례가 있다.

정인이 학대 사망 사건과 매우 유사한 울산 계모 사건에서도 계모에게 ‘살인죄’를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상해치사죄’를 적용할 것인지 큰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이 사건에서 계모는 2009년부터 피해아동을 양육해왔는데, 잘못된 버릇을 고친다는 등 갖가지 명목과 핑계를 들어 수시로 어린 피해자가 감당하기 힘든 폭력을 행사해왔다. 사건이 벌어진 2013년 10월 24일 오전 8시40분경, 계모는 피해아동(당시 7세)이 소풍을 가기 위하여 식탁 위에 놓아둔 현금 2300원 상당을 훔치고도 또다시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순간 격분하여 같은 날 오전 9시15분까지 약 35분 동안 주먹으로 피해자 머리 부위를 때렸다. 또 발로는 피해자의 양쪽 옆구리, 배 부위 등 전신을 닥치는 대로 때렸다. 이후 같은 날 9시45분경 피해아동이 계모에게 “미안해요 엄마, 소풍을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자 피해아동이 물건을 훔치고도 반성하지 않고 단지 소풍을 가고 싶어서 변명을 한다는 이유로 재차 격분하여 주먹과 발로 피해아동의 머리, 옆구리 부위 등을 다시 때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피해아동이 비명을 지르면서 주저앉는 등 고통을 호소했는데도 피해아동의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죽을 지경에 이를 때까지 약 20분 동안 주먹과 발로 머리, 옆구리, 배 등 급소를 포함한 신체 주요 부위를 무차별적으로 때렸다. 결국 피해아동은 오전 11시경 현장에서 흉부손상으로 인한 다발성 늑골골절 및 양 폐 파열로 사망했다. 피해아동은 사망 당시 만 7세의 여아로 키 123㎝, 몸무게 20㎏에 불과했다. 부검 결과 흉부손상으로 늑골 16개 부위가 부러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1·2심 판결 달랐던 울산 계모 사건

당시 검사는 위와 같은 정황을 바탕으로 계모를 살인죄로 기소했다. 그런데 1심에서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가 인정되어 징역 15년이 선고되었다. 1심 법원은 계모가 살인의 고의를 부인했다는 점, 평소 훈육 과정에서도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해 왔는데 사건 당일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아 갑자기 살해의 고의가 생겼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2심 법원은 이를 뒤집고 상해치사죄가 아닌 살인죄를 적용하여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1차 폭행으로 인해 피해아동의 얼굴에 핏기가 없고 창백해 보였으나, 계모는 피해아동을 앉힌 후 다시 온 힘을 다해 주먹으로 피해자의 머리를 때리고 발로 피해자의 다리, 옆구리, 배 부분을 세게 수차례 찼다는 점이 근거였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악 악 악’ 하는 비명을 질렀다는 점, 피해아동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음에도 구호조치는커녕 더욱 흥분하여 피해자에게 계속적인 폭행을 가하였고,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한 피해자가 바닥에 주저앉으며 쓰러지자 그제야 폭행을 멈춘 것으로 보인다는 점 등도 근거로 삼았다. 2심 법원은 계모가 폭행 과정에서 피해아동의 사망이라는 결과발생을 충분히 인식 또는 예견하였고, 나아가 미필적으로나마 그 결과발생을 용인한 사실이 넉넉히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정재욱 변호사ㆍ법무법인 주원 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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