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체포했다고 밝힌 로맨스스캠 국내 인출책이 지난 4월 27일 ATM기에서 돈을 꺼내는 모습. ⓒphoto. 경기북부청
지난 17일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체포했다고 밝힌 로맨스스캠 국내 인출책이 지난 4월 27일 ATM기에서 돈을 꺼내는 모습. ⓒphoto. 경기북부청

지난 5월 17일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피해자 76명에게 46억4000만원 가량을 속여 뺏은 로맨스스캠 조직의 인출책 및 관리책 4명을 긴급체포해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들을 검거·구속했다고 밝힌 17일 당시에는 피해자가 26명, 피해액이 16억으로 확인됐지만, 앞서 구속된 2명을 송치하고 나머지 2명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3배에 가까운 추가 피해 사실이 드러났다. 사건을 수사한 사이버경제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주간조선과 만나 “신고가 접수된 것만 해도 이 정도”라며 “실제 피해자는 2배 이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로맨스스캠은 일종의 피싱으로, 온라인에서 의사·군인·금융거래소 직원 등 가짜 신분을 내세워 친분을 쌓은 피해자에게 각종 이유로 돈을 요구하는 범죄다. 단순한 수법 같지만, 범행 기법은 고도화돼 있다.

40대 직장인 오모씨의 경우 자신을 미군이라고 소개하는 여성과 2개월 전 처음 온라인에서 만났다. 페이스북으로 만난 두 사람은 이후 카카오톡을 이용해 매일 채팅을 했다. 한국에 오는 대로 함께 살기로 약속했다. 짐을 부쳐야 하니 배송료 400달러가 필요하다는 상대에게 오모씨는 흔쾌히 돈을 보냈다. 안내받은 링크로 운송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배송 현황이 구체적으로 표시돼 있었고, 택배사 직원이라는 사람에게 ‘자택으로 짐이 배송될 예정’이라는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오모씨는 택배사 전화까지 범행의 일부일 것이라고는 의심하지 못했고, 몇 차례 송금을 한 뒤 연락이 끊기자 사기임을 알았다.

이처럼 로맨스스캠은 페이스북·카카오스토리 등 소셜미디어에서 재력, 외모 등을 앞세워 상대의 신뢰를 얻는 수법을 쓴다. 주로 교포나 외국인으로 국적을 속이고 해외에서 범행을 벌인다. 영어로 말을 걸거나, 번역기를 거친 서툰 한국어로 접근한다. 금전을 요구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정형화돼 있다. 한국에 정착하기 전에 짐을 보내야 하는데 배송료를 달라거나, ‘퇴직금이나 상속금을 받을 예정인데 잠시 보관해달라’ ‘배우자만 돈을 받을 수 있으니 배우자인 척해달라’며 서류 작업비나 변호사 선임비 등을 요구하는 식이다. 고아 행세를 하거나, 배우자와 사별했다며 ‘나를 도울 가족이 없다’고 속이는 경우도 일반적이다.

번역 기술이 발전하면서 한국에서 조직적으로 로맨스스캠 범죄를 펼치는 해외 범죄단체도 생겼다. 앞서 경찰에 검거된 조직도 전원이 나이지리아 국적 외국인들이었다. 이들은 난민 신청을 한 후 심사 기간이 길어지는 동안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본국에서 ‘가짜 프로필’을 만들어 온라인상으로 한국인에게 접근했다. 피해자들이 걸려들면, 한국의 관리책과 인출책이 도용된 계좌로 돈을 받아 본국으로 전달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지만, 관리책 등이 2017년 입국한 것을 감안하면 범행 기간이 더 길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로맨스스캠의 가장 큰 특징은 상대와 오랜 기간 친밀감을 쌓는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서적으로 의존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고, 결국 ‘알면서 당하는’ 피해자도 생긴다. 3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뺏긴 주부 한모씨는 외국 장교라는 상대에게 수억원을 사기당했을지 모른다고 의심하면서도 추가로 돈을 더 보냈다. 한모씨는 채팅으로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다”면서도 “더는 거짓말을 하지 마라”며 송금을 계속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로맨스스캠은 혼자 사는 중장년층의 외로운 사람들에게 더 치명적이다. 경기북부경찰청 김동하 수사관은 “뉴스를 보고도 ‘그럴 리 없다’며 경찰에 호소하는 피해자도 있었다”며 “그 정도로 피해자들은 심정적으로 상대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이유로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알아도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소셜미디어로 만난 사람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 사실을 즉각 알려야 대응을 빨리할 수 있다”며 “사전에 범행 수법을 알아두면 피해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조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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