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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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처음 만나 연인이 된 심모(남·30)씨와 김모(여·29)씨는 재작년 11월 서울 용산구의 한 예식장에서 결혼식 날짜를 잡을 때만 해도 설렘으로 가득 찼다. 1년간의 동거 끝에 약속한 결혼이었다. 많은 이들의 박수갈채와 환호 속에서 혼인을 서약할 거란 기대감에 가슴이 벅찼다. 이들이 계획한 신혼여행지는 인도양에 위치한 섬나라 ‘몰디브’. 연애 때부터 꼭 한번 가기를 소망했던 곳이었다. 자연이 어우러진 휴양지에서 앞으로의 부부생활을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지난해 초 예상치도 못했던 코로나19가 터졌고, 심씨와 김씨의 로망은 조금씩 무너져내렸다. 김씨는 “지난해 4월 야외 웨딩 촬영을 했을 때만 해도 ‘그래도 나아지겠지’란 생각이었다. 하지만 2차, 3차 대유행이 발생했고 마음은 나날이 무거워졌다”라고 말했다. 머릿속으로 결혼만 떠올려도 눈물이 날 것만 같던 기쁨과 두근거림은 걱정으로 뒤바뀌었고, 매일 아침 뉴스로 접하는 신규 확진자 수는 둘의 마음을 짓눌렀다.

심씨와 김씨는 결국 2020년 9월 12일로 계획했던 결혼식을 2021년 1월 9일로 미뤘다. 시간대는 낮 12시에서 저녁 6시로 변경해야만 했다. 그 사이 일일 신규 확진자는 1000명을 웃돌았다. 주변에선 결혼 준비를 다 해놓곤 신랑·신부가 코로나19 확진자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아예 식을 취소하는 사태 등도 발생했다. 심씨는 “처음엔 결혼식을 원하는 대로 진행하지 못하는 거에 대한 불만이 컸다. 근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젠 식만이라도 올리면 감사하겠다’는 마음이 들더라”라고 했다.

이들이 식을 올리던 1월 9일은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발효된 시기였다. 웨딩홀 인원은 50인 미만으로 제한됐다. 식을 직접 볼 수 있는 메인홀 한 곳과 생중계 스크린 영상으로 이를 지켜봐야 하는 서브홀 2~3곳으로 인원을 49명씩 나눠 배치해야만 했다. 식장 측에 “최소 하객 인원을 300명에서 150명으로 줄이겠다”고 통보했다. 지인들에게 청첩장을 돌리는 것 자체가 미안한 일이었다. 식을 일주일 앞둔 주말까지 양가 부모·친척, 직장 동료, 친구들 이름을 열거하곤 누구를 어느 홀에 배치할지 골머리를 앓았다.

결혼식 당일 심씨와 김씨, 양가 부모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마스크를 착용했다. 김씨가 던진 부케는 인원 제한으로 사회자가 대신 받았다. 친구들과의 단체사진 촬영엔 고작 7명만 참여했다. 서브홀에 배치한 하객들은 식이 마무리될 때까지 만날 수 없었다. 김씨는 “표정을 알기 어려운 마스크 낀 가족, 지인들이 웨딩사진에 담겼다. 공간은 넓은데 인원이 적어 식 중간중간마다 적막감도 느껴졌다”며 “코로나19가 기존에 떠올리던 결혼식의 모습을 적지 않게 바꿨다”라고 말했다.

예식장 폐업에 결혼식 3번이나 미뤄

이들 부부의 결혼식은 지난해 코로나19를 감내하며 식을 치러야 했던 대다수 신혼부부의 결혼식 풍경이기도 했다. 코로나19 시대, 원하는 날짜에 주변 지인들과 지극히 평범한 결혼을 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19일 서울 강남구의 한 예식장에서 식을 올렸던 최모씨의 경우 하객들에게 식사조차 제대로 제공할 수 없었다. 메인홀로 초대받지 못한 하객들은 인사만 하고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최씨는 “식사도 못 하는데 식을 끝까지 지켜보라 하기도 힘들었다. ‘감정적 거리두기’를 하며 접했던 남의 사연을 내가 경험하게 되더라”며 “소셜미디어인 네이버 ‘밴드’를 통해 실시간으로 결혼식 영상을 참관하는 창구를 만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당시 동시 접속 인원은 약 40명이었다.

지난 1월 23일에 경기도 부천에서 결혼을 진행한 유모씨는 결혼식 날짜만 3번이나 바꿨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날짜를 한 차례 미뤘는데, 해당 예식장이 폐업을 하면서 식장을 다시 잡아 처음부터 다시 준비를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외부 사진작가 등과 날짜를 재조율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예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회원사 예식장인 140곳 중 17곳이 폐업했다. 올해 1월 들어 두 곳이 추가로 문을 닫았다. 하객 수가 줄면 예식장 매출이 저하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곧바로 예식장 영업타격으로 이어졌다. 그에 따른 피해 고객 중 한 명이 김씨였던 셈이다.

김선진 한국예식업중앙회 사무국장은 “요즘 예식장들 대다수가 대관료를 받지 않고 하객들 연회비로 매출을 올린다. 근데 코로나19 확산으로 하객 수가 줄어드니 식장들도 살아남기 어려워졌다. 식장들은 식이 한 건이라도 예정돼 있으면 공장처럼 문을 닫거나 인력을 자르기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임대료, 인건비, 관리비 등을 포함한 예식장 월평균 고정비용은 적게는 1억원, 많게는 2억5000만원인데 지난해 예식업중앙회 회원 예식장들의 한 달 평균 매출은 많아야 5000만원 안팎에 불과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1월을 제외하고 매월 전년 동월 대비 적게는 1.0%, 많게는 21.8%씩 줄었다. 2019년 혼인건수는 약 23만건이다. 2020년 1~11월 누적 혼인 건수는 20만건에 조금 못 미치고 있다. 업계에선 소규모 소상공인으로 분류되는 이른바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관련 업체들의 도산도 적지 않을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서울의 한 예식장. 메인홀 참석 인원 제한으로 입장이 통제된 하객들이 홀 밖에서 식을 관람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서울의 한 예식장. 메인홀 참석 인원 제한으로 입장이 통제된 하객들이 홀 밖에서 식을 관람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절감한 신혼여행 비용, 혼수에 투자

코로나19 시대 신혼여행은 1990년대로 회귀했다. 당초 계획했던 신혼여행지들은 불가피하게 부산, 강원도, 제주도 등으로 바뀌었다. 앞서 이씨의 경우 당초 유럽의 파리, 이탈리아, 스위스 등을 갔다 올 예정이었으나 입국 제한으로 부산으로 여행지를 틀어야 했다. 최씨는 차일피일 미뤄왔던 신혼여행을 결국 오는 4월 제주도로 가기로 결정했다. 웨딩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신혼여행지로 해외가 각광받던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90년대 해외여행이 활성화되면서부터다”라며 “2000년대 들어선 아프리카 모리셔스, 멕시코 칸쿤, 몰디브 등 멀리 있는 타지를 여행지로 삼는 경우가 늘었는데 코로나19 확산으로 이 모든 것이 과거로 돌아간 셈”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지난해 초 웨딩 커뮤니티 등에선 이런 신혼여행지 세태를 두고 ‘상한가’라는 말이 나돌았다. ‘(신혼여행을) 상반기에 한국으로 가요’라는 의미다. 호텔들 사이에선 ‘스위트 허니문’ ‘마이 웨딩 데이’ ‘스위트 & 러브 패키지’ 등의 이름을 붙인 신혼부부 대상 기획 여행상품이 쏟아져 나왔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지난해 6월 제주신라 호텔 신혼부부 허니문 패키지 예약률이 3월과 비교했을 때 5배 이상 급증했고, 3박 이상 투숙객은 전체의 45%를 차지했다”며 “당시 제주도와 부산 지역 호텔에선 신혼부부 대상 마케팅을 다수 펼쳤다”라고 말했다.

신혼부부들은 신혼여행 목적지를 해외에서 국내로 바꾸며 결혼비용을 절감했고, 이를 여타 결혼 준비 과정에 투입하며 마음을 달랬다. 대표적인 게 ‘혼수 마련’이다. 오는 4월 10일 전북 지역에서 결혼을 앞둔 30대 여성 이모씨는 “신혼여행을 유럽이나 하와이로 갈 계획이었는데 이를 국내 여행지로 변경하자 1000만원을 웃도는 자금이 생기더라. 가전제품이나 가구 마련에 보충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집에서 휴식·여가·레저 등 다양한 경제활동을 하는 이른바 홈코노미(집을 뜻하는 ‘Home’과 경제의 ‘Economy’의 합성어) 현상이 아예 새로 집을 꾸려야 하는 신혼부부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거다.

이는 지난해 주요 가구·가전 기업들의 실적에 그대로 투영됐다. 국내 인테리어·가구업계 1위 기업인 한샘만 해도 지난해 3분기 누적 연결기준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9.9% 증가한 1조5153억원을 기록했다. 한샘 관계자는 “가구 외에도 집 리모델링에 집중하는 신혼들도 늘었다”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삼성전자 멤버십 혼수클럽 가입 고객 기준 삼성전자 디지털프라자 혼수 구매 고객 수가 전년 대비 약 80% 가까이 늘었다. 기업들은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혼수 박람회를 개최하거나 고급 가전·가구를 출시하는 등 영업 다변화를 현재까지 이어가는 중이다.

김창규 한국웨딩플래너협회 협회장은 “신혼부부들은 결혼 전체 예산은 동일하게 두고 그 안에서 비용별 밸런스를 맞춰왔다. 코로나19 직전까지 그 비중이 급격히 늘어난 건 신혼여행 비용이었다. 전체의 50%를 차지할 정도다. 근데 이게 모두 혼수 재원으로 뒤바뀌었다. 이는 기업 매출을 반등하게 만들 정도의 규모다”라고 설명했다.

가상현실(VR) 기기를 통해 서울 지역 웨딩홀을 체험·관람하는 모습. ⓒphoto 웨딩북
가상현실(VR) 기기를 통해 서울 지역 웨딩홀을 체험·관람하는 모습. ⓒphoto 웨딩북

늘어나는 온라인 결혼 준비

웨딩 관련 업체들은 코로나19가 결혼 풍경을 뒤바꾸기도 했지만, 곳곳에선 이것이 새 웨딩 트렌드의 변곡점을 만들고 있다고도 평한다. 온라인 및 비대면 결혼컨설팅의 부상이 그 일례다. 지난해 오프라인 박람회를 통해 고객을 유치하던 다수의 결혼컨설팅 업체는 고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IT를 기반으로 결혼 관련 정보를 공유해 왔던 결혼 준비 앱은 신혼부부들 사이에서 회자되곤 했다. 2015년 국내 최초로 출시된 결혼 준비 앱 ‘웨딩북’이 대표적이다. 이 앱은 휴대폰 하나만으로 식장 예약부터 스드메 준비, 사진·영상 촬영까지 모든 것을 단번에 준비할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무료로 제공한다. 고객 요구에 따라 제휴업체와의 계약도 주선한다.

지난해 웨딩북의 월평균 신규 가입자는 1만명이었다. 한 해 수도권 초혼 인구의 약 60%에 달하는 수치로 웨딩북은 코로나19 확산에도 꾸준한 고객 상담률을 유지했다. 웨딩북 관계자는 “물건, 음식, 인테리어, 부동산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온라인 주문·계약이 가능해 오던 터였다. 지난해 코로나19는 결혼산업까지 온라인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단초를 만들었다”며 “여기엔 과거와 다르게 결혼 관련 정보가 늘고 예비부부들이 굳이 박람회나 식장을 돌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한몫한다. 정해진 시간 안에 빠르게 결혼 상품을 비교·분석하려는 경향도 작용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웨딩북 오프라인 매장엔 가상현실(VR) 기기를 통해 서울 지역 웨딩홀 버진로드(식장 입구에서 단상까지 이어진 중앙 통로)를 걸으며 비교·체험해보고, 결혼식 수트를 직접 입어보지 않고도 그래픽상으로 스타일링할 수 있는 장치 등이 갖춰져 있다. 결혼산업이 점점 스마트화하고 있는 셈이다.

웨딩북 관계자는 “높아진 온라인 활용도와 정보 접근성은 결혼업체 중개를 넘어 결혼의 ‘스타일링’을 요구하는 수요를 늘릴 것”이라며 “미국의 웨딩 트렌드가 바로 그렇다”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가 앞당긴 ‘소규모·고급화’

업계에선 예식장 규모가 점점 작아지며 고급화될 거란 분석도 나온다. 이미 국내 혼인 건수와 하객 수가 줄어든 데 따른 예측이다. 앞서의 김창규 협회장은 “공동체, 대가족의 의미가 사라지면서 국내에선 코로나19 사태 전부터 소규모 결혼식이 조금씩 나타났다. 코로나19가 이를 가시적으로 앞당길 것”이라며 “식장들은 수익 창출을 위해 연회비용 등 하객별 객단가를 올려 결혼식의 고급화를 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300~400명을 위한 예식이 아닌 40~50명을 위한 소규모 파티가 주된 결혼 문화가 될 거란 이야기다. 일본의 경우 이미 50명 안팎의 하객을 대상으로 한 ‘프리미엄’ 결혼식 문화가 일반적인데, 국내 예식장들도 코로나19 적자에 따른 대내외적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면 이를 따를 거라 보고 있다.

그럼에도 신혼부부들은 ‘잔치’라는 의미의 결혼식 문화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앞서의 최씨는 “코로나19로 규모가 줄고 밖을 오가기가 어려워지면서 주변 사람들이 더욱 진심을 담아 축하했다. 식장을 찾은 하객들은 더 마음 쓰며 위로하더라. 완벽한 결혼식은 아니었지만 유대는 더 커진 느낌이었다. 코로나19가 남긴 선물(?)”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보통 생에 단 한 번뿐인 행사이지 않나. 하객들의 환호성은 줄었지만 메인홀을 채운 친인척끼리 더 차분한 분위기에서 ‘우리’만의 행사를 치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가족들은 더 좋아했다. 기념과 축하의 방식은 더 다양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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