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고 정인 양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두고 간 선물들. ⓒphoto 뉴시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고 정인 양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두고 간 선물들. ⓒphoto 뉴시스

#1 피고인은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는 이유로 7세 남아와 6세 여아를 알몸 상태로 서게 한 후 골프채로 수회 때려 온몸에 멍이 들게 했다. 밥을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건을 입에 물게 한 뒤 1m 상당의 알루미늄 재질의 아동용 목발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수차례 때리기도 했다. 주먹으론 얼굴도 가격했다. (울산지법 2020고단1676)

#2 새벽 4시경 잠자는 12세의 남아와 14세 남아를 깨웠다. 문제를 내고 1문제 틀릴 때마다 10대씩 때린다고 엄포를 내렸고 실제 문제를 틀리자 알루미늄 재질로 된 밀걸레로 아동의 엉덩이를 약 50대 때렸다. 손바닥으론 아동의 뺨을 약 5대 때렸다. 아이들의 유튜브 시청, 피시방 방문, 인스턴트 섭취 등이 학대의 이유였다. (광주지법 2020고단333)

#3 술에 취한 상태로 11세 남아의 왼쪽 뺨과 목 부위를 때리고 8세 남아의 목을 졸랐다. 이유는 없었다. (전주지법 2020고단847)

정인이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밥을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단지 문제를 틀렸다는 이유로, 때로는 이유도 모른 채 부모에게 학대당하는 아이들이 말이다. 부모의 지속된 폭력에 고통받다 하늘나라로 간 16개월 아이 ‘정인이’ 사건에 온 사회가 분노하고 있던 사이, 정인이보다 더 가까이에 있던 아이들은 곳곳에서 시름하고 있었다. 전국 지방법원이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다룬 아동복지법 위반 사건 등을 보면 최소 16명에 이르는 아동의 부모가 법적 판결을 받았다. 개별 판결문에 적시된 부모이자 피고인의 학대 행위는 혹독했고, 다분히 악의적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계속됐다. 법원이 이들에게 내린 벌은 가벼웠다. 짧게는 징역 6개월, 길게는 징역 2년을 선고한 후 1~2년간 집행을 유예했다. 학대 부모의 교화를 위한 조치는 아동학대 재범 예방 강의 수강, 사회봉사 등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학대는 가혹했지만 피해아동과 부모 등에 대한 사회적 지원,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아동 던짐’ 등 무자비 행위 매년 집계

주변에 제2, 제3의 정인이가 있을 수 있다는 국내 아동학대 실태는 관련 통계 수치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통계청·보건복지부가 매년 집계하는 아동학대 관련 통계에 따르면 학대 사례는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하고 있었다. 특히 신체학대는 물론이고 정서학대, 방임, 거기에 성학대까지 다양한 유형의 학대가 중복해 발생하면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었다. 2011년 2621건을 기록했던 중복학대는 2019년 1만4476건으로 급증했다.

신체학대는 앞선 사례처럼 해를 거듭할수록 가혹해졌다. 2014년 기준 신체학대 행위 현황에 따르면 손발로 아동을 때리는 학대(43.1%·3902건)가 가장 빈번했다. 그다음으론 도구를 활용한 학대(38.3%·3471건)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도구를 활용한 학대 비중은 4년 사이 4%포인트 늘었다. 아동에게 물건을 던지는 행위(2014년 기준 427건), 세게 흔듦(238건), 조름 또는 비틂(198건) 등의 행위도 같은 기간 100건 이상씩 늘었다. 눈여겨볼 점은 아동 던짐(2014년 기준 124건), 흉기로 찌름(41건), 물건으로 화상 입힘(14건) 등의 무자비한 행위도 매년 적지 않게 집계됐다는 점이다.

이로 인한 아동들의 외상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2011년 41.9%(1131건)에 불과했던 외상 비중은 2014년 46.3%(2938건)로 늘었다. 멍듦(1909건), 찢김(375건), 부종(224건), 골절(53건), 호흡곤란·기절(10건) 등의 피해도 2014년 기준으로 적지 않게 나타났다. 김미숙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사는 “2015년 이후의 신체학대 현황은 집계되지 않았지만 정인이 사건 때도 그렇고 아동학대의 잔혹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라며 “가해자가 학대에 점차 무뎌지고 외부 부적절 콘텐츠 등을 접한 이후 행해진 모방 학대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체학대가 늘어나면서 사망하는 아동의 수도 늘었다. 연도별 아동학대 사망 사례 발생 현황에 따르면 사망아동 인원은 2015년 16명에서 2019년 42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접수된 사례를 근거로 집계한 수치로 수사기관을 통해 신고·진행한 사건까지 고려하면 사망아동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다수 피해아동·학대자, 기존 가정으로 복귀

연도별 신고·접수 현황에 따르면 아동학대 신고·접수 총계는 2015년 1만9214건에서 2019년 4만1389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추계 아동 인구 1000명 기준으로 산출하는 연도별 피해아동 발견율도 꾸준히 증가했다. 2015년 1.32명을 기록했던 피해아동 발견율은 3.81명으로 늘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학대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학대라 여기지 않던 행위들을 학대로 간주하고 신고하는 경향이 늘어난 것”이라며 “여기엔 학대 의심 신고자에 대한 보호,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이 강화된 측면도 있다”라고 분석했다. 동일 학대 내용에 대한 중복 신고 건수가 2015년 87건에서 2019년 449건으로 늘어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문제는 이런 아동학대 신고·발견 이후에 이뤄지는 ‘대응’에 있다. 대다수의 학대행위자들은 별다른 제재 없이 유관기관의 ‘지속 관찰’ 명령과 함께 가정으로 복귀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학대행위자 최종조치 결과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지속 관찰 비중은 전체의 62.9%(1만4075건)였다. 고소·고발에 따른 사건 처리 비중은 32.6%(7297건)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아동과의 분리조치(2.1%·484건) 혹은 행위자를 만나지 못해 종결(2.2%·511건)하는 식이었다. 김미숙 박사는 “정인이 사건 때도 학대 의심 신고는 3번이나 있었지만 실제 대응이 이뤄지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렸다. 이런 식의 대응 미비가 아동학대 처리에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소·고발로 형사처벌을 내렸다 해도 그 수준은 미약했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1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비중은 전체 피고인 220명 중 15%에 불과했다. 대다수는 집행유예(43.6%)를 받거나 벌금형(17.7%)에 그쳤다. 법적 처벌이 가벼우니 아동학대를 심각한 범죄로 받아들이지 않는 거란 사회적 지탄이 나오는 이유다.

부모 및 가족 보호·교육 서비스 저조

그렇다고 학대행위자나 피해아동, 피해아동의 가족을 대상으로 사회적 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되는 것도 아니었다. 아동보호 전문기관 등에선 피해아동의 학대 후유증 극복, 학대행위자의 교화, 피해아동 가족의 가족기능 강화를 목표로 다양한 교육·의료·심리 지원 프로그램 등을 운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방지 측면에서 이 같은 제도 확대가 처벌 강화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본다.

2019년 기준 대다수 학대행위자와 피해아동, 아동의 가족들은 이런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아동의 65%(35만9033명), 행위자의 70%(18만2079명), 부모·가족의 76.5%(11만583명)가 ‘일반 상담’을 받는 것으로 그쳤다. 의료 지원, 심리치료 지원, 가족기능 강화, 학습 및 보호 지원 등의 실질적인 서비스 제공 비중은 전체의 10%를 겨우 웃돌거나 그 이하였다. 박명숙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여기서 상담은 전화 상담도 포함한다. 개선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학대 현장에 노출됐던 학대아동의 형제·자매들도 이미 학대를 받은 거나 다름없어 이 같은 심리치료 지원 서비스를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는데 국내에선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학대행위자의 경우 대부분이 학대아동의 보호자인 부모라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교육도 중요하다. 하지만 법적으로 이를 강제할 수 없어 대다수 학대행위자는 관련 서비스에 참여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아동의 대다수는 기존 가정으로 복귀됐고 재학대 사례는 매년 늘었다. 2019년 기준 피해아동 상황에 따르면 전체 피해아동의 83.9%(2만5206명)가 원가정으로 복귀해 보호됐다. 12.2%(3669명)는 분리조치, 3.3%(989명)는 분리조치 됐다가 다시 가정으로 복귀했다. 박명숙 교수는 “아동이 자신의 가정에서 성장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원가정 보호는 아동복지에서 중요 원칙 중 하나로 거론되지만 이는 앞서 이야기된 서비스 등으로 가정 내 학대 위험요인이 제거된 뒤에 이뤄져야 한다. 국내의 원가정 복귀는 이런 조치 없이 그냥 행해진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 위험요인이 상존하는 가정으로 복귀한 아이들은 또다시 학대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2017년 재학대 사례 건수는 2160건, 재학대 아동수는 1859명을 기록했다. 아동학대 사례 중 재학대 사례 비율은 9.7%였다. 2019년 이는 각각 3431건에 2776명, 11.4%로 늘었다. 2011년만 해도 재학대 사례 건수는 563건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에 대한 차등적 대응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아동학대는 아이를 잘 키우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한 번 발생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 인지하지 못하는 위험요인이 내외부적인 스트레스 등과 결합하면서 큰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며 때리는 식으로 학대 행위가 나타난다. 때문에 학대 수준에 따라 적정 서비스를 지원하는 식의 체계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학대의 정도, 아동과 부모의 관계, 부모의 사회·경제적 상황 등을 고려해 가정마다 서로 다른 교육·심리 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공공기관 인력 비중이 높은 데다 아동학대 관련 예산 지원 규모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1명의 공공 인력이 한 달 평균 6건의 아동학대 사례를 담당한다. 예산은 학대아동 1인당 397달러(약 43만원)가 배정되는 규모다. 우리나라 공공 인력 1명이 14건의 사례를 처리하고 아동 1인에게 2064원이 배정되는 것과는 대비된다. 박 교수는 “인력과 예산이 확보되지 않는 한 제2의 정인이는 지속해서 속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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