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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660호] 202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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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인류사]그리스 도시국가 ‘테베’의 건국신화를 팩트로 다시 읽으면...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2021-05-31 오전 8:52:21

▲ 전령의 신 헤르메스와 함께, 용의 이빨에서 솟아난 사람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카드무스. 출처: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루벤스의 작품, 퍼블릭 도메인
문자가 없었던 전통사회에서는 기억력과 입담이 좋은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이들은 사람들이 모이는 크고 작은 자리에서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런 이야기는 사람들의 중요한 오락거리였던 동시에 정보의 원천이며, 또한 집단 기억의 저장소였다.
   
   전통적 스토리텔링에서 비중이 큰 범주 중 하나가 무용담이다. 조상들이 지금의 터전을 만들고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멋지게 싸워왔는지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싸움은 아무래도 살기 힘들면 더 많이 일어나게 된다. 중앙아시아나 북유럽 같이 환경이 척박한 지역에서는, 전해져 내려오는 민담 거의 대부분이 조상들의 환상적인 전투 무용담이다.
   
   그런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란 세월이 흐름에 따라 필연적으로 변형되기 마련이다. 인간 기억력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또 무용담이라는 게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얘기니까, 그리 자랑스럽거나 아름답지 않은 부분도 상당히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얘기를 전할 때는 그런 부분을 적당히 각색하게 된다.
   
   
▲ (왼쪽) 하프 반주에 맞추어 이야기를 들려주는 고대 켈트족의 음유시인 바드. (가운데) 높은 단상에 앉아 많은 청중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도 전통 스토리텔러 카타카르. (오른쪽) 한국의 판소리 역시 과거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노랫가락에 담아내는 형식이었다. 출처: (왼쪽)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가운데) Flickr Commons, 퍼블릭 도메인 (오른쪽)모흥갑의 판소리도, 퍼블릭 도메인

   
   
   ‘상징’이란 표현기법은 그럴 경우 아주 적절하게 쓰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보자. 그리스 신화에 ‘(용의 이빨을) 뿌려서 나온 사람들’(the Sown)이라고 전해지는 얘기가 있다. 주인공은 카드무스. 고대 그리스에서 역사가 긴 도시국가인 테베의 건국주로, 저 유명한 고대 해양대국 페니키아의 왕자 출신이다.
   
   기원전 1900년 무렵, 페니키아의 왕 아게노르에겐 용감한 아들 카드무스와 아름다운 딸 에우로파가 있었다. 에우로파의 미모에 반한 제우스 신(神)이 그녀를 납치해 그리스로 데려가자, 아게노르 왕은 카드무스 왕자에게 에우로파를 찾아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지중해 동부를 가로질러 그리스 반도의 보에오티아 지방에 도착한 카드무스는 여동생을 찾아 헤매다가 어떤 우물에 도착한다.
   
   이 우물은 무서운 용이 지키고 있었는데, 전령신인 헤르메스가 나타나서 도와줘 카드무스는 용의 목을 벤다. 헤르메스가 시키는 대로 그 용의 이빨을 뽑아서 땅에 뿌리자, 거기서는 중무장을 한 남자들이 수도 없이 솟아났다. 헤르메스는 카드무스에게 몸을 숨기고 그들 사이로 돌을 하나 던지라고 말한다.
   
   돌에 맞은 사람은 화가 나서 돌아보더니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그랬다고 생각하고 죽여 버렸다. 그랬더니 그 옆에 있는 사람이 화가 나서 또 그 사람을 쳤다. 이렇게 점점 싸움이 붙어 결국 그 많은 사람들이 거의 다 죽었고 다섯 명만 남았다. 카드무스는 남은 다섯을 잘 다스려서 부하로 만들어 테베를 건설했다.
   
   
▲ (왼쪽) 테베 및 페니키아(티레) 위치와 연결 항로. 원본 지도 (오른쪽)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도움으로 테베를 건설하는 카드무스. 출처: (왼쪽)User-Koba-Chan의 유라시아 지도에서 해당 지역만 잘라 지명 기입,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urasian_mass.jpg (오른쪽) 16세기 프랑스 판화, 퍼블릭 도메인

   상징으로 가득한 이 이야기를 팩트로 번역해보자. 당시의 환경 상황을 최근의 첨단 과학 및 고고학 연구 성과의 도움으로 재구성하면 보이는 게 있다.
   
   아래 기후변화 그래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원전 1900년 무렵은 지구평균기온이 갑자기 저하되어 한랭기에 접어들면서 화산 폭발도 많았고 기후도 심하게 불안정해졌을 때다. 흉년이 계속되어 좀 더 먹고 살만한 곳을 찾아 유럽 전역에 민족 대이동이 있었다.
   
   아테네에서 페니키아의 본토인 레바논 해안까지는 고대 항로로 약 800㎞ 정도, 배를 타고 쉽게 갈 수 있는 거리다. 페니키아도 그 이전에 비해서는 살기 어려워졌겠지만, 해상대국으로 쌓아온 부가 있고 토양도 훨씬 비옥하니 아테네보다는 나았을 테고, 따라서 아테네 쪽에서 페니키아로 노략질하러 들어간 무리가 있었을 테다. 그런 노략질엔 으레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납치가 포함된다.
   
   안 그래도 전보다 살기 힘든데, 노략질해가는 이방인들을 그대로 두고 볼 리 없다. 보복을 구실로 이국 땅을 공략할 수 있는 기회다. 이럴 때 선봉장으로 지명되는 사람은 왕위를 계승할 왕세자보다 훨씬 뛰어난 동생 왕자인 경우가 많다. 잘하면 해외 영토를 넓힐 수 있고, 최악의 경우라 하더라도 차기 왕좌를 위협할 잠재력이 있는 인물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드무스 역시 왕세자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가락국 수로왕의 선견왕자도 그렇게 해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됐을지 모른다.)
   
   
▲ 과거 1만년 간 기후 변화 중 테베 건국 시기를 전후한 부분의 환경 변화. 카드무스가 활약했던 기원전 1900년 무렵에는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면서 화산 등 지각활동이 활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왼쪽)퍼블릭 도메인 (오른쪽)기후학자 클리프 해리스Cliff Harris와 기상학자 랜디 맨Randy Mann의 논문 “Global Temperature

   배를 타고 그리스 반도에 도착한 카드무스가 선택한 지역은 보에오티아였다. 산맥으로 둘러싸이고 긴 강 유역에 기름진 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며 좁은 해안을 통해 바다로도 이어지는 보에오티아의 지형은 해양국가의 베이스캠프가 되기에 최적이었다. 페니키아 왕족 출신인 카드무스가 노렸을 만한 땅이다.
   
   하지만 이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원주민과 한판 승부를 봐야 했을 것이다. 고대의 싸움은 좋은 우물 및 그 주변 지역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기후변화 한랭기엔 대기 상태가 건조해지고 따라서 가뭄이 계속되기 쉬우니까 더 그랬을 것이다. 무서운 용은 전투력이 강한 원주민들을 상징할 테다. 그래도 정복 전쟁으로 단련된 페니키아의 왕자 카드무스는 그 원주민 집단을 굴복시킬 수 있었다.
   
   주변 지역의 원주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뺑 둘러싼 산 속에 매복해 있다가 이곳 저곳에서 나타나 몰려오는 원주민 전사들은 마치 중무장한 장정들이 땅 속에서 솟아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수적으로 절대 불리하다고 판단했을 카드무스는 이간질이라는 계략을 동원했던 것 같다.
   
   다음 기사에서 좀 더 본격적으로 다루겠지만, 이 시기의 지구환경은 지구 대기권이 불안정해지면서 외부 우주로부터 오는 전자파가 강해질 때다. 이럴 때 지구상에서는 지진과 화산 등 지각활동이 활발해지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심하게 스트레스를 느끼게 된다. 따라서 농업생산성도 떨어질 뿐 아니라 면역력도 저하되어 질병이 만연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사람들의 정서가 대체적으로 불안정해져서, 공격적이 되기 쉽고 사태를 폭넓게 보지 못하고 좁은 시야로 행동하게 되기 쉽다는 특징을 갖기도 한다.
   
   그런 지구환경변화의 작용이 지역에 따라 더 심하게 나타나는 곳도 있다. 만일 이 이야기의 무대인 보에오티아 지방도 그랬었다면, 그 결과 원주민들은 상당히 공격적이고 근시안적인 상태에 있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분열시켜 자기들끼리 죽기살기로 싸우게 만들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을 테다. 자중지란의 결과 원주민 사회가 극도로 피폐해지면, 치밀한 계획과 실행력, 그리고 인내심을 가진 이방인이 그 사회의 헤게모니를 잡을 승산이 커진다.
   
   그리스 신화 속 한 에피소드로 전해져 왔던 테베의 건국 설화는, 21세기에 들어와서 역사적 팩트가 상징으로 표현된 콘텐츠임이 밝혀졌다. 주로 첨단 과학기술에 기초한 고(古)기후학 연구 성과 및 최근 몇 가지 발굴 성과에 의해서다.
   
   이런 재해석 접근법은 가야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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