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참전용사들의 사진을 찍어온 라미 현 작가. ⓒphoto 김세규
국내외 참전용사들의 사진을 찍어온 라미 현 작가. ⓒphoto 김세규

“선생님은 사진 값을 이미 70년 전에 내셨습니다.”

국내외 참전용사들의 사진을 찍어온 사진작가 라미 현(Rami Hyun·한국명 현효제·42)은 사진을 받아 본 참전용사들이 앨범 가격을 물으면 이렇게 답하곤 한다. 현 작가는 한양대를 졸업하고 미 샌프란시스코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에서 공부한 뒤 패션 광고 사진작가로 활동했었다. 하지만 2013년 육군 1사단 장병들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5000명이 넘는 국내외 참전용사와 군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2016년 이후엔 6·25전쟁 때 유엔군으로 참전한 참전용사들을 기록하는 ‘프로젝트 솔저(Project Soldier)’를 통해 13개국 1420여명의 참전용사를 촬영했다. 고령인 참전용사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일념에 사비로 미국과 영국을 40여차례 직접 방문해 참전용사들을 찍기도 했다. 지난해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무리하게 촬영을 진행하다 허리디스크가 터져 귀국하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방송 출연을 계기로 뒤늦게 그동안의 활동이 주목을 받아 국가보훈처장 감사패를 받았다. 지난 2월부터 최근까지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에비뉴엘아트홀에서 ‘프로젝트 솔저 한국전 참전용사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전화와 이메일 등을 통해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 롯데월드타워 아트홀 전시회 반응은 어땠나. “젊은 세대들이 전시장을 많이 찾아줘서 놀랐다. 특히 10대, 20대들은 전시장에서 참전용사 사진과 본인들의 사진까지 같이 찍으며 소셜미디어에 ‘Project Soldier’ 전시 태그를 하기에, 전시장에서 마주치지 못했어도 많은 사람이 왔던 것을 알았다. 전시장에 참전용사들에게 메시지를 쓰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보면 어린아이들이 참전용사를 그린 그림이나 감사편지도 많았다.”

라미 현 작가의 ’프로젝트 솔저’ 용사들. 작가는 2016년부터 13개국 1420여명의 6·25 참전용사들을 사진에 담아냈다.
라미 현 작가의 ’프로젝트 솔저’ 용사들. 작가는 2016년부터 13개국 1420여명의 6·25 참전용사들을 사진에 담아냈다.

- 한 육군 원사와의 인연으로 2013년부터 제복 입은 국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는데. “나 역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국방의 의무를 마쳤다. 하지만 예비역 병장으로 군에 대한 좋은 기억보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더 많았다. 그 원사 분은 인터뷰 중에 ‘28년 군 생활은 나라에 부끄럼이 없으나 한 가족의 아버지로, 남편으로선 부끄럽다’고 했다. 그 이유는 가족과 보내기 위해 마련한 시간마다 부대가 먼저였기에 좀 더 가족에게 잘했어야 했다며 눈물을 보이셨다. ‘소원이 무엇이냐’는 마지막 질문에 그는 ‘곧 30년 만기 전역인데 전역 후 처음으로 가족여행을 가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충격을 받았고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런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고, 내 작은 능력으로 그들의 모습을 기록해서 감사함을 표현하기로 했던 것이다.”

- 제복 입은 국군들 사진을 보면 여러 사람이 다양한 포즈로 정자세를 취하고 찍은 모습이 많은데 그 뒤 이 스타일이 군 공식 화보의 새로운 트렌드가 된 것 같다. “강한 군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연예인처럼, 모델처럼 군인을 표현하는 것들이 싫었다. 대한민국 군인은 강하다. 그리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때문에 신성하고 고결하다. 그런 가치에 맞는 이미지를 찾다 보니 미국 작가 리처드 아바 돈의 사진을 보고 많이 배웠다. 그러나 그런 스타일을 추구하면서도, 나에게 촬영 의뢰는 없고 스타일만 카피한 사진들이 남발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 2016년부터는 6·25전쟁 해외 참전용사 사진들을 집중적으로 찍고 있는데, 계기는. “2016년 군복 사진전에 온 미 해병대 6·25전쟁 참전용사 살바도르 스칼라토의 눈에서 자부심을 보고 호기심이 들었다. 왜 저 사람은 남의 나라 전쟁에 왔는데 저런 자부심을 갖고 있을까? 해외 참전용사 사진 촬영은 그 호기심을 찾아가는 여정이었고, 그 호기심이 점점 풀리게 되면서 그들이 지켰던 가치와 희생에 대한 기록이 다음 세대를 위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렇기에 2023년 6·25전쟁 정전 70주년까지는 이분들을 위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대부분 고령이어서 그분들에겐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

- 해외 참전용사 사진들을 액자에 넣어 보내주는 ‘프로젝트 솔저’도 진행했다.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고생했을 것 같은데. “작업의 모든 비용을 사비로 충당했기에, 그분들 모두에게 액자를 해드릴 여유가 없었다. 사진의 완성은 찍는 순간이 아니라, 프린트해서 액자로 걸리는 순간이 완성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참전용사의 사진을 보고 많은 분이 액자 비용을 후원해주셨다. 전체 액자의 50% 정도가 후원자분들의 후원으로 가능했다.”

-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2월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참전용사 사진들을 찍었다. 어려움이 많지 않았나. “2017년부터 2019년까지는 그분들이 내 시간에 맞춰 주셨다. 내가 미국을 찾아갔을 때만 그분들을 만나고 기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는 항공료가 가장 부담이 컸다. 그래서 내가 그분들의 시간에 맞추기 위해 비자를 받아 6·25전쟁에 180만명이 참전한 나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원래는 후원을 통해 캠핑카를 구입해 50개 주를 돌아다닐 계획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으로 애틀랜타, 워싱턴 등에 머물며 개인적으로 연락 오는 참전용사 및 가족 50여명을 찾아가 촬영했다. 보통 왕복 10시간 정도 운전을 하며 촬영을 진행했다.”

- 직접 사진을 찍으러 가면 해외 참전용사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그들은 사진을 촬영하는 것보다, 70여년 전 참전했던 나라의 한 젊은이가 찾아와 감사인사를 전하는 것에 더 큰 고마움을 느꼈다. 잊힌 참전용사로 살아왔기에 그 의미가 더 큰 것 같았다. 사진은 보이는 부분을 찍지만, 그 안 내면의 모습까지 담긴다. 많은 참전용사가 진짜 영웅은 그때 그곳에서 죽은 전우라고 이야기하며, 본인들은 살아남았기에 겁쟁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진 속 그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이 우리가 말하는 영웅임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소망은 그들이 한국에서 싸웠다는 사실 하나만을 기억해 달란 것이었다.”

라미 현 작가가 찍은 공군 제6탐색구조비행전대 HH-32 항공기 제235비행대대 장병들.
라미 현 작가가 찍은 공군 제6탐색구조비행전대 HH-32 항공기 제235비행대대 장병들.

- 그동안 찍은 해외 참전용사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1951년 강원도 원주에서 전투 중 오른팔과 오른다리를 잃은 미 육군 윌리엄 웨버 예비역 대령이다. 그는 ‘자유인은 의무가 있다. 그것은 자유를 뺏길 위험이 있거나, 자유가 없는 사람에게 그 자유를 지키고 찾아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프로페셔널 군인으로, 그리고 자유인으로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 참전했다. 그렇기에 한국 사람들은 빚진 것이 없다고 한다. 다만 그들을 통해 받은 자유를 똑같이 우리의 동포, 북한에 전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말씀하셨다.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아니다).”

- 전시장을 보니 백선엽 장군 부부 사진도 있던데 어떻게 찍게 됐나. “2019년 어느 아침에 미국에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참전용사인데 더 늦기 전에 아버지의 모습을 기록해달라는 딸의 부탁이었다. 딸은 미국에 있지만, 아버지는 한국에 계시다면서 6·25전쟁 참전용사로서 자부심이 가득한 그분의 눈을 꼭 담아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 아버지의 이름은 백선엽입니다’라고 해 깜짝 놀랐다. 딸의 요청으로 고 백선엽 장군을 용산기념관에서 한 컷, 그리고 자택에서 사모님과 한 컷 그렇게 찍었다.”

- 최근엔 방송에도 출연하고 다행히 도움을 주는 사람도 늘어난 것 같다. “처음 ‘유 퀴즈 온 더 블록’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유 퀴즈’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방송 출연 전에는 특정 세대나 직업군인, 참전유공자 가족 정도에서만 ‘프로젝트 솔저’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방송 출연 이후엔 훨씬 많은 사람이 공감해 주었다. 프로젝트를 응원하는 사람이 종전엔 9 대 1 정도로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방송 출연 이후엔 6 대 3 정도로 여성분들이 크게 늘었다. 특히 10대, 20대가 엄청나게 늘었다. 많은 중·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으로부터도 고맙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 주로 흑백사진을 찍는데, 이유가 있나. “색은 시간과 장소, 그리고 사람에 따라 다른 감정을 갖는다.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참전용사의 모습 속에 담은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색을 뺀 흑백으로 그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인물에게만 집중할 수 있고, 그 내면의 모습이 흰색 바탕에서 흑백사진으로 온전히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더 늦기 전에 더 열심히, 더 많은 분을 찾아갈 계획이다. 참전용사들의 부탁은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 다음 세대가 기억을 해야 이 프로젝트도 생명력을 가진다. 그래서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6·25전쟁 및 참전용사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40분 강의하고 40분은 참전용사에게 감사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수업이다. 그래서 그 결과물을 대한민국 국민이 그들을 기억한다는 의미로 22개국 참전용사에게 보내드릴 계획이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