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7일 상산고 강당에서 열린 이사장 이·취임식에서 홍성대 설립자가 퇴임사를 하고 있다. ⓒphoto 상산고
지난 4월 27일 상산고 강당에서 열린 이사장 이·취임식에서 홍성대 설립자가 퇴임사를 하고 있다. ⓒphoto 상산고

2008년 10월 어느 날 상산고 임현섭 교감과 정해춘 수학교사가 이른 새벽 전주 집을 나섰다. 울릉도에 사는 한 학생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전북 전주에서 경북 울릉도까지 가는 데 고속버스와 배로만 9시간이 걸렸다. 상산고 교사들이 만나러 간 학생은 울릉북중 3학년 재학생. 전교 1등이라고 했지만 실력을 가늠할 수 없어 직접 찾아간 것이다.

당시 울릉북중은 3학년생 전체가 6명이었다. 홍성대 상산고 설립자는 울릉북중 1등이 상산고에 지원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교사들에게 “웬만하면 데려오시죠”라고 부탁했다. 홍 설립자는 전북 정읍 태인중을 나왔다. 6·25전쟁 직후 모두 가난했던 시절, 교과서를 4분의 1도 못 떼고 학년이 바뀌던 농촌 학교에서 공부했다. 이런 기억 때문인지 울릉북중 지원자에게 애정과 관심이 간 터였다.

울릉북중을 찾았던 상산고의 두 교사는 어쩌면 국내 고교 첫 입학사정관이었다. 교사들은 섬에서 하루를 묵으며 소년의 잠재력과 의지를 살폈다. 소년을 붙들고 4시간가량 면담을 했고 담임교사, 부모, 이웃까지 만났다. 결국 이 학생은 상산고에 붙었으나 그 이후가 더 어려웠다. 입학 전 수학 진단평가부터 난관이었다. 100점 만점에 37점, 이 학교 29회 신입생 384명 중 꼴찌였다.

울릉북중 출신 제자 키우기

상산학원 이사장도 겸하고 있던 홍성대 설립자는 입학식 날 이 학생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공부를 말하지 않았다. 대신 “오늘부터 매일 운동장을 10바퀴씩 돌라”고 주문했다. 고3까지 버티려면 체력을 기르라는 뜻이었다. 이 학생은 설립자의 뜻에 따라 매일 운동장을 뛰면서 성적을 꾸준히 올렸다. 3년 뒤인 2012년 봄 울릉도에서 첫 서울대생이 탄생했다. 현재 군복무를 마치고 인문대 서양사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박민혁(28)씨다.

홍 설립자에겐 북한 이탈 제자들도 있다. 경북 포항의 탈북 여중생을 입학시키기까지 교사들은 포항을 4번 찾았다. 역시 어림없는 학력이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국과 동남아를 떠돌던 고아였다. 한국 입국 후 영어를 배운 지 1년 반도 되지 않았다. 상산고 입학 후 3년 내내 꼴찌였던 이 소녀가 이화여대 간호학과에 진학하기까진 많은 일화가 숨어 있다.

국어·영어·수학 교사들은 방과 후 번갈아 이 소녀에게 개인지도를 했다. 선배들이 물려준 교복을 기숙사 돌보미 아줌마가 말쑥하게 다려 입혔다. 기숙사 한 방의 세 동급생은 허물없는 벗이 돼주었다. 전주시내 ‘한부모가정’ 중학생 공부를 돌봐주는 교내 동아리 회장도 무심한 척하며 후배의 생활과 공부를 도왔다. 변호사인 상산학원 이사는 용돈으로 매월 10만원씩 통장에 넣어줬다. 소녀는 “학교 꼴찌지만 전국에선 매월 순위가 오른다”며 늘 밝은 표정이었다.

상산고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상산고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30세에 쓴 ‘수학의 정석’

정원 360명의 자율형 사립고 상산고는 2021학년 입시에서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성적을 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등 국내 9개 주요 대학에 281명을 합격시켰다. 물론 재수생을 합쳐서다. 의·치·한의대에 201명이 합격했는데 중복 합격을 빼니 134명이다. 의학계 진학자 수는 5년 넘게 전국 고교 1위다. 홍 설립자는 이공계 진학을 권장하곤 한다. 그에겐 난관을 이겨낸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자랑스럽다. 입학식 때도, 학부모를 만날 때도 이들 이야기를 꺼낸다.

홍 설립자 자신부터 가시밭길을 걸었다. 이 땅 80대가 겪었던 역경과 고난을 고스란히 견디며 그 세대를 대표하는 드라마를 썼다. 영예의 내면은 땀과 고통으로 얼룩졌다. 초등 4학년 때 모친을 잃고 집안이 어려워졌다. 전북 정읍의 태인중에서 익산 남성고에 진학한 뒤 기차로 통학했다. 낡은 자전거로 비포장길 7㎞를 달려 호남선 신태인〜익산역을 통학했다. 비에 젖은 교복을 기차 안에서 입은 채로 말렸고, 장마 땐 급우 자취방 신세도 졌다. 통학·자취·하숙을 통틀어 고교 3년까지 15번쯤 거처를 옮겼다. 수학과의 평생 인연은 서울대 수학과에 입학하며 맺었다.

‘수학의 정석’은 학비와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던 고학(苦學)의 산물이었다. 가정교사와 고교생 수학 그룹지도를 전전하던 대학 3학년 때 그를 아껴주신 교수가 학원을 소개해줬다. 대학 졸업 후 학원에서 하루 10시간씩 강의했다. 자투리 시간이 나면 한눈팔지 않고 문제를 만들고 다듬었다. 새벽 3~4시까지 집필한 뒤 눈을 붙였다. ‘수학의 정석’을 처음 출간한 게 30살이던 1966년이었다. ‘수학의 정석’은 이 땅에서 성경 다음 베스트셀러가 됐다. 발행 반세기를 맞은 2016년 누적 판매량이 4600만부였다. 평균 두께 3㎝인 책을 눕혀 포개면 에베레스트산(높이 8848m) 156개 높이로 솟는다.

김대중 정부가 날개를 달아주다

홍 설립자가 상산고를 세운 것은 이 책으로 번 돈을 학생들에게 되돌려줘야 한다는 책무감에서였다. 인재 요람을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펼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말이었다. 묘지 사이에 고구마밭, 고추밭과 황무지가 있는 전주 효자동 야산 6만㎡를 샀다. 캠퍼스 공사 현장에서 장대비 속 막 비벼 넣은 콘크리트 바닥에 가마니를 덮기도 했다. 전국을 무대로 교사를 채용했는데 교과에 따라 경쟁률이 100 대 1을 넘었다. 건물과 운동장, 스탠드, 그리고 정원과 동산의 노송(老松) 700그루까지 모두 그의 손길이 닿았다.

상산고 문을 연 게 45살 때인 1981년이었다. 상산이란 이름은 고향 태인의 진산(鎭山)인 상두산(象頭山)에서 따왔다. 산세가 코끼리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첫 입학식에서 홍 이사장은 ①훌륭한 선생님을 모시고 ②최선의 교육환경을 갖추며 ③진실과 정성으로 참된 교풍을 세우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그 후 반평생을 오로지 학교와 더불어, 학교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이리 뛰고 저리 달리며 살아왔다”고 돌이켰다.

1984년 첫 졸업생 572명 중 49명이 서울대에 합격했다. 이를 믿지 못해 뒷조사한 기자가 있을 정도였다. 평준화 교육이 이어지며 학교가 매너리즘에 빠져들 무렵 그에게 ‘마음 설레 밤잠 못 이루게 하는 일’이 생겼다. 김대중 정부가 2002년 자사고(당시는 자립형 사립고) 제도를 도입하며 상산고를 시범학교로 지정한 것이다. 평준화에 따른 획일 교육을 보완하고 다양성과 수월성을 높인다는 뜻이었다.

당시 수업 중 학생 대부분이 엎드려 자는 교실 모습들이 TV에 방영되고 있었다. 조기유학이 봇물을 이뤘다. 3년 사이 교육부 장관이 6번 바뀌었다. ‘교실 붕괴’를 더는 방치할 수 없었다. 김대중 정부는 재정 독립을 조건으로 학생 선발과 교과편성 자율권을 주었다. 상산고가 첫 자사고로 선정된 이후에만 그는 사재 700억원을 학교에 투자했다. ‘원조’ 자사고 6곳 가운데 기업 지원 없이 이사장 개인이 살림을 꾸리는 학교는 상산이 유일했다.

상산고는 구성원이 똘똘 뭉쳐 후발 자사고와 일반고의 모델로 거듭났다. 국내외 명사·석학 특강에 양서 읽기, 생활영어 강좌들이 펼쳐진다. 수학·과학 등 심화과정은 방과 후에도 학생들이 자율로 선택할 수 있어 사교육이 필요 없다. 철학·음악 수업은 2학년까지, 체육은 3학년까지 계속된다. 졸업생 모두 태권도 유단자다. 교사 76명 중 박사가 15명이다. 전교생 1080여명 중 90% 이상을 기숙사에 수용해왔다.

참고서 세계의 ‘수학의 정석’처럼, 자사고의 아이콘을 키워온 홍성대 상산학원 설립자가 얼마 전 이사장직을 내려놓았다. 개교 40주년 기념일인 지난 4월 27일 학교 강당에서 이사장 이·취임식을 가졌다. 코로나19 방역 기준에 맞춘 조촐한 행사였다. 홍 설립자의 외아들이자 성지출판㈜ 대표인 홍상욱 새 이사장과 전·현 임원과 교직원, 학생·동문 대표 등 구성원 일부만 초대됐다. 학교는 행사를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짤막한 기사가 신문에 보도된 것은 이틀 뒤였다.

이사장 퇴임식 후 학생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홍성대 설립자. 맨오른쪽은 설립자의 아들인 홍상욱 신임 이사장.
이사장 퇴임식 후 학생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홍성대 설립자. 맨오른쪽은 설립자의 아들인 홍상욱 신임 이사장.

“좀 쉬어야지요” 퇴임 문자메시지

“좀 쉬어야지요. 정말 하루도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이제는 무엇인가 새로 시작하려 해도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초조해지곤 해요.” 퇴임식에 부르지 못한 후진 가운데 설립자의 이 같은 문자메시지를 받은 제자도 있다. 그는 어느덧 80대 중턱이었다.

홍 설립자가 잠시 주변을 정리한 적이 있다. 2005년 여름 경추(頸椎)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하면서다. 그는 그때 학교법인 통장에 150억원을 입금했다. 기숙사 및 체육관 공사대금으로 100억원, 학교 2~3년 운영비로 50억원 등의 명목이었다. 그때 그는 9시간 걸리는 대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수술 부위가 뇌에 가까워 만에 하나 잘못될 수도 있었다.

그는 팔순을 맞은 2016년 전국 학교 순회 강연을 하기도 했다. 모교 태인중을 시작으로 전교생이 수십 명인 농촌 학교 10여곳을 찾았다. 그는 자신의 성장 스토리와 수학 공부 방법 등을 들려주며 어린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공부로 어려움을 딛고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자신의 서명을 담아 상산고 신입생에게만 건네주던 ‘수학의 정석’도 나눠주었다. 그는 상산고 개교 2년 전 고향 태인 생가 옆에 도서관을 세워 선물했다. 서울대에도 필즈상이나 노벨상 수상자 배출의 염원을 담은 순수기초과학 요람으로 1998년 ‘상산수리과학관’을 지어 기증하기도 했다.

사유재산으로 설립·운영하는 게 사학이다. 그에게 ‘사학 운영의 자유’는 건학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반드시 보장돼야 할 ‘본질적 요체’였다. 정부는 그러나 기존 자사고 정책을 2017년 말 뒤집으며 그 숨통을 조였다. 자사고 신입생을 일반고와 동시선발케 하고, 자사고 지원자에게 일반고 중복지원을 못 하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쳤다. 이명박 정부가 40여곳으로 늘린 자사고를 폐지하는 게 문재인 대통령 선거공약이었다. 전교조 등 이른바 ‘진보단체’는 자사고를 처음 만들 때부터 ‘귀족학교’ ‘특권학교’ ‘입시전문기관’이라고 불렀다. 평등권을 침해하고 학교를 서열화한다는 주장이었다.

헌법소원 투쟁에서 승리했지만

홍 설립자는 시행령 개정이 자사고의 학생 선발권을 없애 사학 운영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재판정에 직접 나가 “정부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쏟아온 열정이 억울하다”며 “좋은 학교를 만들고 훌륭한 인재를 키우고 싶던 꿈과 자부심이 물거품이 되는 상황을 바라보며 억장이 무너진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헌재는 ‘중복지원 금지’를 위헌으로 판결했으나 상산고는 한 차례 더 소용돌이에 휘말려야 했다.

5년마다의 자사고 평가에서 전북교육청은 2019년 자사고 재지정 기준을 80점으로 올렸다. 다른 모든 시도보다 10점 높았다. 상산고가 평가받는 해였다. 그 평가에서 79.61점이 매겨졌다.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상산고의 자사고 지정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지역 인사들이 뜻을 모아 상산고 살리기에 나섰다. 팔도 사투리가 울려 퍼지는 학교였다. 공항과 도로, 산업단지 못지않게 기업 유치를 위해서도 필요한 인프라가 상산고였다. 시민들의 서명부가 교육부에 전달됐다. 지역구 의원을 중심으로 국회의원 과반인 151명이 뜻을 모았다. 존폐 기로에서 2019학년도 1.32대 1까지 떨어졌던 상산고 입학 경쟁률이 이듬해 1.52 대 1, 작년 1.84 대 1로 회복됐다.

자율형 사립고 상산고 운명은 그러나 다른 자사고와 함께 이제 ‘시한부’가 됐다. 정부가 다시 2019년 11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전국 자사고와 외국어고, 국제고 모두를 2025년 일반고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맞서 수도권 자사고 등 24개 학교가 지난해 5월 헌법소원을 냈다. 2년 전과 같은 취지다. 새 시행령이 사학 운영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하고, 교육에 관한 것은 법률로 정하도록 한 교육제도 법정주의에 위배되며, 신뢰 보호 및 과잉금지 원칙도 위반했다는 게 골자다.

상산고 생활관 옆에 있는 ‘수학의 정석’ 기념비.
상산고 생활관 옆에 있는 ‘수학의 정석’ 기념비.

‘시한부’ 생명 상산고는 살아날까

정부는 정시를 확대하고 고교학점제를 도입한다고 했다. 서울 강남 ‘교육특구’ 부활 등 평준화·획일화 교육의 폐해가 되살아나리란 우려가 크다. 한국교총은 “임기를 1년 남긴 정부, 교육감들이 교육정책 대못 박기로 학생과 국가의 미래를 망치고 있다”며 “일방·편향 정책을 즉각 폐기하고 교육 대전환에 나서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 40년은 망연자실과 역경의 연속이었고 땀과 눈물로 얼룩졌습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자랑스러운 전통과 역사를 쌓은 흐뭇하고 값진 세월이기도 했습니다.”

홍 설립자의 이사장직 이임사는 학교 구성원 모두에 대한 감사로 이어졌다. 그러면서도 자사고의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물러나는 마음이 솔직히 착잡하다. 우리 앞길에는 아직 험난한 걸림돌이 겹겹이 가로놓여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러나 용기를 잃지 않고 힘을 합쳐 당당히 나아간다면 희망은 우리를 기다릴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땀 흘려야 이룬다는 걸 깨닫는 게 배움이다. 지식의 양이 아닌, 고통을 견디고 결행하며 책임지는 능력으로 엘리트임이 입증된다. 엘리트 육성은 가장 중요한 미래 사업이다. 미국과 영국, 중국에서도 인재를 키우기 위해 연간 수천만원씩 투자되는 명문 사립고에 아이를 보낸다. 못해도 낙오되지 않도록 보살피고, 잘하면 더 격려하는 게 교육이다. 한 가지가 아닌, 교육 주체마다의 자유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경쟁케 해야 한다.

교육에도 포퓰리즘 논란이다. 땀 흘려 어렵게 모은 내 돈을 보태, 더 배우려는 아이들에게 더 많이 가르치겠다는 교육자에게 ‘평등교육 파괴’의 죄목을 씌우는 사회가 정상인가. 대중의 질투를 결집, 잘 자라는 나무를 잘라 키를 낮추는 하향평준화는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빠듯한 교육재정 현실에서 자사고는 당장 학교마다 매년 50억원 안팎씩 국가예산 부담을 덜어줬다. 단순계산으론 상산고 덕에 전주시내 20여개 고등학교가 2억여원씩 더 지원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자사고·외고를 없애려 한 세력의 중심엔 이들 학교에서 제 자식을 졸업시킨 ‘내로남불’ 인사가 적지 않다. 그런 사람일수록 신뢰·배려·양보·관용·헌신·겸손 등 보이지 않는 사회 인프라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모른다. 부모나 자식이나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소망했던 일을 하게 된 게 오로지 자신의 노력과 능력 덕분인 것으로 안다. 그런 사람이 공직을 맡으면 월급 받고 한 일조차 봉사한 것으로 착각한다. 국민 세금으로 수행한 당연한 일을 자신의 공이라며 생색낸다. 부끄럽고 불편하고 부조리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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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곤 군장대 석좌교수·전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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