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최초 개발한 ‘스푸트니크V’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photo 조선일보 DB
러시아가 최초 개발한 ‘스푸트니크V’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photo 조선일보 DB

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산 ‘스푸트니크V’ 백신의 국내 도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러시아의 과학·의학 기술 현황에 관심이 쏠린다. 구 소련 시절 기초 과학의 강국으로 손꼽혔던 러시아는 최근 10년간 극심한 경제침체에 시달리면서 과거의 명성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4월 21일 청와대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산 백신 도입 문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참모진의 건의에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앞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지난 4월 15일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백신 추가 확보를 위해 모든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때 러시아산 백신 도입을 함께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스푸트니크V 백신은 러시아 보건부 산하 가말레야 국립 감염병·미생물학 연구소가 개발했다.

러시아는 구소련 시절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초과학의 강국이었다. 특히 수학·화학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했는데, 항공우주 부문에서는 일시적으로 미국을 앞서기도 했었다. 이번 백신에 붙인 이름이기도 한 ‘스푸트니크’는 1957년 구소련이 인류 최초로 발사한 인공위성의 이름이다. 이름 뒤의 V는 각국의 백신 개발 경쟁에서 승리(Victory)했다는 의미에서 붙였다고 한다.

이런 역사에 비춰보면 과학의 기초인 화학 분야에서도 축적된 기술이 많은 러시아가 상대적으로 뛰어난 백신을 조기에 만들어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제약 역시 화학의 일종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화학의 기초인 멘델레프 주기율표도 러시아가 만든 것이다. 멘델레프는 구소련에 속해 있던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하지만 구소련이 붕괴한 뒤 설계의 중추를 담당하던 과거 소련 연방의 여러 나라가 독립하고 경제난까지 겹치면서 러시아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항공분야에서도 미그, 수호이 등 뛰어난 고등 전투기를 일찍부터 생산해 내던 과거와 달리 미국의 보잉이나 유럽의 에어버스에 밀리면서 좀처럼 예전의 명성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러시아가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음에도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다. 여기에 백신을 개발하면서 임상시험의 최종 단계인 3상 시험을 건너뛰었고, 러시아의 국가 신뢰도가 높지 않았다는 점 등도 작용했다.

하지만 지난 2월 권위를 인정받는 국제 의학학술지에 스푸트니크V 백신의 예방효과가 91.6%라는 소식이 발표되면서 이 백신에 대한 평가가 급반전됐다. 조만간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럽의약품청이 러시아의 백신 제조 시설을 방문할 예정이다. 백신의 효능과 안전성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약 4주간 공동으로 현지 제조 시설을 조사할 계획이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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