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비행을 하고 있는 미 공군 F-15 계열 신구형 전투기들. 왼쪽부터 F-15C, F-15E, 최신형인 F-15EX다. ⓒphoto 미 공군
합동비행을 하고 있는 미 공군 F-15 계열 신구형 전투기들. 왼쪽부터 F-15C, F-15E, 최신형인 F-15EX다. ⓒphoto 미 공군

전투기의 끝판왕, 중국 신형 폭격기보다 많은 무장 탑재량을 자랑하는 전투기, 5세대급 4.5세대 전투기….

미 공군이 최근 실전배치를 시작한 최신형 F-15EX 전투기를 일컫는 말들이다. 미 공군은 지난 3월 11일 “최신형 F-15EX 1호기가 미 플로리다주 에글린 기지에 배치됐다”고 발표했다.

미 공군은 F-15EX 1호기가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보잉사 공장 활주로를 이륙한 뒤 비행해 에글린 공군기지에 배치되는 영상도 공개했다. 이 영상에선 F-15C, F-15E, F-15EX 등 신구형 F-15 계열 전투기들이 나란히 ‘친선 비행’을 하는 모습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F-15EX는 앞서 지난 2월 첫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미 공군은 오는 4월 2호기를 추가로 도입하며 1차로 모두 8대를 들여온다. 미 공군은 지난해 7월 보잉사와 228억달러(약 26조원) 규모의 F-15EX 전투기 조달 계약을 체결했다. 총 144대의 F-15EX가 단계적으로 도입된다.

F-15는 1972년 첫 비행을 한 뒤 1970년대 실전배치가 시작된 일종의 구형 전투기다. 하지만 계속 업그레이드(개량)돼 생명력이 이어졌고, 최근 F-15EX의 도입으로 2040~2050년대까지 운용되는 ‘장수 전투기’가 된 것이다.

F-15EX는 기존 F-15E 개량형과 외형상 큰 차이는 없어 레이더에 거의 잡히지 않는 5세대 스텔스기는 아니다. 하지만 전투기 사상 유례없는, 엄청난 폭탄·미사일 탑재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게 가장 큰 강점이다. 최대 무장 탑재량이 13.4t에 달한다. 이는 중국이 미 항모전단 타격 등을 위해 개발한 H-6K 최신형 폭격기(무장탑재능력 12t)보다 많은 것이다. 구형 H-6 폭격기의 무장탑재량(9t)보다는 4t가량 많다. 대세 5세대 스텔스기인 F-35A의 최대 무장탑재량 8.1t보다는 50여%가 더 많은 폭탄·미사일을 탑재한다. 우리 공군 주력 전투기인 F-15K(11t)보다도 무장 탑재량이 2t가량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게가 2.3t에 달하는 GBU-28 ‘벙커버스터’도 탑재, 지하시설에 대한 타격능력도 강하다. 최대 사거리 930여㎞로 유사시 중국 타격의 선봉에 설 재즘-ER 장거리 공대지 순항미사일도 탑재한다. 폭탄과 공대지 미사일은 최대 24발가량을 달 수 있다.

특히 공대공 미사일의 경우 기존 전투기에 비해 압도적인 탑재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최대 16~22발의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한다. 이는 기존 전투기에 비해 2~2.5배가량 많은 것이다. F-15E의 경우 10발가량을 탑재했다. 미 공군은 F-15EX의 엄청난 공대공 미사일 장착능력을 활용, ‘미사일 캐리어(Missile Carrier)’로 운용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미사일을 잔뜩 달고 가 발사하는 ‘하늘의 항공모함’처럼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F-15EX는 최대 사거리가 200㎞에 달하는 최신형 AIM-120D ‘암람’ 공대공 미사일을 22발이나 탑재할 수 있다. 200㎞나 떨어진 먼거리에서 적 전투기 1~2개 편대 이상을 격멸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미 공군은 F-35와 F-15EX의 장점을 각각 살려 운용하려는 계획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F-35가 스텔스 성능을 활용해 최전선 지역에서 적 레이더 경보장치에 탐지되지 않는 IRST(적외선 탐색추적장비)로 은밀히 표적을 조준한 뒤 표적정보를 2선에 있는 F-15EX에 보내준다. F-35로부터 표적정보를 받은 F-15EX는 사거리 200㎞ 이상의 암람 공대공 미사일 등으로 적 전투기 편대를 장거리 타격하는 방식이다. F-15EX는 기존 전투기에 비해 2배 이상의 공대공 미사일을 탑재하기 때문에 기존 전투기에 비해 절반 이하의 숫자로 작전을 할 수 있다. F-35가 없다면 조기경보통제기가 데이터링크를 통해 F-15EX에 표적정보를 보내줘 작전을 할 수도 있다.

미 공군 최신형 F-15EX 전투기 1호기가 지난 3월 11일 첫 실전배치를 위해 플로리다주 에글린 공군기지를 향하고 있다. F-15EX는 무려 13t의 각종 폭탄·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어 ‘전투기 끝판왕’으로 통한다. ⓒphoto 미 공군
미 공군 최신형 F-15EX 전투기 1호기가 지난 3월 11일 첫 실전배치를 위해 플로리다주 에글린 공군기지를 향하고 있다. F-15EX는 무려 13t의 각종 폭탄·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어 ‘전투기 끝판왕’으로 통한다. ⓒphoto 미 공군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장착 가능

F-15EX는 미국이 개발 중인 길이 6.1m의 AGM-183A 극초음속 순항미사일도 장착할 수 있다. 미 보잉사는 F-15EX가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을 발사하는 개념도를 공개한 적이 있다. F-15EX는 길이 19.43m, 날개폭 13.05m, 높이 5.63m로 최대 속도는 마하2.5다. 전투행동반경은 1770㎞로 F-35(1078㎞)보다 크다.

F-15EX는 F-15E의 최신형 모델인 사우디아라비아 수출형(F-15SA)과 카타르 수출형(F-15QA)을 개량, 개발비용을 절감한 것도 특징이다. 사우디는 F-15SA 신규 도입 84대, 구형 F-15S 개량 70대 등의 비용으로 294억달러(약 33조6000억원)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당 2200억원꼴로 우리 공군의 F-15K 1000억원보다 2배가량 비싼 셈이다. 사우디는 첨단 기술을 반영한 신형 장비 개발을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했는데, 보잉은 사우디 돈으로 개발한 첨단 기술을 F-15EX에 상당수 적용했다는 것이다. 카타르 또한 2017년 120억달러의 예산으로 F-15QA 36대를 도입키로 계약해 F-15EX 개발에 도움을 줬다.

F-15EX는 280㎞ 이상 거리에서 적 전투기를 탐지할 수 있는 AN/APG-82(V)1 위상배열(AESA) 레이더 등 5세대 전투기급 최신 항공전자 장비도 갖췄다. ‘이파스(EPAWSS)’ 전자전 장비, IRST(적외선 탐색추적 장비), 세계 최고 처리 속도를 자랑하는 미션 컴퓨터 등이 대표적이다. 이파스는 전자기 에너지를 수집, 처리해 조종사에게 360도 공중 시야를 제공, 조종사가 적 위협을 감지하고 방해·교란할 수 있게 해준다. 급변하는 전장 상황을 조종사가 한눈에 쉽게 알 수 있는 대형 다기능 디스플레이(MFD)도 조종석에 설치했다.

5세대 전투기인 F-35가 속속 도입되고 있고, AI(인공지능)를 활용하는 6세대 전투기까지 개발되고 있는 상황에서 4.5세대 전투기인 F-15EX의 대량 도입은 다소 뜻밖의 움직임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에 대해 미 공군과 전문가들은 F-35의 예상보다 높은 운용유지비 등 비용 문제와 신속한 노후 전투기 대체 필요성 등을 꼽고 있다.

F-35의 비행시간당 비용은 3만5000달러(약 4000만원)지만 F-15는 2만7000달러(약 3000만원)로, F-35가 1000만원가량 비싸다. 보통 전투기는 30여년 동안 쓰기 때문에 30여년간의 누적 운용유지비 차이는 엄청나게 커질 수밖에 없다. 또 미 공군은 전력유지를 위해 일정 수준의 전투기 숫자를 유지하려 하는데 F-35 주문 물량이 밀리면서 노후 F-15C/D 전투기 교체가 늦어져 F-15EX로 신속히 대체하려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F-35 기종 선정으로 전투기 시장에서 미 록히드마틴사에 크게 밀리고 있는 보잉사의 생산라인을 살려주기 위해 사업 물량을 준 측면도 있다고 보고 있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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