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예방접종센터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는 시민들. ⓒphoto 뉴시스
지난 5월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예방접종센터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는 시민들. ⓒphoto 뉴시스

5월에는 이런저런 날이 많다. 5일은 어린이날, 8일은 어버이날, 15일은 스승의날, 그리고 음력으로 바뀌는 부처님 오신 날 등이 있다. 나에게는 기억해야 할 날이 하루 더 생겼다. 5월 6일이다. 누군가의 양보로 코로나19 백신을 맞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진자 숫자가 증가해도 주변에서는 걸린 사람이 없어서 좀 둔감했다. 친한 친구가 바다 건너 미국에서 1년 전 확진이 되었지만 그야말로 좀 먼 나라 이야기였다. 학기 초 대학 연구실이 있던 건물에서 확진자가 나오면서 좀 겁이 나기 시작했다. 확진자 한 명과 전주에 회의를 해서 검사를 받아보라는 연락을 받은 후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처럼 여기게 되었다. 코에 면봉이 들어가는 순간 백신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 이후로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등 별로 관심 없던 제약사를 괜히 친숙하게 여기게 되었다. 한국 화이자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남는 백신 없냐는 실없는 카톡을 보내기도 했다. 친구는 “환자 우선!(Patient First!)”이라는 멋진 말로 응수했다.

지난 4월 말부터 언론 보도와 소셜미디어에서 간간이 ‘노쇼(No Show)’로 인한 백신 접종 이야기가 나왔다. 한 병 안에 든 백신을 개봉한 후 6시간 안에 접종해야 하는데 접종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분들이 생기면 아까운 백신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 잃은 백신을 버리지 않고 신청한 사람에게 접종해 주는 통로가 생긴 것이다. 소위 ‘코로나19 백신 노쇼 접종’이다.

노쇼 찾아 전화 돌리기

빨리 맞는 것은 나랑 관련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별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 흔한 행운권 추첨도 한 번 돼본 적이 없을 정도로 운이 없었기 때문이다. 4월의 마지막 날 페이스북 친구인 동년배 선생님이 접종을 받았다고 사진을 올렸다. 연락을 해볼 필요도 없이 그 과정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세히 올렸다. 아울러 시간별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접종 후기를 올려서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읽고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5월 3일 오전에 질병관리청의 코로나19 예방접종 사전예약 시스템(https://ncvr.kdca.go.kr)을 검색했다.

‘의료기관 찾기’에서 직장 근처의 병원들을 찾았다. 은평구, 서대문구, 마포구의 의원들을 찾았다.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가시는 의원을 찾으라는 댓글도 보였다. 그런데 그 많은 의원 중 어르신들이 주로 가는 병원이 어딘지는 그분들만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빌딩이라는 이름을 가진 엘리베이터가 있는 고층 건물보다는 ○○상가 등 좀 낮은 건물에 있는 병원들을 중심으로 찾았다. 시스템에 있는 의원 중 6개를 골라서 1번부터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5월 2일 오후 2시, 5군데 전화를 했는데 모두 실패했다. 다음 날 다시 도전했다. 오전 11시30분쯤 전화를 걸다가 3번째 병원에서 원하던 소식을 들었다. 5월 6일에 오라고 했다. 잠시 후 질병관리청에서 ‘국민비서 구삐’를 통해 카카오톡 메신저가 왔다. 일시, 장소, 백신명과 예약번호가 포함된 내용이었다. ‘그 마음 변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혼자 되뇌며 그날 만난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페이스북에서 접종을 알려준 페친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알려준 대로 타이레놀을 샀다. 하루 8알이 최대 복용량이기 때문에 3통을 샀다. 한 통에 10알이 들었기 때문이다.

5월 6일 오전 9시에 백신을 맞으러 갔다. 진료를 하는 의사 선생님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았다고 했고, 직접 주사를 놔준 간호사 선생님은 아직 접종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왜 안 맞았냐고 했더니 그 이유를 답해 주지는 않았다. 혹시 백신이 담겼던 빈 병을 가져가도 되냐고 했더니 보건소로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외국에서는 빈 병을 기념품으로 주기도 하는데, 우리나라는 역시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 같았다. 군대의 사격 훈련처럼 훈련 후 탄피 개수를 일일이 세서 확인하는 격이다.

접종 후 15분은 병원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 말은 살 빼라는 말을 제외하고는 성경 말씀처럼 여기기 때문에 20분을 있다가 나왔다. 병원에서는 후속조치를 자세하게 적은 예방접종 안내문을 줬다. 접종 후 최소 3일간은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라고 굵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대기하고 있는데 문자도 왔다. 병원을 통해서 온 질병관리청의 문자메시지였다. ‘1차 접종등록증명 및 2차 접종기간 안내’였다. ‘박대권님은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받으셨습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2차 접종이 자동으로 예약되어 날짜, 시간, 장소가 문자로 왔다. 11주 후 같은 병원으로 지정되었다. 혼자 흐뭇하게 웃었다. 매 4시간마다 타이레놀을 두 알씩 먹었다. 미리 맞은 사람들은 당일은 괜찮고 접종 후 첫째 날과 둘째 날에 증상이 나타나니 조심하라고 했다. 접종 후 점심, 저녁 모임과 두 건의 회의를 마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여느 날과 같았다.

질병관리청에서 필자에게 보내온 코로나19 백신 접종 안내문.
질병관리청에서 필자에게 보내온 코로나19 백신 접종 안내문.

4시간마다 타이레놀 두 알씩 복용

접종 다음 날은 일어나자마자부터 타이레놀을 두 알 먹었다. 이날도 네 시간마다 두 알씩, 하루 종일 여덟 알을 먹었다. 아침부터 몸살 기운이 있었다. 그래서 따듯한 커피를 마셨다. 식사는 정상적으로 했고, 일은 쉬었다. 목욕 생각이 간절했지만 남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대중탕에는 가지 않았다. 오후에는 주사 맞은 왼팔이 뻐근했지만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먼저 맞은 선배에게 물어보니 플라시보 효과일 수도 있다고 했다. 하루 종일 몸살 기운이 계속되었다.

접종 후 둘째 날은 다행히 토요일이어서 맘 놓고 쉬었다. 좀 피곤하기는 했지만 몸살 기운은 없어졌다. 전날처럼 팔이 아프지는 않았는데 맞은 자리가 아팠다. 맞은 자리가 어딘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핑계를 대고 하루를 쉴 수 있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삼성과 LG 등 대기업은 최대 3일까지 백신 유급 휴가를 준다고 했는데 매우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법제화되지는 않았지만 정부에서도 백신 접종 다음 날과 이상반응 시 추가 1일을 휴가로 권고하기로 했다고 한다.

접종 후 셋째 날 오전 11시3분에 질병관리청에서 문자가 왔다. 백신 접종 후 3일째라고 알리며 링크를 통해 건강 상태를 확인하라고 했다. 아울러 접종자에게 공포의 대상인 혈소판감소성 혈전증에 대한 증상 및 대처방안에 대한 안내가 첨부되었다. 문자와 관계없이 아무런 통증이나 접종 후 반응이 없었다.

발 빠른 사람만 노쇼 혜택이 맞나?

안내문에는 접종간격이 8~12주로 쓰여 있는데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한 허가사항은 4~12주이다. 지난 3월 6일 영국 옥스퍼드대 등의 연구진이 의학학술지 랜싯(The Lancet)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6주 미만의 간격을 두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2차 접종을 한 사람들의 예방 효과는 55.1% 정도에 그쳤으나 12주 이상 간격을 둔 경우 81.3%에 달했다. 이에 앞서서 2월 10일에는 세계보건기구(WHO) 전문가전략자문그룹(SAGE) 역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간격이 길수록 효과가 높아진다면서 1·2차 접종간격을 8〜12주로 권고했다. 원래 질병관리청에서도 2차 접종 예약 기준일을 8주 후로 했다가 10주로 연장한 적이 있다. 연구 결과와 백신 수급 사정에 따라 적절하게 조정한다고 했다.

누군가의 양보로 운 좋게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했다. 5월 13일 현재 70~74세는 접종 예약률이 51.6%, 65~69세는 38.4%에 불과하다. 이분들 중에도 노쇼가 나올 것이고 나처럼 전화를 돌리는 사람이 또 생길 것이다. 빈자리를 아무나 채울 수 있고 그걸 공정,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현재의 노쇼 접종 제도는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정보에 빠른 사람, 일과 시간에도 나가서 백신을 맞을 수 있는 사람에게 유리한 것 같다. 백신을 맞았다고 하면 대학교수여서 먼저 맞았거나 병원에 있는 친구 찬스를 쓴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혀 아니다. 먼저 알아서 미리 전화를 돌렸을 뿐이다.

앞뒤 연령대 우선 배려 필요

이런 억측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노쇼 접종에 질서를 좀 두었으면 한다. 다행히 지난 5월 14일 오후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잔여 백신 당일 신속 예약 시스템 개통 계획’을 발표했다. 5월 27일부터는 네이버나 카카오 등의 IT 플랫폼을 이용하면 노쇼 백신 물량에 대해 일일이 의료기관에 전화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개별 의료기관에 대한 전화 문의가 플랫폼을 통한 체계적 관리로 바뀐 듯하다. 접종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기 때문에 모바일 접근성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실제로 오는 6월 7일부터 예방접종을 실시하는 60~64세와 30세 이상 유치원, 어린이집, 초등학교 1·2학년 교사와 돌봄인력의 첫날 접종 예약률을 비교해 보면 각각 18.6%와 45.8%로 차이가 컸다.

그렇지만 그냥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그 동선까지 설계해 줬으면 좋겠다. 먼저 해당 연령대 앞뒤 연령대에게 우선권을 주면 좋겠다. 즉 65~74세 접종 기간이라면 노쇼의 우선권을 55~64세에게 주는 것이다. 또한 75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드리는 거다. 그 사이에 생각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하루라도 빨리 맞고 싶어하는 사회필수요원에게 우선권을 주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렇게 하면 선접종 대상자들에 대한 접종기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나 같은 일반인에게 주면 노쇼 접종이 ‘신속 트랙’이지 ‘새치기 트랙’이 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접종하고 나서야 이런 생각이 들어서 미안할 뿐이다. 백신을 양보해 주신 마음 커다란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박대권 명지대학교 청소년지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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