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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5호] 2021.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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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인류사]일본의 민담 캐릭터 ‘갓빠’에 드리워진 가야의 그림자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2021-04-27 오전 8:37:53

▲ 야쯔시로시를 흐르는 구마가와. photo: Wikipedia Creative Commons
일본의 민담이나 믿음에 가락국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은 묘켄만이 아니다. 묘켄보다 훨씬 더 대중적으로 폭넓게 회자되고 있는 캐릭터에 ‘갓빠’(カッパ)가 있다. 이 갓빠가 가락국에서 온 사람을 비유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만드는 정황들이 있다.
   
   요괴, 도깨비 등 인간과 유사한 신적 존재에 대한 민담이 풍부한 일본에서 갓빠는 특히 친근한 이미지로 묘사되는 편이다. 현재까지도 물 관련 사업의 로고나 애니메이션 등에, 귀엽게 변형된 모습의 갓빠가 종종 등장한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게 전해지지만, 그 다양한 버전들에서 공통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갓빠는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몸이 녹색이고, 주둥이가 튀어나왔으며, 등에 거북이 등판 같은 게 붙어 있다. 강이나 바닷가 얕은 물과 인접 육지에 사는데, 힘이 세고 헤엄을 잘 쳐서, 물 속에 숨어 있다가 물가로 오는 사람들을 끌어당겨 빠뜨려 죽인다. 대체로 어린이 정도의 체구라고 하는 데가 많은데, 지역에 따라, 특히 규슈 지방 같은 곳에서는 체구가 크고 건장한 청장년의 느낌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오이를 잘 먹고 술을 잘 마시며, 알 수 없는 언어로 우렁차고 아름다운 노래를 하는 것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즉 갓빠는, 특히 강가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두려움의 대상인 동시에 전체적으로 만만하고 친근한 느낌을 주는 민담 캐릭터다.
   
   
▲ (왼쪽) 18세기 화가 토리야마 세끼엔이 그린 갓빠 모습. (중앙, 오른쪽) 갓빠는 대중적으로 사랑 받는 민담 캐릭터 중 하나로, 일본 전역에서 갓빠의 그림을 로고로 만들거나, 공원 혹은 상점에 갓빠 상을 만들어 세워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photo: 퍼블릭 도메인, flickr 무료 이미지

   한자로 표기할 때는 ‘하동(河童)’, 즉 ‘강의 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를 쓴다. 읽을 때는 ‘갓빠’라고 하며, 젊은 사람들에게도 매스컴이나 책을 통해 그 이름이 익숙한 존재다. 하지만 규슈 해안지역의 토박이들은 다른 이름으로 이 존재를 부른다. (지금까지 이 시리즈에서 본 대로, 규슈 해안지역은 가야인들이 배를 타고 와서 앞선 철기문명으로 원주민을 장악했던 원정의 시발점이다.)
   
   규슈 구마모토현 평야지대의 중심도시인 구마모토 시 일대의 토박이들은 이 요괴를 ‘다비노히또(タビノヒト)’, 즉 ‘나그네’라고 부른다. 강에 사는, 힘세고 노래 잘하는 요괴는 원래 그 지역에 있었던 게 아니라, 외부에서 온 나그네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가락국 일본 진출의 전초기지라고 할 수 있는 야쯔시로시 일대의 토박이들이 쓰는 어법이다. 그들은 이 ‘하동’이라는 글자로 표기되는 요괴를 ‘가랏빠’라고 부른다.
   
   일본어의 일상적인 쓰임새에서 어떤 이름 끝에 촉음 ‘-ㅅ(-っ)’을 달고 이어 ‘빠(-ぱ)’라는 접미어를 붙이면, ’…의 무리에 속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통용되는 경우가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연예인 같은 유명인에 이런 어법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아이돌 가수 중에 ‘신타로’라는 이름을 갖는 이가 있다고 치자. ‘신타롯빠’라고 말하면, 그 가수를 좋아하고 따라다니는 사람을 말한다.
   
   이 어법을 고려하면, ‘가랏빠’라는 말은 ‘가라(가락국) 무리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무슨 까닭인지 몰라도 야쯔시로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강가에 사는 힘 센 요괴를, ‘가야의 무리’라고 생각될 수 있는 ‘가랏빠’라는 명칭으로 불러왔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이름이 줄어서 ‘갓빠’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 (왼쪽) 가랏빠도래비가 있는 도쿠노후치 나룻터 위치. 지도 작성: 이진아 (오른쪽)가랏빠도래비. 사진: ハーモニックボーダレス協会 자료 동영상 캡쳐, https://harmonic-borderless.com/?p=1180

   뿐만 아니라 야쯔시로에는 이 갓빠, 즉 가랏빠가 바다를 건너왔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진다. 야쯔시로는 규슈에서 가장 긴 강인 구마가와(球磨川)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지점에 자리잡은 도시다. 바다 입구 가까이에 자리잡은 포구인 도쿠노후치 나룻터에는 가로 5미터, 세로 2.5미터 정도의 커다란 화강암 돌이 있다. ‘가랏빠도래비’, 즉 갓빠가 바다를 건너온 것을 기념하는 비석이라고 불리는 이 돌에는 가랏빠의 전설이 새겨져 있다. 전문을 번역해본다.
   
   “이곳은 1500, 600년 전, 가랏빠(河童)가 중국 방면으로부터 와서 처음 일본에 도착해서 살기 시작한 곳이라고 전해진다. 돌의 석재는 350년 된 다리의 돌인데 ‘가랏빠’ 돌이라고 불린다. 어느 날 장난꾸러기 가랏빠가 이곳 주민들에게 붙들려, 이 돌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장난을 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1년에 한번 축제를 지내게 해달라고 청해, 주민은 그 부탁을 받아들여 축제를 5월 18일로 정해서, 지금까지도 오레오레데라이다(オレオレデーライタ) 축제라고 하여 매년 지내고 있다.”
   
   이 비문은 여러 가지 역사적 팩트와 그 팩트가 전달되면서 변형되는 방식을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좀 더 자세한 얘기는 앞으로 맥락에 따라 필요하면 하기로 하고,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대목은 이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축제의 이름이다. ‘오레오레데라이다’, 익숙한 어감이다.
   
   1970년대, 야쯔시로와 가락국의 관련성에 처음 주목하고 이 지역을 탐사한 이종기는 이 지역에서 오래동안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가랏빠 민담과 오레오레데라이다 축제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다. 이곳 향토사가 오쿠노(奥野)와 면담 중 ‘가랏빠도래비’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오쿠노는 ‘갓빠’를 이곳에선 ‘가랏빠’라고 부른다는 것, 어린 시절 마을 어르신들로부터 아주 오랜 옛날 이곳 나루터에 바다를 건너 가랏빠들이 상륙했는데, 그 숫자가 3000명이었다고 들은 적이 있다고 말한다.
   
   이야기 끝에 두 사람의 화제는 축제의 이름으로 옮겨졌다.
   
   이종기: 왜 비석에 ‘오레오레데라이다’만 카타카나로 적었을까요?
   
   오쿠노: 그야 ‘오레오레데라이다’가 가랏빠 말이기 때문이겠지요. (일본어에서는 일본 고유의 말은 히라카나로, 외국어는 카타카나로 적는다.)
   
   (이 대목에서 그야말로 ‘심쿵!’한 이종기는 잠시 망설인 끝에 오쿠노에게 말해준다.)
   
   이종기: 한국어로 ‘오래’라는 말은 긴 세월을 의미합니다. 말을 반복하여 ‘오래오래’라고 쓰면 아주 긴 시간이 되지요. 뒤에 붙은 ‘데라이다’는 ‘되어지이다’와 같은 말일 것 같은데요. 한국의 남쪽지방에서 ‘데라이’라고 흘려 말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또 말끝에 ‘다’를 붙여 축원의 의미를 나타내기도 하고.
   
   오쿠노: 그렇다면? (심각한 표정이 된다.)
   
   중국 방면으로부터 왔다는 가랏빠, 그런데 그 이름은 ‘가락국의 무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하기 시작했다는 축제 이름은 딱 들어도 ‘오래오래 가게 하소서’라는 축원의 한국말이다. 그 축제는 지금까지도 행해지고 있다.
   
   야쯔시로에 좀 더 분명하게 남아 있고 일본 전역에 퍼져 있는 갓빠, 즉 ‘가락국의 무리들’의 이미지는 묘켄 신앙 못지 않게 가야의 흔적을 보여주는 무형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다. 한때 막강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약해져서 일부는 사라지고 일부는 현지화되었던 역사적 존재를 웅변해주는 콘텐츠다.
   
   그런데 이 콘텐츠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뚜렷이 달라지는 것 같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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