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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656호] 2021.05.03

‘이대녀’ 대 ‘이대남’… 정치가 부추긴 젠더 갈등

조윤정  기자 wastrada0721@chosun.com 2021-05-04 오후 12:58:16

▲ 2018년 9월 2일 젊은 남녀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거리를 함께 걸어가고 있다. photo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2018년 서울 4년제 대학의 컴퓨터공학부를 졸업한 유모(29)씨는 학부생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대학원 연구소에 지원하려 했지만, 일찍이 꿈을 접었다. 학점이 거의 만점에 가까운 친구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씨는 한 여자 동기가 해당 연구소에 붙었다는 소식을 과 친구들에게서 들었다. 학부 성적은 중상위권이었고, 눈에 띄는 연구 성과도 없었던 동기가 합격했다는 것을 듣고 유씨는 의아했다고 전했다. 유씨는 “이공계에 여자가 적어서, 여성 연구원이 한 명만 있어도 정부 보조금을 받을 확률이 달라질 수 있어 그런 것 같다”라며 “친구들과 ‘우린 남자라서 절대 못 가겠네’라며 우스갯소리를 나눴다”고 전했다.
   
   ‘이대남’ ‘이남자’로 불리는 20대 남성을 중심으로 ‘남성 역차별’ 문제가 제기되며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유씨의 사례처럼, 성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만든 제도 등으로 오히려 남성이 차별받고 있다는 목소리가 20대 남성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이대남’과 ‘이대녀(20대 여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남녀 갈등은 성별 간 다른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다. 여성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가부장제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남성은 각종 여성 우대 정책 등으로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특히 2030에서 이 같은 경향이 뚜렷하다. 지난 3월 한국리서치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46%와 30대 남성의 51%가 ‘우리 사회는 여자가 더 살기 좋은 환경’이라고 답했다. 반면 20대 여성의 5%, 30대 여성의 9%만이 ‘여자가 더 살기 좋은 환경’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역차별 논란은 지난 4·7 재보궐선거를 기점으로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재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의 72.5%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를 지지했다고 나타난 출구조사 결과에 대해 정치권에서 ‘이들이 민주당의 여성 중심 정책에 분노했다’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반면 이러한 분석이 ‘정부·여당의 실책을 여성에게 부당하게 덮어씌우는 것’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최근 온라인에서 벌인 설전은 이러한 젠더 갈등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 전 최고위원이 선거 결과에 대해 ‘민주당이 여자 편을 들어서 졌다’는 취지의 분석을 내놓자 진 전 교수는 ‘정치·사회적 문제를 여자 탓으로 돌리지 마라’고 반박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지난 4월 12일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20대 남성이 국민의힘을 찍은 건 피해의식과 결부됐기 때문이다”라고 선거 승리 원인을 분석했다. 같은 날 소셜미디어(SNS)에도 “민주당이 2030 남성의 표 결집력을 과소평가하고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했으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적었다. 이에 대해 진 전 교수는 ‘질 나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이 전 최고위원이 작성한 페이스북 게시물에도 진 전 교수는 “자꾸 증오나 반감을 이용하는 포퓰리즘만 하려 하니…”라는 댓글을 달았다.
   
   
   ‘여성할당제’가 아니라 일자리가 문제
   
   정치권에서는 선거에서 크게 존재감을 드러낸 ‘이대남’의 표를 잡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번 재보궐선거 패배 원인 중 하나를 20대 남성 표심의 이탈이라고 본 더불어민주당은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 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대남의 추가적인 이탈을 막기 위한 발언과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20대 남성이 가장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군대 문제가 대표적이다. 지난 4월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시켜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나흘 만에 20만명 이상이 서명했고, 현재 추가 청원도 진행 중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18일 남녀 모두 최대 100일간 의무적인 군사훈련을 받게 하자는 내용의 ‘남녀평등 복무제’ 도입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성별 갈라치기’를 이용한 정치가 성 갈등을 오히려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진다. 20대 개인이 각각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부분에 제도적 지원이 필요한 것인데, 이에 대한 정책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고시를 준비하는 24세 대학생 강모씨는 “남자만 2년 동안 군대에 가는 게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여자도 가라는 게 아니다”라며 “군 경력을 인정해 호봉을 높여주는 등 ‘제도적 인정’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학원 강사로 일하는 26세 유모씨는 “범죄에 대한 공포, 승진을 가로막는 유리천장 등이 아직 사회에 남아 있어 여성은 차별받고 있다”며 “성범죄에 대한 강한 처벌, 조직 내 성차별 관습을 고쳐나갈 수 있는 제도 등 실체가 있는 정책적 도움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성평등 정책이 기계적인 여성 중심을 외쳤기 때문에 성별 분리를 조장한 측면이 있다는 비판도 이어진다. 성평등 문제는 남녀를 포함해 다양한 주체가 참여해 논의해야 하는데, 성별만을 기준으로 여성 중심의 기구를 조직하고 여성 인사만을 요직에 기용했다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대표적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가족부는 다른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관”이라며 “여성가족부는 성평등을 전담하는 기관인데 항상 여성 장관만 임용됐고, 펼친 정책도 여성만을 위하는 내용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구 교수는 “정부가 성평등이라는 큰 담론에서 남성을 소외시킨 측면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조직화한 여성단체와 정치화한 페미니즘이 젠더 갈등을 부추긴 부분도 있다. ‘우먼스플레인’ ‘단단한 개인’ 등을 쓴 이선옥 작가는 지난 4월 14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쓴 ‘20대 남녀 갈등 문제를 해결할 답안지’라는 글에서 ‘공직에서 성평등과 무관한 인사들을 청산할 것’을 요구했다. 이 작가는 “중앙정부와 각 지자체에서 ‘성인지 정책담당’ ‘젠더 자문관’ 등으로 채용하는 공직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실제 서민 여성의 삶에는 아무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분법적인 성별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젠더 갈등을 완화할 수 있다고 본다. 불거지는 문제들에 대해 노동, 인권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해야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성할당제, 군대 등 남녀 갈등으로 격화되는 문제들을 젠더 갈등으로만 보면 타협과 해결이 어렵기 때문이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장은 “여성할당제를 20대 남성이 곱게 볼 수 없는 이유는 저성장 등으로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라며 “남녀 갈등이 아니라 노동, 청년 실업 등을 문제로 인식해야 본질적인 해결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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