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현실에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 고(故) 이모 중사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지난 3월 선임 부사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며 신고한 이 중사는 두달여만인 지난 5월 22일 관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6월 3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현실에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 고(故) 이모 중사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지난 3월 선임 부사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며 신고한 이 중사는 두달여만인 지난 5월 22일 관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공군 측이 성추행 피해자 A중사의 목소리에 조금만 귀기울였다면 그를 살릴 수 있던 기회가 여러차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안타깝게 목숨을 끊은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유족 측도 “A중사를 살릴 수 있었던 기회가 수 차례 있었다”며 “피해 사실을 숨기기에만 급급했던 군이 만든 인재(人災)”라고 주장하고 있다.

충남 서산 해미면의 공군제20전투비행단에서 발생한 이 사건에서는 공군이 사건을 은폐하려 한 정황이 여럿 보인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이 공군 법무실장으로부터 보고받은 내용에 따르면, 당초 이 사건은 지난 3월2일 발생했다. 피해자 A중사는 다음날 직속 상사인 공군상사에게 사건을 보고했고, 이 상사는 곧바로 소속 레이더반장(준위)에게 보고했다.

그런데 이 준위는 A중사와 식사를 하면서 1차로 무마를 시도했다. 코로나19로 인한 5인 이상 집합금지 방역수칙을 위반한 사실이 알려지면 부대 상급자들부터 지휘관까지 여러 명이 줄줄이 징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유족 측의 의심이다.

하지만 사건을 없었던 것으로 무마하기는 어려워 보이자 준위는 같은날인 3월 3일 저녁에 소속 부대인 정보통신대대장에게 보고했다. 이 대대장은 바로 같은 20전비 소속의 군사경찰대대장에 사건을 신고했다. 이미 군사경찰은 사건 발생 다음날인 3월 3일에 사실관계를 파악한 것이다. 그런데 준위가 왜 대대장에게 10시간이나 늦게 보고했는지를 파악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군사경찰의 수사가 부실했다는 것이 군 안팎의 지적이다.

현재 유족 측은 부대 상사들이 방역수칙을 위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게 두려워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무마와 회유를 시도한 것이 이 사건이 발생한 결정적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유족 측 변호인인 김정환 변호사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피해자분이 받으셨을 고통을 함부로 헤아리기는 어렵지만 강제추행 정도로 봤을 때 적절한 케어가 있었으면 치유가 됐을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며 “그런데 신고 후, 시일이 지나고 나서도 심지어 본인의 배우자한테까지 회유가 들어오는 걸 보면서 얼마나 큰 절망감을 느꼈겠나”라고 말했다.

공군의 실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또 다른 실책은 성범죄 발생 시 대책의 기본인 피해자-가해자 분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사건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는 사건 발생 약 2주 뒤인 3월 17일에야 가해자를 공군제5공중기동비행단(김해)으로 보내면서 이뤄졌다. 피해자는 같은 20전비에 있다가 5월 18일에 성남의 공군제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전속됐다.

사건 발생을 인지한 당시부터 공군 군사경찰이 가해자의 휴대폰을 압수수색하지 않은 점 역시 의문점으로 꼽힌다. 군사경찰은 5월 21일 피해자가 사망한 뒤에야 가해자의 휴대폰을 임의제출 받았다. 무려 세 달 가까운 시간 동안 가해자가 자유롭게 증거인멸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최소 4차례 이상 공군은 피해자 가해자 분리 원칙 위반, 상황무마, 부실수사 등의 문제를 일으켰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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