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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금 다른 인류사]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간 ‘묘켄’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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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653호] 202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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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인류사]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간 ‘묘켄’은 누구일까?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2021-04-13 오전 8:50:15

▲ 대한해협을 건너 규슈 야쯔시로에 도착하기 직전 가장 바깥쪽 바다의 항구인 묘켄우라(妙見浦) 전경. 출처. Wikipedia Creative Commons
그 옛날 일본 규슈 야쯔시로 앞 바다를 건너서 왔다는 묘켄은 야쯔시로 일대에서 ‘신(神)’으로서 숭상되어 왔다. 그녀가 지었다는 궁전은 ‘묘켄궁’이라는 신사(神社)로 아직도 존재하며, 사람들은 그녀의 상 앞에 향을 올리고 기도한다. 또 이곳에서 오래 전부터 지켜져 왔다는 전통축제, ‘묘켄마쯔리’는 그녀를 기리는 것이다. 묘켄이 누구인지 몰라도, 이 지역에 막강한 영향을 끼쳤던 인물인 것은 틀림없는 듯하다.
   
   그런데 묘켄을 모시는 신앙은 야쯔시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녀를 숭앙의 대상으로 삼는 신앙행동은 일본 열도 전역에 두루 분포되어 있다. 일본 토착 신앙의 사원인 신사로서 묘켄을 모시는 곳이 30개소 이상, 또 불교 사찰로서 묘켄보살을 모시는 곳이 20개소 이상 있다. 이들은 일본의 서쪽 해안인 야쯔시로 시로부터 동쪽 해안인 이와테 현 구노헤 군에 이르기까지, 주로 해안 및 하안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해 있으며, 수도권 중심부인 도쿄 도(都)에만 해도 5개소가 존재한다.
   
   
▲ (왼쪽) 묘켄을 모시는 사찰과 신사의 분포(Wikipedia Japan 및 Google map 자료를 토대로 이진아가 제작함). (오른쪽) 효고현 소재 사찰, 호운지(法雲寺) 소재 묘켄보살상. 출처. Wikipedia Creative Commons

   묘켄에 대한 기억은 신앙의 영역도 훌쩍 넘어서는 것 같다. 일본에서 전통적으로 성스러운 곳으로 간주되어 온 산에는 ‘묘켄’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 많다. 규슈에서 홋카이도까지, 일본 전역에서 묘켄산이라고 불리는 곳은 57개소나 된다. 일본 수도권의 젖줄이라 할 수 있는 도쿄 에도가와의 하류에는 ‘묘켄지마’, 즉 묘켄섬이라는 이름의 하중도도 있다.
   
   일본인들의 집단기억 속에 엄청난 존재감으로 자리잡고 있는 게 분명한 묘켄, 그는 누구였을까? 몇 가지 다른 설명이 있는데, 가장 설득력 있는 것으로 보이는 버전이 포운 이종기 선생의 유고집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의 핵심 내러티브다. 묘켄은 2세기 후반 가락국으로부터 건너 온 지배층의 일원이라는 것이다.
   
   그 근거는 2~3세기, 묘켄과 동일한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에 대한 기록에서 출발한다. 중국 정사 ‘삼국지’, 우리 역사 ‘삼국사기’를 비롯, 몇몇 사서에 비교적 소상히 거론되는 ‘비미호(卑彌呼, 일본어 발음 ‘히미코’)’라는 여왕이 있는데, 그녀에 대한 얘기가 묘켄에 대한 것과 상당히 일치한다. 가장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는 ‘삼국지’에서 이 글의 맥락에 관련된 부분만 요약해보자.
   
   “원래 왜국에서는 남자가 왕이었는데, 내란이 5~6년 계속된 후 비미호라는 여자를 왕으로 세웠다. 귀신의 도를 섬기며 능히 사람들을 미혹했다. 이미 나이가 많았지만 남편이 없고, 동생이 나라의 통치를 보좌했다… 비미호는 재사, 오월 등을 대방군에 파견, 구노국(狗奴国)과의 전쟁을 보고 했다(서기 247년)… 비미호가 죽어, 직경 백여 보가 되는 큰 무덤을 만들고 노비 백여 명을 순장하였다.”
   
   역시 중국 정사 중 하나로 7세기에 편찬된 ‘양서(梁書)’에도 비미호에 대한 기록이 있다. 178년부터 몇 년 간 왜국의 내란이 있어 혼란스러웠으며, 비미호가 여왕으로 추대됐다가 249년 사망했다는 것이다. 한편 우리의 역사서인 김부식의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173년 왜 여왕 비미호가 사자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 비미호(히미코)는 그림, 조각,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에서 풍부한 상상력으로 표현되고 있는, 일본 국민의 사랑을 받는 캐릭터 중 하나다. (왼쪽부터) 오사카 부립 야요이문화박물관 소재, 신탁을 받는 비미호 상, Xapaga tocnxnpo 작 전투에 앞서 병사들을 독려하는 비미호, 일본 사가현 칸자키 시에 위치한 비미호 동상. 출처. Wikipedia Creative Commons, https://www.ancient.eu/Queen_Himiko/

   역사기록에 보이는 비미호의 모습은 야쯔시로에서 전해지는 구전 및 기록에 나오는 묘켄의 모습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신통력이 있었고, 독신에 남자 한 사람의 보좌를 받았으며, 죽어서 큰 무덤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심지어 가락국에서처럼 대규모 순장도 있었다.)
   
   연대 면에서도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한국과 중국 기록에 나오는 연대를 종합해보면 비미호는 173년 이전에 왜국의 여왕이었고 249년 사망했으니, 그녀가 여왕으로 살았던 기간은 75년 이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묘켄은 야쯔시로에서 70~80년간 살았다고 전해진다.
   
   다만 야쯔시로의 묘켄 얘기에서는 “바다를 건너왔다”는 대목이 중요한데, 비미호와 관련되어서는 직접적으로 바다를 건너왔다는 기록이 눈에 띠지 않는다. 하지만 비미호가 한반도 국가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은 있다.
   
   우선 그녀에 대한 주변국의 기록 중에 연대가 가장 빠른 것은 서기 173년 비미호가 신라에 사신을 보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라는 점이다. 중국 위(魏)나라에 사신을 보냈다는 243년보다 70년이나 앞선 연대다. 비미호가 세웠다는 국가인 야마다이국이 채 안정되기도 전에 사신을 보냈다는 것은 공식적 외교 이상으로 밀접한 관련성을 시사한다.
   
   또 하나는 그녀의 야마다이국이 인접국인 구노국과 전쟁을 할 때 대방에 사신을 보내 그 사실을 알렸다는 점이다. (전기 가야연맹 시절, 대방군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금의 황해도에서 해안 지역은 가야 영토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 점에 대해서는 가야의 영토 추정에 대한 이전 기사에서 몇 번 거론한 바 있다.) 이 대목 역시 비미호가 일본 열도 출신이 아니라 외지 출신이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또 다른 근거는 가락국에서 비미호가 떠난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김해 김씨의 족보의 이전 판본 중 하나인 ‘김해김씨왕세계’에 이런 기록이 있다고 이종기는 전한다.
   
   “거등왕은 선견이라는 이름의 왕자가 이 세상이 허무하여 신녀(神女)와 더불어 구름을 타고 떠나매, 강 중에 있는 돌섬에 올라 선견왕자를 부르려 하였으니…”
   
   한 신통력 있는 가락국 여성이 왕자 한 사람과 함께 낙동강을 따라 어디론가 가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낙동강을 따라 바다로 나오면 바로 그 건너 편에 규슈가 있다. 규슈 야쯔시로에는 그와 한 짝이 되는 이야기, 신통력 있는 한 여자와 그를 보좌하는 한 남자가 바다를 건너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만일 그녀가 묘켄이고, 선견 왕자가 그녀를 보좌하는 남자였다면, 그리고 묘켄이 비미호와 동일인물이라면, 묘켄/비미호는 거등왕과 동시대 인물일 것이다. 거등왕은 수로왕의 뒤를 이은 가락국 제2대 왕으로, 재위기간은 199년부터 253년까지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수로왕이 서기 162년부터 왕의 직에서 물러나, 당시 왕세자였던 거등에게 대신 정치를 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비미호가 사신을 보낸 것으로 전해지는 173년, 거등왕자는 왕을 대신해서 정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미호는 249년, 거등왕은 4년 뒤인 253년 사망했다.
   
   따라서 연대를 놓고 본다면, 이 세 이야기의 주인공이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중국 사서에 나오는 왜국의 여왕 비미호가 누구인가 하는 데 대해서 일본 학계에서는 열띤 논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상하게도 이렇게 많은 유사성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묘켄과 관련 짓는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묘켄과 비미호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은 기록 외에도 여러 가지 자료에 의해 뒷받침된다. 당시 가락국의 정세와 니즈(needs), 해류의 흐름, 동아시아 국가의 항해술 및 교류 수준, 야쯔시로에 남아 있는 제철 흔적 등, 모든 관련된 근거들이 마치 퍼즐 조각처럼 앞뒤가 딱딱 맞아떨어진다.
   
   만일 그렇다면 한 사람의 가락국 여성이 일본 전역 전통 신앙의 뿌리에 있다는 얘기가 된다.
   
   ※주간조선 온라인용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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