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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금 다른 인류사]  벼와 연꽃, 철제 농기구... 가락국이 섬나라에 가져간 선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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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4호] 2021.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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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인류사]벼와 연꽃, 철제 농기구... 가락국이 섬나라에 가져간 선물들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2021-04-20 오전 8:51:51

▲ 일본 이와테현 히가시야마쵸 소재 하천인 게이비케이(猊鼻渓) 정경. 석회암 지대를 흘러 큰 강으로 연결되는 이 같은 하천은 가락국 제철기지에서 생산된 철을 운반하는 통로로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 원본 사진: Wikipedia Japan에 게재된 Fuji-s의 작품(creative commons)
막강한 힘을 가진 신적 존재인 묘켄을 숭배하는 전통 신앙은 일본 전역에서 발견된다. 그 묘켄은 가야에서 건너 온 왕가의 여성일 것으로 추정된다.
   
   궁금해진다. 어떻게 해서 묘켄이라는 한 여성이 일본 전역에, 거의 2000년 간이나 지속되는 영향력을 갖게 됐을까? 이는 생존시 묘켄이 엄청난 파워를 갖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 2000 년 동안, 정치적인 변화가 무수히 거듭되었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숭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은, 묘켄의 존재가 외부에서 강요된 것이 아니라 일본 원주민들이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인 중요한 존재였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물론 가락국 특유의 제철 노하우로 품질 좋은 철을 생산, 지역 경제에 도움을 주었다는 점도 클 것이다. 요즘 삼성, LG 등 우리의 글로벌 기업들이 해외에서 하듯이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묘켄을 모시는 신사나 사찰이 있는 곳은 딱 가야의 제철기지로서의 입지조건을 갖춘 곳과 겹친다.
   
   
▲ (왼쪽) 묘켄을 모시는 신사 및 사찰의 소재지는 철광석 생산+석회암 동굴이라는 가락국 특유의 제철기지 조건을 겹친 곳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지도: Google map, Wikipedia Japan, 赤木三郎 저 “第四紀の日本列島―洞くつ”, 新日本製鉄 저 『鉄と日本人』 등 자료를 토대로 이진아 작성. (오른쪽)구글맵에 표시된,‘이나리(稻荷)’라는 이름을 갖는 신사 및 사찰 소재지. 지도 출처:구글맵

   ‘제철기지 입지 적합지’라고 한 것은 두 가지 조건을 갖춘 곳을 말한다. 철광석 산지이면서 석회암 동굴이 있는 곳이다. 이 시리즈 지난 기사들에서, 석회암 동굴이 가락국 해외 제철기지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충분히 보았다. 위 왼쪽 지도는 바로 앞 기사에서 제시했던 묘켄을 모신 신전과 사찰을 표시한 지도 위에 그렇게 가야 제철기지로서의 조건을 갖춘 곳을 표시한 것이다.
   
   오른쪽 지도는 묘켄 영향력의 본질에 대한 시사를 주는 또 하나의 실마리다. ‘이나리(稻荷)’, 즉 ‘벼와 연꽃’이라는 이름을 갖는 신사 및 사찰이 위치한 곳을 보여주는 구글맵이다. 이나리라는 신사는 가야의 제철기지 적합지/묘켄신앙의 궤적에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실마리는 이 추정을 처음 제시한 포운 이종기의 저서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야쯔시로 일대를 직접 답사하다가 ‘이나리’라는 이름의 신사를 발견한다. ‘이나리’란 ‘벼와 연꽃’을 뜻하는 한자어 도하(稻荷)의 일본어 훈독이다. 여기 모시는 신주(神主)는 ‘모치우케노오카미(保食大神)’이라고 명기돼 있었다. 뜻을 풀이하면 ‘먹을 것을 보장해주는 큰 신’이라는 뜻이다. 벼는 그렇다 치고, 연꽃은 어떻게 먹을 것과 관련되어 있을까?
   
   전통시대 일본은 국토 크기에 비해 그리 풍요로운 나라는 아니었다. 국토의 75%가 산지여서, 전통사회에서 식량의 중심이었던 곡식을 생산해주는 논밭의 면적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남한의 산지 비율은 33%다.) 특히 철의 원료 중에서도 사철(砂鐵)은 하안이나 해안 등 저지대에서 많이 나오지만, 그보다 질이 월등 높은 철광석은 주로 산지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철광석 산지이면서 석회암 동굴까지 있는 지형이라면, 석회의 영향으로 토질도 척박하고 수질도 썩 좋지 않았을 것이다. 한 마디로 일본 내에서도 가야의 제철기지로 적합한 곳은 전통 농경사회의 기준으로 볼 때 좋은 땅이 아니었고, 따라서 비교적 정치‧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
   
   한 번 상상해보자. 먹을 것이 부족하여 힘들게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어느 날 바다 건너서 큰 배와 화려한 위용을 갖춘 체격이 큰 사람들이 처음 보는 동물을 타고 나타난다. (수로왕의 키가 9척, 요즘 단위로는 210 센티미터가 넘었다고 하니 왕족들도 대체로 체격이 큰 편이었을 것이다. 반면 일본 원주민은 동아시아 내에서도 ‘왜족(倭族)’, 즉 키가 작은 사람들이라고 불렸다.)
   
   처음에는 겁에 질리거나 적대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다를 건너 온 사람들은 그곳 원주민에게 아주 큰 선물을 주었다. 먹을 것을 풍부하게 보장해준 것이다. 두 가지 방법으로 그랬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첫째는, 벼농사가 거의 불가능했던 석회암 지대에 벼농사를 가능하게 해준 것이다. 벼는 pH5.5~6.5 정도의 약산성을 띤 물과 흙에서 잘 자란다. 그런데 석회암지대의 토질과 수질은 알칼리성이다. 하지만 토양과 물에서 석회암 미세 입자를 제거하면 중성이나 약산성의 물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오염물질을 제거해서 수질을 정화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연꽃이다. 연꽃의 원산지인 인도에서는 연꽃으로 정화된 물을 농토에 끌어들여 식량생산성을 높이는 노하우를 아주 오래 전부터 지켜오고 있다. 수로왕이 허황옥 공주와 결혼한 이래 가락국의 지배계층에는 인도 출신자나 그 혈통이 상당히 있었을 것이므로, 연꽃을 농사에 활용하는 방법을 알았을 것이다.
   
   
▲ (왼쪽) 한 손에 벼를 들고 거북 등 위에 서 있는 묘켄 석상. 과거에는 야쯔시로 일대에 이런 석상이 많았는데, 최근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중앙) 인도 일대에서는 지금도 논 사이에 연꽃을 심어 수질을 정화한다. (오른쪽) 교토 후시미 이나리 신사. 출처: 이종기,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 Pixabay, Spectral Codex Free Image

   따라서 일본의 석회암 지대에 연꽃을 도입, 수질과 토양을 개선해서 논농사가 가능하게 해준 것이다. 일본에 벼가 전래된 것은 기원전 3세기, 오키나와를 통해 동남아시아로부터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일본에는 석회암 지대가 많은 편이며, 이런 곳에서는 벼농사가 그림의 떡이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인도의 농사 노하우를 활용할 줄 아는 가락국인은 가는 곳마다 벼농사가 가능해지게 했을 테다.
   
   두 째는 철을 생산하게 됨으로써, 더욱 농업생산성이 높아졌을 것이다. 가락국인들이 생산했던 강도 높고 탄력 있는 철은 탁월한 무기의 원료도 되었겠지만, 효율적인 농기구의 원료도 된다. 거친 땅을 개간해서 농토로 만들고, 농사 짓고 나면 굳어지는 흙을 잘게 부수어 연작이 가능하게 하고, 쉽게 곡식을 거두고 갈무리하게 해주었을 것이다. 가락국 브랜드 철기 농구는, 아마도 종전까지 일본 농민들이 사용하고 있었을 나무나 돌로 만든 농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으로 많은 곡식을 확보해주었을 것이다.
   
   그 밖에도 고온의 화로에서 단단한 도기를 제작하는 법, 철 생산을 도와준 대가로 지불되는 임금으로 살 수 있는 다양한 고퀄리티 아이템(중국 신왕조 왕망이 발주했고 가락국에서 제조됐던 동전이 일본 규슈 일대에서도 두루 사용됐던 흔적에 대해 이 시리즈에서 다룬 바 있다.) 등도 수반됐을 테다. 따라서 가야의 제철기지는 지금까지 고립된 섬나라, 그 중에서도 척박한 땅에서 살아와야 했던 사람들에게 비약적인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배를 주렸던 사람은 자기에게 풍부한 먹을 것을 주는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고맙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벼와 연꽃으로 자신들을 배불리 먹게 해주었던 묘켄을 기억하면서 감사의 향을 올리게 됐을 것이다. 반면 가락국으로부터 온 혜택을 받지 못한 외부 지역 사람들은 갑자기 풍요로워진 땅을 넘보려 했을 것이다. 따라서 제철기지가 있었던 곳의 사람들로서는 큰 칼을 휘두르며 외부 집단의 침입을 막아주는 힘을 가진 묘켄에게 더욱 더 의지하려 했을 것이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 세월의 수레바퀴가 돌면서 환경조건이 변하고 그에 따라 모든 것들이 다 변하게 된다. 가락국 사람들이 일본에서 철수하고, 제철기지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세부적인 기억들도 따라서 변형되어 간다.
   
   그래도 역사는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그걸 읽어내는 눈만 있다면, 그 흔적들은 또 다른 스토리가 된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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