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건물. ⓒphoto 뉴시스
경남 진주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건물. ⓒphoto 뉴시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주회사가 된다. 직원들의 땅 투기를 근절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보도에 따르면 LH는 지주사인 모회사가 되고, 토지를 개발하는 회사와 임대주택을 개발하는 회사 2곳이 자회사가 되는 구조다. 정부는 ‘조직을 해체하는 수준의 방안’이라고 자평하지만 과연 그런지 의심스럽다. 호박에 줄을 긋는다고 해서 수박이 될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말대로라면 지금까지 LH가 지주회사가 되지 않아서 직원들의 토지 투기가 발생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LH가 지주회사 체제로 바뀌더라도 민간 토지를 수용해서 택지를 개발하는 독점권과 직원들의 개발정보 독점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LH 투기로 국민들이 분기탱천하자 당면 과제인 3기 신도시 개발 사업이 지장받을 것을 우려해 급한 불을 끄는 차원에서 지주사 전환이라는 카드를 내놓았다. 조직을 개편한다고 해서 업무상 비밀 정보를 이용한 토지 투기가 척결될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정부 조치가 여론 달래기에 불과한 ‘쇼’로 보이는 이유다.

LH의 택지 개발 독점이 만들어내는 부작용에 대해서 필자는 본지 제2651호(‘LH 투기꾼 키운 것은 비밀주의 공공개발’)에서 설명했다. LH가 서구 선진국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토지의 독점 개발권을 쥐고 있는 한 직원들의 비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의 비리는 보다 정교하고 은밀하게 자행될 가능성이 높다. 내부정보를 이용해 얻게 되는 금전적 이득이 엄청나게 큰데 비리 유혹을 떨쳐버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LH 투기 사건이 터진 뒤 개발정보를 이용해 토지를 샀다 사정당국에 발각된 수많은 공무원들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일하는 방식과 사람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인데 무슨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공공이 개발 독점하면 집값은 더 비싸진다

공공의 독점 개발에서 비롯되는 비효율과 비리는 단지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하는 문제는 아니다. 공공이 토지 개발을 독점하고 있는 홍콩에서도 나타나는 문제다. 홍콩은 예나 지금이나 세계에서 집값이 가장 비싸다. 홍콩이 오랜 기간 세계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도시라는 악명을 얻은 배경에는 정부의 개발 독점이 도사리고 있다. 이 사실을 고발한 인물은 윌리엄 휘턴(William Wheaton) 매사추세츠공대 교수다. 휘턴 교수는 1994년 발표한 논문(‘Effects of Restrictive Land Supply on Housing in Hong Kong: An Econometric Analysis’)에서 홍콩의 집값이 살인적으로 비싼 이유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중국이 영국에서 홍콩을 양도받은 시점이 1997년이니 그 3년 전의 논문이다. 그가 폭로한 사실은 “수요에 한참 못 미치는 토지공급을 함으로써 앞으로 주택공급이 부족할 것이라는 인식을 시민들에게 심어 수요를 증가시키고 집값을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홍콩 정부가 토지사용료를 많이 거두려고 토지 공급량을 조절했고, 그 결과 토지와 주택의 가격 급등이 나타났다는 뜻이다. 홍콩의 주거비는 홍콩의 주권이 중국에 양도된 1997년 이후 더 올랐다. 중국 정부가 토지가치를 시가대로 평가해 토지사용료를 매기고 토지사용기간을 종전의 75년에서 50년으로 단축시키자 나타난 결과다. 문재인 정부가 공시지가의 ‘시가 현실화’를 주장하자 2021년부터 재산세가 급등한 것과 같은 이치다.

홍콩의 집값이 세계 최고인 것은 토지의 공급 부족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는 홍콩에도 있다. 홍콩대 리처드 웡(Richard Wong)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홍콩의 비싼 주택가격은 토지 이용 계획의 경직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딱 잘라 말한다. 싱가포르는 국토의 90% 이상을 개발한 반면 홍콩은 불과 25%만을 개발한 것이 그 증거라는 것이다. 웡 교수의 주장은 홍콩의 주택 부족이 극심한데도 불구하고 국토면적의 3분의 2를 그린벨트와 공원으로 묶어놓은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그의 비판은 낯설지 않다. 홍콩 정부가 토지 공급에 고루한 태도를 보이는 것과 한국 정부가 민간의 주택 개발을 백안시하는 모습이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홍콩에서 토지개발을 담당하는 주체는 한국처럼 공기업이다. 홍콩주택청(Hong Kong Housing Authority)은 정부가 자본금을 출자해 만든 회사로 정부에서 유리한 조건으로 토지를 불하받아 택지를 독점 개발하고 있다. 홍콩주택청은 홍콩 총재고주택의 50%를 보유하며 공공임대주택과 분양전환임대주택 등을 공급하는 홍콩 최대의 주택개발업체이다. 홍콩주택청이 택지 개발을 독점하고 있는 구조는 홍콩의 주거비를 세계에서 최고로 비싸게 만든 여러 원인 중 하나라고 리처드 웡 교수는 진단한다. 독점은 민간, 공공을 가리지 않고 저효율·고비용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LH의 사정은 어떠한가. LH는 2020년 기준 자산총액 185조원, 자본금 36조원으로 자본금 기준으로 한국전력(3조2000억원)보다 10배 이상 큰 공룡 공기업이다. LH의 기능과 위세는 홍콩주택청과 판박이다. 세계 각국은 독점의 폐해를 막으려고 공정거래위원회를 설치해 독과점이 낳은 문제를 제거하려고 노력한다. 이 땅의 공정거래위원회도 민간 부문의 ‘갑질’을 때려잡으려고 열중한다. 선진국들은 국방, 치안, 보건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된 분야에서는 공공의 독점을 허용하지만 그 밖의 분야에서는 공공의 독점을 용인하지 않는다. 미국과 서구 유럽에서 공공이 택지 개발을 독점하지 않는 이유다.

우리는 어떠한가. 정부는 서민 주거복지 지원이라는 본연의 의무를 뛰어넘어 중산층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민간주택 시장마저 공공주도로 개발하려고 억지를 부린다. 공공의 영역이 커질 때 시장 효율과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국내외 수많은 학자들의 충고는 아예 무시한다. 사고가 경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해외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명예퇴직을 한 지인을 만났다. 그는 미국, 홍콩, 마닐라 등에서 투자은행 업무를 담당하다가 지난 3월에 귀국한 금융 전문가다. 그는 오랜만에 귀국해서 살아보니 한국이 참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만족해했다. 물가가 낮고 의료비가 저렴하다는 사실을 만족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서울의 주택 시장이 악화된 사실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판했다. 본인 소유의 아파트는 세입자와의 임차 계약이 올 7월까지라서 세입자에게 이사비를 지원해주고 자신의 집에 입주하려고 했는데도 실패했다고 했다. 몇 년 전 홍콩에서 3년간 근무한 뒤 귀국했을 때는 당시 자신 소유의 집에 세 살던 임차인에게 이사비를 준 뒤 ‘조기 입주’를 시켰는데 이번에는 임차인이 거부하는 바람에 불발됐다는 것이었다.

그는 해외에서 근무하는 동안 임차인이 불편하게 살지 않도록 비용을 들여 각종 수리를 해주며 신경을 써줬는데 현 임차인의 태도는 예전 임차인의 태도와 너무나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른 집에 세 들어 살아볼까 하는 생각에 견적을 뽑아봤더니 이사 들어가고 나오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것으로 나와 포기했다고 한다. 결국 할 수 없이 경기도 덕소에 있는 부모님 집에 들어가 3대가 더불어 살고 있다고 한탄했다.

어느 쪽이 공익에 부합하는가?

그는 현 정부가 말로는 집값을 잡는 것이 정책목표라고 말하면서도 왜 지금 당장이라도 실현가능한 주택공급을 시작하지 않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0~40대가 ‘영끌’까지 해서 집을 사고 20대 청년들이 코인 투자에 매달리는 것은 월급을 받아서는 집을 살 수 없게 되자 ‘이생망’이라는 심정으로 올인하기 때문인데 이런 상황에서 입주하기까지 10년이 걸리는 신도시 개발에만 몰두하는 정부의 경직된 사고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는 용산공원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공원 조성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집값이 급등하고 주택 부족이 심각한 상황에서 용산공원 면적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과 공원의 일부를 공원 용도에서 해제한 뒤 그곳에 아파트를 고밀도로 공급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공익에 부합하느냐는 지적이다.

용산공원을 현재 계획된 규모대로 조성하면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만 혜택을 받을 뿐이지만 공원의 일부에 주택을 공급하면 다중의 이익에 더 부합한다는 것이다. 즉 용산공원의 면적을 현재의 절반으로 줄이고 공원 부지에서 해제된 토지에 아파트를 고밀도로 짓겠다고 선언함과 동시에 강남북의 재개발, 재건축을 활성화하겠다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야 집값 상승이 멈출 것이라는 주장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좌파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오랜만에 옳은 소리를 했다. 그는 최신작(‘불만 시대의 자본주의’)에서 “부동산 건물주들이 부를 쌓는 지대(rent) 추구는 국부를 쌓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을 우리의 상황에 적용한다면 ‘토지나 아파트 투자로 돈을 버는 것은 국민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가 된다. 그는 “사회의 많은 인재들이 지대 추구에 관심을 집중하게 되면 기초 연구에 참여하는 인재, 사람들이 실제로 원하고 필요로 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고 국가의 실질적인 부를 늘리는 여러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인재의 수는 줄어들 것이다”라고 설파했다. 스티글리츠 교수의 주장은 공자님 말씀처럼 백번 옳은 말씀이다. 청년 세대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여 국가의 실질적 부를 증가시키는 데 공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3기 신도시 개발’과 ‘공공주도 개발’을 더 이상 고집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새 집에 살고 싶은 사람은 무조건 투기꾼?

요즘 장바구니 물가의 오름세가 크다고 모두들 걱정한다.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요인은 많다. 어빙피셔 예일대 교수는 1930년대에 출간한 저서 ‘화폐 착각’에서 물가에 변화를 일으키는 4가지 원인을 꼽았다. 그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은 화폐 유통량이 재화의 유통량보다 상대적으로 증가하면 발생한다. 주택이라는 재화도 마찬가지다. 화폐가 많이 풀려서 집값이 상승할 수도 있지만 공급량이 적거나 수요가 증가해도 집값은 오른다. 지금의 집값 상승은 당연히 후자가 원인이다. 일은 정부에서 저질러 놓고 비난의 화살은 새 집을 열망하는 국민들에게 돌린다. 새 차가 중고차보다 비싸듯이 신축 주택은 낡은 주택보다 비싸다. 자신들은 새 아파트에 살면서 새 집으로 이사가고 싶어 하는 다수의 시민들을 투기꾼 취급하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책임회피이자 고집불통에 불과하다.

LH의 지주사 전환도 책임회피의 일환이자 눈 가리고 아옹하는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집을 사고 싶은 국민들을 투기꾼으로 매장시켜버리고 한번 손에 쥔 토지의 독점 개발권을 죽어도 놓지 않겠다는 몸부림이 LH 지주사 전환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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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중 ‘서울 집값: 진단과 처방’의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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