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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5호] 2021.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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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민수 검사’ 피해자 아버지의 1년4개월 절규

광주= 조윤정  기자 wastrada0721@chosun.com 2021-04-26 오후 4:53:17

▲ 지난 4월 20일 만난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아버지 김씨.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저는 아직도 2~3일에 한 번씩은 약을 먹어야 잠이 들어요. 얘 동생은 1년 반 가까이 정신과에 다니고 있고요. 이게 잊히겠습니까?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일이지만 가끔 정말 죽도록 힘듭니다. 그놈이 잡혔다고는 하는데, 재판정에 갈 생각은 없습니다. 그 얼굴을 보면 내가 피를 토할 것 같아요.”
   
   지난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이른바 ‘김민수 검사’ 사칭 사건은 20대 취업준비생의 목숨을 앗아갔다.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돈을 빼앗긴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지난 4월 20일 만난 피해자의 아버지 김모씨는 낮고 침착한 목소리로 1년여 전 사건을 되짚었다. 하지만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참기 힘든지 종종 목이 메었다.
   
   전북 순창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20대 취준생 김모군은 지난해 1월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범의 협박 전화를 받았다. “범죄 사기에 연루됐으니 서울로 돈을 가지고 올라오라”는 내용이었다. 김군은 당황했지만 “전화를 끊으면 공무집행 방해로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라는 협박에 전화를 끊지도 못했다.
   
   
   11시간 통화하며 조종당해
   
   김군은 정읍의 한 은행 ATM기에서 돈을 인출해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휴대폰 배터리까지 충전해가며 무려 11시간 동안 통화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나 지시받은 대로 돈뭉치를 여의도 동사무소 물품보관함에 넣자 통화가 끊어졌다. 김군은 체포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전화를 걸어왔던 검사와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상대는 받지 않았다. 혼자 모텔방에서 몇 시간 동안 연락을 기다리던 김군은 순창의 자택으로 돌아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김군의 아버지는 아들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기범의 목소리를 기자에게 들려줬다. 전화 속 사기범은 강압적으로 명령하며 김군을 계속 몰아붙였다.
   
   “사기범은 아들 휴대폰 배터리 시간까지 다 계산해가며 체크를 해요. ‘배터리 지금 얼마나 남았죠? 카페에 들어가서 몇 분 동안 충전하세요’ 이렇게. 다른 사람하고 통화를 못 하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카페 영수증 사진까지 찍어서 보내라고 합니다. ‘영수증도 다 보관하십시오. 해결되면 우리가 다 보상해줍니다’ 하면서요. 아주 치밀하게 계획된 거예요. 몇 시에 어느 역으로 가면 ○○행 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조종을 한단 말입니다.”
   
   최근 부산경찰청에서 김군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기범 A를 포함해 보이스피싱 일당 6명을 검거했다. 김군의 아버지는 ‘천만다행’이라고 했지만 관련 기사는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에 속다니 바보냐’ ‘똑똑하지 못해서 당했다’는 등 아들을 비난하는 댓글들 때문이었다.
   
   “본인이 안 당해봤으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어요. 그렇게 끊임없이 압박감을 주는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전화를 못 끊었을 거예요. 통화 내용을 들어보면 얘는 죄인이고 검사는 실제 조사관이에요. 강압적인 말투로 위압감을 조성하면서 다른 생각할 틈을 안 주고 계속 밀어붙여요. ‘제 말을 똑바로 들으세요!’ ‘제대로 협조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겁니다’ 하면서 다그쳐요. 풀었다 놨다 아주 능숙해요. 애가 긴장이 좀 풀렸다 싶으면 다시 윽박지르고.”
   
   실제 김씨가 들려준 사기범 A의 전화 목소리는 흐트러짐이 없었고 중후했다. “명의 도용 사건이 접수됐는데 본인 명의의 통장 두 개가 발견됐다”고 명료하게 말할 때는 기자가 들어도 보이스피싱으로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였다. ‘김민수 검사’는 김군의 이메일로 자신의 위조 명함과 범죄사기를 자세히 다룬 문서까지 전송했다.
   
   아버지에 따르면, 숨진 아들은 평소 여섯 살 터울의 동생을 아꼈다고 했다. 사기범의 전화를 받은 날 아침도 아르바이트하러 나가는 동생을 차로 데려다 줬다. 사기범의 목소리에 온종일 끌려다닌 다음 날 아침에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은 내가 못 데려다 주니 택시 타고 출근해라”라고 말했다. 동생이 “언제 집에 들어오냐”고 묻자 김군은 “내일이면 끝나겠지”라는 말만 남기고 다신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밝고 남 돕는 걸 좋아했어요. 대학 다닐 때는 자진해서 장애 있는 친구가 강의실에 들어가는 것도 도와줬다고 해요. 학보에 기사도 크게 났어요. 그저 성실한 애였어요. 자격증도 대여섯 개 따고 공무원 시험도 준비해 가면서 나름대로 인생 계획을 세웠을 것인데. 그 모든 게 무너졌다고 생각해 손쓸 틈도 없이 절망한 거죠. 그때 누가 옆에 있었더라면, 시간을 가지고 한 번만 더 생각을 했더라면….”
   
   
▲ 김씨는 노트북으로 아들의 휴대폰에서 옮겨온 음성 유서 파일과 사기범과의 통화 녹음을 들려줬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강력한 처벌 해야 재범 줄어든다”
   
   김씨는 이번에 붙잡힌 사기범 A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탄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5월 김군의 돈을 꺼내 간 인출책이 체포됐지만 무죄를 선고받은 일 때문이다. 당시 재판에서는 인출책이 돈을 전달했다는 사실이 완벽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기방조 혐의에 대한 무죄가 선고됐었다. 인출책은 30대 중국 국적의 교포 부부였는데,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아내는 불구속 수사를 받기도 했다.
   
   “그 인출책 남편의 친모가 우리한테 전화해서 절대 합의해 주지 말라고 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엄마인데 자기 아들이 그런 범죄에 한두 번 가담했다고 그러겠어요? 2~3년만 살고 나오면 돈을 쉽게 벌 수 있으니까 계속 이 짓을 한다는 거예요. 아무리 인출책이라고 해도 가볍게 처벌하면 보이스피싱 범죄는 절대 줄지 않아요.”
   
   이번에 사기범 A가 검거되기까지도 김씨의 노력이 있었다. 김씨는 지난해 2월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보이스피싱 사기범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었다. ‘내 아들 죽인 얼굴 없는 김민수 검사 잡을 수 있을까요?’라는 제목의 글은 2만명 이상의 서명을 받으며 널리 알려졌다. 이 사건을 맡은 부산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1계 강력5팀은 한 맺힌 김씨의 청원 글을 보고 집중 수사를 이어갔고, 1년의 추적 끝에 사기범 A를 검거할 수 있었다. A는 2주 후 첫 재판을 앞두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김씨는 아들이 가족에게 음성으로 남긴 유서를 들려줬다. 사고 이후 아들의 휴대폰에서 음성 파일을 발견한 아버지는 ‘단순 자살이 아니라 뭔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녹음된 김군의 목소리가 애써 밝은 척하지만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들, 친구들 다 고마워요. 내가 먼 여행 왔다고 생각하고, 다들 평범하게 일상을 살면 좋겠어요. 그래야 저도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다들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주세요. 감사합니다.”
   
   아마 수도 없이 들었을 아들의 목소리가 잦아지자 김씨는 10분 정도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왔다. 그의 눈시울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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