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명동의 한성화교소학교 교문 공사장으로  학생과 학부모들이 드나들고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중구 명동의 한성화교소학교 교문 공사장으로 학생과 학부모들이 드나들고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11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최대 외국인 학교의 교문(校門)이 사라졌다. 서울 한복판 명동 한성화교소학교(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다. 졸지에 학교 교문이 사라지면서 초등학교 학생들과 부속 유치원생들은 당초 교문 부지로 예정됐던 공사장 임시출입문을 통해 등·하교하는 형편이다.

이 같은 상황은 한성화교소학교가 지난해 1월 재건축에 착수한 지 1년 반 넘게 지속되고 있다. 이 사태의 원인으로는 학교 부지 소유주인 대만(중화민국) 정부와 재한 화교(華僑)들 간 100년 넘게 얽히고설킨 토지소유권 갈등이 꼽힌다.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어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향후 수년간 계속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구한말인 1909년 개교한 한성화교소학교는 1902년 문을 연 인천 중구 차이나타운(옛 청국 조계) 내 인천화교소학교에 이어 국내 두 번째로 들어선 외국인 학교다. 학교 측에 따르면, 한때 전 세계 화교학교 중 최대 규모를 자랑했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으로 분교해간 한성화교중고등학교의 뿌리도 이곳이다. 원칙적으로 중국이나 대만 국적 부모를 둔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지만, 중국어 열풍으로 순수 한국 학생도 적지 않다. 하지만 사립 외국인 학교이다 보니 우리 교육부의 관리감독에서 벗어나 있다. 때문에 학생들의 등·하교 안전이 위협받는 현재의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학교 앞에서 만난 한 학부모는 “지난해부터 1년 넘도록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교문 공사장 바로 앞(옛 KT 명동전화국)에서도 호텔 신축공사한다고 중장비들이 수시로 드나들어 아이들을 등·하교시키기가 불안하다”고 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그나마 코로나19로 명동 1층 상가가 빈 곳이 많아 그 앞에 차를 잠시 주차하고 아이들을 픽업한다”며 “학교 재건축도 이미 끝난 것 같은데 교문 건립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대사관, 교문 위치 변경 요구”

110년 넘게 학생들이 드나들던 교문이 졸지에 사라진 사정은 이렇다. 원래 이 학교 교문은 주한(駐韓) 중국대사관 정문과 불과 30m 거리에 있었다. 한데 학교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교문을 중국대사관 정문에서 남쪽으로 80m가량 떨어진 학교 부지 서남쪽 귀퉁이로 옮기기로 하면서 일이 터졌다. 복수의 화교협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교문 위치를 옮기게 된 데는 중국대사관 측의 요구가 있었다고 한다. 화교협회의 한 관계자는 “중국대사관 측에서 교문이 가까워 등·하교 때 드나드는 학생과 학부모들로 번잡하니 교문 위치를 조정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한성화교소학교의 한 관계자는 “원래 두 동으로 나뉘어 있던 건물을 재건축하면서 효율성을 위해 한 동으로 합쳤고 그 과정에서 남쪽으로 교문을 옮기게 된 것이다”라고 했다.

중국대사관의 요청으로 교문 위치를 남쪽으로 옮기기로 하자 예상치 못했던 걸림돌이 발생했다. 현재 새 교문으로 예정된 학교 부지 서남쪽 귀퉁이에는 화교계 신문사인 한신(韓新)일보가 사옥 겸 임대용으로 사용하는 허름한 가건물이 있다. 한신일보는 광복 직후인 1953년 창간한 국내 최초 중문 신문으로, 그간 중화(中華)시보, 한화(韓華)일보, 한중(韓中)일보 등으로 제호를 바꿔가며 신문을 발행해 왔다. 지금은 한신일보란 이름의 인터넷신문을 발행 중이다. 한데 학교 측이 새 교문을 건립한다며 수십 년간 사옥으로 써온 건물을 철거해달라고 요구하자 한신일보 측이 발끈하고 나선 것. 이에 학교 측과 한신일보는 법정에서 맞붙게 됐고 한신일보 측이 승소하면서 졸지에 새 교문을 지을 부지가 사라진 것이다.

현재 이 학교 부지 소유주는 대만 정부다. 중국대사관과 한성화교소학교를 비롯한 이 일대는 임오군란(1882) 때 한반도로 건너와 갑신정변(1884) 직후부터 청일전쟁(1894)까지 ‘감국(監國)’ 신분으로 조선의 내정을 10년간 쥐락펴락한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진영 터다. 청군(淸軍)과 함께 한반도로 건너온 화교들은 후일 중화민국(북양정부) 초대 대총통이 되는 ‘원대인(袁大人·위안스카이)’의 위세를 등에 업고 이 일대 토지를 상당 부분 취득했다.

1992년 한·중 수교(한·대만 단교)와 함께 토지소유권이 대만(중화민국)에서 중국(중화인민공화국)으로 넘어간 중국대사관 부지를 제외하고, 바로 옆 한성화교소학교와 한성화교협회 건물(옛 중정도서관), 삼민주의대동맹 한국지부(국민당 한국지부) 등은 여전히 대만 정부 소유다.

하지만 재한 화교들은 해당 토지가 명의만 대만 정부 소유일 뿐이지 재한 화교들이 실질적으로 일궈온 재산이란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학교 부지에 편입돼 있는 한신일보도 주한 타이베이대표부(대만대사관에 해당) 측과 20년간 장기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건물을 사용해 오던 터였다.

결국 한신일보 측은 타이베이대표부와 대만 외교부 등을 상대로 오는 2026년까지 건물임대 기간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확인받은 뒤 소송을 통해서 이를 근거로 승소를 이끌어냈다. 해당 건물에 입주해 있는 환전소의 관계자는 “화교들끼리 싸움이 붙었는데 소송을 통해서 건물주(한신일보)가 이겼다”며 “건물주가 이겼으니 나갈 이유가 없어졌다”고 했다.

신축 교문 부지 토지임대차 분쟁

중국대사관의 요청으로 시작된 교문 위치 변경이 화교들 간 땅 싸움으로 이어지자 결국 불똥을 맞은 것은 애꿎은 학생들이다. 새 교문 부지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학생들은 신축 교사와 한신일보 가건물 사이로 난 공간을 통해 교정을 드나들고 있다.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공간이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 이에 학교 측이 5층 높이 신축 교사 1층 일부를 터서 차량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임시출입문을 설치했지만, 신축 교사 역시 한 인테리어 업체가 밀린 공사대금 지급을 요구하며 유치권을 행사 중이다. 이에 학교 측은 “하도급 대금 미지급은 하청업체와 시공사 간 분쟁으로 본교와 무관하다”는 내용의 반박 현수막을 내거는 등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전 세계 화교학교 중 가장 황금요지에 있다는 명동 화교학교에서 일어난 토지 분쟁에 대만 조야(朝野)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성화교소학교는 본관 건물에 국민당 심벌마크인 ‘청천백일(靑天白日)’을 달고 있는 대만계지만,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함께 점차 ‘친중(親中)화’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재한 화교의 주류 역시 국적은 대만이지만, 대부분 뿌리는 중국 산둥성(山東省)에 두고 있다. 한성화교소학교 옆에 국내 외교공관 중 최대 규모의 중국대사관이 들어선 직후부터는, 중국대사들도 ‘통일전선’ 차원에서 학교 측에 유무형의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학교로서는 발언권이 세진 중국대사관의 심기를 마냥 거스를 수도 없는 형편이다.

반면 대만 정부 측은 해외 국유재산 지키기 차원에서만 해당 문제에 접근하고 있어 오히려 재한 화교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소송 과정에서 교문 공사현장에 탕뎬원(唐殿文) 주한 타이베이대표(대만대사 격)를 비난하는 현수막이 내걸리기도 했다. 한성화교소학교의 한 관계자는 “한신일보가 입주한 건물은 등기부등본상에 나오지 않는 명백한 무허가건물인데 타이베이대표부에서 임대를 내준 것”이라며 “대표부에서 가까운 시일 내에 정리해주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주한 타이베이대표부의 한 관계자는 “관련 당사자 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화교 사회의 평화를 위해 원만한 해결책을 찾기를 바라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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