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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647호] 2021.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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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정부에 냉대 받는 엘리트 탈북민들 뒤에 우리가 있다

조의성  탈북민·연세대 4년 

▲ 지난 2월 19일 오후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탈북 전 북한에서 교수였던 최하원(가명)씨가 “집 근처인 수락산 입구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데 기자가 온 김에 일감을 구해 봐야겠다”며 공사 현장 소장에게 일자리가 없냐고 묻고 있다. photo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예전엔 북한 엘리트들의 탈북 동기는 정치적 이유가 가장 컸다. 북한 체제 미래에 대한 회의, 무시무시한 숙청에 대한 우려, 자유를 향한 갈망 등이 엘리트들이 북한을 등지고 남한을 선택하는 주요 동기였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정치적 이유 외에도 더 나은 삶의 질이나 자녀 교육 등 새로운 동기가 엘리트들의 탈북을 추동한다. 인터뷰를 통해 자녀의 교육문제가 탈북을 결심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힌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좋은 사례다.
   
   일반적으로 탈북 엘리트들은 남한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기대심리를 갖고 있다. ‘귀순용사’ 시절의 대우에 대한 무성한 소문의 영향도 있겠지만, 자신들이 갖고 있는 북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전문적 경험이 어떤 방식으로든 남한에서 쓰일 수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기대다. 그건 제쳐 두고라도 이들 탈북 의도의 기저에는 자유시장경제 체제 경쟁에서 그들이 갖고 있는 배경이나 경험을 통해 탈북자 집단 내에서 상대적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일종의 자신감도 자리 잡고 있다.
   
   
   남한 정권의 성향에 ‘쓸모’ 좌우
   
   하지만 남한의 능력주의 사회에서 그들의 ‘쓸모’는 철저히 재검증된다. 상징적 가치, 실질적·정보적 가치에 우선하여 이들의 ‘쓸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남한 정권의 성향이다. 북한 체제에 있어서 ‘눈엣가시’인 고위급 탈북인사들의 존재에 당혹감을 느끼는 정권에서 그 ‘쓸모’는 대폭 감소된다. 대표적 인물이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였다. 역대 최고급 엘리트의 비운은 탈북 엘리트들의 자아에 음울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남이든 북이든 정권은 엘리트들이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시장이다. 우선 북한 정권이 특정 엘리트의 탈북에 대해 보이는 반응은 해당 인물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북한 정권은 의도치 않게 탈북 엘리트에게 남한 혹은 국제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는 ‘자격증’을 발급해 주는 셈이다. 북한의 반응이 민감하면 할수록 ‘자격증’의 가치는 더 높아진다. 한국 정부는 그 ‘자격증’의 가장 큰 구매자이다. 미국과 일본, 서방 국가들에도 그 ‘자격증’ 소지자는 매력적이지만 북한에 대한 가장 큰 이해관계자는 역시 남한 정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태도에 따라 이 시장은 쉽게 불경기에 빠져들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시장은 불경기의 정점에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 정권과 대화를 시도하려는 정부에 있어서 탈북 엘리트의 존재는 말 그대로 ‘골칫거리’이다.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한 이들은 졸지에 ‘아저씨’가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이것이 꼭 어쩔 수 없는 일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우선 현 정부 그 이상으로 남북 교류가 활발했던 이전 정권들에서도 북 출신 고위 인사들은 국정원 산하의 연구기관들에서 자신들의 역할로 가치를 증명해왔다. 또한 탈북 엘리트들은 그들 스스로가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살기를 원하기 때문에 설사 그들에게 조용히 일자리를 제공한다고 해도 (직접 보고를 하지 않는 이상) 북한에서 어찌 알 것인가. 결국 문제는 이들을 쓰고자 하는 정권의 의지이지만 현 정권은 이들을 냉대하자는 정반대의 의지를 불태우는 듯한 모습이다. 더구나 지난해 6월 16일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정점으로 남북관계의 경색 국면은 역대 최악의 수준이다. 결국 게도 구럭도 다 잃은 셈이 되었고, 그 와중에 북한 정권만 웃게 생겼다.
   
   
   건설현장 전전이 일상이 된 요즘
   
   탈북민 커뮤니티에서 북한 출신 엘리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미묘하다. 사실 일반 탈북민에게 앞에서 언급한 탈북 엘리트들의 정착 현황은 별로 놀라운 일들이 아니다. 현 정권 들어 위축된 탈북민 커뮤니티의 심리는 2019년 7월 탈북민 모자 아사사건을 통해 더욱 침통해졌다.
   
   그해 11월 일어난 탈북청년 강제북송 사건은 탈북민들로 하여금 헌법이 부여한 국민의 지위에 의구심을 갖게 한 사건이었다. 특히 코로나19가 온 나라를 덮친 지난해 탈북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한층 더 심해졌고, ‘코로나 블루’가 커뮤니티를 배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건설현장과 물류센터를 전전하며 일자리를 찾는 것은 많은 탈북민에게 일상일 뿐 아니라 그마저도 일부 탈북민에겐 동경의 대상이기까지 하다. 이런 상황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을 때 일부 탈북민들은 ‘그것이 왜 관심거리냐’고 의아해하는 분도 계셨다. 한 탈북민은 엘리트 탈북민에게만 주목하는 데 대해 화를 내기도 했다.
   
   일반 탈북민들의 눈에 북한 출신 엘리트 계층은 누군가의 표현대로라면 북한에서 ‘떵떵거리며 잘살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돌아가는 특별한 기회는 커뮤니티 차원에서 공정과 정의의 문제로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엘리트 출신 탈북자들은 자신들의 능력과 경험자산에 기초해서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되고 정착에도 더 빨리 성공하는 것이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이 사회의 실질적 구성원으로서 정치적 시민권을 얻은 엘리트들이 탈북민 계층의 이익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부여된 권리 혹은 혜택이 스스로를 위해 사용되는 경향이 있지만, 한편에는 그것을 탈북민 커뮤니티와 나누는 것을 의무로 인식하는 인사들도 있다. 이민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방식의 ‘낙수효과’를 통해 한 집단은 새로운 사회에 녹아들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낙수효과’를 누릴 기회마저 차단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현 정부는 탈북민 문제에서만큼은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실현하고 있는 듯하다. 이전에 탈북 엘리트들에게 주어졌던 기회를 제거하는 것을 통해 탈북민 커뮤니티의 ‘평등’과 ‘공정’과 ‘정의’를 실현하고 있으니.
   
   
photo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탈북민 TV프로를 눈여겨보는 북 주민들
   
   한국 드라마 본방이 끝나기 바쁘게 평양의 아줌마들 사이에 회자되고 한류가 젊은이들의 패션을 선도하는 시대이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와 같이 남한에서 탈북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인기다. 그런 콘텐츠들을 통해 남한에서 탈북민들의 처우를 파악하고, 나아가서 통일 시에 자신들이 받을 대우를 짐작해 보는 그들에게 북 출신 엘리트들이 남한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는 미래를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특히 북한 엘리트 계층에 있어서 이 문제는 초미의 관심사이다. 자신들과 처지가 비슷했던 사람들이 한국에서 받는 대우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태영호 의원은 북한을 가장 빨리 확실하게 바꾸는 방법은 북한 엘리트 계층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변화의 가능성을 가장 많이 갖고 있고, 변화의 수단까지도 갖고 있는 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매우 중요한 이유라 할 수 있겠다.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이 공개됐을 당시 나는 북한에 있었다. 당시 북한 노동신문은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의 온갖 욕설로 드레스덴 선언을 비방했다. 하지만 그 상스러운 논설을 통해 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직접 탈북민에 대해 언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탈북을 한창 준비하고 있던 때여서 그 논설에 실렸던 그 한 줄이 주는 의미는 엄청났다. 그걸 읽고 가까운 친구와 함께 남한에 대한 확신을 공유하던 기억이 난다. 자료에 의하면 실제로 그즈음 북한의 해외 주재관의 입국이 2013년 8명에서 2014년에는 18명으로, 이듬해에는 20명으로 늘었다. 그런 의미에서 21대 국회에 북한 출신 국회의원이 2명이나 나온 것은 북한주민들에게 매우 고무적인 메시지이다.
   
   
   기성 엘리트들과 구별되는 젊은 탈북민들
   
   조금은 희망적인 소식도 있다. 20대 초반에 탈북하여 서울의 명문대를 다니는 동안 공모전 수상, 교환학생, 인턴 경험 등 소위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을 쌓아 현재 대기업에 취업한 내 친구는 스스로를 엘리트로 인식한다.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10대에 탈북하여 해외 유수대학에서 유학을 마치고 여러 외국계 회사를 경험한 후 국내에서 자신의 기업을 창업한 또 다른 친구는 자타공인 엘리트이다. IT 회사를 창업하여 성공시킨 친구도 있고,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박사과정의 마무리를 앞둔 있는 친구도 있다.
   
   이들은 기성 엘리트들과 구별되는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로 모두 비교적 어린 나이에 한국에 왔고, 이곳에서의 삶과 교육을 통해 민주주의 제도와 한국의 문화에 완벽히 녹아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 사투리도 잊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기성 엘리트들이 중장년기이며 북한의 문화와 관습을 유지하는 것과는 상반된다. 둘째로는 그 자체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현실에서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성향에 따라 취업 시장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기성 엘리트 그룹과는 달리 스스로가 원하는 곳에서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20대 후반에서 40대에 이르는 청년들로, 스스로가 엘리트 의식을 갖고 있으며 서로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탈북민 커뮤니티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고향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이들이 탈북청년 사회의 전반적 상황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스스로 공동체와 고향을 생각하며 역할을 모색하는 청년들의 그룹, 연대가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과연 이들은 탈북민 엘리트의 자아에 드리운 슬픈 그늘을 벗겨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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