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허인회
일러스트 허인회

MZ세대에게 여행은 여가(餘暇), 즉 다른 무엇을 하고 남은 것이 아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여행에 대한 의미 및 인식’을 조사해봤다. 이 조사에서 “여행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한 MZ세대는 10명 중 6명이 훌쩍 넘었다. 20대의 64%, 30대의 69.6%가 ‘그렇다’고 답한 것이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조사해보니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 2019년 한 해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고 답한 MZ세대는 30%가 넘었다.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40대와 은퇴 후 여생을 즐기는 60대가 기록한 20%를 한참 웃도는 수치다. 예전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2013년만 해도 한 번이라도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 있는 20~30대는 20% 남짓으로 다른 연령대와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그러던 것이 2019년에 들어서 20대 37.8%, 30대 38.7%로 크게 늘어났다. 최근 몇 년 사이 MZ세대에게 여행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는 얘기다.

왜 MZ세대에게 여행은 중요할까. 그걸 알기 위해서는 우선 MZ세대가 어떤 여행을 떠나는지부터 보아야 한다. 엠브레인이 2019년에 실시한 ‘해외여행 이후 나, 한국에 대한 인식’ 조사를 보자. MZ세대가 여행지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지역의 먹을거리이다. 40대나 50대에게는 치안, 물가, 자연환경 등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제이지만 MZ세대에게는 그렇지 않다. 먹을거리, 쇼핑, 평소의 희망같이 나만의 기준이 중요하다. 그래서 같은 조사에서 20대의 75%는 여행사에서 판매하는 패키지 여행상품을 구입하는 대신 자유여행을 떠난다고 답했다.

규범 사회를 탈출하는 방법

그렇다면 먹을거리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자유여행으로만 해외를 20번 넘게 다녀온 34살 박주혜씨는 여행지에서 먹을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를 여행의 목적이 “현지인처럼 살아보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어른들 보면 해외여행 가면서도 고추장, 라면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분들이 있잖아요. 저는 진짜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저에게 중요한 것은 현지에 가서 거기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먹어보는 겁니다.”

꼭 먹을거리가 아니라도 좋다. 한국에서는 보지 못하는 풍경, 겪지 못하는 일을 여행지에서 보고 겪는 것이 목표인 MZ세대가 많다. 박주혜씨의 친구 이재인씨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 경험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와인 생산지 나파밸리에서 겪었던 일이다.

“하루 종일 와이너리(winery·양조장) 투어를 떠나서 와이너리마다 생산하는 특색 있는 와인을 마셔봤거든요. 날은 따뜻하고 맑고, 와인은 맛있고, 함께 투어를 떠난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하던 그 순간이 너무 행복했어요.”

그러니까 MZ세대의 여행은 지금, 이곳과 다른 ‘무엇’이다. 이들이 찾는 그 지역의 먹을거리란 ‘새로운 음식’이 아니라 ‘한국 음식이 아닌 것’이다. 둘의 차이는 크다. 여행을 통해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현실에서는 못 겪어볼 만한 경험을 하고 싶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MZ세대는 여행을 통해 현실을 벗어난다. 즉 자유를 경험한다. 한양대학교 관광학부 김수용씨가 여행 경험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지난해 한국관광학회 부산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여행은 ‘자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일상(日常)으로부터의 자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행자에게 일상은 규범적이다. 매일 해야 하는 일이 있고 주어진 역할이 있다. 그러나 여행지에서는 이런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여행을 통해 규범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한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MZ세대 중에서도 여성이 여행을 더 많이 떠나는 이유가 설명된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성 역할이 고정적인 사회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매해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Glass Ceiling Index)는 해마다 한국을 가장 성차별적인 국가 중 하나로 지목한다. 올해에도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유리천장지수가 가장 낮은 국가로 선정되었는데, 다시 말하자면 한국 사회에는 여성에게 보이지 않는 차별이 여전히 만연해 있다는 얘기다.

MZ세대의 여성들에게 이런 보이지 않는 차별로부터 일시적으로나마 자유로워지는 방법 중 하나는 여행이다. 2019년을 기준으로 지난 1년간 20대 남성의 30%가 해외여행을 다녀올 동안 절반 가까운 20대 여성(45.8%)이 해외여행을 다녀온 데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나’의 만족에 집중된 여행

정리하자면 MZ세대에게 여행의 가장 큰 의미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견문을 넓히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내’가 느끼는 것이다. MZ세대가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는지를 조사해보면 확실해진다. 엠브레인의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여행에 대한 의미 및 인식’을 다시 보면, 여행을 통해 “혼자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고 대답한 MZ세대는 80%에 가까워 다른 연령대에 비해 유독 높은 수치를 보였다. ‘자신감’을 얻었다는 응답도 비슷한 수치로 나왔다. 한양대학교 관광학부 이혜정씨가 쓴 논문 ‘N포세대는 왜 해외여행을 떠나는가?’를 보면 이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이씨는 해외여행을 자주 다녀오는 N포세대, 즉 MZ세대와 인터뷰해본 결과 부정적인 현실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행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새롭고 낯선 것을 경험하는 일만큼 ‘나’를 다독이고 고취시키는 일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욜로(YOLO·인생은 한 번뿐이다) 현상이 한국에서는 유독 여행과 결부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계명대 관광경영학과 곽재현씨의 논문 ‘빅데이터를 활용한 욜로(YOLO) 현상 분석’을 보면 욜로에 관심을 가진 미국, 유럽 등지에서는 욜로가 힙스터(hipster) 현상이나 힙합 문화 등과 연관이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소비와 여행이 결부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생은 한 번뿐이니 즐기며 살자는 욜로 현상이 유행한 것이 2010년대 중반부터이니 MZ세대의 여행 경험 증가는 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때부터 늘어난 MZ세대의 여행은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것이라고 짚어볼 수 있다.

MZ세대의 여행이 자유로움과 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한 가지 의문점이 해결되기도 한다. 바로 해외여행 경험률은 높아지는데 다문화에 대한 인식은 낮아지는 모순적인 상황에 대한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3년에 한 번 실시한 ‘다문화 수용성 조사’를 보자. 가장 최근 조사인 2018년에 ‘어느 국가든 다양한 인종·종교·문화가 공존하는 것이 더 좋다’는 문장에 동의하는 MZ세대는 2015년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다. 2015년에만 해도 20대 51.6%, 30대 45.4%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2018년에는 그 수가 각각 4.7%, 3.5% 줄었다. 다른 연령대에서는 늘어난 것과 대조된다.

일반적으로 해외여행 경험은 다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가져온다고 알려져 있는 것과 차이가 있다. 왜 여행을 많이 다니는 MZ세대는 다문화에 경계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MZ세대의 여행과 다문화 감수성은 크게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MZ세대가 여행을 떠나는 목적은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만약 그런 목적이라면 매년 700만명 넘게 다녀온 일본에 대한 인식은 크게 변화했어야 한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의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일본을 찾은 해외여행객 수는 3119만명인데, 이 중 24%에 달하는 754만명이 한국인이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해 ‘노재팬 운동’으로 이름 붙여진 반일(反日) 불매운동이 시작돼 한국 내 일본 기업들의 매출액은 큰 폭으로 떨어졌고 방일(訪日) 한국 관광객의 수 또한 급감했다. 이는 그동안의 일본 여행 유행이 일본 문화와 국가에 대한 호감보다는 찾아가기 쉽고 다른 여행지보다 덜 낯설지만 잘 정비된 관광 상품을 가지고 있던 일본 관광 산업의 특수성에 기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반다문화주의자가 늘어나는 까닭

다른 국가로의 여행도 마찬가지다. 한동안 한국 여행객 사이에서는 스페인과 대만을 방문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었다. 스페인을 방문한 한국 관광객 수가 50만명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그러나 여행객의 증가가 스페인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한국에서 스페인 문화는 낯설다.

MZ세대에게 여행과 다문화는 별개의 문제다. 일부 영향을 주는 부분도 있다. ‘먹을거리’이다. 2010년대 이후 MZ세대의 해외여행 경험이 늘어나면서 가장 눈에 띄게 변화한 부분은 음식 문화다. 기껏해야 일식과 중식이 전부이던 외국 음식이 매우 다양해진 것이다. 크림소스를 잔뜩 버무린 한국식 카르보나라만 유행하던 2000년대 이탈리아 음식점들과 달리 2010년대 이탈리아 음식 전문점은 계란 노른자를 이용한 정통 카르보나라부터 면을 살짝 덜 익혀 심지가 씹히는 알 덴테(Al dente) 방식의 파스타까지 이탈리아 현지의 맛을 재현하는 데 집중한다. 인도, 터키 지방의 음식점은 꽤 오래전부터 자리 잡았고, 해외 여행객이 늘어날수록 음식점의 다양성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여행을 통한 다문화가 ‘일시적 다문화주의’에 그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시적 다문화주의’는 완전히 뿌리내린 다문화주의와는 다르다. 문화적 이해가 없이도 일상에서 한번 즐기고 마는 다문화를 의미하는데 한국에서의 음식 문화가 그렇다. MZ세대에게 외국 음식을 맛본다는 것은 여행을 재현하는 의식과 같은 것이다. 여행을 매번 갈 수 없는 대신 음식을 먹으면서 회고하곤 한다. 음식을 먹는 것이 하나의 체험 활동이 된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시적 다문화주의를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일시적 다문화주의가 일상적 다문화주의, 즉 일상생활에서도 이뤄지는 뿌리내린 다문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김수철 건국대 연구교수는 ‘2010년 이후 에스닉 푸드를 둘러싼 한국의 음식 문화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음식 문화란 이주민의 이주와 함께 이뤄지는 것이며 따라서 자연스럽게 문화가 전달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MZ세대의 여행 경험 증가, 한국 거주 외국인의 증가 같은 사회적 현상이 맞물려 함께 작동하고 있다. MZ세대의 여행 경험 증가가 불러온 일시적 다문화주의가 확장될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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