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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1호] 202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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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인류사]인간 사회의 위기와 생존, 이스터 섬이 주는 또 다른 교훈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2021-06-08 오전 8:53:44

▲ 이스터 섬 라노 라라쿠 채석장에 흩어져 있는 미완성의 거대 석상. 출처: Wikipedia Creative Commons, Travelingotter의 작품.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oai_at_Rano_Raraku_-_Easter_Island_(5956405378).jpg)
근대 서구의 역사서로서 위대한 역작으로 꼽히는 ‘로마제국쇠망사’라는 책이 있다. 19세기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제국이 서서히 쇠해져가다 결국 멸망하는 약 1400년의 과정을 총 6권에 담은 것이다.
   
   요지는 간단하다. 로마시민들이 점점 더 ‘공민으로서의 미덕’(civic virtue)을 잃어갔기 때문에 야만인의 침략에 굴복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로마가 망한 것은 로마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 탓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로마 사람들이 행동만 잘 했다면 로마제국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았을까? 역사는 오로지 인간의 의지와 행동으로만 이루어질까? 기번은 이 책에서 “사실 역사란 인류의 범죄, 어리석음, 불행을 담은 기록에 다름 아니다”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이같은 인간중심적 사고방식이 현대인 사고방식의 기조가 된 것 같다. 과거의 역사를 탐구하든 현재의 시사 이슈를 분석하든, 일단 뭐가 문제인지 파악한 다음 어떤 사람이 어떻게 잘못해서 그런 문제가 생겨났는지 살펴보는 게 요즘 매스컴을 비롯한 담론의 일반적 접근법이다.
   
   물론 문제를 파악하고 대응 전략을 찾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때 초점을 딱 인간의 행동에만 맞춘다면, 그보다 높은 수준, 더 넓은 범위에서 일어나는 작용은 간과하게 될 테다. 구체적인 예를 통해 살펴보자.
   
   ‘이스터’(Easter)라는 이름을 가진 섬이 있다. 남태평양에 위치해 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외딴 섬 중 하나다. 서울시 면적의 4분의 1 정도 크기에, 숲이나 큰 나무도 없는 황량하고 자원도 빈약한 땅이다. 18세기 유럽인이 처음 발견했을 때는 원주민이 배를 만들 나무가 없어 완전히 고립된 채, 두 개의 부족으로 나뉘어 서로 싸우며 식인 풍습까지 있었다고 한다.
   
   
▲ (왼쪽) 이스터 섬 석상의 일부. 출처: Arian Zwegers의 작품, Flickr Creative Commons(https://www.flickr.com/photos/azwegers/6691076041) (오른쪽) 이스터 섬의 위치. 출처: Google Map(https://www.google.com/maps/place/%EC%9D%B4%EC%8A%A4%ED%84%B0%EC%84%AC/@8.2454871,-173.7116171,3z/data=!4m5!3m4!1s0x9947f017a8d4ae2b:0xbbe5b3edc02a2db6!8m2!3d-27.112723!4d-109.3496865)

   이 섬이 유명해져 지금까지도 여기저기서 언급되고 있는 것은 거대한 석상들 때문이다. 섬 안 이곳 저곳에, 최대 높이가 10미터, 무게 9톤에 달하는 엄청나게 큰 석상들이 900개 가까이 흩어져 있다. 누가 왜 어떻게 이것들을 만들었을까?
   
   외계인의 작품이라는 둥, 지금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고대문명인이 세운 거라는 둥, 황당한 이야기들이 난무했었다. 그러다가 20세기 후반, 과거의 환경을 복원하는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설득력 있는 설명이 등장했다. 1990년대 초 영국 환경역사학자 클라이브 폰팅이 이 섬을 이렇게 초라하게 된 것은 섬 사람들이 이 석상을 만들기 위해 환경을 파괴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처음 제시했다.
   
   원래 이 섬에는 숲이 울창했다고 한다. 인구가 늘게 되면 사람들은 숲을 개간해서 농토를 만들고 잘라낸 나무로는 집과 배를 만든다. 이런 방법은 농토를 비옥하게 해주는 영양물질의 원천인 숲이 점점 사라지게 만들어 장기적으로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두 부족으로 구성된 섬 주민은 언제부터인가 각각 자신들의 조상신을 조각하기 시작했다. 식량과 자원이 점점 더 부족해지며 부족간 싸움이 빈번해지자, 석상에는 점점 더 큰 의미가 부여됐다. 서로 더 큰 석상을 세워 위세를 과시하려 했으며, 싸움에서 이긴 쪽은 진 쪽의 것을 쓰러뜨렸다.
   
   이 석상을 운반하는 방식이 환경파괴를 한층 가속화시켰다고 클라이브 폰팅은 말한다. 몇 톤이나 되는 거대 석상을 고지대의 채석장으로부터 의례 장소인 해안 저지대로 운반하기 위해 통나무를 잘라 레일처럼 깔아 굴렸다는 것이다. 꽃가루 화석을 분석한 결과, 이스터 섬이 한창 번창하던 1600년대 초 갑자기 숲의 나무들이 사라졌는데, 이게 섬사람들이 숲의 나무를 함부로 베어낸 결과라는 것이다.
   
   환경은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이 황폐해진다. 이스터 섬처럼 비교적 위도가 높은 지역에선 환경 회복이 잘 안 된다. 결국 조상신의 석상을 내버려두고, 긴 이전투구 싸움 끝에 식인풍습까지 생긴 비참한 상태로 살게 됐다.
   
   이 설명이 나온 것은 마침 지구환경문제의 심각성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1990년대였고 빠른 속도로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지금까지도 가장 유력한 설명으로 꼽히고 있다. 이전의 설명보다는 견고한 과학적인 근거에 기초해 있으며, 역사 속에서 환경요인을 고려한 진일보한 시각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 설명은 환경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경각심을 높이게 하는 데 큰 기여를 해왔다. 지구상의 고립된 섬 이스터가 겪었던 운명은 우주 안에 고립된 별 지구가 머지 않은 장래에 겪을 운명으로 비유됐다.
   
   하지만 이 설명에는 한계가 있다. 이스터 섬에서의 삶이 그렇게까지 비참해진 까닭을 오로지 섬 사람들의 행동에서만 찾고 있다. 그 결과 인간의 의지와는 별 상관없이 움직이는 더 높고 큰 차원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여기서 조명하고 싶은 더 높고 큰 차원의 움직임이란 거시적 지구환경 변화를 말한다. 앞으로 가야의 역사를 이런 측면에서 조망하겠지만, 일단 여기서는 이런 접근법을 이스터 섬에 적용해보자.
   
   이 섬은 태평양을 삥 둘러싼 해안 지역으로서 화산 활동이 활발한, 소위 ‘불의 고리’(ring of fire) 지역에 해당된다. 또한 동쪽에 치우쳐 있어, 편서풍이 불어가는 방향이다. 즉 불의 고리 안 어디서든 화산이 폭발하면 화산재가 쉽게 몰려올 수 있는 위치다.
   
   
▲ (왼쪽) 불의 고리 화산지대와 이스터 섬의 위치. 출처: 퍼블릭 도메인 (오른쪽) 거시적지구환경변화의 흐름 속 이스터 섬의 주요 환경 및 사회 변화 출처: K10wnsta 의 Wikimedia Commons 그래프를 일부 수정, 한글 기입.(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hart-LongtermGTemps.jpg)

   위 왼쪽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원래 무인도였던 이스터 섬에 사람들이 정착한 것은 기후가 급격히 한랭해졌던 1300년대 후반이다. 이 시기엔 전세계 사람들이 먹고 살 길을 찾아 대이동을 했었는데, 폴리네시아 제도 동남부 사람들의 한 무리도 카누를 타고 무인도인 이곳에 도착했다.
   
   14세기 후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 500년은 마지막 빙하시대가 끝나고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해서 지금까지의 1만 년 동안 가장 기온이 낮고 기후가 불안정했던 시기다. 화산 폭발도 많아 이스터 섬에서도 만만찮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1600년까지 백 몇 십 년 동안 섬 인구가 1만7000명까지 늘었다. 기아와 질병으로 전세계의 인구가 대폭 줄었던 시기에 이 정도는 상당한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전성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1600년 2월, 이스터섬에서 40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페루의 와이나푸티나 화산이 폭발했다. 남미에선 역사상 최대 폭발로, 이 때의 화산재가 지금까지 북극 그린란드에서도 발견될 정도다. 당연히 남미대륙과 남태평양 동부 전체가 큰 타격을 입었다. (16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유럽인의 공략으로 17세기 1세기 동안 남미 원주민 인구가 90%까지 줄었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와이나푸티냐 화산 폭발의 영향도 컸을 것이다.)
   
   
▲ (왼쪽) 와이나푸티나 화산과 이스터 섬 위치. 상기 구글 지도 부분 이용 및 지명 추가 기입. (오른쪽) 현무암을 쌓아 만든 이스터 섬의 닭장. 섬 환경 악화로 닭고기가 귀해지면서 도난 방지를 위해 이렇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출처: PxHere 무료 이미지

   1722년 유럽인이 처음 발견했을 때 이스터 섬의 인구는 2~3000 명, 전성기의 5분의 1 수준인데 나름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 인근에는 아예 무인도가 돼버린 섬들도 많았으니 말이다. 섬의 밭은 납작한 돌로 꼼꼼하게 덮여 있었다고 하는데, 떨어지는 화산재를 막아보려는 눈물겨운 노력의 흔적일 테다.
   
   현재 이스터 섬은 오로지 경쟁심에 눈이 멀어 멀쩡한 섬 생태계를 처참하게 파괴해버린 어리석음의 표상으로 전세계에 알려져 있다. 하지만 좀 더 시야를 높인다면, 평가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 열악한 환경과 혹독한 화산 폭발의 피해를 뚫고 그만큼이나마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이다. 오랜 이주와 개척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와 의지의 결과일 것이고, 아마도 조상 신앙은 정신적 구심점으로서 보탬이 되었을지 모른다.
   
   이스터 섬의 교훈 역시 달라져야 할 것이다.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행동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그런 행동을 촉발한 거시적 환경변화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이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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